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71화 (870/1,307)

# 871

현수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재차 물은 이는 영지 마법사 헤인즈이다. 겉보기엔 평범한 C급 용병이지만 소영주의 동생인 피터는 분명 마검사라 했다.

하여 조심스런 어투이다.

이는 피터가 한 말 때문이기도 하다. 피터는 눈앞의 젊은이가 마검사라 하였다. 검도 다루지만 마법도 쓴다는 뜻이다.

그런데 몇 서클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본인보다 아래라면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집중을 해도 알 수 없다. 피터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보다 고서클 마법사라는 뜻이다. 그런데 매우 젊다.

5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이십대 중반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바디체인지를 겪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하가 7서클 이상이니 마탑주와 버금간다. 그렇기에 말을 놓지 않고 높인 것이다.

현수는 헤인즈를 잠시 바라보았다. 진실을 알려달라는 눈빛이다. 파이젤 백작 역시 그러하다.

피터 역시 눈빛을 빛내고 있다. 보아하니 느닷없이 나타난 불청객은 아버지를 죽일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러면 대체 왜 이러느냐는 눈빛인 것이다.

“누구십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헤인즈가 재차 묻는다. 이에 현수는 빙긋 웃음 지었다. 마법사들은 똑똑하다. 그렇기에 오만한 성품을 가진 이가 많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니 기분 좋았던 것이다.

11장 신나는 해전!

“나는 헥사곤의 주인이다.”

“네에……? 바, 방금 헤, 헥사곤의 주인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정말이십니까?”

헤인즈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팽창되었다.

백작과 기사단장, 그리고 피터는 헥사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 대체 왜 이렇게 놀라느냐는 표정으로 헤인즈를 바라본다.

이때 헤인즈가 엎어지며 소리친다.

“아아! 위대하신 로드를 뵙사옵니다. 소인, 헤인즈 오늘의 만남을 일생의 광영으로 여기겠사옵니다. 로드!”

“로드? 무슨……! 헉! 그, 그럼……!”

공국의 위기를 단숨에 해소시켜 준 이실리프 마탑주가 검은 머리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백작은 수도로부터 전해 들은 이 이야기와 눈앞의 인물이 정확히 일치함을 깨닫는 순간 무릎부터 꿇었다.

털썩―! 털썩―!

아드리안 공국에서 이실리프 마탑주의 위상은 공왕과 동격이다. 공왕조차 반례를 해야 할 지고한 신분인 것이다.

그렇기에 파이젤 백작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무릎을 꿇은 것이다. 란돌프는 말할 것도 없다.

“소, 소인 파이젤이 위, 위대하신 이,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님을 알현하옵니다.”

“아아! 미천한 라, 란돌프가 검의 하늘이신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님을 뵙사옵니다.”

아버지와 기사단장까지 무릎을 꿇자 피터 역시 대경실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저, 정말이세요? 정말 이실리프 마탑주님이세요?”

“그래! 매직 캔슬!”

홀드 퍼슨 마법을 거두자 피터 역시 백작의 곁에 무릎을 꿇는다.

“피, 피터가 감히 마탑주님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괜찮다. 그나저나 일어서시오.”

“네! 마탑주님.”

넷은 더 이상 공손할 수 없는 표정과 자세로 일어났다. 감히 시선을 마주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는 대륙의 정확한 예법이다.

매지션 로드! 이제 현수에 의해 명칭마저 바뀐 위저드 로드는 위대한 존재인 드래곤과 동급이다.

세상의 모든 마법사와 마탑주는 물론이고 모든 왕과 황제마저 당연히 공손히 예를 갖춰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백작! 물을 게 있어 왔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마탑주님!”

이실리프 마탑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곳은 엘라이 왕국군의 공격을 받아 가장 먼저 초토화되었을 곳이다.

그들이 상륙하기 위한 루트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파이젤 백작에게 물어 상선의 위치부터 파악했다. 그리곤 거두절미하고 텔레포트했다.

