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9
‘으이그! 손발이 다 오글거리네.’
“하명하실 것이 있사오면 말씀만 하소서. 마스터!”
“그래! 실라디온하고 협력해서 지나에 비 좀 적당히 뿌리게 해줘.”
“비요? 방금 비라 말씀하셨사옵니까?”
“그래. 저쪽 공기가 지금 상당히 더러워, 그러니 그게 말끔히 씻겨 가도록 비가 내리게 해줘.”
“대기가 말끔해질 때까지요?”
“응! 실라디온은 공기가 깨끗해지면 다시 원래대로 하고.”
“네, 마스터!”
실라디온이 고개 숙이다.
“그럼, 가봐!”
“네, 마스터!”
실라디온과 엔다이론이 물러간 후 현수는 보고서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회사의 기대가 큰 만큼 리우데자네이루 건을 성사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는 동안 북경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이다. 하지만 바람은 불지 않는다.
북경의 3월 강수량 평균은 9㎜이다. 그런데 지금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퍼붓는다.
현수는 공기가 말끔해질 때까지 비를 뿌려달라고 했다. 하여 엔다이론과 실라디온은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2014년 3월 18일에 시작된 비는 3월 20일에야 그친다. 사흘 동안 내린 비의 양은 3,000㎜가 넘는다.
비가 그친 뒤 가시거리는 35㎞로 대폭 늘어났다. 대기 중 미세먼지가 말끔히 제거된 결과이다.
하늘은 맑은데 땅은 그렇지 못하다. 엄청나게 퍼부은 비로 인해 홍수가 난 때문이다.
그런데 물빛이 누렇지 않고 새까맣다. 난방 중지 명령과 함께 석탄을 집밖으로 내놓으라는 명령으로 인한 결과이다.
하여 현재의 북경은 새까맣다.
북경은 내륙에 위치하여 강수량이 적은 곳이다. 하여 배수시설이 거의 안 되어 있다.
지난 2012년 7월 12일, 북경은 100년 만의 홍수를 겪었다. 그날 내린 강수량은 460㎜였고, 그때 몇백 명이 죽었다.
그런데 사흘 동안 3,000㎜가 넘는 비가 내렸으니 어찌 되었겠는가!
거의 모든 지역이 1층까지 물에 잠겼다. 저지대는 5층도 물에 잠겼다. 홍수로 인한 건물붕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오래되어 노후된 것도 있지만 부실공사가 주 원인이다.
더 이상 심각할 수 없던 대기오염은 해결되었지만 때아닌 홍수에 북경은 도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에 지나 정부는 긴급 비상사태 선포를 하고 수습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는 사이에 깨끗해진 공기는 한반도로 이동한다. 차가운 시베리아 기단이 남하한 때문이다.
북경에 머무르던 공기는 바다 위를 이동하는 동안 온도가 높아져 한국은 쾌적한 날씨가 지속된다.
반면 북경은 매서운 한파에 덜덜 떤다. 그런데 난방을 할 수 없다. 난로와 보일러 사용중지 명령 때문이 아니다.
거의 모든 연료가 젖었기 때문이다.
하여 몇 겹의 옷을 껴입고 날씨 풀리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현수는 이런 사실을 모른다. 엔다리온과 실라디온에게 맡겨놓고 관심을 끈 때문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북경 뒷골목에서 발견된 아소 다로 등 내각대신과 재특회원의 즉각적인 송환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런데 일련의 북경사태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는지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았다.
한편 전 세계 기상학자들은 특이한 기상현상에 주목한다.
비가 북경에만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나머지 지역은 아주 건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 * *
“필승!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박철 준위는 스피드에 탄 현수에게 절도 있는 경례를 올려붙인다. 파일럿들에게 앱솔루트 피델러티 마법을 걸 때마다 근처에 있어서 충성도가 점점 높아진 때문이다.
“수고는요! 그럼 모레 봬요.”
“네! 안녕히 가십시오. 필승!”
부우우웅∼!
성남공항을 떠난 현수는 곧장 평택으로 향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리노와 셀다를 데리고 운동을 한다.
회사에 출근하여 오전 내내 보고받을 것 보고 받고, 결제할 것 결재를 하고, 만날 사람 만난다.
점심식사 후엔 곧장 성남공항으로 향한다. 이곳의 일이 끝나면 평택으로 간다.
F―15K는 하루에 4대, 함정들은 하루에 3대씩 개조해 주는 나날들이었다. 함정의 경우엔 헬기가 포함된다.
오늘은 3월 25일 화요일이다.
이제 F―15K는 총 52대가 개조되었다. 이틀만 더 가면 F―15K 60대에 대한 개조작업이 마쳐지는 것이다.
이는 김성률 공군참모총장과 11전투비행단장 황재기 소장, 그리고 송광선 소령을 비롯한 파일럿들과 군수사령부 제82항공정비창 소속 정비병들만이 아는 사실이다.
해군도 마찬가지이다.
강병훈 해군참모총장과 심흥수 2함대 사령관, 김상우 대령, 고복현 소령, 배영원 준위, 최공모 준위 및 각 함정의 수장 등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해군과 공군 모두 보안유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현수라는 다시없을 천재가 있어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일련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영과 이은정이 신혼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둘은 스위스 융프라우 별장과 모스크바의 저택, 그리고 킨샤사의 저택에서 각기 5일씩 머물렀다.
아폰테 사장이 빌려준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포함하면 장장 18일간의 신혼여행이다.
둘은 도착 즉시 출근하겠다고 했으나 며칠 말미를 더 주었다. 주영 부모님과 은정 부친의 묘소를 다녀와야 하고, 친척들과도 만나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둘은 3월 24일부터 출근하고 있다.
* * *
2014년 3월 25일 화요일 오전 10시.
