# 845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의 매입가는 2,010원이다. 그리고 현수에게 매도할 때의 가격은 16,350원이다.
810%나 상승한 것이다.
세금과 수수료를 내고 현수에게 원금을 갚았다. 그리고 셋이 얻은 최종 수익은 20억 6,100만 원이다.
이 돈은 현재 우리은행 양재북지점 김영신 과장의 도움을 얻어 정기예금과 각종 펀드, 그리고 MMF와 방카슈랑스 등에 분산 예치되어 있다. 매월 발생되는 이자 및 수익은 정기적금으로 재투자되는 중이다.
이것으로 셋은 매월 약 500만 원씩 버는 중이다.
월급은 넉넉하고 근무 여건은 최상이다. 게다가 가외 수입까지 쏠쏠하니 하루하루가 즐겁다.
퇴근하면 수진과 지혜 등은 남자 친구, 또는 여자 친구들과 더불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닌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쉐리엔이 무상 공급되니 부담 없이 즐기는 것이다.
이 모든 게 현수 덕분이다. 그렇기에 수진과 지혜 등이 현수를 생각하는 마음은 각별함을 넘어 있다.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기에 유혹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평생 받들어 모시고 충성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긴 주식을 팔아 얻은 수익만 연봉 5,000만 원짜리 직장인이 한 푼도 쓰지 않고 41년 이상 모아야 할 돈이다.
사치와 낭비를 일삼지 않는다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해에 평생을 보장 받은 셈이다.
“특별히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까?”
“우리은행 양재북지점 김영신 과장님이 이실리프 뱅크가 생겨도 거래를 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흐으음.”
이실리프 뱅크가 생기면 이실리프 무역상사 등은 당연히 주거래 은행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잠시라도 신세 진 사람이 부탁한다니 이맛살을 찌푸린 것이다.
현수의 이런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수진이 입을 연다.
“사장님, 김 과장님을 이실리프 뱅크로 스카우트하는 건 어떨까요? 상당히 능력 있는 분이고 친절하잖아요.”
“……!”
두어 번 보기는 했지만 깊이 아는 건 아니다. 그런데 수진이 추천을 한다. 회사에 충성하는 직원이다.
은정의 말에 의하면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가장 나중에 퇴근하려고 한다고 한다. 맡은 업무를 단 한 번도 펑크 낸 적 없고, 사회 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일 처리가 완벽하단다.
“그분에게 여러 번 도움을 받았는데 금융에 관한 지식이 정말 해박하더라고요. 스카우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한번 생각해 봐야겠군요. 알겠습니다.”
이실리프 무역상사를 떠난 현수는 어패럴에 들렀다.
정신없이 돌아가기는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침체된 경기 때문에 걱정스럽다.
그런데 이실리프 그룹사 전부와 천지건설에 납품하는 회사들만큼은 호황이다.
“아, 오셨어요? 잠깐만요. 네, 네! 그쪽으로 가는 거 맞습니다. 네, 최대한 빨리 보내주십시오.”
“네, 죄송합니다. 네네, 금방 보냅니다. 네!”
박근홍 사장은 휴대전화와 일반전화를 번갈아가며 받는다.
“휴우∼!”
“바쁘시네요.”
“네, 전국의 이실리프 어패럴 직영매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인원이 부족하면 사람을 더 뽑으시지 왜 사장님이 직접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세요?”
“에구, 사람 하나 더 뽑는 게 회사에 얼마나 큰 부담인데요. 당분간 바쁘고 나면 곧 틀이 잡힐 겁니다. 그럼 그때는 조금 나아질 테니 일단은 버텨봐야지요.”
11장 아지즈 상사
박근홍 사장의 말대로 직원 한 명이 늘면 급여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근무할 모든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차량까지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후생복지도 고려해야 한다.
이 밖에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비용이 추가로 발생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퇴직할 테니 퇴직금 적립까지 해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실리프 어패럴은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회사를 유지하려 애쓴다. 사주인 현수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실현시켜 주려는 충성심의 발로이다.
현재 인원은 정확히 1,649명이다.
본사 직원 49명과 직영판매장 직원 1,600명이다. 박근홍 사장까지 포함하면 1,650명이 총원이다.
이실리프 어패럴은 이 인원을 당분간 유지할 계획이다.
얼마 전, 박 사장은 본사 직원과 직영판매장 직원 1,600명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업무량이 많아지면 몸으로 때우라는 내용이다.
대신 그에 합당한 급여를 약속했다. 직원들 입장에선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일을 더 하면 더 준다는데 왜 싫다고 하겠는가!
매장 직원 대부분은 백수 생활 끝의 취업이다.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것이다.
“……!”
현수는 사람 선택을 잘했다는 느낌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기분 좋은 미소가 어려 있다.
“판매는 어떻습니까?”
“전국 매장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습니다. 모든 공장을 풀로 가동하지만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겠군요.”
겨울이 다 가기는 했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이다. 그러니 항온의류의 판매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춘추복은 다 준비된 거죠?”
“네, 지금은 하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복용을 준비해야겠군요.”
항온마법진 이야기이다.
“그래주십시오. 참, 아침에 두바이의 라일라 아지즈 사장님으로부터 팩스가 온 게 있습니다. 근데 아랍어라…….”
“주세요. 제가 읽어드릴게요.”
“네, 잠시만요.”
박근홍 사장이 가져온 팩시밀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실리프 어패럴 대표이사에게.
안녕하세요?
아지즈 상사 대표 라일라 아지즈가 인사드립니다.
