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67화 (866/1,307)

# 867

“이제 슬슬 가봐야 하는데… 아리아니!”

“…네, 주인님!”

“아르센으로 갈 거야. 정령들 다 불러.”

“어머, 그래요?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리아니가 물, 바람, 불, 땅의 상급정령을 부르러 간 사이에 현수는 아르센에서의 일들을 확인했다.

이곳 시간으로 약 한 달 전에 파이렛 군도, 이제는 이실리프 군도라 이름이 바뀐 섬들을 모두 점령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거의 모든 해적에게 절대충성마법을 걸어놨다. 덕분에 체내 마나량은 물론이고 켈레모라니의 비늘 또한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양이 대폭 늘어났다.

어쨌거나 노예생활을 하던 기사, 마법사, 행정관들로 하여금 해적들을 노예로 부리게 하였다.

이실리프 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다.

권력을 탐내서가 아니다. 다른 이들에게 해만 끼치던 해적들을 교화하기 위함이다. 또한 바다를 끼고 있는 아드리안 공국을 돕기 위함이기도 하다.

“쩝! 깜박 잊고 배를 다 바다에 띄워놓았군.”

해수 피라니아가 무서워서 어느 누구도 배까지 헤엄치진 않았을 것이다.

“부르심을 받고 왔사옵니다. 마스터!”

공손히 고개 숙인 것은 청금발이 잘 어울리는 물의 상급 정령 엔다이론이다.

“저도 왔습니다. 마스터!”

노에스 또한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그래, 하던 일은 진척이 있어?”

“말씀하셨던 것들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양이 많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그래? 근데 너희가 최상급 정령으로 진화하면 더 빨라질 것이라고?”

“그건… 솔직히 잘 모릅니다. 저희가 최상급 정령이었던 적이 없어서 진화하면 어떤 능력을 갖게 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노에스의 말에 엔다이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알았어! 그나저나 이그니스는?”

“헥헥! 저도 왔습니다. 마스터!”

“그래? 다 모였군.”

현수는 어깨 위에 앉은 아리아니를 슬쩍 바라보았다.

[말씀하셔요. 그럴 가능성이 있으면 안 데리고 가야죠.]

고개를 끄덕이곤 사대 정령을 둘러보았다.

무엇이든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라는 표정이다.

“나는 너희를 다른 차원의 다른 세상으로 데리고 가려고 해. 그곳은 아르센이란 곳으로…….”

현수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사대 정령은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다. 지구처럼 마나가 희박한 게 아니라 액체처럼 진하다는 말에 감탄사를 터뜨린다.

노에스나 엔다이론은 눈빛까지 반짝인다.

마나만 충족되면 최상급으로 진화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령들만을 위한 정령계가 있다는 말에 눈을 크게 뜬다. 그곳은 어떨까 싶은 것이다.

최하급,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그리고 남성체 정령왕과 여성체 정령왕이 모두 있다는 말에 놀라기도 한다.

정령왕을 제외한 모든 등급의 정령이 상당히 많다는 말에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 된다.

자신들은 지구의 각기 하나뿐인 상급 정령이기 때문이다.

궁금한 게 많은지 많은 질문이 오갔다.

그 말 중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상급은 최상급에 복종해야 해. 그리고 같은 최상급이라 하더라도 서열이 있어. 그래서 그들의 말을 따라야지. 특히 정령왕의 명령은 절대 엄수해야 해. 안 그러면 최상급 정령이라도 소멸될 수 있거든.”

아리아니의 말이었다.

9장 이실리프 군도에서

“저희는 지구에 속한 정령인데도 그래야 하는 거예요?”

실라디온의 질문에 아리아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희도 정령이니까!”

현수는 아리아니와 정령들의 대화를 듣고 이들의 이탈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된다 느꼈다.

지금껏 자유를 만끽했다. 적어도 지구에선 최상위 정령이었기에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되었다.

그런데 높은 등급의 정령들의 지시를 받거나 정령왕에 의한 강제 소멸이 있다는 말에 정령계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줄어들었음이 느껴진 것이다.