지금은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 * *

“흐음! 여기쯤이라고 했는데? 더 갔나?”

바다 위 허공으로 텔레포트한 현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드리안 공국의 상선의 항로와 이동속도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쯤에 당도했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 물론 콘트라의 영주 파이젤 백작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현수가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백작 이하 모든 기사와 마법사들은 그야말로 극상의 공경을 표했다.

하긴 자신들이 충성을 맹세한 공왕조차 반례를 취해야 할 존재이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그렇기에 무엇이든 묻는 말에 하나도 숨김없이 대답했다.

아드리안 공국을 떠난 상선에는 알려진 바와 달리 금괴는 실려 있지 않다. 대신 그와 비슷한 가치를 지닌 미스릴로 채워졌다. 이것은 부족한 곡물과 생필품과 바꿔질 것이다.

아르센 대륙에서 미스릴은 전략상품이나 다름없다.

병장기의 경도를 높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에 마법을 인챈트했을 때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상선에는 로레알 파드린느 폰 아젤란 공작이 승선해 있다고 한다. 아드리안 공국의 두 세력 중 하나를 대표하는 존재인데 문(文)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아드리안 공국 건국 초기엔 바다 건너 제라스 왕국, 라이카 왕국 등과의 교류가 있었다.

새로 건국된 만큼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여 아드리안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두 왕국 모두 아드리안 공국에 대해 별다른 호감을 표하지 않은 때문이다. 산물이 빈약하기에 교역할 품목이 다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공국 입장에서도 안전하지 않은 바닷길을 오가며 교류를 나눌 정도로 필수불가결한 물목이 없었다.

다시 말해 서로 무역할 품목이 적었던 것이다.

하여 교류가 끊겼었는데 그걸 다시 잇고자 최고위 귀족인 파드린느 공작까지 파견한 것이다.

공작에겐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과 손녀가 있다.

이실리프 마탑주를 위한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에 있는 17세된 손녀 아그네스의 언니와 이모이다.

이번 방문에서 딸은 제라스 국왕과 인연을 맺게 하고, 손녀는 라이카 왕국 왕세자와 맺어주려 한다.

공왕의 딸들이 아직 어리기에 취한 조치이다.

로레알 공작이 국왕파이며 문(文)을 대표한다면 필립스 아인테스 반 크리엘 공작은 귀족파이며 무(武)를 대표한다.

전 같으면 귀족파의 수장인 필립스 공작만 두고 이처럼 먼 길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하면 자리를 비운 새에 공왕이 폐위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실리프 마탑주가 공국을 방문한 이후 국왕파와 귀족파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그리곤 공왕을 중심으로 단단히 뭉쳐 풍요로운 아드리안 만들기에 돌입해 있다.

하긴 소드 마스터인 필립스 공작이 어찌 그랜드 마스터인 이실리프 마탑주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하겠는가!

어쨌거나 상선에는 로레알 공작과 딸, 그리고 손녀만 승선해 있는 것이 아니다.

레더포드 아물리 폰 피리안 백작도 승선해 있다. 수행원 자격이다. 현수와 수도까지 동행했던 카트린드의 부친이다.

이들을 위한 시녀만 30여 명이라 한다.

“흐음, 빨리 찾아야 하는데.”

손을 눈썹 위에 대고 먼 바다를 살폈지만 망망대해만 보일 뿐이다.

“할 수 없지. 아공간 오픈!”

현수는 아공간에 담긴 카약을 꺼냈다. 백두마트 수상 레포츠 코너에 전시되어 있던 것이다.

이걸 꺼낸 이유는 플라이 마법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빠를 것 같아서이다.

바다 위에 띄워놓고 노를 젓기 시작하자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그랜드 마스터의 근력이 작용하는 중이다. 하여 모터보트에 버금갈 속력으로 쏘아져 갔다.

