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98화 (897/1,307)

# 898

현수가 쏘아낸 위압적인 존재감을 느끼곤 화들짝 놀라 도주한 것이다.

“로하르만! 오거 사체는 내 선물이네. 유용하게 쓰게.”

오거의 가죽과 힘줄, 그리고 뼈와 이빨 등은 비싼 값에 거래된다. 구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처분하여 이번 몬스터 침공 때 목숨을 잃은 자들의 가족을 보살피라는 뜻에서 준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실리이만은 어디에 있나?”

“숙부님은 연구실로 직행하셨습니다.”

“그래? 학구열이 좋군. 좋아!”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하인스와 실비아가 다가왔다. 잠시의 시간이었지만 부쩍 친숙해진 듯싶다.

“산책하면서 즐거웠나?”

“네, 로드!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이제 되돌아갈 것이다. 가까이 오도록!”

말 떨어지기 무섭게 둘은 바싹 다가선다.

“매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셋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 순간 로하르만을 비롯한 영지민 전체가 무릎을 꿇었다. 이제야 비로소 전설을 만났음을 지각한 것이다.

부상자들은 치료를 받았고, 실리이만은 바디 체인지와 더불어 각성하는 은혜를 입었다.

여름이 가기 전 스톨레 마을엔 비석 하나가 세워진다. 그것엔 오늘 있었던 일들이 소상히 기록된다.

이 마을에 전설이 생긴 것이다.

12장 팔려간 다프네

“다녀오셨습니까?”

허공에서 돋아난 현수와 하인스, 그리고 실비아를 본 스트마르크 백작은 곧바로 허리를 숙인다.

“시간이 없어 우선은 스톨레 마을만 둘러보았네. 노예사냥꾼들은?”

“일부만 와 있습니다. 행방이 묘연한 팀이 셋이나 있어서요. 나머지 아홉 팀은 모두 압송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중 다프네를 아는 자가 있던가?”

“…죄송합니다.”

스트마르크 백작은 본인이 죄를 지은 느낌이 드는지 고개를 숙인다.

“일단 보지.”

“네, 이쪽으로…….”

스트마르크 백작은 미판테 왕국 중동부 지역의 변경백이다. 적어도 이곳에선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던 권력자이다.

그런데도 현수에게 절절맨다.

이전 같으면 명색이 변경백인데 상대가 마탑주라 해도 저토록 저자세여야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인스와 실비아의 뇌리엔 그럼 생각 자체가 없다.

몇 마디 말로 수많은 부상자를 말끔히 치료해 내고, 수천 마리 몬스터를 글자 그대로 도륙하는 능력자이다.

피해는 전무하다!

스트마르크 백작이 휘하 기사 전부와 병사들을 이끌고 상대할지라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하인스와 실비아에게 있어 현수는 신(神)과 동급이기 때문이라 이런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부친이자 영주인 스트마르크 백작이 굽실거리는 걸 전혀 이상타 여기지 않고 있다.

백작의 안내를 받아간 곳엔 노예상인 카문젠을 비롯하여 여러 무리의 사내가 있었다.

“모두 예를 갖춰라! 이실리프 마탑주님이시다.”

쿵―!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린다. 국왕보다도 높은 존재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들 중 얼굴을 아는 자는 노예상인 뿐이다.

“카문젠! 고개를 들라.”

“네! 마탑주님.”

“다프네를 납치한 자가 이들 중에 있다고 하던가?”

현수의 음성에 아홉 무리 사내가 부르르 떤다. 이곳으로 끌려올 때 큰일을 당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소환한 장본인이 이실리프 마탑주라는 말에 저항할 의지마저 잃은 때문이다.

세상 모든 마법사를 다스리는 자를 어찌 피한단 말인가!

도주했다 잡히면 죽음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심한 고문이 있을 걸 알면서도 찍소리 않은 것이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들 중엔 없다 하옵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한 카문젠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머리를 박는다. 일의 심각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쿠웅―!

