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65화 (864/1,307)

# 865

경비원들이 일제히 앉아쏴 자세를 취한다. 차단벽이 올라감과 동시에 침입자를 생포하기 위함이다.

“침입자가 공격하면 즉각 응사하라. 죽여도 좋다.”

“네! 알겠습니다.”

“좋아! 관제실 나와라. 여긴 17경비대. 마이클 대장이다. 섹터8! B16번 문 열어라!”

그르릉! 그르르르릉!

차단벽이 올라가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그런데 아무런 움직임도 없자 들었던 총을 슬며시 내린다.

“관제실! 여긴 아무도 없다. 이제 B15번 문 열어라.”

그릉! 그르르르릉!

차단벽이 올라가는 동안 경비원들은 다시 긴장된 표정으로 40여 평쯤 되는 공간을 샅샅이 훑는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아! 관제실 이번엔 B14번 문 열어!”

그르르릉! 그르르르릉!

또 하나의 차단벽이 위로 올라간다.

일련의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현수는 와이드센스 마법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외장하드에 파일을 복사시켰다.

이제 남은 건 여섯 개의 컴퓨터뿐이다. 그런데 경비원들의 접근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

이 상태라면 2개의 컴퓨터는 복사할 수 없다.

“이제 쇼 타임인가?”

휘휘 둘러보니 옷걸이에 흰 가운들이 걸려 있다.

퇴근하면서 벗어놓고 간 것들이다. 이중 2개의 옷걸이에 가운을 덮어 씌웠다.

“마리오네트!”

이 마법은 흑마법이다. 죽은 시체나 사물을 마법사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튼 두 개의 옷걸이는 현수의 뜻에 따라 차단벽 좌측에 배치되었다.

이렇게 해놓고 계속해서 복사작업을 진행했다.

“관제실! 이번엔 B3번이야. 올려!”

그릉! 그르르릉!

현수가 작업하고 있는 공간의 차단벽이 올라가고 있다.

경비원들의 긴장된 표정이 보인다. 이 순간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무브!”

“헉! 저기 뭔가 움직인다.”

“집중!”

허연 가운이 움직이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무브!”

“저기다. 저기!”

“아앗! 튄다. 쏴!”

타탕, 타탕, 타타타타타타탕―!

피융! 피핑! 피피피핑―!

요란한 총성에 이어 탄화티타늄 강판에 총알 튕기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뭉개지는 것보다 튕기는 것이 더 많은 듯하다.

이 순간 현수의 몸밖에 앱솔루트 배리어가 형성된다. 몇 개의 총알이 곁을 스치자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계속해서 총알이 쏟아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일 저장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군. 조금만 더!”

흘깃 옷걸이를 보니 걸레가 다 되었다.

그런데 경비원들의 눈에는 여전히 정체불명인 사내로 보이는 듯 열심히 쏴댄다.

“뭐야? 저거?”

“그러게 왜 안 쓰러져? 방탄조끼라도 입었나?”

“쏴! 계속해서 쏴!”

옷걸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책상 같은 걸 이용하여 피하려는 것으로 보였는지 사정없이 갈기고 있다.

책상 위에 있던 모든 것은 금방 쓰레기가 된다. 하긴 모니터나 본체 등이 총알을 어찌 견뎌내겠는가!

타탕! 타타타타탕―!

“흐음, 이제 다 되었군. 텔레포트!”

현수의 신형이 지하 연구실에서 사라졌지만 경비원들은 여전히 사격 삼매경에 빠져 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누군가의 말에 총성이 잦아든다.

“샘! 루니! 확인해!”

지휘자의 명에 떨어지자 둘이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책상 뒤를 살핀다.

“이건……?”

“뭐야? 이거!”

“샘! 루니! 죽었나?”

“아닙니다. 대장님! 옷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뭐야? 수색해, 샅샅이 수색하란 말이야.”

지휘자의 명에 따라 경비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리곤 혹시라도 책상 아래 숨었는지 확인한다.