눈대중으로 방향을 가늠하고는 힘껏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가량 노를 저어 이동한 거리는 약 40㎞이다.

시속 80㎞로 이동한 셈이다.

“저긴가?”

대략 3㎞ 전방에서 해전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 상대에게 쇠뇌와 활을 쏘고 있는 상황이다.

“으얏차!”

현수가 노 젓는 팔에 힘을 조금 더 주니 그야말로 화살처럼 빠르게 튀어 나간다. 그러자 불과 몇 분 만에 아드리안 공국의 상선 뒤쪽에 당도한다.

“플라이!”

카약을 아공간에 넣고는 날아서 상선의 가장 꼭대기인 마스트15) 위로 올라갔다.

해골과 뼈다귀 그림이 그려진 깃발을 단 해적선은 95척이나 된다. 이에 대적하고 있는 아드리안 공국의 상선은 21척으로 크기는 훨씬 더 크지만 승선해 있는 인원은 적다.

“쏴라! 어서 쏴! 한 놈도 남겨두지 마라.”

귀에 익은 음성이라 시선을 내려다보니 피리안 영지의 레더포드 아물린 반 피리안 백작이 칼을 휘둘러 쏘아져 오는 쇠뇌들을 떨구며 기사와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다.

피리안 영지를 방문했을 때 밤새워 검을 섞었던 사이이다.

그때는 소드 마스터 초입이었는데 지금 보니 유저는 되어 보인다. 현수와의 대련을 통해 깨달음이 있었던 결과이다.

“그때 강낭콩과 완두콩을 줬는데 잘 재배하고 있나?”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콰시오커로부터 해방되라는 의미로 준 것들이다.

이때 누군가의 음성이 들린다.

“공작님! 위험합니다. 어서 선실로 들어가십시오.”

“나더러 한낱 해적들의 공격을 피하라고?”

꼬장꼬장하게 생긴 노인이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그의 좌우에는 스무 살쯤 된 두 아가씨들이 있다. 기사 중 하나가 그녀들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연다.

“영애님, 그리고 영손 아가씨! 두 분도 어서 들어가십시오. 여긴 몹시 위험합니다.”

“싫어! 구경할 거야. 해적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안 들어가고 여기서 구경할 거야.”

“안 됩니다. 해적들이 쇠뇌로 쏘는 볼트가 우리 예상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피하지 않으시면 자칫 위험할…….”

“내가 싫다고 했잔…….”

공작의 좌측에 있던 아가씨가 손을 들어 싫다는 뜻을 밝히려 할 때 누군가 소리친다.

“아앗! 피하십…….”

이와 동시에 허공을 찢는 파공음이 들린다.

쐐에에엑―!

찌익―! 퍽! 부르르르―!

기사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쇠뇌에서 쏘아진 볼트 하나가 아가씨의 소매를 찢어내더니 귀로부터 불과 10㎝ 정도 떨어진 기둥에 박힌다.

“아앗!”

소매가 찢겨 나간 아가씨의 얼굴이 금방 창백해진다.

조금만 더 안쪽으로 겨냥되었다면 자신의 얼굴에 박혔을 것이란 생각을 한 때문이다.

“영애님! 위험합니다. 어서 선실로 들어가십…….”

이번에도 호위기사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그, 그럴게!”

“영손 아가씨도 같이 들어가세요.”

“아, 알았어.”

두 아가씨가 서둘러 선실로 들어가자 기사들은 공작의 좌우에 섰다. 그리곤 날아오는 볼트들을 떨구기 시작했다.

틱! 탁! 탁! 타탁!

“안되겠습니다. 공작님도 선실로 들어가 주십시오.”

“분명, 싫다고 했다. 고작 해적들의 공격을 피해 안으로 들어가란 말이냐?”

공작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빗발치는 볼트 때문에 많은 선원이 쓰러져 있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와 쇠갈고리를 건 해적들이 밧줄을 타고 휙휙 날아드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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