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3
경호원들도 대통령처럼 바쁘다.
비번일 때도 한가롭게 축구경기를 관람하진 못한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임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일사회인 축구시합은 주목을 끌 만한 경기가 아니었다. 널리 알려진 선수 하나 없는 시합이었던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난리가 벌어진 후에야 하이라이트를 보았을 뿐이다. 이때 현수의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공의 궤적이 먼저였다. 너무도 멋진 골들이었던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눈앞에 있으니 놀라서 술렁인 것이다.
“그나저나 아저씨! 아버진 어떻게 된 겁니까? 췌장암 말기라 들었는데 정말 치료가 가능한 겁니까? 그리고 누가 치료를 하는 거죠?”
아폰테 사장은 대답 대신 현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맞네. 미스터 킴은 폐암에 걸려 있던 엘리자베스를 치료해냈어. 그것도 하루만에. 보다시피 멀쩡하지. 세상 모든 병원이 포기했을 때였지.”
“혹시 의사이기도 한 겁니까? 미스터 킴?”
“아닙니다. 한국에서 전해져오는 의술을 약간 익혔을 뿐입니다. 의사는 당연히 아니구요. 저는 회사원입니다.”
대통령은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속 시원히 설명하라는 표정으로 아폰테를 바라본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세. 석양이지만 햇볕이 따갑군.”
“아! 네에. 그럼 안으로…….”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간 뒤 아폰테 사장은 현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천지건설 부사장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세계 최고의 IQ를 기록한 사람이며, 온두라스보다 약간 작은 자치령 3개를 보유한 기업가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연히 계속해서 놀라는 표정의 연속이었다.
어찌하여 엘리자베스를 치료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론 계속 현수만 바라본다.
시선 속엔 ‘저거 혹시 사람이 아닌게 아니야?’라는 빛이 담겨 있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해도 지구의 모든 수학자가 달려들었어도 풀어내지 못한 세계 6대 난제를 혼자 풀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생각했다.
게다가 수백 억 달러짜리 공사를 턱턱 따내는 능력자이다.
모든 병원에서 포기한 암 환자를 하루 만에 완치시킨 의술의 신이며, 어마어마한 넓이의 자치령을 혼자 힘으로 개발한다고 한다.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대통령은 다비드가 늦게 얻은 막내아들이다.
형이 넷이나 있었는데 그중 셋이 죽었다. 나이가 스무 살쯤 차이난 큰형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하여 부친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렇기에 아버지에 대해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 아버지가 깊은 병에 걸려 오늘내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일국의 대통령이지만 아무것도 도울 수 없는 것이 못내 괴로웠을 뿐이다.
그런데 희망이 생겼다. 눈앞에 앉은 청년이 어쩌면 부친을 병석으로부터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탁하네. 아버지를……. 내게 너무 소중한 분이네. 부탁하네.”
후안 대통령은 현수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을 살펴보기는 할 겁니다. 완치시킨다는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고맙네. 고마워!”
후안 대통령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언제부터…….”
왜 빨리 살펴보지 않느냐는 뜻이다.
“어르신의 병세가 악화되는 건 일단 막아놨습니다. 저 상태로 최소 한 달 이상 버티실 겁니다.”
“아……!”
휴스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미 보고받았다. 그렇기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살펴보기 전에 하나 다짐을 받을 게 있습니다.”
“다짐……? 뭔가? 말씀만 하시게.”
“저는 정식으로 교육받은 의사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보편적인 의료행위가 아닌 방법으로 치료할 겁니다.”
“……?”
후안은 이 청년이 대체 무슨 이야길 하느냐는 표정으로 아폰테를 바라본다. 본인이 추천했으니 방금 한 말의 저의를 알려달라는 뜻이다.
“한국엔 수천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독자적인 의료체계가 있네. 현대 의학과는 상당히 많이 다르지. 미스터 킴은 그중 비방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배웠네.”
“아……!”
후안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어서 말을 이어보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르신은 살펴보겠지만 다른 환자는 보지 않겠습니다.”
“……?”
이번에도 왜 이러느냐는 표정으로 아폰테를 바라본다.
“겉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힘이 많이 드는 치료법인 모양이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대통령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린 이곳에서 기다리겠네.”
현수의 말에 대꾸한 이는 아폰테 사장이다. 후안이 방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왜……?”
“아까도 말했지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의료행위이네.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린 밖에 있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현수는 다비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락!”
철컥―!
마법으로 문을 잠갔다. 그리곤 창문의 커튼을 모두 내렸다.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딸깍―!
전등을 켜니 밝아지긴 한데 조도가 부족하다.
“매스 라이트!”
파팟!
여러 개의 광구가 허공에 생성되며 환한 빛을 뿌린다.
“흐음! 마나 디텍션!”
다비드의 체내 상황을 살펴보았다. 마나포션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 후안과 아폰테는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고, 엘리자베스와 연희는 대통령궁 후원을 거닐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7장 아스클레피오스
“흐으음!”
현수는 더욱 집중하기 위해 미간을 좁혔다. 다비드의 체내로 흘러든 마나의 보고를 확실히 받기 위함이다.
이미 복용시킨 마나포션은 악화를 저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이다.