8장 이번엔 뉴질랜드

허공에서 현수의 신형이 나타나자 책을 읽고 있던 연희의 고개가 들린다.

“왔어요?”

“안 잤어? 왜 이러고 있었어? 피곤할 텐데.”

바디 리프레쉬 마법진이 있기에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피로를 덜 느끼지만 장시간 비행을 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엄청난 피로감을 느껴 곯아떨어졌어야 한다. 그럼에도 여태 자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

“자기가 안 오는데 어떻게 자요? 갔던 일은 잘되었어요?”

무엇을 하고 왔는지 꼬치꼬치 따지고 물을 수도 있지만 연희는 그러지 않는다. 현수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응! 잘되었어. 근데 안 피곤해?”

“사실 조금 피곤해요. 그래서 졸기도 했구요.”

사실은 많이 피곤해서 여태 꾸벅꾸벅 졸았다.

현수가 도착할 때 잠깐 제정신이 들었다. 그리곤 더 이상 졸지 않으려 책을 펼쳐 든 것이다.

“그럼 먼저 자지.”

“아뇨! 자기랑 같이 있고 싶어서요.”

“그래! 알았어. 금방 샤워할게.”

후다닥 샤워를 마친 현수는 침대로 들어가 연희를 보듬어 안았다. 그리고 잠시 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하아암!”

짹, 짹, 짹―!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던 현수는 피식 웃었다.

한국과 온두라스, 그리고 아르센 대륙의 공통점이 있다면 새 지저귀는 소리가 똑같음을 느낀 때문이다.

곁을 보니 곯아떨어진 연희가 쌕쌕거리며 잠들어 있다. 숲 속의 잠든 공주가 아니라 포근한 침대에 누운 절세미녀이다.

그리고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이다.

“후후! 미안.”

밤새 괴롭혔음이 문득 미안해진다. 본인은 체력상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연희에겐 중노동에 버금갔었을 수도 있다.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하여 잠든 연희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천천히 정리해 주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 때 연희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린다. 그리곤 별빛을 드러낸다.

“어머! 깼어요? 칫! 못됐어요.”

“어? 왜? 뭐가?”

“나 잠든 모습 추했을 텐데 왜 빨리 깨우지 않았어요? 나중에 그거 가지고 내 흉보려고 그러죠?”

“아냐! 그런 거 아냐. 자기 잠든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랬어. 정말이야. 자긴 잠든 모습이 정말 예뻐.”

“…정말요? 내 잠든 모습까지 예뻐요?”

연희는 진의를 읽으려는 듯 현수와 시선을 마주친다.

“당연하지. 너무 예뻐서 콱 깨물어주고 싶었어.”

“어머! 깨물진 말아요. 아프니까요.”

“하하! 그럼, 그럼! 아프면 안 되지. 자아, 어서 일어나. 얼른 준비하고 아침 먹으러 가야지. 여기 사람들이 우리 흉보겠다. 게으름뱅이라고.”

“네에.”

자리에서 발딱 일어난 연희는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에구, 먼저 씻을걸!”

연희가 샤워하는 동안 현수는 오늘 할 일을 짚었다.

다비드의 치료는 오늘로서 마쳐질 것이다. 그 일이 마쳐지면 곧바로 뉴질랜드로 날아가야 한다. 세바스티앙의 부친 루이 오머런을 치료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연희를 한국에 데려다놓고 곧장 아르센으로 가봐야 한다. 한 달이라는 마지노선을 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는 어땠습니까?”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세비체11)와 발레아다12)가 아주 맛이 있었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그거 말고도 많았을 텐데…….”

후안 대통령은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이 좋았다고 하자 다소 당황한 듯한 표정이다. 국빈 수준 대접을 했던 것이다.

“물론 다른 것들도 맛이 있었습니다. 근데 제 입맛엔 그게 제일 괜찮았던 거죠.”

“그, 그런가요?”

또 표정이 어색하다. 이럴 땐 주의 환기가 필요하다.

