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90화 (889/1,307)

# 890

수문위병이 뒷짐 진 채 성 밖 풍광을 바라보고 있는 현수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척, 척, 척! 챙―!

기사는 판금아머를 착용했는지라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난다. 현수 바로 뒤까지 다가와 차렷자세를 취하느라 발뒤꿈치를 부딪치자 금속음이 들린다.

현수는 부러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전형적인 귀족의 모습을 나타내려던 것이다.

“스트마르크 영지 창공기사단 기사 하인스입니다. 저희 영주님과의 면담을 요청하셨다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하인스?”

아르센 대륙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많은 이름이 남자는 하인스, 여자는 세실리아라 들었다.

그동안 세실리아라는 이름은 여러 번 접했지만 하인스는 처음이기에 저도 모르게 반문한 것이다.

“네! 기사 하인스입니다.”

“하하! 반갑네.”

“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친근한 척하자 왜 이러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웃는 낯으로 물었다.

“자네가 나를 안내하러 나왔는가?”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백작님! 그런데 수행원들은 어디에 계시는지요?”

스트마르크 백작이 움직일 땐 자작 1명과 남작 2명, 그리고 기사 20명과 200∼300명의 병사가 함께 이동한다.

유사시 백작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고, 어떤 일을 처리하고자 할 때 손발이 되어줄 인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귀족의 이동이라는 것을 표내기 위함도 있다.

기사 하인스는 말을 하며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듯하다. 하여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현수를 바라본다.

“수행원은 없네. 나는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해서.”

“네? 백작님께서 혼자 이동하신다고요?”

기사 하인스는 몹시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홀로 움직이는 귀족은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하네, 그러니 그냥 안내하게.”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짧은 순간 현수의 위아래를 파악한 기사 하인스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절도 있는 동작으로 한 팔을 굽히며 머리를 숙인다. 주군을 찾아온 귀빈을 맞이하는 예이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작님!”

고개를 들고는 역시 절도 있는 동작으로 뒤를 돌았다. 마치 훈련소에서 제식시범을 보이는 조교 같은 모습이다.

척, 척! 챙―! 척척척척!

하인스 기사의 뒤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동행했던 기사가 군례를 올리곤 현수의 뒤쪽으로 자리한다.

병사들은 이런 훈련이 되어 있었는지 별도의 명이 없음에도 에스코트 대형으로 자리하곤 기사들의 속력에 맞춰 이동했다.

현수는 병사와 기사들이 걷는 소리를 감상하며 이동했다.

스트마르크 영지는 미판테 왕국 동단에 위치해 있다.

서쪽에 자리 잡은 네로판 영지가 있기에 라수스 협곡과는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이번 몬스터 러시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영지이다.

그럼에도 성내는 긴장이 감도는 모습이다.

하인스 기사의 뒤를 따라 들어가니 넓은 연무장이 보인다. 이곳엔 상당히 많은 병사가 도열해 있다.

그들의 앞쪽 단상엔 아머를 걸친 기사들이 서 있다.

“어이! 거기, 뒤에서 세 번째 서 있는 멍청이!”

“……!”

기사의 지적을 받은 부분에 있던 병사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눈빛을 교환한다.

그러다 하나가 본인을 지목했느냐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킨다. 이에 기사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진다.

“그래, 너! 왜 건들거리나? 줄 똑바로 못 서? 정신은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야? 한번 찐한 맛을 보고 싶은 건가?”

“아,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지적받은 병사가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한다.

“지금부터 지적 받는 자는 그 즉시 열외 하여 뒤쪽에 있는 기사에게 간다. 알았나?”

이곳도 대열에서 열외 되면 한국처럼 얼차려를 받는 모양인지 모두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바뀐다.

“네,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치자 기사는 만족스럽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8장 홀덴 영지의 몬스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위기에 처한 네로판 영지를 구원하기 위해 출동하는 구원군이다. 네로판은 소영주님의 부인이신 세실리아 마님의 고향이다.”