귀사와의 인연 덕분에 아지즈 상사는 번창 일로에 있습니다. 이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본인은 귀사와 정식으로 총판 계약이 맺어지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바라는 것은 두바이 독점권입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저희에게 공급하는 가격의 인상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부디 좋은 소식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참, 김현수님께도 안부 전해주십시오.
라일라 아지즈.
“흐음, 두바이에서 아주 잘 팔리는 모양입니다. 참, 지난달에 1억 달러어치나 주문했죠?”
“네, 2월 21일에 했습니다.”
“그 물건은 다 간 겁니까?”
“아뇨.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겁니다. 워낙 물량이 많아 배로 실어서 보냈거든요.”
현수는 물량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1억 달러면 한화로 1,200억 원이나 된다. 그러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일 것이다.
“흐음, 그게 도착하기도 전에 이런 팩스를 보낸 걸 보면 가능성을 확인한 모양이군요.”
“그런 모양입니다.”
라일라 아지즈는 2014년 1월 16일에 항온의유 50만 달러어치를 주문하면서 두바이 특약점이 되었다. 그때는 항공 운송으로 보냈다. 첫 주문이라 배려해 준 것이다.
20일이 지난 2월 4일에는 1,000만 달러어치를 주문했다. 주문량이 20배나 늘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불과 17일 만에 다시 1억 달러어치를 추가 주문했다. 첫 주문이 있은 후 한 달하고 하루가 지났을 때다. 첫 주문량의 200배이다.
이는 항온의류에 대한 호평이 이어진 때문이다.
처음 항온의류를 받았을 때 아지즈는 두바이 몰 총지배인을 찾아갔다. 아버지의 친구이다.
참고로 두바이 몰은 1,200개가 넘는 상점이 있는 초대형 쇼핑몰이다. 안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수족관이 있으며, 초대형 실내 스케이트장도 있다.
너무 크고 넓어서 길을 잃기 쉽다. 특이한 것은 두바이 몰 안에서만 운행되는 실내 택시가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총지배인은 항온의류를 입고 바깥으로 나가보라는 아지즈의 말에 짜증스러웠다.
나가면 덥다는 걸 뻔히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친구 딸의 부탁을 무시하겠는가!
내키지 않았지만 항온의류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날 두바이 몰엔 항온의류를 파는 매장이 개설되었다. 항온의류 판매를 허가한 것이다.
입어보고 효과를 확인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항온의류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입소문이 번지면서 너도나도 사갔다. 워낙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은 곳인지라 한꺼번에 10만 달러어치를 사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에 주문한 1억 달러어치는 선주문을 받은 것이다.
이 중 반은 선금으로 받아 이실리프 어패럴로 보냈다. 다시 말해 5,000만 달러를 미리 송금한 것이다.
“독점총판 계약, 해주세요. 어차피 누군가 할 일인데 매출 신장률을 보니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공급가는 어떻게 변경할까요?”
상대가 독점권을 따는 대신 납품가 인상을 감수하겠다는 의사를 보냈기에 한 말이다.
현수가 알기에 아지즈 상사로 보내는 값은 지르코프 상사에 보내는 것보다 높다. 주문 물량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금액으로 비교하면 지르코프 쪽은 약 53억 3,000만 달러이고 아지즈는 1,000만 달러이다.
지르코프 쪽이 533배가 많다.
따라서 8,000만 벌을 주문한 지르코프 상사와 공급가가 같다면 오히려 불공평한 일이 될 것이다.
“그냥 기존가대로 보내주세요. 그리고 두바이도 관광할 겸 사모님과 다녀오시고요.”
“네? 집사람하고요?”
조금 전에 엄청나게 바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한가롭게 외국 구경이나 하고 오라니 의아한 표정이다.
“사모님께서 한동안 실의에 빠져 계셨잖아요. 이제 좀 살 만해지셨으니 구경이나 하고 오세요.”
“네?”
박근홍 사장은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있을 때 아내가 자살을 고려한 적이 있다는 걸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바깥에 나가 바람도 쐬고 구경도 하고 오세요.”
“……!”
“참, 두바이에 가시면 꼭 버즈 알 아랍에 묵으세요.”
버즈 알 아랍은 인공 섬 위에 돛단배 형상으로 지은 7성급 호텔이다. 투숙객이나 레스토랑 예약자가 아니면 아예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다.
하루 숙박비용은 최하 200만 원부터이다. 실내장식 등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버즈 알 아랍이요?”
박근홍 사장도 이 호텔이 어떤 곳인지를 안다.
에드워드 권이라는 셰프(Chef)가 이 호텔에 근무한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길 가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보고 오셔서 얘기 좀 해주세요. 최고급 호텔의 내부는 어떤지.”
“아! 네에.”
현수가 자신을 배려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은 박 사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지즈 상사의 총판권은 두바이에 한함을 분명히 해주세요. 추후 다른 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올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참, 중동과 중남미, 그리고 동남아시아 쪽 디자인 개발도 하고 계신 거죠?”
“물론입니다. 디자인실에서 쉼 없이 새로운 디자인을 뽑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박근홍 사장의 보고에 의하면 이실리프 어패럴은 현재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영업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 영업이 아니라 찾아와서 서로 달라는 아우성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현재는 공급이 주문을 따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르코프 상사로 보낼 8,000만 벌 때문이다.
이걸 다 소화해 내고 나면 한숨 돌릴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하청공장을 물색하거나 라인 증설을 하지 않고 있다.
괜히 그랬다가 생산물량이 줄어들면 손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년 얼마나 주문할지 감이 잡혔으니 그에 맞춰 시설을 확충하면 될 것이다.
현수가 떠난 후 박근홍 사장은 무언가를 한참 동안 메모했다. 그리곤 영업부장과 총무부장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