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61화 (860/1,307)

# 861

거동이 불편하니 당연히 전화통화뿐이다.

한편, 몰디브 별장에서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와 한가롭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아폰테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자가용 제트기는 김포공항에 있다. 하여 발을 동동 구르던 중 현수가 떠올랐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다.

작년 9월, 엘리자베스는 비소세포폐암 3B기였다.

아폰테는 의료선진국이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을 찾아다니며 방도를 찾았으나 모두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손쓸 시기를 놓쳐 치료할 방도가 없으니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충고만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현수가 고쳐주었다.

치료 직후 베트남 꽝남성 중앙종합병원에서 CT, PET, MRI 등으로 검진한 결과 폐암이 완치되었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아폰테는 미국으로 갔다. 그리곤 텍사스 주 휴스턴에 위치한 M.D 앤더슨 병원을 찾아 다시 검사했다.

참고로 미국 최고의 병원은 존스 홉킨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는 종합평가의 결과일 뿐이다.

암 치료 분야는 텍사스대 부설 M.D 앤더슨이 부동의 1위이다. 심장 관련은 클리블랜드, 당뇨는 메이요, 신경질환은 존스 홉킨스가 최우수 병원으로 평가된다.

아무튼 그때 진료했던 의사들은 엘리자베스의 폐에서 암의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정말 암환자였었느냐고 되물었다.

아폰테는 현수에게 다비드의 치료를 부탁하였다. 신세를 갚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애걸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온두라스로 가면 됩니까?”

“아니네, 휴스턴으로 오게. 다비드는 지금 M.D 앤더슨에 입원해 있네.”

“휴스턴이요?”

현수는 오늘 아침 이실리프 정보 3국장 최찬성과 4국장 배진환으로부터 받은 이메일의 내용을 떠올렸다.

일전에 지시한 내용 중 확인된 것들을 보고한 것이다.

이실리프 정보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보고메일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오늘 보고 받은 내용 중엔 록히드 마틴의 연구소 위치와 대강의 평면도가 포함되어 있다.

록히드 마틴 항공연구소의 위치는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와 오스틴 사이의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목장처럼 보이지만 지하에 대규모 연구시설이 존재한다는 것이 보고 내용이다.

아폰테 사장이 와달라는 휴스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알겠습니다. 곧장 출발하죠. 그런데 병원에선 의료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퇴원했으면 합니다.”

“알겠네, 조치하지. 휴스턴에서 보세.”

통화를 마친 아폰테는 엘리자베스와 함께 곧장 미국행 비행기를 타러 나갔다. 현수 역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아폰테와 엘리자베스는 너무 과분한 선물을 주었다. 그러니 신세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만사를 제친 것이다.

지현도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내일 출근해야 하기에 연희만 대동했다.

“어서 오십시오. 보스! 마담!”

“어서 오세요. 사장님! 사모님!”

트랩 곁에 서 있던 윌리엄 스테판 기장과 스테파니 베나글리오가 환히 웃는다.

“아! 윌리엄, 오늘도 잘 부탁해요.”

“물론입니다. 보스!”

둘에게도 절대충성 마법이 걸려 있다. 보안유지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내했다.

잠시 후, 제트기가 이륙했다.

“자기야! 세바스티앙 오머런 부회장님 하고 한 약속은 어떻게 해요?”

김포공항으로 급히 오던 중 현수는 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프랑스 오머런사의 세바스티앙 오머런이 건 것이다.

그의 부친인 오머런 회장은 93세이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하여 목숨을 위협할 암과 같은 병에 걸리진 않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거동이 불편하다.

하여 오머런사의 대소사는 부회장인 세바스티앙에 의해 결정되는 중이다.

세바스티앙의 부친 루이 오머런은 현재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천식 증세가 있어 공기 맑은 곳으로 간 것이다.

세바스티앙은 부친의 간호를 위해 파견한 직원으로부터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았다. 갑작스레 근력이 더 떨어지고, 노쇠하는 느낌이 든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부친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고 했다.

자신의 현재가 부친으로부터 말미암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세바스티앙은 만사를 제치고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비서인 베아트리체는 당연히 동행이다.

샤를드골 공항까지 가던 중 베아트리체의 입에서 김현수라는 이름 석 자가 흘러나왔다.

세바스티앙 본인은 중풍에 걸릴 소지가 있었고, 베아트리체는 생리불순으로 인한 난임이 있음을 경고 받은 바 있다.

그때 침을 놔주었고, 한약을 처방해 주었다.

베아트리체는 현재 28일 주기로 생리를 한다.

전에는 언제 나올지 몰라 불안하던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을 그렇지 않다. 날짜에 딱 맞춰 생리가 시작되니 그거에 맞춰 스케줄 조정을 해서 아주 편하다 생각하는 중이다.

세바스티앙 본인도 그간 느꼈던 사소한 증상들이 사라짐을 깨닫고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6장 휴스턴으로

세바스티앙은 김현수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곤 도와달라는 말을 했다.

부친은 현재 뉴질랜드 남섬의 3대 휴양지 가운데 하나인 와카나 호수 근처에 머물고 있다.

공항이 있는 퀸스타운으로부터 약 50㎞ 지점이다.

우리에겐 송강호와 유지태가 출연했던 영화 남극일기의 촬영장소로 눈에 익은 곳이다.

현수는 아폰테 사장의 부탁으로 휴스턴을 가야 하니 그곳에서의 용무가 마쳐지는 즉시 가겠다고 대답했다.

