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73화 (872/1,307)

# 873

시선을 모아보니 커다란 오징어 같은 생물체이다.

북유럽의 신화에 등장하는 크라켄은 전체 길이가 2.5㎞가 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18세기 노르웨이의 주교 폰토피탄은 이 괴물을 목격하였으며, 먹물을 뿜어내자 주변 바다가 새까맣게 되었다고 기록을 남겼다. 또한 너무나 커서 전신을 볼 수가 없었다고 썼다.

육안으로 살펴보니 전체 길이는 대략 200m쯤 되어 보인다. 오징어는 다리가 8개 촉수가 2개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의 다리는 몇 개인지 셀 수가 없다.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해적선을 휘감은 두 개의 촉수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0m는 넘어 보인다.

다리 하나의 굵기는 드럼통보다 약간 가는 정도이다.

상당히 많은 빨판이 붙어 있는데 촉수에 선원의 얼굴이 닿자 금방 시뻘겋게 변한다.

“저런! 아공간 오픈!”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를 뽑아 든 현수는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지잉! 지이이이이잉!

금방 길이 20m짜리 검강이 뿜어져 나온다.

“야압!”

쒜에에엑! 퍼억―!

크웨에에에엑! 크웨에에엑!

선원의 몸을 휘감고 있던 촉수가 베어지자 시퍼런 액체가 뿜어진다. 몬스터라는 증거이다.

그와 동시에 고통 때문에 죽겠다는 듯 지랄발광을 한다.

쾅, 콰쾅! 우지직! 콰쾅! 와장창! 콰쾅! 우당탕탕!

배 위에 올려져 있던 촉수가 사방팔방을 휘갈기자 굵은 돛대까지 부러진다.

12장 크라켄 사냥

“야아압!”

쒜에에엑―! 퍼억! 슈아앙! 파악!

계속해서 수면과 배 위로 올라와 있는 다리며 촉수들을 베어냈다.

해양 최강 몬스터지만 검강을 이겨낼 수는 없기에 여기 저기 잘린 채 꿈틀거리는 촉수며 다리 투성이이다.

크라켄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가 현수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긴 다리를 뽑아 올려 휘감으려 한다.

“어림도 없다! 야아압!”

쒜에에엑―! 쉬이이익―!

퍼억! 파아악―!

꿰에에에엑! 크웨에에에엑!

계속해서 다리가 잘려 나간다.

이쯤 되면 온통 시퍼런 액체로 뒤범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상처가 금방 아무는 듯하다.

잠시 아무런 움직임도 없더니 갑자기 십여 개의 다리가 사방팔방에서 현수를 향해 쏘아져 온다.

상당히 속도가 빨랐다. 하나라도 걸리면 즉각 휘감고 물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웬만한 소드 마스터였다면 당할 것이다.

하지만 현수는 웬만한 소드 마스터가 아니다.

“체인 라이트닝!”

번쩍!

콰콰콰콰쾅!

꿰에에에엑! 퀘에에에에엑!

또 괴상한 비명을 지른다. 전류가 다리에서 끝난 게 아니라 몸통까지 전달된 때문일 것이다.

“윈드 커터! 윈드 커터!”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두 개의 공기로 이루어진 원형톱이 세찬 회전을 하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다리며 촉수로 쇄도한다.

퍼억! 팍! 퍼퍽! 퍼퍼퍼퍽! 퍼퍽!

꿰에에에에엑! 크웨에에에에엑!

한꺼번에 십여 개의 다리가 베어지자 크라켄이 지랄 발광을 한다. 그 결과 비교적 크기가 작았던 해적선 여섯 척이 침몰했다.

선실에 숨어 있던 해적들이 얼른 바다로 뛰어들자 기다렸다는 듯 촉수며 다리들이 휘감아 버린다.

“이런……!”

해적들이 못된 짓을 하는 자들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몬스터의 먹이가 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얼른 널빤지 위로 내려선 현수는 길이 20m짜리 검강을 휘둘렀다.

