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93화 (892/1,307)

# 893

그런데 현수는 위저드 로드이면서 동시에 그랜드 마스터이고,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이다.

게다가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의 딸을 아내로 맞이할 존재이다. 결코 눈 밖에 나선 안 될 인물이다.

“이놈! 어서 위대하신 분께 고하거라. 노예사냥꾼들은 어디에 있느냐?”

스트마르크 백작이 재차 호통치자 카문젠이 급히 고개를 바닥에 처박으며 소리친다.

쿠웅―!

“으읏……! 소, 소인 카문젠이 아뢰옵니다. 소인에게 노예를 공급해 주는 노예사냥꾼은 모두 열두 무리가 있사옵니다. 자, 잠시만 시간을 주시면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를 드리겠사옵니다. 하오니 미천한 소인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카문젠은 벌벌 떨며 대답을 한다. 그런 그의 하의는 축축하게 젖고 있다. 범을 만난 강아지처럼 두려움에 떠느라 저도 모르게 실례하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있지 않는 자들은 모두 끌고 와라. 알았나?”

“무, 물론이옵니다. 후딱 다녀오겠습니다요.”

“시간은 얼마면 되겠는가?”

“하, 한 시간… 아니, 두 시간만 주시옵소서!”

“두 시간……? 좋아! 가라.”

두 시간이면 천지개벽하는 일이 벌어지고도 남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시간 단축을 요구하지 않은 이유는 이곳의 통신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짱 박혀 있을 노예사냥꾼들을 한꺼번에 집합시키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거래를 하는 상대일 뿐 상하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부른다 하여 곧장 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 카문젠이 시간을 부풀려도 트집 잡지 않았던 것이다.

“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요.”

후다다닥―!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문젠은 달려간다.

쌍방울에서 요령 소리가 나고, 눈썹이 휘날리다 빠질 정도로 빠르다. 제정신이 아니기에 저도 모르게 초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모양이다.

카문젠이 나가버리자 홀로 남게 된 스트마르크 백작은 부르르 떤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와 남은 때문이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갓 자대 배치를 받은 이등병이 있다.

헌병대 소속으로 육군본부 청사 앞 위병근무를 서던 중 참모총장을 마주보게 되었다.

근무 중인 병사들의 계급장을 본 참모총장은 부러 푸근한 표정을 지으며 이등병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이렇게 물었다.

“자네 혹시 불편하거나 힘든 점이 있는가?”

이 대목에서 이등병은 무어라 대답하겠는가!

“근무 서고, 훈련 받는 게 너무 힘듭니다.”

“고참들이 너무 갈궈서 자살하고 싶습니다.”

“짬밥이 너무 맛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똥 쌀 시간도 없어서 힘듭니다. 자유 시간 많이 주십시오. 힘들어 죽겠습니다.”

“기상시간이 너무 이릅니다. 아홉 시쯤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침 구보 없애주십시오. 힘듭니다.”

“훈련이 고되서 미치겠습니다. 이런 훈련 왜 시킵니까? 적과 싸울 의지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왜 청소는 저 같은 쫄따구들만 하고 고참들은 빈둥거립니까? 낼 모레 제대할 말년들도 청소시키십시오.”

“매일 두 시간씩 섹시한 걸들이 나오는 TV나 보게 해주시오. 그런데 걸그룹 위문은 언제 옵니까?”

이런 말을 하는 이등병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제대하는 날까지 온갖 갈굼을 당하는 동시에 전군에 전설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사회에 나와서도 편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제정신인 이등병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아마 대부분의 이등병의 입에서 나올 말일 것이다. 그렇게 대답을 했더니 참모총장이 빙그레 웃는다.

“그래! 아무튼 수고가 많네. 이 앞에서 근무를 서는 동안 자넨 육본의 얼굴이네. 그러니 열심히 임무에 임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이등병은 목청이 터져라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참모총장의 눈에 이등병의 옆구리 뒤쪽으로 삐져나온 전투복 상의가 보인다.

이등병은 임무에 임하기 직전 화장실에 들러 큰일을 보고 왔다. 그런데 변비가 있어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시각을 확인한 이등병은 깜짝 놀라며 허겁지겁 군복을 정제하고 후다닥 튀어나왔다. 근무시간 임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옆구리 쪽의 상의가 채 들어가지 못하고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참모총장은 아버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등병의 군복을 친히 넣어준다. 그러다 이등병의 군화끈이 군화 밖으로 삐져나와 덜렁거리는 것이 또 보였다.

“이런! 군화끈이 이렇게 나와 있으면 안 되지.”

말을 마친 참모총장은 이등병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군화끈을 정리해 주었다.

일련의 모습은 참모총장의 뒤를 따라오던 헌병대장과 휘하 장교들, 그리고 부사관들의 눈에 뜨였다.

그들은 시선만으로 이등병을 잡아먹을 수 있으면 그러겠다는 듯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쏘아보고 있다.

이때 이등병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지금 스트마르크 백작의 심정이 이러하다. 본인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입안에 침은 바싹 바르고, 몸은 저도 모르게 바르르 떨린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까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농담 따먹기를 했다. 여인네를 점찍어 두었느냐는 등의 말이다.

안색이 하얗게 변한다. 본인의 잘못을 인식한 것이다.

“위, 위대하신 분께 소, 소인이 무례를 범하였사옵니다. 부디 소인을 용서치 마시옵소서. 마시옵소서!”

백작은 시위하는 것도 아닌데 후렴구를 반복한다.

그리고 겁에 질렸는지 평소 쓰지 않던 사극투로 이야길 하고 있다.

잠시 말이 없던 현수가 점잖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백작은 편히 앉으라.”

스크마르크 백작은 고개를 좌우로 크게 젓는다.

