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75화 (874/1,307)

# 875

루시의 몸을 안아 들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지독한 악취가 풍긴다.

“으윽!”

워싱과 클린 마법으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 냄새는 욕창의 잔재 때문이다.

컴플리트 힐로 상처는 치유되었지만 이미 흘러내렸던 고름 등이 옷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안 되겠다. 목욕부터 해라.”

“……!”

루시는 몹시 부끄러운 듯 눈을 뜨지 못한다.

“카시발, 가까운 곳에 여관 있니?”

“네! 저쪽에요. 멀지 않아요.”

“그래, 일단 거기부터 가자.”

삐이꺽―!

허름한 주점의 문이 열리자 나직한 마찰음이 들린다.

환한 빛과 함께 현수 일행이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그런데 이내 고개를 돌린다. 마법 원반 위에 놓은 루시를 보고 마법사라는 걸 알아차린 때문이다.

마법사를 잘못 건드렸다간 험한 꼴을 당하는 건 아르센 어디나 같은 모양이다.

“…어서 옵셔!”

말을 이렇게 했지만 주인인 듯싶은 중년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마법사가 무리한 요구를 할까 싶은 때문이다.

“마법사님! 무엇을 드릴까요?”

“음식 2인분만 주고 목욕물을 준비해 주게.”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현수를 안내한 곳은 가장 안쪽 자리이다. 뒤에는 이 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마법사님! 지금 저희 집엔 스튜밖에 없습니다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맛만 있으면 되네.”

“네에, 알겠습니다요.”

잠시 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스튜가 나왔다. 온갖 것을 넣고 팔팔 끓인 듯하다. 그런데 누린내가 좀 난다.

“목욕물은……?”

“준비했습니다요. 근데 누가 목욕을…….”

“이 아이들이 할 것이네. 목욕 시중도 부탁하네.”

“아, 네에! 1실버 20쿠퍼입니다요.”

정당한 대가를 달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몹시 어려워한다. 루시가 계속 허공에 둥둥 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 여기 있네. 나머진 이 아이를 씻기는 사람에게 주게. 참, 걷지 못하니 사람 불러 데려가도록 하게.”

“아이고, 고맙습니다요.”

현수가 건넨 3실버를 받은 주인의 만면엔 웃음꽃이 핀다.

요즘 돈 보기가 힘든 세월이다. 하나같이 가난한 사람들만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아, 배가 고플 테니 일단 먹자꾸나.”

아공간에서 꺼낸 후춧가루를 치자 스튜에서 올라오던 역한 누린내가 확실히 줄어든다.

아르센의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냄새만을 쉽게 적응되지 않아 차원이동을 할 때마다 곤혹스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여 후춧가루와 페브리즈 등으로 간신히 견뎌내는 중이다.

카시발은 뜨거운 스튜를 흡입하듯 먹어치운다.

많이 굶어서 걸신이라도 들린 듯하다. 그러는 동안 루시에게 스튜의 국물을 먹였다. 차츰 받아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마법사님! 목욕물이 준비되었습니다요.”

“아! 그런가? 그럼 이 아이들을 부탁하네. 그리고 여기 숙박비는 얼마나 되지?”

“네, 방 하나당 하룻밤에 75쿠퍼씩입니다요.”

“그런가? 아이들 목욕이 끝나면 깨끗한 방에 넣어주게. 배가 고프다고 하면 스튜를 한 번 더 주고. 자, 여기!”

2실버를 더 꺼내주자 주인이 허리를 깊숙이 숙인다.

요즘 벌이가 시원치 않아 스테이크용 고기를 구입할 수 없어 스튜만 팔았는데 이제 좀 나아질 것 같아서이다.

“카시발! 누나 다 씻고 나면 너도 씻고 방에 올라가 쉬고 있어라.”

“어디 가시게요?”

“그래, 수도에 볼일이 있구나. 예서 기다리렴.”

“네에.”

카시발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룻밤이라도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게 어디인가!