“자, 식사를 했으니 어르신을 뵈러 가죠.”

“…그, 그럽시다.”

잠시 후, 현수는 다비드의 침상 앞에 서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모든 인원은 방 밖으로 나가 있다.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릉―!

다비드의 체내로 스며든 마나는 어제완 확실히 다른 보고를 한다. 각종 장기를 파먹던 암세포는 거의 소멸직전이다.

그 결과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던 각종 장기는 완연한 회복세로 접어들고 있다.

희대의 명약 마나포션을 복용시킨 결과이다. 이쯤 되면 거의 엘릭서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노화되었다 반쯤 재생된 세포들은 마나포션이 담고 있던 마나를 모두 소진하면 다시 노화가 시작될 것이다.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릉―!

또 한 번 마나가 스며든다. 잠든 다비드의 얼굴에서 잠시 빛이 나는 듯하다 스러진다.

“이제 됐군.”

천하의 리커버리 마법이다. 당연히 모든 걸 정상으로 되돌리기 시작한다. 잠시 다비드의 체내를 관조하던 현수는 커튼을 모두 젖혀 환한 빛이 스며들도록 하였다.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딸깍―!

“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후안이 다가선다.

“다, 되었습니다. 이제 괜찮아지실 겁니다.”

“아……! 그럼 들어가 봐도…….”

“네, 보셔도 됩니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후안 대통령과 그 부인, 그리고 아들과 딸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이때 아폰테 사장이 다가와 현수의 손을 잡는다.

“수고하셨네.”

“도움이 되어 다행입니다.”

“고맙네. 다시는 이런 부탁하지 않겠네.”

아폰테 사장은 현수의 얼굴이 이틀 만에 해쓱해졌다 느낀 것이다.

“네! 사장님이나 사모님께서 편찮으신 게 아니면 가급적이면… 당부드립니다.”

“그래, 그래! 알겠네. 꼭 그리함세. 이번엔 미안허이.”

“아뇨! 사실 좋았어요. 사장님과 사모님을 또 뵈었잖아요.”

“그랬나? 허허, 허허허! 참, 시간 나면 몰디브로 놀러오게. 자네라면 언제든 환영이니. 알았지?”

아폰테 사장은 윙크까지 하며 익살을 떤다.

“하하! 네에, 그렇게 할게요.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직 3월이니 쌀쌀한 날이 많다.

실라디온 덕에 며칠간 맑은 공기로 호흡했지만 어찌 몰디브의 공기와 비교하겠는가!

현수는 슬쩍 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언제 떠날 건가? 난 여기 며칠 더 머물 생각인데.”

“바로 가야지요. 오머런 회장님도 편찮으시니까요.”

“그래! 그분도 그렇군, 나와도 안면이 많은 분이니 잘 부탁하네.”

“하하! 네에, 그렇게 할게요.”

현수와 연희는 온두라스 대통령 내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출국했다. 한가롭게 만찬을 즐기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정말 대단해요.”

연희는 진심으로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비드는 미국 최고의 병원에서도 손 놓은 말기 암 환자였다. 의식은 수시로 불명이었고, 지독한 통증 때문에 강력한 진통효과가 있는 마약이 있어야 간신히 잠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또렷한 의식을 되찾았음은 물론이고,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런 도구나 장비 없이 다 꺼져 가는 촛불을 되살려 놓았다.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대단하긴. 그게 마법이야.”

“그래요 마법! 나 그거 꼭 배울 거예요. 가르쳐 줘요.”

“정말? 그거 어려울 텐데.”

“저 학교 다닐 때 수학 잘했어요. 그러니 가르쳐 줘요. 그거 하려면 수학이 필수라면서요.”

“그래! 그럼 가는 동안이라도 해볼래?”

“네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연희는 금방 후회한다. 마법이 너무 어려워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수는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그런데 연희는 가장 기본이 되는 미분 방정식을 배우면서도 엄청 버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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