이들을 구경하던 현수의 입가로 웃음이 배어든다. 또 세실리아라는 이름의 여인이 있음을 알게 된 때문이다.

이때 기사의 발언이 이어졌다.

“우리 영지와 사돈지간인 영지를 위해 출동하는 만큼 나중에 문제될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약탈 및 강간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지휘관인 듯한 기사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떠한 무례도 범하지 말라며 중언부언하고 있다.

힐끔 바라보니 기사 50명, 병사 10,000명 정도 된다.

이 정도면 네로판 영지와의 관계가 무척이나 돈독하다는 뜻이다.

“몬스터 토벌을 나가나?”

“네! 이웃 영지인 네로판 영지 쪽으로 몬스터들이 몰려들어 구원 나갑니다.”

“듣자 하니 네로판 영지는 얼마 전에 홀렌 영지를 병합했다고 하는데 그쪽도 그러한가?”

“거기가 제일 심한 곳입니다. 라수스 협곡 바로 아래쪽이라 오크, 트롤, 오거뿐만 아니라 미노타우르스와 사이클롭스까지 출몰한다 합니다.”

“사이클롭스까지?”

아르센 대륙에 와서 미노타우르스는 본 적이 있지만 외눈박이 거인인 사이클롭스는 그림으로만 접했다.

멀린이 남긴 몬스터 도감에 이르기를 사이클롭스는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늘 둘 셋, 혹은 서넛이 뭉쳐 다닌다.

신장은 10m 정도 되며, 힘이 장사인지라 나무를 뿌리 채 뽑아 휘두르거나 1톤이 넘는 바위를 던진다고 한다.

이놈은 최하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3명 이상이 혼신의 공격을 퍼부어야 상대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피부가 돌처럼 단단하여 웬만한 검으론 상처 입힐 수 없기 때문이며, 일반적인 화살은 박히지 않는다.

이놈은 덩치가 크지만 상당히 민첩하며, 유일한 약점은 하나밖에 없는 눈이다.

그런데 잠들어 있을 때에도 눈을 뜨고 있기에 접근이 용의하지 않으므로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몬스터 도감을 제작한 사람의 의견이었다.

하나의 사이클롭스를 상대할 때 이러하니 둘이면 여섯 명의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가 있어야 하고, 셋이면 아홉이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주로 깊은 산속에 살기에 사람들이 사는 곳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수는 도열해 있는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초급과 중급, 그리고 상급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최상급은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까지 포함하면 매우 많은 인원이지만 사이클롭스 무리를 만나면 전멸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여 이 영지에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가 몇이나 되느냐 물으려 할 때 기사 하인스의 말이 이어진다.

“네! 그래서 영주님이 2차 지원군을 보내려고 저렇게 준비하는 중인 겁니다.”

하인스 기사의 말을 들어보니 1차 지원군으로 기사 50명과 병사 20,000명이 갔다. 변경백이기에 국경수비대가 주둔해 있어서 파병 가능한 인원이다.

아드리안 공국과 접경해 있지만 저쪽은 이쪽을 공격할 확률이 거의 없기에 경비병력 중 태반을 빼낸 것이다.

스트마르크 백작은 욕심 사납게 생겼지만 판단력이 꽝인 사람은 아니다.

이웃 영지이며, 사돈이 된 네로판 영지가 엉망이 될 경우 그 여파가 자신의 영지에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우선 수많은 난민이 물밀 듯 몰려들 것이다. 그다음은 이들을 따라온 몬스터들의 공격이 예상된다.

이 시기에 아드리안 공국 쪽에서 영토를 침범하게 되면 양쪽의 공격을 모두 막아야 한다.

왕국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위태로운 상황이 된다.

그러기 전에 먼저 한쪽을 막아내는 것이 유리하다 판단하였기에 전격적인 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네로판 영지 쪽에도 기사와 병사들이 많은가?”

“네? 그건…….”

