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00화 (899/1,307)

# 900

13장 그랜드 마스터의 힘

“부상자들 모두 우물 앞에 모아놓았습니다. 영주님!”

“알았다.”

기사로부터 보고를 받은 타일러 자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수에게 시선을 돌린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러게.”

타일러 자작의 모습은 아까와 달라져 있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땀과 피에 절어 있었다. 갑옷과 투구 역시 말라붙은 핏자국이 잔뜩이었다.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하여 타일러 자작에게 워싱과 클린, 그리고 바디 리프레쉬 마법을 걸어주었다. 그 결과 단숨에 깨끗해졌고, 쌓였던 피로는 한번에 날아갔다.

그래서 그런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안내한다.

[아리아니! 엘리디아 불러줘.]

[네, 주인님.]

잠시 후 반투명한 엘리디아가 나타나 고개를 조아린다.

[부르셨나이까? 위대한 존재시여!]

[그래! 엘리디아. 또 불렀어. 도움 줄 수 있지?]

[그럼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곳에 다친 인간들이 많아. 모두 치료해 줄래?]

[알겠사옵니다.]

말을 마친 엘리디아의 긴 동체가 부상자들 사이를 스치며 지난다. 경상자는 잠깐 스치는 정도이지만 중상자의 경우는 잠시 머물기도 한다.

엘리디아가 지나고 나면 감탄사들이 터져 나온다.

“우와! 내 팔이 다 나았어. 이것 봐. 이거!”

“내 다리, 내 다리도 다 나았어.”

“으아, 이제 피가 안 흘러, 나 살았어. 살았다구.”

수많은 병자들 입에서 희열에 찬 감탄사들이 터져 나온다. 타일러 자작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적에 눈을 크게 뜬다.

마탑주는 입술조차 달싹이지 않았다.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수많은 병사가 나았다며 환호성을 지른다.

‘아아! 진짜 위대하신 분이시구나.’

타일러 자작에게 있어 현수는 이제부터 신(神)이다.

“먹을 건 있나?”

“네! 식량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좋아. 이 근처에서 구원을 요청했던 곳이 있나?”

“네. 저희 영지 남쪽에 위치한 루이체 영지가 위급하다는 전갈을 보내왔었습니다.”

“언제지?”

“나흘 전입니다. 그날 저희는…….”

타일러 자작은 구원요청을 받는 즉시 기사와 병사들을 파견하려 했다. 그런데 그날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되어 도울 수 없었다는 말을 한다.

“정확한 위치는?”

“이곳으로부터 정남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아리아니! 실라디아 파견해서 좌표 알아다 줘.]

[네! 주인님.]

[가는 김에 그쪽 사정이 어떤지도 알아오라고 해. 그리고 가장 쉽게 도움 줄 수 있는 좌표를 찾으라 하고.]

[네에. 그럴게요.]

실리디아를 파견한 현수는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다.

무너진 돌 더미들을 들어 올려 깔려 있던 사람들을 구해준 것이다. 물론 마법이 사용되었다.

이때 사용한 마법은 반중력 마법이다.

[주인님! 좌표 확인했어요. 그리고 매우 위태롭대요.]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수행하던 타일러 자작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는 이만 가겠네. 영지를 잘 재건했으면 좋겠군.”

“마탑주님의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타일러 자작은 깊숙한 예를 갖춘다. 신하가 주군에게 바치는 그런 예이다. 그 순간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 * *

케에에엑! 쿠와아악! 끄아아악!

“이런……!”

텔레포트하자마자 눈에 뜨인 건 발밑을 가득 메운 몬스터 들이다.

얼핏 세어도 족히 3만 마리는 될 정도로 우글우글거린다.

현수의 신형은 현재 약 10m 높이 허공에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몬스터 집단의 거의 한가운데쯤이다.

인간들을 보호할 성벽은 반쯤 허물어진 상태이다.

수많은 몬스터가 그곳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놈들을 막는 중이다.

화살이 빗발치는 걸 보면 아직 많은 인원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성벽이 붕괴된 이상 전멸은 시간문제이다.

3만 마리에 달하는 오크 이외에도 많은 종류의 몬스터들 또한 성벽으로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성벽 위로부터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온다.

“적들에게 죽음을!”

“절대 자비를 베풀지 마라!”

“와아아아! 와아아아아!”

