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9
[알았어.]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모르지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현재 엔다이론은 청금발에 큰 눈망울을 한 아주 늘씬한 절세미녀의 모습이다. 발가벗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은 이렇지만 최상급 정령인 엘리디아로 진화하면 전설의 용과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된다.
이그니스는 훨씬 더 커지면서 날개가 두 쌍인 불새 이그드리아가 된다.
땅의 상급 정령인 노에스는 최상급이 되면 성인 남성과 같은 외모를 가진 노에디아가 된다.
바람의 상급 정령 실라디온은 최상급 실리디아가 되면 현재보다 훨씬 더 예쁜 절세미녀가 된다.
여전히 여성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엔다이론은 너무나 예뻐서 아리아니는 주인님의 눈과 마음을 현혹하는 존재라 여기고 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진화시키고 싶은 것이다.
물론 맨 마지막이 실라디온이다. 지금보다 더 예뻐지면 주인님의 사랑이 그쪽으로 옮겨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스터!”
“왜?”
엔다이론의 부름에 시선을 주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연다.
“마스터를 만난 기념으로 소녀가 예물을 바치고 싶사온데 받아주셨으면 해서요.”
“예물?”
실라디온이나 이그니스를 먼저 만났지만 예물의 ‘예’ 자도 나온 바 없다. 그렇기에 무엇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예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소서.”
“그, 그래!”
엔다이론의 교구가 수면 아래로 사라지자 아리아니에게 시선을 주었다.
13장 정령의 선물
“정령들이 주는 예물이란 건 뭐야?”
“글쎄요?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근데 너희는 뭐냐? 엔다이론은 예물을 바친다는데 너희는 아무것도 없어?”
“네? 저, 저희는…….”
이그니스와 실라디온은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숙인다. 엔다이론이 가져올 예물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준이 될 것이 없기에 무엇이 예물이 되는 것인지 가늠하지 못해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사라졌던 엔다이론이 다시 수면 위로 튀어 오른다. 발가벗은 몸에 묻었던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더니 이내 얼음이 된다.
엔다이론은 젖은 머리를 흔들어 물기를 털어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몹시 섹시하다. 하여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주인님!”
현수는 아리아니가 귀를 잡아당기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너무나 고혹적인 여체에 잠시 정신 팔려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마스터, 소녀가 바치는 첫 정성이옵니다. 받으소서.”
“이건……!”
엔다이론이 건넨 건 깊은 바다 빛과 같은 사파이어 목걸이다. 그런데 알이 엄청나게 크다.
“오래전 호수 아래로 내려온 것이옵니다. 인간들이 세공한 것치고는 너무 예뻐서 보관했사옵니다. 마스터께 바칩니다.”
“흐음, 이건…….”
중앙에 박힌 사파이어는 150캐럿짜리이다. 그리고 그 곁에 줄줄이 박혀 있는 것들도 크기가 작지 않다.
중앙을 기준으로 각기 일곱 개씩 알이 박혀 있는데 점점 크기가 줄어든다.
100 → 80 → 60 → 40 → 20 → 10 → 5캐럿 순이다.
이것들의 주위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다.
세상에 내다팔면 어마어마한 값을 받을 물건이다.
“마음에 드시나요?”
“그래. 고마워. 그런데 이런 게 많아?”
“모두가 이 정도는 아니지만 인간들이 탐내는 것들이 제법 많이 있사옵니다. 가져다 드릴까요?”
1919년 볼셰비키 혁명28) 이후 서부 시베리아의 ‘옴스크’에 반혁명의 기치를 내건 독립정부가 세워졌다.
해군제독이었던 알렉산드르 콜차크(Aleksandr Vasil’evich Kolchak)가 영국의 지원 아래 제정러시아29)의 잔존자들을 모아 세운 것이다.
한때 그의 세력은 만만치 않았지만 수도로 삼았던 옴스크가 혁명군에 의해서 점령당하자 피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도주할 방향이 문제였다.
동쪽인 유럽으로는 갈 수 없다. 혁명군이 득시글거리니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기 때문이다.
