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92화 (891/1,307)

# 892

“그나저나 우리 젊은 백작님이 왜 타국을 홀로 여행하는지 물어도 되겠소? 수행원도 없이 다니던데, 혹시……?”

요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귀족들은 후세를 위해 일찍 결혼한다.

아르센 대륙의 귀족 사내는 18세가 되면 대부분 결혼한다. 여인은 16세에 유부녀가 되는 경우가 많다.

26살 스테이시 아르웬은 성녀이니 논외이다. 23살 다프네도 산속에서만 살았으니 그렇다 칠 수 있다.

하지만 24살이 된 카이로시아와 22살 로잘린, 그리고 20살이 된 케이트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특별하다 해도 좋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와 지성, 그리고 배경이 있음에도 혼기가 지나도록 배우자를 고르지 않았다.

많은 청혼자가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모두를 거절하여 노처녀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카이로시아 같은 경우는 아예 결혼을 포기하자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냄새나고, 성만 밝히며, 욕심 사납고, 저열한 사내와 살을 비비며 사는 것이 마뜩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스트마르크 백작이 볼 때 현수는 이미 결혼한 귀족이다. 25세 정도면 본처 이외에도 2∼3명의 여인을 더 수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본인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하는 삶이라 하더라도 권태기라는 것이 찾아온다.

이때가 되면 사내들은 다른 꽃에 시선을 주기도 한다.

스트마르크 백작은 카문젠으로부터 일곱 명의 성노를 구입했다. 그리곤 실컷 즐겼다.

다른 귀족의 경우 이러고도 되파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성노를 100골드에 매입했다. 한국돈으로 치면 약 1억 원이다. 실컷 즐기곤 40골드에 되판다.

그리곤 B라는 새로운 성노를 100골드에 매입한다. 두 번째 구입엔 60골드밖에 안 든 셈이니 이익이다.

문제는 되팔린 A이다. 반품 즉시 사창가로 팔려간다. 그리곤 지옥과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 귀족의 행태이다. 다른 사람의 삶 따위는 전혀 배려치 않는 것이 미덕인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스트마르크 백작은 그러지 않았다. 카문젠으로부터 구입한 성노 일곱은 여전히 그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이 중 맨 처음 구입한 성노는 나이 40이 넘었다. 여자로선 시들어버린 나이이다. 그럼에도 버리지 않은 것이다.

각별히 사랑하거나 아껴서가 아니다.

한때나마 자신이 품었던 여인이기에 차마 내칠 수 없어 후원에 마련된 하렘에 머물도록 한 것이다.

어쨌거나 스트마르크 백작은 현수가 마누라를 놔두고 홀로 이곳저곳을 방랑하면서 바람피우러 다니는 것으로 여긴 듯하다.

현수는 그냥 놔두면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 여겼다. 하여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백작! 내가 노예사냥꾼을 찾는 이유는 한 여인이 실종되었기 때문이오.”

“에고, 점찍어 두었던 것이 사라진 모양입니다.”

여전히 농담 투이기에 현수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9장 노예사냥꾼들을 데려와!

“백작! 그 여인은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인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의 딸이오.”

“…네에? 뭐라고요? 그, 그 말씀은…….”

백작은 알딸딸하게 오르던 취기가 한번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는 듯 눈을 크게 뜬다.

“겉보기엔 완벽한 인간이지만 실제론 드래고니안이오.”

“세, 세상에……. 어떤 간 큰 놈이 감히 위대한 존재의 딸을 납치했단 말입니까?”

백작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분노한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가 영지를 휩쓸어버리는 장면을 상상한 때문이다. 그런데 현수의 섬뜩한 말이 이어진다.

“노예사냥꾼! 그들은 이 영지로 흘러들었소.”

“네에? 저, 정말인 겁니까?”

“내가 직접 그 흔적을 추적하여 왔소. 그런데 외성에서 그들의 종적이 사라졌소. 너무 많은 사람이 오가느라 지워진 듯하오.”

