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79화 (878/1,307)

# 879

“누, 누구십니까?”

“나? 국왕의 초청을 받은 사람. 하인스라 하지.”

“…하, 하인스요?”

더글라스는 초청장을 읽으면서 하인스라는 이름을 읽었지만 인식하지 못했다. 워낙 흔한 이름이었기에 주의를 끌지 못한 것이다.

“잠시 가만히 있어야 하니 움직이지 마.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입을 열면 효과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

“네? 아, 네에.”

뭐라 대꾸하려던 더글라스는 얼른 입을 다문다. 그 순간 뇌리로 스치는 상념 하나가 있다.

지상 최고의 마법사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이란 인물에 대한 소문이다.

머리카락이 검고, 스물다섯쯤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수한 옷차림을 즐긴다. 특히 C급 용병 차림일 때가 많다.

“나는 가지. 입 다물라 한 것 잊지 마라.”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더글라스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국의 황제조차 자리에 앉은 채 맞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어찌 한낱 근위기사 따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더글라스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너무도 위대한 존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을 열지는 않는다. 리커버리 마법의 효과가 사라질까 저어된 때문이다.

같은 순간 뒤쪽의 기사들은 대체 뭔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수가 등을 돌리자 모두가 길을 튼다. 더글라스가 막지 말라는 몸짓을 한 때문이다.

하여 모두가 몇 발짝씩 물러설 때이다.

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착! 처억! 차차차차착!

“멈춰라!”

일단의 무리가 달려오더니 공격 대형을 갖춘다. 현수는 말없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만 보았다.

“……!”

눈대중으로 헤아려 보니 약 120명이다. 이곳은 왕궁이다. 따라서 일반기사가 아닌 근위기사들일 것이다.

근위기사와 일반기사의 차이는 무력의 고하이다. 같은 실력일 경우엔 배경이 작용하기도 한다.

현재 이곳에 몰려온 근위기사들은 거의 전부 귀족가의 자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검술 수업을 받은 자들이다.

아무튼 팀당 60명이니 2개 팀이 몰려와 있다.

“너희 중 누가 대표인가?”

현수의 물음에 몇몇이 시선을 주고받는다. 그중 하나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발짝 나선다.

“근위기사단 1팀장 볼드윈 아드레드이다. 너는 누구냐?”

“나? 나는 미판테 국왕의 초청을 받아 온 사람! 하인스라 하지. 초청장은 여기 있다. 안내하라.”

근위기사단원 대부분은 가문의 작위를 물려받지 못할 차남 내지 삼남이 많다.

그렇다 하여 작위 없는 평민인 것은 아니다.

다수가 남작 또는 준남작이다. 물론 가문에서 내려준 것인지라 세습되지 않는 작위이다.

미판테 왕국의 현임 근위기사단장은 백작이다. 하지만 영지가 없는 귀족이다. 일종의 명예직이기 때문이다.

소드 마스터라면 퇴임 후에도 백작위가 유지된다.

그렇지 못하면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자작위를 제수받고 작은 영지를 맡게 될 뿐이다.

아무튼 이곳엔 단장이 없다.

한눈에 훑어봐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내지 소드 마스터로 보이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있다 하더라도 명예직인 백작과 제국의 세습 백작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더 정중히 대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러하기에 대놓고 말을 내린 것이다.

현수가 내민 초청장을 받아 든 볼드윈은 가볍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하게 풍기는 고린내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이상의 내색 없이 그것을 펼쳐 내용을 읽는다. 다 읽고는 원래대로 감은 뒤 건네며 묻는다.

시선은 더 이상 차가울 수 없을 정도로 싸늘했다.

“네놈이 하인스 백작이라고?”

대놓고 어디에서 났느냐고 묻지 않고 돌려 말한다. 현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하여간 보는 눈들이 없어. 백작이라고 하면 좀 믿을 것이지. 흐음! 또 한 따까리 해야 하나 보군.’

휘휘 둘러보니 벌써부터 검집에 손이 가 있다. 명만 떨어지면 그 즉시 난도질이라도 할 생각인 듯싶다.