현수가 다시 오지 않아도 원망할 일은 없다. 오히려 다 죽어가던 누나를 살려준 고마움만 생각할 것이다.

아직 이름도 모르지만 생김생김만은 뇌리에 담아두겠다는 듯 현수를 빤히 바라본다.

“아이들을 잘 부탁하네.”

“아이고, 그러믄입쇼. 잘 다녀오십시오. 얘들은 제가 책임지고 챙기겠습니다요.”

주인은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인다.

성질 고약한 마법사가 아닌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매상을 팍팍 올려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그래!”

주점을 떠난 현수는 곧장 뉴에튼으로 향했다. 여전히 C급 용병 차림이지만 갈아입는다는 생각은 못했다.

카시발와 루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느라 다른 데 정신 팔 여유가 없었던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실리프 군도 또는 이실리프 자치령으로 데려가야 할 듯싶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뉴에튼의 성문에 당도했다.

“멈춰라!”

“…아!”

뉴에튼은 혹시 있을지 모를 누군가의 침략을 대비했는지 상당히 큰 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의 높이가 무려 15m나 된다. 이 정도면 인간은 물론이고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들의 침입까지 저지할 수 있다.

무심코 다가가던 현수는 나직한 소리를 내며 멈췄다.

“신분증……!”

“……?”

“뭐해? 출입하려면 신분증을 내놔야지.”

위병 근무를 서던 병사는 위압적인 표정을 짓는다.

“여기…….”

로니안 자작이 만들어준 평민 하인스의 신분증을 건네자 힐끔 바라본다. 신분증에 기록된 나이에 걸 맞나 확인하는 것이다.

“테세린에서 여기까지 온 건가? 대단하군! 좋아, 통과.”

들고 있던 할버드를 곧추 세워 통로를 열어주었기에 현수는 느긋하게 통과했다. 통로는 약 20걸음이다. 보폭 평균이 약 70㎝ 정도 되니 성벽의 두께는 15m쯤 되는 듯싶다.

성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두꺼운 목재에 철판을 입혀 강도를 더함과 동시에 화공을 대비한 것 같다.

“이 정도면…….”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센의 공성병기들로는 웬만해선 정문을 뚫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성문 아래 통로 밖은 에튼과 확연히 달랐다.

계획도시인 듯 길은 반듯반듯하고, 넓었다.

아무데나 오물이 투척되는 여타 도시와 달리 지린내나 구린내도 심하지 않다. 따로 모으는 모양이다.

새로 지어져서 그러는지 건물들도 깔끔해 보인다.

물건을 파는 상점도 많고, 대장간과 마법용품 판매점 등도 많이 보인다. 바닥엔 마차가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현수가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촌놈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때 누군가 말을 건다.

“어이, 젊은 용병! 혹시 팔 거 없나?”

“네?”

“보아하니 C급 용병쯤 되어 보이는데 마법주머니 안에 오크 가죽이나 고블린의 이빨 같은 거 없냐고.”

현수에게 말은 건 이는 대략 마흔쯤으로 보이는 인상 괜찮은 사내이다. 그의 뒤쪽엔 만물상점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물론 아르센 공용어이다.

“아! 네에. 값은 후하게 쳐줍니까?”

“아! 있어? 그럼, 그럼! 자, 안으로 들어오시게. 내 아주 후하게 쳐줌세. 어서 안으로.”

급 친절 모드가 된 사내의 안내를 받아 상점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뉴에튼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안은 상품 감정을 위한 매대만 있는 단출한 구조이다.

“자아, 가진 거 다 꺼내놓게.”

대답 대신 가방 속 아공간을 열어 트롤의 사체 하나를 꺼냈다. 포션을 만들기 위해 혈액은 모두 뽑아낸 것이다.

“헉! 이, 이건……? 이걸 자네가 잡았단 말인가?”

사내는 대경실색하며 현수를 바라본다. 현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저, 정말? 세상에 C급 용병인 줄 알았는데……. 자네 등급은 뭔가? B급? 아니다. 이 정도면 최하가 A급이어야 해. 헐! 미안하네. 함부로 대해서.”