북쪽은 북극이고 남쪽은 사막이다. 갈 곳이라곤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지나나 일본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이때, 콜차크를 따르는 백러군은 50만 명에 이르렀고, 이들 이외에 75만 명에 달하는 망명자가 따랐다.
이들에겐 제정러시아의 재산인 황금 500톤이 있었다.
이것만 가지면 어디에서든지 재기할 수 있다 생각하곤 대이동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견디기엔 너무도 가혹한 강풍과 눈보라로 수많은 사람이 얼어 죽었다.
하룻밤 사이에 20만 명이 얼어 죽기도 했다.
고난의 행군 끝에 바이칼 호에 도착했을 땐 120만 명이 25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힘을 쏟아 바이칼 호를 횡단하기로 하였다.
두꺼운 얼음이 얼어 있어 도보로 건널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바이칼 호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고, 너무도 지쳐 있었기에 모두 얼어 죽은 것이다.
다음 해, 얼어 있던 얼음이 녹자 시신들은 모두 호수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들이 지니고 온 모든 것 또한 물에 빠졌다.
“물속에 뭐가 얼마나 있는데?”
“황금 2,000톤과 보석이 있사와요.”
“……!”
현수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황금과 보석은 아공간에도 넘치도록 있기 때문이다.
“가져다드릴까요, 마스터?”
“아니, 그냥 둬.”
“네, 알았사옵니다.”
엔다이론은 공손히 대답하곤 시립했다. 그러는 사이에 물구멍에 얼음이 낀다. 참으로 추운 날씨이다.
“엔다이론, 마리아나 해구 아래에 노에스가 있다고 하는데 불러다 줄 수 있어?”
“그럼요. 근데 여기서 거긴 너무 멀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
현수는 노트북을 꺼내 마리아나 해구 중 가중 수심이 깊은 비티아즈 해연30)의 상공 좌표를 확인했다.
“자, 가까이 다가와.”
“네, 마스터.”
가장 먼저 엔다이론이 다가왔다. 마치 품에 안기는 듯하다. 즉시 아리아니의 쌍심지가 솟았으나 이내 잦아든다.
마나 세례를 받아 최상급으로 진화하면 용(龍)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기에 봐준 것이다.
실라디온은 좌측에, 이그니스는 우측에 자리를 잡는다.
“매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아주 작은 마나만 남기고 모두가 사라진다.
“으읏! 여긴 덥군.”
모든 것이 꽝꽝 얼어붙은 시베리아에 있다 와서 그런지 더 덥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건 잠시이다.
“엔다이론, 주인님은 새가 아니라는 거 알지? 그러니 저쪽 저기 저 섬 보이지?”
아리아니가 가리킨 곳은 사이판이다.
“저쪽에 있을 테니 노에스 데리고 와.”
“네, 알겠사옵니다, 아리아니님.”
명을 받은 엔다이론이 사라지자 섬으로 이동했다.
현수는 사이판 해변과 이실리프 군도의 풍광과 비교해 보았다. 더없이 맑은 바닷물, 따뜻한 햇살, 고요한 분위기 등등이 유사하다.
“흐음! 별장을 꼭 만들어야겠네.”
스노클링 장비를 가져가면 이실리프 군도에서도 사랑하는 아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 저기 와요.”
엔다이론의 뒤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덩치가 따르고 있다. 신장 20m, 몸무게 수백 톤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해변에서 물놀이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둘 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스터, 데리고 왔사옵니다.”
엔다이론이 고개를 숙이며 고요히 물러나자 노에스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이곳에 오기 전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정녕 태고의 창조신이시옵니까?”
“신은 아냐. 인간이지. 그나저나 덩치 좀 줄여줄래? 내가 올려다봐야 해서 조금 불편해.”
“아! 죄, 죄송합니다.”
스르르르―!
즉시 노에스의 신장이 현수와 비슷해진다.
“나는 아리아니. 모든 정령을 다스리는 존재이지. 노에스에게 내 주인님께 종속됨을 명한다.”
“…꼭 그래야 하는 겁니까?”
“싫으면 안 해도 돼.”