암의 악성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린이나 젊은이,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암의 성장이 빠르지만, 노인이나 허약한 사람은 그 속도가 현저하게 늦어진다.
물론 이것도 획일적으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제멋대로 빨라졌다 느려지기도 하고, 정지되었다가도 갑자기 빨라지기도 한다.
아주 가끔 도중에 퇴화하여 소멸하는 경우도 있다.
다비드는 늙은 노인이었지만, 건강한 체질이었다. 하여 불과 1년 만에 암세포가 거의 모든 장기로 번질 정도였다.
여기에 마나포션이 들어가자 전체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정상세포뿐만 아니라 암세포도 빠른 속도로 증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마나포션이 둘을 구별할 능력이 없어서이다.
“하마터면……!”
현수는 방심했다 실수할 뻔했음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나포션이 암세포의 성장을 돕고 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여 현수는 다비드의 배꼽 위에 손바닥을 붙인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나여, 모든 세포를 원상으로 돌려라.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르릉―!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다비드의 복부로 스며든다.
그러자 모든 세포를 활성화시키던 마나포션이 선별적인 활성화 작업을 시작한다.
리커버리 마법이 마나포션으로 하여금 어느 것을 도와야 할지 확실한 지침을 내려준 때문이다.
상당히 많은 마나가 빠져나간다. 엘리자베스 때보다도 많은 듯싶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빠져나간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켈레모라니의 비늘이 없다 하더라도 본신에 저장된 마나의 양이 어마어마한 때문이다.
눈을 감았지만 현수의 뇌는 다비드의 내부를 샅샅이 관조하고 있다. 팅팅 부어 있던 간이 서서히 부피를 줄인다.
위점막의 3분의 2쯤을 점령하고 있던 암세포들은 점차 소멸되어 간다. 대신 새로운 세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물론 정상세포들이다.
기능의 99%를 잃고 있던 췌장은 암세포 때문에 본래의 모양이 어땠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더디지만 서서히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오랜 흡연과 전이된 암세포 때문에 시커멓고 울퉁불퉁하던 폐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동시에 거친 소리를 내던 다비드의 호흡도 점차 편안해지고 있다.
끊임없이 빠져나가던 마나 유출이 멈춘 것은 약 20분이 지났을 때이다.
“휴우∼! 엄청 심했던 거구나.”
나직이 한숨을 몰아쉰 현수는 혈색이 좋아진 다비드를 내려다보았다. 마나포션과 리커버리 마법 덕분에 암으로 인한 사망은 면했다. 죽음에 이르게 할 암세포 자체가 거의 모두 소멸된 때문이다. 노화도 약간은 억제되었다.
하지만 다비드는 이미 93세나 된 노인이다.
몇 년간은 별 탈 없이 살겠지만 서서히 기력을 읽고 종래엔 사망하게 될 것이다.
“살면서 좋은 일을 하면 이렇게 되는군.”
다비드는 젊은 시절의 아폰테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평생 동안 거래를 하면서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인 끌어올림을 당해 수명을 늘린 것이다.
아들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흐뭇해하는 시간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리아니!”
“네, 주인님!”
“이 노인 괜찮아진 거지?”
“…네! 이 정도면 많이 좋은 거죠.”
“조금 쉬어야겠어.”
“그러세요.”
자리에 앉는 현수는 천천히 마나 호흡을 했다. 긴 시간 동안 빠져나간 마나를 채우려는 것이 아니다.
체내의 마나 불균형이 느껴진 것이다.
딸깍―!
문을 열고 나서자 초조하게 서성이던 아폰테와 후안의 시선이 쏠린다. 먼저 입을 연 이는 아폰테이다.
“…어찌 되었나?”
“다비드님은 현재 시료 중에 있습니다. 궁금해할까 싶어 나온 겁니다.”
“잘되고 있는 중이지?”
“아직까지는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후안 대통령이 시선을 준다.
“언제쯤이면 끝나는가?”
“적어도 여섯 시간은 필요합니다. 그동안엔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으면 안 되니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주십시오.”
“여섯 시간? 알겠네. 그리하지.”
후안은 현수의 눈빛에서 자신감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생각났다는 듯 말을 잇는다.
“미스터 킴!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시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겠네.”
“아뇨! 그런 거 없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무엇을 바라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고 말하게. 뭐든…….”
“지금부터 여섯 시간 동안 저 혼자 저 안에서 치료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알겠네. 그리하지.”
“그럼!”
말을 마친 현수는 다시 문을 닫았다.
“락!”
철컥―!
다시 잠겼다. 마법으로 잠근 것이라 열쇠가 있어도 열리지 않을 것이다.
현수는 다비드를 바라보았다. 슬립마법에 걸려 편히 자는 중이다. 아까 복용시킨 마나포션과 리커버리 마법은 이 시각에도 제 기능을 하고 있을 것이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온두라스 대통령궁 후원의 한 전각에 있던 현수의 신형이 스르르 사라진다.
“제대로 왔군.”
현수의 신형이 나타난 곳은 이실리프 정보3국장 최찬성과 4국장 배진환이 파악해 낸 록히드 마틴 항공연구소 인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