이마가 찢겨지고 선혈이 흘러 눈앞을 가렸지만 카문젠은 이를 닦아내지 않았다. 애처롭게 보일수록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뜻대로 되는 법이 없다.

“힐―!”

샤르르릉!

현수의 말 한 마디에 흐르던 선혈이 멈추고, 찢겨진 상처는 스르르 아문다.

“노예사냥꾼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라.”

“……!”

말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들 고개를 든다. 시선을 마주했지만 모두들 잔뜩 겁에 질린 표정과 눈빛이다.

노예들은 낙인을 찍어도 종속마법이 걸리지 않으면 자유의지가 남아 있기에 도주한다.

노예사냥꾼은 이들을 잡아들이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귀족들은 노예들의 숫자만 셀 뿐 얼굴을 잘 모른다. 자세히 들여다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노예가 도주하면 노예사냥꾼 길드에 의뢰한다.

그렇게 하여 출동을 했는데 죽었거나 완전히 사라진 경우가 있다. 이럴 때면 적당히 만만해 보이는 자를 납치하여 낙인을 찍어 데려온다. 이래야 돈을 받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내라면 두들겨 패는 재미가 있고, 젊고, 예쁜 계집이라면 마음껏 능욕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이런 일에 재미를 붙인 노예사냥꾼들은 오지 산간마을을 돌아다니며 만만한 자들을 납치한다.

그리곤 카문젠과 같은 노예상인에게 헐값에 넘긴다. 그러면 신분 세탁 후 노예로 팔아먹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예사냥꾼과 노예상인은 불법적인 유착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처벌 대상이다. 그렇기에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백작! 이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나?”

“네, 마탑주님. 여기…….”

백작은 품에서 다프네의 사진을 꺼내 현수에게 건넨다.

너무도 정교하여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그대로 들어 있는 듯한 그림이다. 백작은 자신이 소유할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기에 다시 넘긴 것이다.

현수는 받아 든 사진을 노예사냥꾼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렸다.

“여기 있는 이 그림의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어, 없사옵니다.”

“네, 저희는 그런 여인을 본 적이 없사옵니다.”

“처음 보는 여인이옵니다.”

노예사냥꾼들은 제발 자신들의 말을 믿어달라는 표정을 지으며 읍소한다.

“흐음! 정녕 없단 말인가? 카문젠! 너는 이 여인을 사들이지 않았는가?”

현수의 싸늘한 시선을 받은 카문젠은 얼른 고개를 처박으며 소리친다.

“네! 정말입니다. 소인은 그런 미녀를 본 적이 없사옵니다. 믿어주시옵소서. 로드!”

“……!”

말하는 태도나 표정을 보면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듯싶다. 하지만 100%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여 나직이 중얼거렸다.

“올웨이즈 텔 더 트루스!”

화아아아악―!

무색투명한 마나가 카문젠을 비롯한 노예사냥꾼들에게 소리 없이 스며든다.

“너의 중에 이 여인을 보았거나, 이렇게 생긴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자가 정녕 하나도 없단 말이냐?”

“…저어, 제가 그 여인에 대한 이야길 들은 것 같습니다.”

구석에 있던 자의 말이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들은 거 같아? 좋아, 말하라.”

“자, 작년 연말에 해, 해밀턴 패거리들이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떠버리고 다녔습니다요.”

현수는 날카로운 시선을 노예상인에게 돌린다.

“카문젠! 해밀턴으로부터 이 여인을 사들였나?”

분노 섞인 냉엄한 시선을 받은 카문젠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대답한다.

“네에? 아, 아니옵니다. 저, 저는 이런 엄청난 미녀는 본 적도 없습니다요.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로드!”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기까지 한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현수가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니라는데?”

“그게… 카문젠님에게 처분한 게 아니라면 국경 넘어 저쪽으로 갔을 수도 있습니다요.”

“국경을 넘어가? 그럼, 아드리안 공국으로?”

스트마르크 영지와 인접한 국가는 아드리안 공국밖에 없기에 단정적으로 말한 것이다.