“야압! 야아아압! 야압!”

퍼억! 촤아악! 촤악! 촤아아악!

퀘에에엑! 퀘엑! 꿰에에에에엑―!

거의 모든 다리가 베어진 크라켄은 격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짧아진 다리로 현수를 휘감으려 한다.

하지만 검강은 모든 것을 베어낸다.

“야압! 야아압! 야아아압!”

퍼악! 파악! 퍼퍽! 퍼퍼퍼퍽!

계속해서 다리가 베어지자 크라켄의 지랄은 더욱 심해졌다. 하여 여섯 척의 해적선이 더 침몰되었다.

이번에서 해적들이 튀어나왔지만 더 이상 허리를 휘감는 촉수는 없었다.

“플라이!”

다시 허공으로 몸을 띄운 현수는 크라켄의 정확한 형상을 캐치해 냈다. 오징어와 문어 중간쯤 되는 모습이다.

“기껏해야 오징어인 주제에! 야아아압!”

쒜에에에에엑―!

촤아악―!

굵고 긴 검강이 거대 오징어의 다리 위쪽을 파고든다. 크라켄이 오징어의 일종이라면 두족류16)이기 때문이다.

이는 머리에 다리가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꿰에에에에에에엑―!

길고긴 비명 소리 이후 바다가 잔잔해진다.

수천 년을 살면서 바다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거대 몬스터 크라켄이 최후를 맞이한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인근 바닷물이 초록으로 물든다.

재생능력이 사라지면서 상처가 아물지 않아 체내의 혈액이 흘러나온 때문이다.

“와아아아! 마탑주님 만세! 만세! 만세!”

“와아아아아! 만세! 만세! 만세!”

아드리안 공국의 배에서도 해적선에서도 만세 소리가 요란하다. 현수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크라켄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소드 마스터인 레더포드 백작도 환호한다.

물 위를 걸을 수 없기는 범인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바다에 빠지면 익사하기 때문이다.

쿵―!

현수의 신형이 아드리안 공국 상선 중 기함에 내려서자 로레알 공작과 레더포드 백작이 정중한 군례를 올린다.

“충―!”

이와 동시에 아드리안 공국 쪽 모든 인원이 무릎을 꿇으며 정중히 고개 숙인다.

“추웅서엉―!”

“고개를 들라!”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의 고개가 들려진다. 현수의 얼굴이 몹시 궁금했던 때문이다.

로레알 공작과 레더포드 백작은 현수의 얼굴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반갑다는 표정이다.

“로레알 공작님!”

“네, 마탑주님!”

“크라켄의 사체를 수습하고, 부상자들은 이쪽으로 모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백작, 마탑주님의 지시대로 하게.”

“네, 공작님!”

레더포드 백작이 얼른 자리를 비운다.

바다의 제왕 크라켄의 사체는 이제 곧 가라앉을 것이다. 그전에 건져 놔야 하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해로가 몹시 위험하다고요.”

“그러합니다. 곳곳에 암초와 와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드리안 공국이 해상활동을 왕성하게 하지 않은 이유는 방금 잡은 크라켄이나 레비아탄, 씨 서펀트 같은 해양 몬스터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곳곳에 암초와 와류가 숨어 있다. 바다 속을 훤히 꿰뚫고 있지 않다면 가급적 운항을 삼가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기에 바다에 접해 있으면서도 해상무역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바쁜 일이 있어 동행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바닷길을 잘 아는 호위를 붙여드리지요.”

“네? 호위요……?”

공작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이곳은 바다 한가운데이기 때문이다.

“일단 해적들도 한곳으로 모아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무엇들 하느냐? 해적들을 이동시켜라.”

공작의 명이 떨어지자 기사들이 움직였다.

“앱솔루트 피델러티!”

샤르르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뿜어지자 해적들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사라진다. 대신 극도의 호감과 흠모의 빛이 어린다.