어찌 되었건 본인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기에 기꺼이 도우려는 것이다.

휴스턴 국제공항에 당도한 현수는 입국심사대 앞에 섰다.

미국에 올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이민국의 까다로운 대면심사를 받지 않고도 입국할 수 있는 자동출입국심사서비스(SESㆍSmart Entry Service)에 가입하지 않은 때문이다.

이것에 가입되어 있었다면 줄 서서 이민국 입국심사를 기다리지 않고 공항 내 무인자동화기기로 가서 간단한 신원확인 절차만 마쳤으면 될 일이다.

아무튼 입국심사관은 방문목적, 체류기간, 머무를 호텔 등을 물었다. 자가용 제트기로 입국할 정도면 별도의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것이 관례이다.

현수가 이를 몰라 이쪽에 줄을 선 것이다.

입국 목적은 관광으로 했다. 최대 90일간 비자 없이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체류기간은 혹시 몰라 사흘이라 하였는데 호텔이 문제였다. 바쁘게 오느라 정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 머뭇거리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그는 입국심사관을 따로 불러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통과하라 한다.

현수는 미국 정보당국이 주시하는 인물이다. 자가용 제트기가 김포공항을 떠나는 순간부터 미국의 시선하에 있었다.

방문목적은 온두라스 대통령의 부친 다비드를 보기 위함이다. 아폰테 사장의 전화를 감청한 것이다.

의사도 아닌 현수가 일면식도 없는 다비드를 보러 미국까지 날아오는 것이 의아했지만 두고 보는 중이다.

현수는 입국심사대를 통과한 뒤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축구시합 등으로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입국장 문이 열리자 도착한 사람들을 맞으러 온 사람들이 보인다. 그중 ‘MSC ㏇ 아폰테’라 쓰인 팻말을 든 사내가 있다.

현수의 이름을 써놓으면 이목이 집중될 것을 우려한 배려인 듯싶다.

“제가 김현수입니다.”

“아! 어서 오십시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안내를 받아 공항 밖으로 나가니 리무진과 두 대의 경호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텅, 텅―!

부드럽게 출발한 차량은 한참을 달렸다. 그렇게 하여 당도한 곳은 다운타운에 위치한 마그놀리아 호텔이다.

이 호텔은 1926년에 지어져 미국의 ‘국가역사건축물’로 지정된 건물이기도 하다.

“아! 어서 오게.”

로비에 당도하자 소파에 앉아 있던 아폰테가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현수에게 다가선다. 아폰테의 경호원들은 현수의 얼굴을 알기에 바라만 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안녕하셨지요?”

“그래. 그럼! 자, 어서 올라가세.”

표정을 보아하니 한시가 급한 듯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다비드가 머물고 있는 객실은 22층에 위치해 있다. 현수의 요청에 따라 병원에서 퇴원 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객실 입구에 당도하자 몸수색을 요구한다. 대통령의 아버지이니 그럴 만하다 싶어 불쾌한 내색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연희까지 조사하려 했기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꾹 참아냈다.

“자기는 그냥 아래층 객실에 있어.”

“그럴게요.”

연희 입장에서 다비드는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이다. 게다가 너무 늙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이다.

그런 그가 병석에 누워 골골대는 걸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기에 연희는 순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온두라스 대통령 경호실에서 제공한 객실이다.

“이분이네.”

사전에 이야기가 되었는지 경호원 등이 모두 물러간다. 아마도 아폰테 사장이 보증을 한 듯싶다.

“사장님! 저 혼자 있어야 하는 거 아시죠?”

“그래, 집중이 필요하겠지. 알겠네.”

아폰테 사장까지 나가자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옷걸이 머리 부분에 걸었다. 초소형 핀 카메라가 있었던 때문이다.

밖에서 보고 있던 경호실 직원들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게 있기에 나가랄 때 순순히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실내를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당황하지 않겠는가! 하여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경호원들과 아폰테 사장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중이다.

웬만하면 아폰테를 무시하고 밀고 들어가겠지만 그럴 순 없다. 다비드가 각별히 아끼는 사람이며, 대통령인 후안이 아저씨라 부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폰테 사장은 객실 문 앞에 서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중요한 상황일지도 모르네.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게.”

“안 됩니다. 어르신의 신상에 무슨 일이라고 생기면…….”

“어허! 날 못 믿나? 못 믿어? 후안에게 전화할까?”

“네? 그, 그건…….”

대통령 이름이 나오자 경호원들이 주춤하며 물러선다.

“괜찮을 거라 했지 않았나! 그러니 잠시 내버려 두게.”

“그, 그렇지만…….”

“어허……!”

아폰테가 인상을 구기며 휴대폰을 꺼낸다.

후안에게 전화를 걸겠다는 뜻이다. 이에 경호원들이 손을 내저으며 물러선다.

“아,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만 고정하십시오. 안 들어가겠습니다. 대신 여기 있게 해주십시오.”

“…그건 좋네. 다만 시끄럽게 굴면 안 되네. 고도의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 하니.”

이 말을 끝으로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마나 디텍션 마법으로 다비드의 체내 상황을 살펴보았다.

만으로 93세이니 한국식 나이는 아흔네 살이다.

다비드의 체내로 들어간 마나는 현 상황을 속속 보고한다. 췌장은 암세포에 의해 완전 정복당해 기능 1%라 한다.

이 정도면 췌장은 장기로서의 능력을 완전히 잃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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