“사격하라, 사격!”

함성에 이어 화살비가 또 솟구친다. 살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함성이다. 당연히 돕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아리아니! 아공간에서 제일 쓸 만한 검으로 하나 골라다 줄래?]

[네, 주인님!]

현수가 손을 펼치자 폼멜 그립이 잡힌다. 힐끔 바라보니 푸른 보석이 박혀 있다. 그런데 마나의 향기가 느껴진다.

“이건 뭐지? 마법검인가?”

“역시 아시는군요. 폼멜에 박힌 건 초특급 마나석이에요. 체인 라이트닝 마법이 인챈트된 검이구요.”

“뭐야? 나는 이런 게 필요 없다는 거 몰라?”

현수에게 있어 체인 라이트닝은 하위마법에 불과하다.

마음만 먹으면 그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라이트닝 퍼니쉬먼트도 시전할 수 있으니 당연한 말이다.

“알아요. 근데 그 검 통째로 오리하르콘으로 제작된 거예요. 드워프가 만들었구요.”

“…그렇군.”

가장 강한 금속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었다는데 뭐라 더 말하겠는가! 게다가 드워프의 작품이란다. 이 정도면 웬만한 성 한 개 값보다도 비쌀 물건이다.

“이 녀석에게 이름이 있나?”

“네, 폼멜 아래에 Deio’s Punishment라고 쓰여 있어요.”

“데이오?”

“대지를 관장하는 가이아 여신의 성스러운 짝이신 전쟁의 신이에요.”

처음 듣는 소리인지라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전쟁의 신? 이 아르센 대륙에 그런 신도 있어?”

“네! 계시지요.”

“난, 이런 신이 있다는 소릴 들어본 전 없는데?”

“그럴 거예요. 어느 나라든 전쟁의 신을 모시면 주변 국가의 공격을 받기에 쇠락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들어보니 그럴 만하다. 전쟁광이 이웃에 있는 것을 좋아할 리 없기 때문이다.

“가이아 여신님의 짝이란 말이지?”

말을 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너는 내가 간택한 내 딸의 배우자!

선택받은 인간이여!

누릴 수 있는 모든 복락을 누리며 살지어니 내 딸을 잘 보살펴 내 뜻이 세상에 널리 퍼지도록 하라.

나의 뜻에 따를 때 네 세상에도 나의 힘이 미치리라.

이런 여신의 신탁을 받고 성녀를 아내로 맞이하려 하겠다 맹세했다. 하여 자신과 인연이 있다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꿰에엑! 꾸웨에엑! 캬캬캬! 꿰에엑! 크캬캬!

“이런……!”

몬스터들의 괴성에 정신을 차린 현수는 마법을 풀었다. 그러자 허공에 있던 신형이 밑으로 툭 떨어진다.

“케엑!”

현수의 체중 실린 발에 깔려 목뼈가 부러진 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퀘에엑! 퀘에에에엑!

느닷없이 나타난 먹이를 본 주변 오크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다가선다. 그 순간 현수의 손에 들려 있던 데이오의 징벌이란 이름 붙은 검에서 시퍼런 검강이 솟아난다.

지이잉, 지이이이이잉―!

순식간에 길이 20m짜리 검강이 솟아나는 과정에서 오크들 이십여 마리가 꿰어버렸다.

꾸웨에엑! 케에엑! 크헥! 끄아악!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오크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야아압!”

슈아아앙―!

퍼퍽! 퍽! 퍼퍼퍼퍼퍼퍼퍼퍽! 퍼퍼퍽! 퍼퍼퍼퍼퍽!

“……!”

길이 20m짜리 검강이 한 바퀴 휘감고 난 현장엔 반 토막 난 오크들의 사체만 즐비하다. 모두 허리가 베어져 있다.

놀란 오크들이 도주하려 했지만 이 녀석들 바깥에 있는 놈들 때문에 그럴 수 없다.

휘이이이잉!

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퍼퍽!

퀘에엑! 꾸웨에엑! 케에엑! 크헥! 끄아악! 퀘에에에엑!

또 한 바퀴 검이 휘둘러지자 한꺼번에 200여 마리가 황천길로 향한다. 이때부터 현수의 검무가 시작되었다.

닥치는 대로 휘두르며 성벽 쪽으로 향했다.