도로 위를 질주하는 현수의 차에는 지현과 연희가 환한 표정으로 타고 있다.
“자기! 기대돼요.”
“맞아요! 가구도 다 들어와 있을 테니까요.”
“그래?”
현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지현은 오늘 월차를 냈다. 연희도 마찬가지이다. 양평으로 이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저택 입구에 다다르자 홍진식 현장소장이 환히 웃으며 맞이한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이고, 수고는요. 당연히 할 일인데요.”
홍 소장의 안내를 받아 먼저 정원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3월 하순이지만 아직 완연한 봄이 아니라 조금 썰렁하긴 해도 봐줄 만하다. 계절이 바뀌면 신록이 우거질 저택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홍 소장은 아직 마치지 못한 일이 있다면서 정중히 인사를 하곤 돌아갔다.
“와아! 멋져요.”
저택의 현관문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이다.
문고리를 잡고 슬쩍 당기자 기다렸다는 듯 부드럽게 열린다. 아무런 소음도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현관문이 열리자 풍채 좋은 장년인이 정중히 고개 숙인다.
5장 드디어 이사!
“누구… 시죠?”
“사장님을 모시게 된 집사 정일환입니다. 회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앞으로 정 집사라 불러주십시오.”
이연서 회장이 골랐다는 뜻이다.
“아! 그래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지현과 연희의 말에 정 집사가 환히 웃으며 예를 갖춘다. 비굴한 게 아니라 더없이 정중하다.
“네! 두 분 사모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회장으로부터 대강의 이야기를 듣고 온 모양이다.
“아! 네에, 반가워요.”
연희와 지현 역시 환히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곤 시선을 돌려 집안 내부를 살핀다.
공사 중일 때완 확연히 다르다. 훨씬 더 넓다는 느낌이고, 세심한 손길을 받은 것 같다.
마감처리도 아주 깔끔하다. 과연 유니콘 아일랜드 팀이다.
연희와 지현이 집 안을 둘러보는 동안 전직 스페츠나츠들 역시 본인들이 살 집을 둘러보는 중이다.
거의 모든 게 갖춰진 집이라 탄성을 지른다.
최신형 한국산 가전제품과 품위 있어 보이는 인테리어는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스페츠나츠 출신 경호원의 가족들 모두 환한 표정이다. 아주 깔끔하면서도 넓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것이고, 모든 게 갖춰져 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쓸 방으로 뛰어들며 방방 뜨는 중이다.
빈관 뒤쪽엔 육군 12명, 해군 12명, 공군 54명, 그리고 국정원 12명과 토탈가드 24명의 경호원을 위한 공간이 지어지는 중이다.
파견된 사람들이므로 집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다. 임무 교대 전후에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아무렇게나 짓는 것은 아니다.
현재 완공된 빈관과 똑같은 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참고로 빈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건물로 연면적은 800평이다. 유럽의 고급호텔 같은 디자인이다.
지하 1층은 사실 반지하이다. 뒤쪽 주차장에서 접근하면 거기가 1층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곳엔 귀빈을 위한 주방과 창고, 그리고 경호원들을 위한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 하여 작은 골방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원수에 맞춰 쓰도록 18평형 4채, 24평형 4채로 되어 있다.
1층은 널찍한 로비와 계단, 그리고 공용화장실과 엘리베이터실 이외에도 연회를 즐길 공간과 경호원을 위한 공간이 있다.
2층과 3층은 각기 2개의 75평짜리 스위트룸으로 꾸며져 있고, 4층은 150평짜리 최고급 스위트룸이다.
경호원들은 당분간 빈관의 숙소를 이용하게 된다.
“우와아∼!”
지현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3층에 마련된 자신의 침실문을 열었을 때 나온 소리이다.
본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지어져 있다.
역시 반지하인 지하 1층엔 체력단련장, 수영장, 창고, 사용인 휴게소, 주방, 주차장이 있다.
1층은 식사, 접객,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모든 조리기구가 갖춰진 커다란 주방이 있고, 창밖 풍경을 보며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이 밖에 공연 가능한 오디토리엄도 있고, 접객을 위한 커다란 휴식공간도 있다. 모든 게 널찍널찍하다.
2층은 현수의 공간이다. 약 200평짜리 스위트룸과 각종 부속실이 자리하고 있고, 서재와 도서실 등이 갖춰져 있다.
3층은 아내들을 위한 공간이다.
바닥 면적만 600평인 이곳은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가 쓰도록 되어 있다. 각각의 침실은 50평 정도 된다.
따라서 많은 공간이 남아도는 중이다.
지현은 커다란 침대가 놓인 침실을 보고 탄성을 터뜨렸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유럽풍이다. 가구들도 그러하다.
지현의 방이 화려하다면 연희의 방은 고아하다.
완전한 한식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의 사계를 담은 12폭짜리 대형병풍부터 시작하여 두툼한 보료, 자개장, 삼층장, 화초장, 문갑, 서탁 등으로 꾸며져 있다. 물론 침상도 있다.
푹신한 요와 비단으로 감싼 이불, 그리고 국화 꽃잎을 넣어 만든 베개엔 용과 봉황이 자수로 장식되어 있다.
용의 새겨진 것은 현수의 것이고, 봉황은 연희의 것이다.
이리냐의 방은 제정러시아 시절 귀족들의 생활상을 참작하여 꾸며놓았다. 투박한 듯 보이면서도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우며, 세련된 인테리어이다.
백미는 입구에 놓인 중세기사의 갑옷이다. 마치 이리냐의 침실을 지키는 듯한 모습이다.
하나는 판금갑옷인데 할버드를 들었고, 다른 하나는 찰갑옷인데 바스타드 소드까지 제대로 갖춰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