“아……!”

스트마르크 백작이 나직한 탄성을 낼 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쿵, 쿵, 쿵―!

“영주님! 노예상인 카문젠 당도하였습니다.”

“어, 어서 들라 이르라.”

삐이꺽―!

문이 열리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다소 비대한 사내가 들어서며 모자를 벗는다.

“아이고, 오래간만이옵니다. 영주님! 미천한 소생을 이처럼 불러주시어 참으로 영광이옵니다.”

오랜 장사로 능글능글함이 몸에 배인 듯한 사내이다.

“앉아라!”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 카문젠이 백작을 바라본다.

“처음 뵙는 귀족이신 듯한데 뉘신지요? 소인이 알아야 인사를 올리지 않겠습니까?”

카문젠의 말에 대꾸한 것을 백작이다.

“이분은 코리아 제국에서 오신 하인스 백작님이시다.”

“코리아 제국이요? 우리 아르센 대륙에 그런 나라도 있습니까?”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현수의 위아래를 훑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냉막한 표정이다.

“자네, 노예상인 카문젠이라 했나?”

“네, 백작님.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말씀만 하십시오. 원하는 타입으로 재깍 대령하겠습니다요.”

카문젠은 다소 아첨하는 투로 말을 했지만 내심은 현수를 무척 고깝게 생각하는 듯한 눈빛이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노예를 공급해 주는 노예사냥꾼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이다.”

“네?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노예가 아닌 노예사냥꾼을 찾는다 하자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다. 자기 밥그릇에 손대려는 것으로 오인한 때문이다.

“이유는 알 필요 없고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주면 된다.”

“그건 조금 곤란합니다요. 저희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어서……. 답변드릴 수 없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요.”

카문젠은 약간 물러앉는다. 더 이상의 대화를 잇고 싶지 않다는 몸짓이다. 이때 스트마르크 백작이 끼어든다.

“카문젠!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백작님! 대체 그 녀석들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요? 그 녀석들은 제 장사 밑천이나 다름없습니다요. 그러니 필요한 게 있으면 제게 말씀해 주시…….”

“스테츄!”

말을 이으려던 카문젠의 동작이 정지된다.

“…마법사이셨습니까?”

갑작스런 마법에 스트마르크 백작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백작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카문젠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 할 때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홀드 퍼슨은 행동만 제약할 뿐 말은 할 수 있다. 반면 스테츄는 글자 그대로 조각상처럼 눈동자조차 움직일 수 없다.

그렇기에 카문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현수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매직 캔슬!”

“휴우∼!”

긴장감 때문에 숨을 멈추고 있던 카문젠은 긴 한숨을 쉬며 슬쩍 스트마르크 백작을 바라본다.

어찌 된 사람인지 궁금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너에게 노예를 공급해 주는 놈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 놈들의 행방을 알아야겠으니 좋은 말로 할 때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분노를 억누르는 중이다. 만일 화를 낸다면……. 아니다. 어서 말이나 해라.”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그들은 제 장사 밑천이나 다름없습니다요. 그들이 무슨 큰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말해 드릴 수가……. 그리고 그들을 잡아 족치시면 제 사업에 지장이 너무 커서…….”

카문젠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말을 돌린다. 이때 스트마르크 백작이 끼어든다.

“놈들이 드래곤의 딸을 납치했다. 여기 계신 하인스 백작님은 그들의 뒤를 추적하여 여기까지 오셨고.”

“네, 네에……?”

카문젠 역시 대경실색하는 표정을 짓는다. 납치된 사람이 귀족의 딸이라 해도 놀랄 지경인데 드래곤의 딸이란다.

황제의 딸을 납치한 것보다도 큰 화근이 될 일이다.