“네! 카문젠님보다 그쪽이 값을 더 쳐주니까요.”

“값을 더 쳐줘? 얼마나?”

“솔직히 말하면 여기보다 한 배 반은 됩니다요. 해서 우리도 사냥한 거의 절반은 그쪽에서 처분합니……. 헙!”

노예사냥꾼은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아무튼 얼른 제 손으로 입을 막는다.

이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문젠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이건 밥그릇에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스트마르크 백작의 눈빛 또한 예리해졌다. 변경백의 허락 없이 국경을 넘는 것은 법률을 어기는 행위이다.

게다가 불법으로 사냥한 노예를 다른 나라에 넘긴다는 것은 국가의 노동력 감소를 야기하는 일이다.

당연히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변경백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무례를 무릅쓰고 입을 열었다.

“너희 모두 아드리안 공국과 거래를 했는가?”

“네? 아, 네에. 당연히 그리하지요.”

올웨이즈 텔 더 트루스 마법의 효능이다.

“뭐, 뭐라……? 내 허락 없이 국경을 넘어……?”

백작이 분노를 참기 힘들다는 듯 부르르 떤다. 이때 현수의 음성이 있었다. 아주 차분하다.

“지금 해밀턴 일당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는 자는 특별히 죄를 감면하여 줄 것이다. 누가 말하겠는가?”

말 떨어지기 무섭게 구석에 있던 자가 손을 번쩍 든다.

“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요. 해밀턴 일당은 현재 파미르 산에 있는 아지트에 있을 겁니다요.”

“파미르 산……?”

현수의 시선을 받은 백작이 얼른 입을 연다.

“로드! 제가 기사와 병사들을 파견하여 즉각 체포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좋네! 나머지 처분은 백작에게 맡기지.”

“네! 로드. 감사하옵니다.”

백작은 얼른 고개를 숙인다. 그리곤 곧바로 아들인 하인스에게 지시를 내린다.

“하인스! 단장에게 전해라. 창공기사단 전원을 데리고 파미르 산으로 가서 해밀턴 일당을 체포하여 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명 받드옵니다.”

척―!

절도 있게 군례를 올린 하인스는 빠른 걸음으로 나간다. 백작은 시종장인 도널드에게 시선을 돌린다.

“도널드! 병사들을 불러 이들을 투옥하라. 다만 저자는 예외로 다루도록!”

“네, 영주님!”

솔직하게 불면 봐준다 하였으니 그에 합당한 조치를 내리는 것이기에 사내는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인다.

“실비아! 너는 가서 로드께서 드실 음료를 준비해라.”

“네, 영주님!”

실비아마저 밖으로 나가자 현수가 백작에게 시선을 준다.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권장할 만하지 않네.”

백작은 날 때부터 귀족이었다. 귀족의 장남으로 태어나 귀족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교육을 받았고, 귀족으로 살아왔다.

그렇기에 일반 백성 또는 노예들의 마음을 전혀 모른다.

그들 모두 귀족의 수발을 들어주기 위해 태어난 가축과 같은 존재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대한 로드께서 노예제를 탐탁지 않게 이야기 한다. 영리했기에 금방 뜻을 알아차렸다.

“……! 알겠습니다. 노예시장을 폐쇄토록 하겠습니다.”

“내 뜻을 알아주니 좋군! 앞으론 노예도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음을 잊지 않는 정도면 될 것이네.”

수천 년을 이어온 사회제도를 어찌 한순간에 타파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적절한 완화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각별히 유념토록 하겠습니다. 로드!”

“시간이 좀 비겠군. 네로판 영지를 다시 다녀오겠네. 가장 위급한 곳이 어딘지 아는가?”

“여기… 이곳이라고 합니다.”

백작이 가리킨 곳은 라수스 협곡으로부터 갈라진 작은 협곡 입구 쪽이다.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올 만한 곳이다. 네로판 영지로부터 이곳의 구원을 요청받았기에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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