기사 하인스가 잠시 말을 멈춘 건 타국 귀족에게 아국의 속사정까지 까발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때문이다. 그런데 귀족의 물음이다. 당연히 답변을 해야 했기에 곧 말을 이었다.

“네, 그쪽도 병사들 조련이 상당히 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홀덴 영지와의 영지전에서 별 피해가 없었던 모양이군.”

“네! 마침 저희 소영주님의 부인께서 친정에 가셨는지라 큰 피해 없이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영지전이 벌어질 경우 한쪽의 일방적인 공격이 아니라면 적당한 평지에서 맞붙는다.

영지의 사활이 걸렸는지라 가용한 병력 전부가 동원되지만 모두가 전장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적의 우회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은 영주성에 남게 된다.

홀렌 영지와 네로판 영지는 오랜 세월 으르렁거리며 상대를 견제하던 사이였다. 전전대 영주들 간의 반목 때문이다.

둘의 군사력은 대등했는데 엄밀히 평가하자면 홀렌 영지 쪽이 약간 더 우세했다.

그래도 맞붙으면 공멸이라는 걸 알기에 서로 변죽만 울릴 뿐 국지전조차 없었다. 사소한 다툼이 전면전으로 번진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절세미녀로 소문난 하우드 남작의 딸 세실리아가 스트마르크 백작의 며느리가 되었다.

세실리라는 결혼 후 첫 번째 맞이하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정을 찾았다.

소영주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잉태하였는지라 기사 50명과 병사 30,000명이 호위했다.

두 영지 사이엔 작은 산만 몇 있을 뿐이다.

몬스터라곤 고블린이 가끔 출몰하는 정도이다. 따라서 이런 대단위 병력 이동이 불필요하다. 하지만 손자를 잉태한 며느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병사를 파견한 것이다.

사실 이처럼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동원된 것은 부친의 염원을 이루어주기 위함 세실리아의 간청 때문이다. 아울러 사돈이 든든해야 이쪽도 좋다는 생각을 한 때문이기도 하다.

친정에 당도한 세실리아는 스트마르크 백작의 기사와 병사들을 하우드 남작의 가장 약한 부분과 바꿔치기 했다.

강자와 약자를 바꾼 것이다.

그리곤 곧바로 전장으로 향했다.

하우드 남작 성에 남은 병력은 외형상 기사 50명과 병사 30,000명이지만 실제론 모두가 병사뿐이고, 병력도 5,000명을 넘지 않았다.

국경을 수비하던 정예군이 가세되자 홀렌 영지군은 지리멸렬해 버렸다. 마치 홍수를 만난 토용3)처럼 허무하게 흩어져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홀렌 영지의 영주 일가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기사와 병사 중 실력이 있는 자들은 스트마르크 백작의 영지로 끌려가 국경수비대에 배속되었다.

행정관들은 부정 축재하였다는 죄목으로 재산은 몰수되고, 강제 노역형에 처해졌다.

홀덴 영지의 영지민들은 수백 개의 무리로 나뉘어 네로판 영지 곳곳으로 보내졌다. 대신 네로판 영지의 빈민들이 대거 홀덴 영지로 이주되었다.

영지 동화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홀렌 영지의 영주 일가가 모두 죽었기에 반란의 위험은 거의 없다.

“시종장님! 기사 하인스가 영주님과 만나고자 오신 귀빈을 모시고 왔습니다.”

하인스가 군례를 올리자 나이 든 노인이 고개를 까닥이고는 현수를 일별한다. 그리곤 정중히 허리를 꺾는다.

여유 있는 태도와 걸치고 있는 의복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귀족임이 분명하기에 이런 예를 갖춘 것이다.

“스트마르크 백작가의 시종장 도널드 휴가드 남작이 인사드립니다. 어디에서 오신 누구신지요?”

“코리아 제국에서 온 하인스 백작이네. 스트마르크 백작과는 면식이 있으니 기별을 넣어주게.”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백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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