사내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표정을 짓기에 웃어주었다.

“대신 값이나 잘 쳐주십시오.”

“그, 그럼! 잠깐만 기다리시게. 이걸 감정하려면…….”

주인은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눈빛을 빛낸다. 오랜만에 들어온 특상품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보통의 트롤은 신장이 3m를 약간 상회한다. 그런데 감정대 위에 놓인 건 아무리 적게 잡아도 5m는 넘는다.

주인이 이모저모를 자세히 살필 때 현수의 입이 열렸다.

“수도에 귀족들이 많이 왔나요?”

“그럼! 테세린의 영주 로니안 자작의 승작을 축하하러 엄청 몰려왔지.”

“후작으로 올라가는 거죠?”

“그렇다고 하네. 자작에서 곧장 두 계급 승차하는 셈이지. 사위가 이실리프 마탑주라 하더군. 모두 그 덕이지.”

“그래요? 그럼 승작식은 이미 한 건가요?”

“아니! 내일 한다네.”

“그럼 귀족들은 왕궁 근처 여관에 머물겠군요.”

“아니! 오늘 왕궁에서 승작을 축하하는 연회가 베풀어지네. 그러니 지금은 왕궁에 모여 있겠지.”

주인은 묻는 말에 대꾸하면서도 상세히 살핀다.

그 결과 상당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로니안 자작의 승작을 축하하기 위해 미판테 왕국의 상당수 고위 귀족이 수도에 몰려 있다고 한다. 이실리프 마탑주의 장인이 될 로니안 후작과 안면을 트기 위함이다.

이번 승작식의 준비는 미판테의 재상인 에드가 롤랑 폰 갈리아 공작이 맡았다고 한다. 테세린을 집어삼키려던 케일론 영지의 영주 칼멘 후작의 정치적 동맹이다.

주인이 감정을 마친 건 거의 10분이 지나서였다. 아주 꼼꼼하게 살핀 결과 트롤의 몸에는 작은 상처 하나 없다.

어찌 사냥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오우거보다 트롤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더 쳐준다.

방호력은 약간 떨어지지만 훨씬 가볍기 때문이다.

최근 갈리아 공작가에서 손자들을 위한 트롤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구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세 벌을 요구했는데 벌당 120골드를 치르겠다고 했다. 한국 돈으로 치면 한 벌당 약 1억 2천만 원이다.

“이 정도면 특상품임을 인정하지. 10골드 어떤가?”

“10골드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본 주인은 뒤통수를 긁적인다.

“특상품인 건 인정하지만 이걸로 갑옷을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가서 그러네. …좋아, 12골드로 하세.”

“……?”

이번에도 현수가 대답 대신 빤히 바라만 보자 주인은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알았네, 알았어! 18골드!”

“20골드 주면 팔죠.”

“…좋네! 거래 성립이네. 잠시만 기다리시게.”

주인은 현수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생각했는지 서두른다. 이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웠다. 하여 현수는 실소를 머금은 채 주인을 바라보았다.

“자, 여기 있네. 20골드!”

10골드짜리 금화 두 개를 내미는 주인의 눈에는 희열의 빛이 가득하다.

20골드를 지불하고 산 트롤 가죽은 마름질 등을 통해 갑옷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마름질 수수료는 한 벌당 수수료는 8골드 정도면 된다.

눈대중으로 짐작해 보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트롤 가죽갑옷이 다섯 벌은 나온다.

이걸 몽땅 120골드씩 받고 판다면 이익금이 무려 540골드나 된다. 가게 문 닫고 5년은 놀아도 될 거금이다.

“……!”

20골드면 한국 돈으로 약 2,000만 원이다. 그래서 그런지 묵직한 느낌이다.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살 테니 또 생기면 다른 데 가지 말고 곧장 이리로 오게. 좋은 값 쳐줄 테니.”

“그러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