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2
간 기능 84% 상실, 위 79%, 신장 73%, 폐 69% 기능 상실이라 한다. 뿐만 아니라 몸 전체 기능 또한 60% 이상 상실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놔두면 2∼3일 내로 사망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흐으음!”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이 정도로 중증일 것이라곤 예상치 못한 때문이다.
“일단은 최소한의 조치부터 취해야겠군. 아공간 오픈!”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푸른빛 감도는 액체가 찰랑거리는 마나포션이다. 이것 하나를 만들려면 만드라고라 2개가 필요하다. 하나가 100년 묵은 천종산삼과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약리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너무 과해도 안 좋으니 일단 반만.”
다비드의 입을 벌리고 조심스레 마나포션을 흘려 넣었다. 곧 상쾌한 향이 객실을 휘감는다.
“증거를 남겨 좋을 것 없으니.”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동안 다시 한 번 마나 디텍션 마법을 구현시켰다. 장기들의 상태는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나빠지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을 뿐이다.
회복포션과 리커버리 마법이 동시에 사용되었다면 차도가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후안은 지난해 있었던 선거에서 좌파를 누르고 승리를 쟁취한 보수파이다. 하여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다.
M.D 앤더슨은 암 치료에 관한한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병원이다. 이 병원에 미국이 관심 갖고 있는 우방국 대통령의 친부가 입원했다.
따라서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줬다.
그런데 너무 늙고 노쇠한데다 암의 진행이 거의 끝에 다다라 있기에 수술을 할 수도 없고, 항암치료 또한 효과가 없는 상황이라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강력한 진통효과가 있는 주사를 놔주는 한편 호흡이나 돕는 정도의 조치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는 퇴원 통보를 받았다.
처음엔 치료를 포기하고 임종이라도 고국에서 맞으라는 배려로 생각하고 순순히 응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경호원 중 하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이다.
누군가 급히 오고 있으며, 그가 당도하면 다비드는 병석을 털고 일어설 것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하여 경호원들에게 접근하여 이것저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엘릭서(Elixir)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만병통치는 물론이고 불로장생의 효능까지 있는 기적의 묘약을 뜻하는 말이다.
물론 현실엔 없는 전설의 물질이다. 따라서 병원 측은 누군가 허황된 기대를 갖도록 만든 것이라 여겼다.
어쨌거나 다비드는 손쓸 여지가 없어 고통을 덜어주는 것 이외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현재는 퇴원한 상태이다.
하여 M.D 앤더슨에선 혹시 몰라 사람을 파견해 두었다. 누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나 알아보자는 의도이다.
“흐음! 일단 위기는 넘긴 셈이지.”
현수의 시선 속 다비드는 여전히 쌕쌕거리며 힘든 호흡을 하고 있다. 겉보기는 아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달라진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비드는 현재 암세포 전이속도와 장기기능 악화속도, 그리고 노화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상태이다.
적어도 1개월은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 셈이다.
벌컥―!
객실의 문이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폰테 사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사장님, 그리고 사모님! 일단 들어오시죠.”
“그, 그러세.”
아폰테와 엘리자베스 부부가 먼저 객실로 들어섰고, 경호책임자들 또한 들어왔다.
“어, 어떻게 되었는가? 가망은 있는 건가?”
환자의 곁에 당도한 아폰테는 다비드에게 시선을 준 채 현수에게 물었다.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한 때문이다.
“상태 유지는 될 겁니다. 그런데 환자를 옮겨야겠습니다.”
“…왜? 여, 여기선 안 되는 건가?”
“네! 이목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전 면허증도 없구요.”
“그건… 알았네. 조치하지, 근데 가망은 있나?”
아폰테 사장의 말은 매우 작았다. 바로 곁에 있는 엘리자베스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이다.
혹시라도 가망 없다는 말이 나올까 싶은 듯하다.
“100% 확신은 못하지만 잘하면 100살까지 살 수도 있을 겁니다.”
췌장이 기능의 100%를 잃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절렉션 마법은 아직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겨우 1% 정도가 남아 있지만 마나포션이 투입된 상태이다. 이건 기력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회복포션과 리커버리 마법이 곁들여진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각종 암은 치료될 것이고, 노화된 장기는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자연치유력이 알아서 생명 유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따라서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한 말이다.
“그런가?”
당연히 아폰테 사장의 눈이 커진다.
세계 최고의 병원에서도 포기한 환자이다. 그런데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할 수 있다니 놀랍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가급적 빨리 옮겨야 합니다. 제 비행기로 가는 건 어떨까요?”
아까부터 느껴지는 시선이 있어 한 말이다.
온두라스는 112,090㎢로 인구 845만 명인 국가이다.
종교는 가톨릭 97%에 개신교 3%이다.
국민의 90%는 메스티소10)이고, 아메리카 원주민 7%, 흑인 2%, 그리고 백인 1%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경호원 전부가 메스티소이다. 모두들 고된 훈련을 받았음이 한눈에 느껴질 정도로 강해 보인다.
그런데 저쪽에서 바라보고 있는 전형적인 백인은 그렇지 못하다. 키는 크지만 체구가 빈약해 경호 일을 할 사람은 아니다.
이 사람이 바로 M.D 앤더슨에서 파견한 사람이다. 문이 열리자 따라 들어와 현수와 다비드를 살피고 있다.