절대충성 마법의 효력이다.

“너희에게 아드리안 공국의 상선이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도록 호위 임무를 맡긴다. 잘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마스터!”

“마스터 부르지 말고 국왕 폐하라 하도록! 짐은 이실리프 왕국의 국왕이다.”

“……?”

모두들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다.

“이제 파이렛 군도는 없다. 더 이상의 해적도 없다. 너희는 이제부터 내 노예이다.”

“……!”

노예라는 말에 모두의 눈빛이 흐려진다.

“너희는 그간 지은 모든 업보를 갚을 때까지 노역형에 처해진다. 그것이 마쳐지면 그제야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

이번엔 또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우러러본다.

“일단 이번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참, 로켄!”

현수의 시선을 받은 로켄이 얼른 고개를 숙인다.

“네, 폐하!”

“네게 보물지도 한 장이 있다 들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후다닥 선실로 내려갔던 로켄이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들고 나온다. 영화에서나 보던 궤짝인데 크기만 작을 뿐이다.

“이것이옵니다.”

말없이 받아 뚜껑을 열어보니 지도 하나가 있다. 애꾸눈 잭이 맡겼던 해적들의 보물지도 중 하나이다.

이로써 모든 지도가 모인 셈이다.

잠시 지도를 살핀 현수는 다시 로켄에게 시선을 주었다.

“네게 지휘를 맡기니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알겠습니다. 폐하!”

로켄과 그의 수하들 모두 고개 숙여 뜻을 받들겠다는 의사표시를 한다.

“매스 힐!”

샤르르르르르릉―!

공작이 승선에 있는 배에 모여 있던 부상자들은 현수의 한마디에 모든 상처가 씻은 듯 사라지자 놀랍다는 표정이다.

“오오! 세상에…….”

“역시! 다르셔.”

“아! 다 나았어. 다 나았다고.”

기쁨에 찬 탄성을 뒤로하고 공작에게 다가갔다.

“공작님!”

“네, 마탑주님.”

“해적들이 상선을 호위할 것입니다. 편히 다녀오십시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로레알 공작은 크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런 그의 뒤에 있던 딸과 손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다. 극도의 호감이 담긴 눈빛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는 기사들이 위험하다 하면 그 말을 따르도록!”

“…네, 알겠사옵니다.”

공작의 딸이 먼저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 숙인다. 아까 고집피우다 비명횡사할 뻔한 것을 떠올린 것이다.

“공작도 그리하시오. 자, 그럼 다음에 봅시다.”

“알겠습니다. 마탑주님!”

“참, 레더포드 백작! 검을 휘두를 때 너무 힘을 주더군.”

“……?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레더포드 백작은 현수의 가르침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달았다는 표정이다.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안개처럼 흐려지던 신형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

“아……!”

공작의 딸과 손녀의 입에서 진한 신음이 터져 나온다.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이 눈앞에서 사라진 때문이다.

* * *

“어라! 여기가 미판테의 수도 에튼이야?”

대륙좌표일람에 명기된 좌표로 텔레포트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일국의 수도라 하기엔 너무도 고요하고, 허름해 보인다.

휘휘 둘러보니 건물은 많고 큼직큼직하다. 그런데 많이 낡아 보인다. 사람의 손길 닿은 지 오래된 듯싶다.

오가는 사람들의 수효도 너무 적다.

“뭐지? 수도가 뭐 이래?”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좌우를 둘러보던 중 한 소년과 시선이 마주쳤다. 꾀죄죄한 모습이다.

“꼬마야! 말 좀 묻자.”

“저, 꼬마 아니거든요.”

‘어쭈, 이 녀석이?’

제법 당차면서도 발칙하다는 느낌이다.

“그래! 그럼 네 이름은 뭐니?”

“카시발이에요.”

“카시발……? 좋아, 카시발, 여기가 에튼이니?”

“맞아요. 에튼!”

소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인지라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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