“아, 아니옵니다. 소, 소인이 어찌……. 이렇게 뵈옵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광영이옵니다.”

이 말은 진심이다. 그랜드 마스터이자 위저드 로드인 사람은 아르센 대륙 역사상 딱 하나뿐이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했던 드래곤들조차 못 이룬 경지이다.

오늘 위대한 존재로부터 처벌받아 목숨을 잃지 않는 한 이 만남은 역사적인 일이 된다.

그렇기에 가문의 영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불편하다. 백작은 자리에 앉으라.”

“…위대하신 마스터의 명을 받자옵니다.”

스트마르크 백작이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서려던 바로 그 순간 집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도널드가 들어선다. 그 뒤에는 실비아가 따르고 있는데 간단한 안주거리가 들려 있다.

이 순간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스트마르크 백작이 무게 중심을 놓치면서 도로 주저앉는다. 얼핏 보면 현수가 뒤로 밀어서 쓰러지는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여, 영주님을……! 네, 네 이놈……!”

도널드는 장식용으로 걸어놓았던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들더니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현수가 주군인 스트마르크 백작을 공격했으니 응징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주군을 칭할 때 ‘님’자를 붙이지 않은 것이 마땅치 않았다.

제국의 백작이라고는 하나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이다. 게다가 주군 역시 백작이다. 나이는 2배 이상 많아 보인다.

그런데 싸가지 없이 같은 백작이라고 맞먹었다. 당연히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지체하지 않고 검을 휘두른 것이다. 지금 당장은 주군을 위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어∼!”

스트마르크 백작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도널드가 휘두른 바스타드 소드는 현수의 좌측 어깨로부터 우측 옆구리까지를 베려하고 있다.

휘익! 채에엥∼! 챙그랑!

“크으윽……!”

도널드의 바스타드 소드는 전능의 팔찌로부터 발현된 앱솔루트 배리어와 격돌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의 막이 만들어낸 반탄력은 대단했다.

너무 강한 반탄력에 도널드는 검을 놓쳤고, 호구는 물론이고 팔 전체로 느껴지는 통증에 나직한 신음을 토했다.

“이, 이건……?”

앱솔루트 배리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현수는 예외이다. 그렇기에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눈을 크게 뜬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한 현수를 건드려 보지도 못한 채 검을 놓쳤다. 누군가 도왔다 생각하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본다.

주군인 스트마르크 백작이 뭔가 이야기하려 입을 열려는 중이고, 현수는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

실비아는 여전히 문 근처에 쟁반을 든 채 서 있다. 영주 집무실엔 자신을 포함한 넷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인비저블이나 그보다 훨씬 경지가 깊어야 시전할 수 있는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을 쓰는 마법사가 있다는 뜻이다.

하여 두리번거리며 조력자를 찾았다. 예리한 시선이다. 이때 주군의 음성이 귓전을 때린다.

“도널드! 무례를 범치 마라.”

“네? 뭐라고요? 무례라니요?”

도널드는 또 다른 인물이 있나 싶어 주위를 살핀다.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자 떨어진 검을 집어 든다. 그리곤 곧장 현수에게 그것을 겨눈 뒤 한 발짝을 떼려했다.

이 순간 백작이 다시 한 번 소리친다.

“도널드! 마스터께 무례를 범치 말라고 했다.”

“여, 영주님! 마스터라니요?”

“도널드! 어서 무릎을 꿇게. 그랜드 마스터이시네.”

“네에……? 근데 누가요?”

도널드의 대꾸에는 약간의 틈이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라면 자신의 검 따위는 쉽게 저지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구냐는 뜻이다.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로 보이는 하인스 백작이 장본인이라는 것은 아예 상상조차 못한 때문이다.

그러다 스트마르크 백작이 흠모로 가득 찬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연히 대경실색이다.

“그, 그럼……?”

“그래!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이시기도 하다. 다시 말해 세상 모든 마법사의 정점에 계신 분이시다.”

털썩―! 챙그랑!

도널드 역시 오금의 힘이 빠졌는지 무릎이 망가지든 말든 그대로 꿇어버린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 아니, 지었사옵니다. 소, 소인의 무례를 부디 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순간 도널드는 제정신이 아니다. 하늘보다도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에게 죽으라고 검을 휘둘렀다.

단숨에 수급이 베어져도 할 말이 없는 큰 죄이다.

국가로 치면 반역에 해당된다. 그랜드 마스터는 모든 검사에게 있어 지고한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하가 황제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어찌 정신이 있겠는가!

“마스터시여! 소인을 죽, 죽여주시옵소서! 소, 소인 정말 큰 죄를 지었사옵니다. 마스터!”

‘근데 왜 다들 사극투야? 쩝! 남세스럽네.’

이렇게 생각한 현수는 백작에게 시선을 주었다.

“백작! 카문젠의 힘만으론 노예사냥꾼들을 불러들이는 게 난감하거나 힘들 수도 있네. 그러니 자네의 병사와 기사들을 파견하여 돕게.”

카문젠이 나가서 위저드 로드이자 그랜드 마스터인 이실리프 제2대 마탑주께서 노예사냥꾼들을 대령하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미친놈 소리 듣기에 딱 알맞다. 그리고 그걸 믿는다 쳐도 왜 불렀는지를 물었을 때 드래곤의 딸을 납치해 온 정신 나간 놈들을 찾는다 하면 어찌하겠는가!

죄 없는 자야 불안한 마음을 품고라도 오겠지만 장본인들은 자신들만 아는 바위 밑 동굴 같은 곳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잡히는 즉시 무지막한 고문에 이은 사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산채로 씹혀 먹히는 꼴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 백작의 병사들까지 풀어 놈들을 반드시 잡아들이라는 뜻이다.

“무, 물론이옵니다. 즉시 명대로 하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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