“좋아! 모두 내 아공간에 들어가. 아르센에 당도하면 꺼내줄 테니.”

“네, 마스터!”

모든 정령과 아리아니까지 아공간으로 들어간다.

“되게 오랜만인 거 같네.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흐으음! 역시…….”

맑고 신선한 공기를 흡입한 현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서울과는 너무도 다르다. 온도와 공기도 다르지만 무엇보다도 마나의 양과 질이 다르다.

지구의 그것이 희박하고 오염되었다면 이곳은 진하고 깨끗하다.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어서 오십시오. 마탑주님!”

“아……!”

“이상 없습니다.”

“근데 여긴 왜……?”

“아! 저는 일족의 어르신으로부터…….”

현수에게 보고한 이는 엘프이다. 어느 누구도 마종을 건드릴 수 없도록 보초를 서던 중이라 한다.

“수고했네요.”

“네,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이실리프 마탑주가 나타난 이상 더 이상의 경계근무는 의미가 없다. 마족이 아니라 드래곤이 나타나더라도 마종을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이게 먼저지.”

양생이 완전해졌는지를 확인하곤 콘크리트 보호와 수명 연장을 위한 강화제를 뿌려주었다. 타임 패스트 마법으로 강화제가 굳자 무기질 침투성 방수제 처리를 했다.

이로써 콘크리트의 수명 연장 작업은 완료되었다.

표면에 그려놓은 보존마법도 있으니 족히 200년은 견뎌낼 것이다.

“좋았어! 이번엔 앤티 그래비티!”

8서클 마법이 시전되자 마종은 무게를 잃는다. 하지만 들기 쉬운 건 아니다. 마땅한 손잡이가 없기 때문이다.

“디그! 디그! 디그……!”

수십 번의 땅파기 마법은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를 생성시켰다. 파낸 흙만으로도 작은 동산을 만들 지경이다.

“으라차……! 어라?”

조심스레 균형 잡고 마종을 들어 올리던 현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무게가 없기에 너무 쉽게 들린 때문이다.

“하긴 앤티 그래비티이니. 쩝∼!”

조심스레 마종을 구덩이에 넣었다.

혹시라도 콘크리트에 금이 갔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구덩이 속까지 들어가 살펴보았다.

“좋았어! 빅 핸드!”

다음은 되메우기 작업이다. 커다란 손이 나타나 한 번에 흙을 쏟아부었다.

팡, 팡! 팡, 팡!

여러 번 두드려 다지기까지 마쳤다.

“흐음! 이제 되었군.”

혹시 몰라 사용하고 남은 흙은 넓게 펼쳐놓았다. 이곳에 마종이 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시선을 들어보니 위그드라실이 생생함을 더해가고 있다.

뿌리로부터 잠식해 오던 마기에 해방되어 본연의 기능을 되찾아 가는 중이기에 이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마나 농도가 전보다 훨씬 짙어진 듯하다. 위그드라실의 빠른 회복을 위해 바세른 산맥 전체의 마나가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공간 오픈!”

“후아∼! 주인님!”

가장 먼저 나온 건 아리아니이다.

“엔다이론, 실라디온, 노에스, 이그니스 모두 나와!”

“네, 마스터!”

“으읏……!”

“허억!”

“흐엑! 이건……? 마나?”

“으아아! 마나의 바다다. 바다! 흐으으음!”

사대 정령은 엄청 진하고 순수한 마나에 흠뻑 취한 듯 부르르 떨기도 하고, 마치 음악 감상이라도 하듯 지그시 눈을 감는다.

액체인 물이 기체로 변하면 부피가 약 1,600배 늘어난다. 현재 정령들이 느끼는 정도가 이러하다. 아르센 대륙, 특히 마나가 풍부한 위그드라실의 권역은 지구에 비해 약 1,600배가 이상 마나 농도가 짙다.

마나에 민감하니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이들이 마나에 심취해 있을 때 아리아니가 속삭인다.

“지금이에요. 주인님!”

“알았어! 마나 샤워!”