“자네 비행기로……? 흐음, 이야길 해보세.”
아폰테 사장이 경호책임자에게 다가가 의논하는 동안 M.D 앤더슨에서 보낸 백인이 슬쩍 다가와 다비드를 살핀다.
보아하니 의사 중 하나인 듯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었다. 겉보기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비드에게서 별다른 점을 찾지 못한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곤 슬쩍 밖으로 나간다.
사내가 사라지고 대략 20여 분이 흘렀을 때 아폰테 사장이 다가왔다.
“가기로 했네. 비행기는 휴스턴 공항에 있지?”
“네, 그럼 같이 가시죠. 환자분과 사장님 부부, 그리고 저희 부부 외에 3명이 더 탑승할 수 있습니다.”
“알겠네.”
경호원들이 다비드 혼자만 비행기에 탑승한 채 보내진 않을 것이기에 한 말이다.
아폰테가 다시 온 것은 다시 10분이 흐른 뒤이다.
“잠시 후 본 제트기가 이륙할 예정입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본 제트기는 이제 휴스턴 국제공항을 떠나 테구시칼파(Tegucigalpa) 공항으로 직행할 것입니다. 비행시간은…….”
윌리엄 스테판 기장의 안내멘트가 이어진다.
현수와 연희, 그리고 아폰테와 엘리자베스는 마주 앉았고, 경호원들은 바닥에 고정시킨 침상 주변 좌석에 착석해 있다.
“고맙네, 이렇게 와줘서.”
“고맙기는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환자를 치료해 달라는 요청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아네, 세상의 이목 때문이지.”
아폰테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진다.
엘리자베스를 치료할 때 신신당부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어기고 무리한 부탁을 했다. 현수는 거절치 않고 흔쾌히 날아왔다. 하여 미안한 마음뿐이다.
엘리자베스도 미안한지 현수를 빤히 바라만 본다.
“두 분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또 봐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인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알겠네. 약속함세.”
“이이가 그러자 해도 못하게 말리겠네.”
“네, 감사합니다.”
미국까지 오는 동안 연희는 전후사정을 모두 들은 바 있다. 그때 상당히 많이 놀랐다.
하긴 모든 병원이 포기한 말기 암 환자를 아무런 도구도 없이 치료해 냈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하여 마법이 위대하다 여기는 중이다.
“다비드 할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셔도 당분간은 외부활동을 자제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아! 그러면 안 되는가?”
“제가 왔다는 걸 미국이 압니다. 그런데 다비드 할아버지가 갑자기 멀쩡해지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아! 그래. 그렇겠군. 알겠네. 유념하지.”
사업가답게 몇 마디 말만 듣고도 어떤 일이 빚어질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후 엘리자베스가 말문을 열었다.
신혼생활에 대한 것인지라 연희의 두 볼은 금방 빨갛게 되었다. 몹시 부끄러웠던 때문이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동안 제트기는 쉼 없이 날아 온두라스 상공에 당도했다. 미리 연락을 취했는지라 곧바로 착륙할 수 있었다.
웨에에엥―! 웨에에엥―!
다비드를 태운 앰뷸런스와 현수 등이 탄 차는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도로를 질주했다.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는 북위 13°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적도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엄청 더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물어보니 이곳의 계절은 여름과 겨울로 구분된다.
여름은 건기인 11∼5월이고, 겨울은 우기인 6∼11월이다. 지금은 3월이니 이곳은 여름이다.
하지만 서울처럼 후텁지근하지 않다. 해발고도 990m쯤 되는 곳인지라 연평균 기온이 15∼20℃인 곳이기 때문이다.
일행이 당도한 곳은 대통령궁 후원이다. 아담한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앰뷸런스가 당도하자 대기하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튀어나와 환자를 안쪽으로 이동시킨다.
현수와 아폰테는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대강의 정리가 마쳐지자 정력적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다가온다. 경호원들이 뒤 따르는 걸 보면 대통령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인 듯싶다.
“오랜만입니다. 아저씨!”
“그, 그래! 오랜만이네.”
에르난데스 일가와 면식이 많은지 일국의 대통령임에도 아폰테 사장은 편하게 이야기 한다.
“이쪽은……? 으응?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군지……?”
대통령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젊은 동양인 청년을 어디선가 보긴 봤는데 확실히 누군지 떠오르지 않은 때문이다.
이때 아폰테 사장이 끼어든다.
“축구!”
“아! 맞습니다.
사커 마스터 미스터 킴! 반갑습니다.”
불쑥 손을 내미니 얼른 악수를 했다. 그런데 의아하다.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사커 마스터라니요?”
“그게 아니면 갓 오브 사커라 불러야 하는 겁니까?”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런 거 아닙니다.”
“하하! 나도 동영상 봤습니다. 너무 바빠서 경기 전체를 본 건 아니지만 미스터 킴이 세 골을 넣고 네 개의 어시스트를 한 하이라이트를요. 정말 대단했습니다.”
대통령은 최고라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에구…….”
이 대목에서 뭐라 말하겠는가! 하여 겸연쩍은 웃음만 지어 보였다. 이때 경호원들의 술렁이는 모습이 보인다.
현수는 이곳 온두라스에서 ‘사커 마스터(Soccer Master)’라 불린다. 축구의 지배자 정도 되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