숫자는 많다. 120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현수에게 있어 이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현수의 입가엔 현현한 미소만 어려 있다. 이를 비웃는 것으로 오인한 볼드윈이 노성을 지른다.

“모두 이 미친놈을 포위하라! 용병 주제에 귀족을 사칭하였으므로 죽여도 좋다.”

“추웅―!”

말 떨어지기 무섭게 사방 모두를 에워싼다. 인원이 워낙 많기에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흐음! 본인이 백작인지 여부도 따져보지 않고 공격부터 하겠다? 좋아! 눈이 삐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덤벼!”

“야아압!”

기다렸다는 듯 기사 가운데 하나가 투핸드 소드를 휘두르며 쇄도한다. 기선제압용 공격이기에 딱히 목을 베겠다는 의도는 없는 듯 허리춤을 쓸어온다.

채앵―!

“으읏!”

투핸드 소드와 바스타드 소드는 중량에서 차이가 있다.

현수의 것은 길이 120㎝, 폭 2.5㎝, 무게 2.75㎏이다. 기사가 휘두른 것은 길이 200㎝, 폭 6.5㎝, 무게 5.25㎏이다.

현수는 한 손으로 휘둘렀고, 기사는 두 손을 다 썼다.

당연히 금속음에 이어 현수의 것이 형편없이 뒤로 밀려야 한다. 그와 동시에 검날의 이가 빠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뒤로 밀린 건 기사의 것이다.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막강한 상대의 힘을 느낀 기사는 나직한 침음을 낸다.

그리곤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듯 힘주어 밀친다. 근육에 힘을 주자 굵은 팔뚝 위로 지렁이 같은 혈관이 보인다.

“검이란 말이지 그렇게 휘두르는 게 아니야. 투핸드 소드를 쓸 때는…….”

현수의 말을 들은 기사는 얼굴이 뻘게진다. 누구나 아는 아주 기초적인 부분을 지적당한 때문이다.

하여 모욕당했다 느끼곤 힘주어 다시 밀친다. 하지만 현수가 누구인가!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조금 더 연마하고 오도록!”

“이잇! 으으!”

와당탕―! 챙그랑!

기사가 나자빠지면서 투핸드 소드가 바닥을 나뒹군다.

기사들 가운데에서도 힘으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큰소리를 치던 녀석이 호리호리한 현수에게 당하자 모두가 긴장하는 눈빛이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뭐하나? 쳐라!”

“이야압! 이이잇! 야아압!”

사방에서 검이 쇄도한다.

챙! 채챙! 채채채챙! 챙챙! 챙챙! 채채채챙!

퍽! 툭! 퍼억! 빡! 퍼억! 퍼퍽! 두다다다! 퍼퍽!

“큭! 헉! 켁! 컥! 헉! 흐억! 아악! 켁! 으악!”

쿵! 콰당! 와당탕! 우당탕탕! 콰당탕! 쿠쿵!

맑고 높은 금속음에 이어 둔탁한 타격음이 들린다. 그리곤 단말마 비슷한 비명과 함께 기사들이 나자빠진다.

“……!”

선두에 있던 여덟 명의 기사가 거의 동시에 쓰러지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때 누군가의 외침이 있다.

“뭐해? 놈은 하나다. 모두 공격! 공격!”

“야아압……!”

제법 체격이 큰 누군가의 기합을 시작으로 기사들이 다시금 달려든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또다시 일제히 쓰러지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뒤에 있던 놈들이 달려든다. 누군가의 외침대로 상대는 하나뿐이고 자신들은 무려 120명이나 된다.

그리고 본인들은 제대로 단련된 기사들이다. 따라서 상대는 지치게 된다.

근위기사로서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크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왕궁의 안전이다.

그렇기에 차륜전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드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순식간에 육십여 명이 바닥을 나뒹군다.

뒤에 있던 녀석들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검을 들고 현수에게 달려든다. 그러는 사이에 쓰러진 동료들을 잡아끌어 뒤쪽으로 빼돌린다.

“죽엇!”