샤르르르르르릉―!

켈레모라니의 비늘로부터 무지막지한 마나가 뿜어진다. 이것은 네 줄기로 나뉘었다.

“으으으! 으으으으!”

“하악! 흐으으응!”

“히엑! 흐으으읍!”

“크으으으읍!”

사대 정령은 본신으로 쏟아지는 마나를 흠뻑 빨아들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넷 모두의 몸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이그니스는 순식간에 허물을 벗는다. 그런데 날개 한 쌍이 늘어나면서 몸집도 비약적으로 커진다.

거의 20배쯤 커지면서 머리에 두 개의 뿔이 솟아난다.

뿐만 아니라 꼬리도 커졌다. 불사조 피닉스(Phoenix) 같은 형태가 된 것이다.

같은 순간, 노에스도 진화를 겪었다. 이그니스와는 반대로 덩치가 줄어든다. 신장 184㎝ 인 현수보다 조금 더 크다.

피부의 색깔은 짙은 갈색에서 아주 연한 갈색으로 바뀌었다. 한여름을 바닷가에서 보낸 백인의 가을 모습쯤 된다.

청금발이 아름다웠던 엔다이론은 충격적인 변태를 겪는다. 절세미녀였던 몸이 투명해지는가 싶더니 전설처럼 전해지는 용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런 것으로 따지면 가장 변화가 적은 건 실라디온이다. 멀리서 보면 거의 변한 게 없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하지만 현수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를 똑똑히 목격했다.

실라디온은 본체로 되돌아갔을 때의 아리아니만큼이나 아름답고, 육감적이며, 뇌쇄적이고, 고혹해졌다.

피부는 만지면 묻어날 듯 투명하고 부드러워 보인다. 여전히 발가벗고 있는데 연한 갈색이 섞인 금발로 교묘히 가려져 더욱 뇌쇄적인 모습이다.

“세상에……!”

현수 본인은 모른다.

아르센 대륙의 역사상 어느 누구도 사대 정령이 동시에 진화하는 과정을 목격한 바 없다는 것을!

심지어 정령계를 관장하는 정령왕들조차 상급 정령 넷이 한꺼번에 최상급으로 진화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진화과정은 매우 예민하기에 외부의 자그마한 충격에도 소멸될 수 있다. 그렇기에 진화를 직감한 정령은 본인만의 장소를 찾아간다. 당연히 어느 누구의 시선도 미치기 어려운 곳이다. 그렇기에 정령왕들조차 보지 못한 것이다.

“마스터! 아아! 마스터……!”

감격에 겨워 현수의 품으로 무너진 것은 실라디온에서 실라디아로 진화한 바람의 최상급 정령이다.

“마스터! 이 은혜를 어찌……! 흐흑! 감사해요. 흐흐흑!”

마치 인간 여인이 사랑하는 사내의 품에 안겨 속삭이듯 자그마한 음성으로 이야길 한다. 현수는 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노발대발할 아리아니가 웬일인지 가만히 있다.

상급에서 최상급으로 진화할 때 어떤 기분인지를 짐작하기에 한번 봐주는 중인 것이다.

이때 노에스에서 노에디아로 진화한 땅의 최상급 정령이 한 무릎을 꿇은 채 깊숙이 고개 숙인다.

“마스터 덕분에 진화했음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소녀 또한 마스터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사옵니다. 어떠한 명을 내리시든 달갑게 이루어드리겠나이다. 마스터!”

어여쁜 여인의 몸이었다가 용으로 진화한 엘리디아는 여전히 사극투이다.

“불의 최상급 정령 이그드리아 또한 마스터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드립니다.”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불길 속의 거대한 피닉스가 고개를 조아린다.

아르센 대륙의 농도 짙은 마나와 켈레모라니의 비늘로부터 쏟아져 나온 순수한 마나세례 덕분에 진화했음이 너무 고마웠던 것이다.

노에디아의 경우는 마리아나 해구 아래에 머물면서 마나를 모아왔다. 그 상태 그대로 있었다면 3억 년쯤 지나면 최상급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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