“……!”
아니라 할 줄 알았는데 안 그러자 의아하다는 눈빛이다.
“엔다이론이 엘리디아로 진화하고, 이그니스가 이그드리아가 되며, 실라디온이 실리디아가 되는 걸 보고만 있으려면.”
“…저, 정말 마나 세례를 베풀어주실 수 있는 겁니까?”
노에스가 마리아나 해구 깊숙한 곳에 머무는 이유가 마나 때문이다. 양은 적고 순수하지도 못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곳이 가장 많고 깨끗하다. 그렇기에 깊고 깊은 바다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노에스는 최상급인 노에디아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큰 덩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까닭이다.
“주인님께 바치는 충성을 보고 나중에.”
“하, 하겠습니다. 땅의 상급 정령 노에스가 주인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인님이 아니라 마스터! 앞으론 꼭 마스터라 불러. 그리고 나는 주인님의 뜻을 대리하는 숲의 요정이니 내 말도 잘 들어야 해. 알았어?”
“그, 그럼요! 그러겠습니다!”
노에스는 순박한 시골 청년처럼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좋아, 엔다이론은 주인님의 권속이 되면서 예물을 바쳤는데 넌 뭐 없어?”
“예, 예물이라고요?”
“그래!”
“자, 잠시만요.”
뭔가가 떠올랐는지 노에스의 신형이 삽시간에 사라진다.
[헤헷! 저 잘했지요, 주인님?]
[그래, 잘했어. 근데 예물 이야긴 왜 해? 별로 필요한 것도 없는데.]
현수는 아공간에 잔뜩 있는 금은보화를 떠올렸다.
이미 지구 최고의 부자이다.
따라서 다이아몬드나 금 같은 것에 대한 욕심이 아예 없다.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이 있기 때문이다.
노에스가 다시 나타난 것은 10분쯤 지나서이다.
“마스터, 약소하지만 제 예물이옵니다.”
“으잉? 이 시커먼 것들은 뭐야?”
아리아니는 노에스의 커다란 손에 가득 담겨 있는 시커먼 돌덩이들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예물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는 돌멩이이기 때문이다.
“이걸 가져가려고 인간들이 애를 쓰더군요.”
“…아, 이건……!”
“주인님, 주인님은 이게 뭔지 아세요?”
“응. 이건 망간단괴(Manganese Nodule) 같은데?”
“망간단괴요?”
“그래, 단괴는 말이지.”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단괴는 해수에 용해되어 있는 각종 금속이온이 평균 5,000m 깊이의 심해저 퇴적물 위에 가라앉으며 형성된 검은색 광물 덩어리이다.
퇴적물 위의 상어 이빨이나 돌멩이 등을 핵으로 해 나무의 나이테처럼 동심원을 이루면서 쌓인다.
퇴적층에서 2∼6㎜가 쌓이는 데 일천 년 정도 걸린다. 주요 함유 광물은 망간, 구리, 니켈, 코발트 등이다.
하여 해저의 ‘검은 노다지’로 불린다.
남서태평양에 1조 톤에 이르는 망간단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구리의 양은 약 50억 톤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은 북동태평양의 클라리온―클리퍼톤 해역 내에 약 7만 5천km²의 망간단괴 광구를 가지고 있다.
2013년 11월, 한국 지질자원 연구원(KIGAM)이 개발한 망간단괴 용융환원 기술 실증 시험이 실시되었다.
이로써 심해저 망간단괴를 제련할 수 있는 상용화 핵심공정을 확보한 것이다.
이제 해양수산부는 망간단괴에서 전략금속을 추출해 내는 제련 기술과 수심 2,000m급 채광 기술 등을 2015년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일본과 지나 역시 ISA31)로부터 심해광구 탐사권을 획득한 바 있다. 하여 심해 탐사가 가능한 잠수정 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현재 일본은 수심 최대 6,527m까지 잠수할 수 있는 심해유인잠수정 ‘신카이6500’을 개발했다.
지나가 자체 개발한 유인잠수정 자오룽(蛟龍)호는 7,000m를 돌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