“이래 가지고 어디 파리나 잡겠어? 느려, 느려도 너무 느려! 수련이나 더 해!”

“네, 이노옴! 야아압!”

또 한 녀석이 투핸드 소드를 무식하게 휘두른다.

아머를 걸치고 있다면 그것까지 한꺼번에 뭉개 버리겠다는 듯 강력한 휘두름이다. 하지만 현수의 바스타드 소드에 의해 쉽게 진로를 저지당한다.

채앵―!

“이이잇!”

“힘만 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 알았지? 가로베기와 세로베기만 연습하다간 네 녀석의 목이 베어지는 수도 있어. 조금 더 다양한 수법을 연마해. 알겠나?”

퍼어억!

“크허어억!”

말을 마친 현수의 주먹이 녀석의 명치 부근을 강력히 두드리자 내장까지 토할 듯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다.

신장 2m에 몸무게 150㎏쯤 되는 녀석이 쓰러지자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와당탕탕!

이 순간 현수의 등을 노리고 찔러드는 검이 있다.

티잉―! 빠각!

“헐! 어떻게 이럴 수가!”

순식간에 등을 돌린 현수 역시 검을 내뻗었다. 그러자 검의 끝과 끝이 부딪치며 묘한 금속음을 낸다. 다음 순간, 기사의 블레이드 중 가장 두꺼운 부분이 부러져 버린다.

검극과 검극, 그러니까 검의 가장 끝 부분인 포인트 부분끼리 격돌한다는 건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경우이다.

면적이 1㎟도 안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검극끼리 격돌했는데 더 두껍고 무거운 검이 부러져 버리자 달려들던 녀석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나직한 탄성을 낸다.

“상대를 찌를 땐 예비동작 없이 과감하게. 알았나? 아무튼 시도는 좋았다. 베기보단 찌르기를 막기가 더 힘드니.”

좌우로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집중력을 발휘하여 검극끼리의 격돌시키는 수법을 썼던 것이다.

퍼억―!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기사가 옆구리를 채이자 나뒹군다. 지독한 통증을 느끼는지 나직한 비명을 지른다.

“크으으으윽!”

통증이 가시기 전까진 검을 들고 설쳐댈 수 없을 것이다. 이 순간 두 개의 검이 현수의 목과 팔을 향해 쇄도한다.

하나는 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찌르는 것이다. 이것에 이어 세 개의 검이 좌우와 전면에서 쇄도한다.

두 공격의 시차는 0.5초 정도 된다.

슬쩍 자세를 낮춰 목을 찌르던 검을 피하곤 소드를 왼쪽 어깨에 댔다. 기다렸다는 듯 기사의 검이 부딪친다.

상대의 검은 날이고, 현수의 것은 면이 닿았다. 상대의 힘이 강했다면 현수의 바스타드 소드가 뚝하고 부러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없다. 둘이 닿는 순간 오러로 보호된 때문이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짧은 순간이다.

휘익! 채앵―!

퍽! 퍼억!

“컥! 크윽!”

챙그랑! 와당탕탕!

둘이 쓰러지는 순간 현수는 낮춘 자세를 더 낮춰 세 개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그와 동시에 회축을 시도했다.

당연히 기사들은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당한다.

퍽! 퍽! 퍼억!

“아악! 으아악! 크헉!”

와당탕! 쿠쿵! 챙그랑! 챙! 챙그랑!

셋 모두 중심을 잃고 나뒹군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체술이기에 대응할 수법이 없었던 때문이다.

순식간에 30여 명이 쓰러지자 나머지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자신들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포위망을 풀지는 않았다. 근위기사로서의 임무를 잊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래도 길을 안 틀 건가?”

현수를 중심으로 30여 명이 쓰러져 끙끙대고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자는 대략 10여 명이 보인다.

스르르릉! 터억―!

현수는 더 이상 달려들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자 바스타드 소드를 검집에 넣었다.

이에 현수를 포위한 기사들은 주춤거리면서도 허점을 찾는다. 누구든 한 명만 공격에 성공하면 금방 제압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때 왕궁 안쪽으로부터 일단의 무리가 달려온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