황제는 이성이라는 것이 있지만 분노한 드래곤은 그따위 것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구구절절이 따지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짓밟을 게 뻔하다. 하여 카문젠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 때 스트마르크 백작의 말이 이어진다.

“놈들이 납치한 건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 라이세뮤리안님의 딸이다. 이제 어찌 된 상황인지 알았나?”

“헉! 라,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요? 그, 그럼 레드 드래곤?”

카문젠의 동공은 더 이상 커질 수 없도록 팽창한다. 짓밟는 정도가 아니다. 시뻘건 화염의 브레스 한 방이면 영주성 따위는 잿더미가 된다. 자신의 영업장 역시 작살날 것이다.

이때 현수의 음성이 이어진다.

“내 아내가 될 여인이기도 하다.”

“아! 그러셨습니까?”

이제야 현수가 노예사냥꾼을 찾는 이유를 알았다는 듯 스트마르크 백작이 나지막한 탄성을 낸다.

카문젠이 사실이냐는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드래곤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려는 귀족이라니 새삼스런 것이다.

이때 현수의 나머지 말이 이어졌다.

“나!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의 아내가 될 여인이다. 노예사냥꾼은 어디에 있느냐?”

“네에……? 누, 누구시라고요?”

카문젠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선다. 이때 스트마르크 백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지 귓구멍을 후비고 있다.

“나는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이자 이 세상 모든 마법사의 정점 위저드 로드이다.”

“헉! 지, 진짜이십니까?”

“……!”

카문젠이 저도 모르게 반문한 바로 그 순간 현수는 대답대신 본인의 존재감을 확 드러냈다.

화아아아악―!

“흐억!”

“헥!”

카문젠이 털썩 주저앉는다. 무릎에서 힘이 빠져버린 결과이다. 스트마르크 백작은 재빨리 무릎을 꿇는다.

현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 때문이다.

“소, 소인 베르세 후안 반 스트마르크가 위대하신 그랜드 마스터님을 뵈옵니다.”

“이, 이분이 그, 그랜드 마스터님이시라고요? 조, 조금 전에 위, 위저드 로드라 하셨는데 어찌……?”

카문젠은 이 상황에도 궁금한 건 해결 봐야 하는지 스트마르크 백작을 바라본다. 평민 주제에 고위 귀족인 백작에게 어서 대답하라는 표정이다.

“어허! 무엄하다. 감히 위저드 로드이시자 그랜드 마스터이신 위대한 분을 앞에다 두고……. 어서 무릎 꿇지 못할까? 정녕 죽고픈 것이냐?”

스트마르크 백작 역시 검의 길을 걷는 무사이다.

얼마 전 자그마한 깨달음을 얻어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되는 성과가 있었다. 상급에서 겨우 한 단계 높아지는 데 무려 십 년이나 걸렸다.

이제 소드 마스터가 되기를 바라지만 얼마나 걸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백작 본인은 앞으로 25년쯤 후에는 소드 마스터가 되는 기쁨을 누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때 바디 체인지를 겪으면 실제 나이는 여든 살이지만 신체 나이는 40대 초반쯤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아무런 성과가 없어 평생토록 최상급에 머물 수도 있다.

그만큼 되기 어려운 것이 소드 마스터이다.

역사적 기록을 뒤져보면 그런 소드 마스터 1,000명 중 겨우 하나 정도가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가 된다.

그때 다시 한 번 바디 체인지를 겪게 되지만 워낙 많은 나이에 이런 경지에 오르므로 실제로 활동한 시간은 짧았다.

어쨌거나 스트마르크 백작의 호통에 놀란 카문젠은 재빨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레드 드래곤도 무섭지만 현수는 더 무서운 존재이다.

세상 모든 마법사와 모든 기사로 하여금 노예상인들을 없애라 하면 다음 날 그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드래곤에게 무례를 범하면 숨어 지내며 연명할 수 있다. 하지만 위저드 로드 또는 그랜드 마스터에게 죄를 지으면 살 수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