멋모르고 달려들던 오크, 트롤, 오거, 드레이크, 미노타우르스, 사이클롭스 등은 검강에 닿는 즉시 깨끗한 절단면만 남기고 목숨을 잃었다.

애초에 당도한 곳으로부터 성벽까지의 거리는 대략 700m 정도 되었다. 그토록 몬스터가 많았던 것이다.

이내 이 거리는 줄어들었다.

쉼 없이 검을 휘두르니 썩은 짚단 쓰러지듯 몬스터들이 쓰러진다. 그렇게 거리를 좁혀 약 300m쯤 남았을 때 누군가 고함을 지른다.

“구원군이다! 구원군이 당도했다!”

“와와! 모두 힘을 내라. 구원군이 당도했다.”

워낙 많은 몬스터가 있기에 현수의 몸은 보이지 않는다. 우수수 쓰러지는 몬스터들만 보일 뿐이다. 그렇기에 한 무리의 병사가 다가오는 것으로 착각한 듯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휘이이이잉!

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퍼퍽!

퀘에엑! 꾸웨에엑! 케에엑! 크헥! 끄아악! 퀘에에에엑!

초록색 선혈이 수없이 튀었지만 현수의 의복은 깨끗하다. 아리아니가 그럴 수 없도록 잘 보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디아! 주인님 무릎 아래에 두 방울 튀었어. 닦아!”

“네, 아리아니님!”

“좌측 옆구리에도 한 방울 묻었다.”

“네, 아리아니님!”

물의 최상급 정령 엘리디아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현수의 신형을 감싸며 더러워진 부분을 깨끗이 한다.

“노에디아! 주인님 앞쪽에 또 몬스터 시체가 있잖아. 어서 치워! 그리고 가시려는 길을 평탄하게 해.”

“네, 아리아니님!”

노에디아는 현수 앞쪽에 놓은 몬스터들의 사체를 재빨리 땅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곤 평지가 되도록 한다.

“실라디아! 짐승 냄새와 피 비린내 난다. 바람 방향 바꿔! 그리고 주인님 땀나시겠다. 시원하게 바람 불어드려.”

“네, 아리아니님!”

말 떨어지기 무섭게 정령들이 움직이니 현수는 비교적 편안하게 학살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성벽으로부터 불과 100m에 이르자 다시 한 번 누군가의 고함이 터져 나온다.

“봐라! 그랜드 마스터가 오셨다.”

“뭐어? 그, 그랜드 마스터?”

“그래! 저기 저 검강을 봐라. 우린 이제 살았다. 모두들 힘내. 조금만 참으면 된다.”

“그래! 죽지 말고 버티자, 그랜드 마스터께서 오셨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격려의 소리가 힘이 되었는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몬스터들에게 공격을 퍼붓는다.

갑자기 드세진 인간의 기세에 눌린 몬스터들은 비칠거리며 물러선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모양이다.

이 순간 현수의 검이 또 한 번 허공을 찢어발겼다.

쒜에에에에에에엑!

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퍼퍽!

케에엑! 크헥! 끄아악! 퀘에에에엑! 퀘에엑! 꾸웨에엑!

동족들의 비명을 듣고 고개를 돌렸던 오크들이 일제히 물러선다. 감당 불가한 존재가 보여주는 무자비한 학살에 기가 질린 것이다.

하긴 반경 20m 이내에 있던 동료들의 허리가 일제히 베어지는 걸 어찌 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겠는가!

퀘에엑! 퀘에에꿰에엑―!

오크 두목쯤 되는 놈이 소리를 지른 모양이다. 오크들이 일제히 물러나 버린다. 그러자 이들에게 휩싸여 있던 오거와 트롤, 그리고 미노타우르스와 사이클롭스가 보인다.

이 순간 현수의 검이 이들을 휩쓴다.

“야아압!”

슈아아아아악!

퍼퍼퍼퍽! 퍼퍼퍼퍼퍽! 퍼퍼퍼퍽!

케엑! 크헥! 끄악! 퀘엑! 퀘엑! 꾸엑!

단숨에 동체를 베이자 비명 소리도 짧은 모양이다. 포식자의 위치에 있던 놈들이지만 너무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잠시 멈춘 현수는 어느새 멀찌감치 떨어진 나머지 몬스터들을 노려보았다. 녀석들 역시 현수를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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