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6
그렇기에 사람들이 오를 수 없는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두 개의 첨탑 중간엔 망루처럼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곳 바닥엔 마나 집적진이 설치되어 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으므로 아무리 살펴도 그것의 존재를 알 수 없다.
3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면 누구나 마나의 유동을 감지하고 이상하다 여길 것이다.
하지만 지구엔 마법사라곤 김현수 하나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정밀한 계측 기구를 가져온다 해도 마법진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마나가 뭔지 모르니 그에 관련된 계측 기구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것이 있기에 주변은 물론이고 한반도 전체에서 마나가 몰려들고 있다.
그렇게 하여 비게 된 자리엔 지구 전체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가 몰려든다. 따뜻한 공기가 상승하면서 기압이 낮아진 자리로 고기압 지역의 공기가 몰려드는 이치와 같다.
다소 이기적인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나는 어느 누구도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아무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니 끌어다 쓰려는 것이다.
그 결과 저택을 중심으로 한 부지 전체의 마나 농도가 상당히 진해졌다. 물론 저택이 가장 진하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콩고민주공화국 정글보다도 훨씬 진한 마나 농도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우선 인체의 자연치유력이 상당히 높아진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엔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이 세상 어떤 요양 시설보다도 빠른 치유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저택과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각종 질병에 대한 백신을 투여 받은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각종 질병에 걸릴 일이 없게 되었다.
이미 병에 걸려 있는 사람은 치유 속도가 현저히 빨라질 것이다. 이제 병원 신세를 질 일이 없어진 것이다.
식물의 경우는 생장 속도가 빨라지는 효과와 더불어 함유하게 되는 각종 성분 농도가 진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저택 인근 숲 속에 천종산삼의 씨앗을 뿌려 장뇌삼을 재배한다고 치자.
그렇게 하고 10년이 지나면 100년 된 천종산삼과 비슷한 효능을 가진 것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간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헛개나무 열매도 이전에 비해 효능이 열 배 이상 늘어날 것이다.
축사가 있어 돼지나 소, 또는 닭을 기를 경우 각종 전염병에 대한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
돼지는 돼지콜레라, 돼지이질 같은 각종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소 역시 우역(牛疫)과 구제역(口蹄疫) 같은 전염병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닭은 뉴캐슬병과 가금 티푸스병 및 조류독감 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된다.
뿐만이 아니다. 소, 돼지, 닭의 분뇨에서 냄새가 풍기지 않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배설물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는 장내 세균이 음식물을 소화시키면서 만들어 내는 스카톨1)과 인돌2) 때문이다.
이 밖에 소화 과정 중에 발생되는 소량의 황화수소3)와 메탄가스, 암모니아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나 농도가 짙어지면 장내 세균의 효율이 대폭 개선된다. 그 결과 거의 완전한 소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런 냄새나는 것들의 발생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택 인근에서는 방귀 냄새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이 밖에 마나가 몰려들어 좋은 점은 저택의 안전을 위해 곳곳에 설치해 둔 각종 마법진이 확실한 효력을 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제 막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가 보다 쉽게 마나를 모을 수 있도록 해준다.
어쨌거나 현수는 첨탑 꼭대기에 도착 즉시 아공간부터 열었다.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신경 쓰여서이다.
수많은 몬스터를 제거하는 동안 그들이 뿜어낸 악취가 밴 듯싶어 찜찜했던 것이다.
“엘리디아, 나 좀 씻겨줄래? 옷도 세탁해 주고.”
“네, 마스터. 잠시만 가만히 계세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물의 최상급 정령 엘리디아의 반투명한 동체가 현수의 몸 전체를 두어 번 훑고 지난다.
서늘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잠시일 뿐이다.
그 결과 의복은 새것처럼 말끔히 세탁되었고, 신체는 방금 사우나에서 때를 밀고 나온 것처럼 산뜻해졌다.
그러고 보니 지구와 어울리지 않는 의복이다. 하여 얼른 갈아입었다. 복장을 확인하곤 플라이 마법으로 2층 서재의 베란다로 내려섰다. 예상대로 잠겨 있으나 뭐가 문제인가!
“언락!”
치르륵―!
열린 문으로 들어가 지구에서 할 일을 체크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려는데 문이 열리며 지현의 얼굴이 보인다.
“아! 여기 계셨네요?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예요, 아님 어디 숨어 있었어요? 연희랑 한참 찾았잖아요. 우린 여기 있는 것도 모르고……. 쳇!”
현수를 발견한 지현은 문을 활짝 연다.
“나 찾은 거였어?”
“그래요. 한참 찾았잖아요.”
워낙 넓어서 이리저리 이동했는데 그때 보지 못하면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별다른 추궁은 없었다.
“저녁 식사 준비됐대요. 내려가요.”
“그래? 알았어. 금방 내려갈게.”
말을 하며 시계를 보니 6시 반쯤 되었다.
이곳에서 아르센 대륙으로 차원 이동할 때의 시간과 비슷하여 오전인가 싶었는데 오후라는 뜻이다.
노트북을 덮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정일환 집사가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편안히 쉬셨습니까? 오늘은 한 번도 안 내려오셨네요.”
“아, 네.”
“식사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리하시지요.”
“네, 그러죠.”
집사의 정중한 안내를 받아 식탁 의자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연희가 쫑알거린다.
“자기, 하루 종일 어디 숨어 있었어요? 아침, 점심 다 굶고……. 찾느라 애먹었어요.”
“그랬어?”
연희를 바라보는 현수는 빙그레 웃음만 짓고 있다.
“배도 안 고파요? 아무튼 앉으세요.”
“별로. 간헐적 단식이 몸에 좋다잖아.”
“그래도 굶지 마세요.”
연희가 무어라 말을 이으려는데 주방 담당 아주머니가 음식을 내온다.
“사장님, 이건 첫째 사모님께서 만드신 거고, 이건 둘째 사모님께서 요리하신 겁니다.”
“아! 그래요?”
아주머니가 말을 하며 뚜껑을 여는데 첫 번째 것은 깐풍기이다. 매콤한 맛이 일품인 국물 없는 닭 요리이다.
두 번째 것은 터키의 전통 요리인 케밥이다.
이 밖에 각종 샐러드 등이 풍성하게 차려졌다.
“으음! 맛있겠는데?”
“호호! 그래 보여요? 참, 와인 한잔하실래요?”
“와인? 그거 좋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토리 오브 와인이라는 영화의 세 번째 주인공이었던 ‘중매쟁이 와인’ 일바치알레를 대령한다.
이건 달콤한 레드와인이다. 현수가 웬 거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연희는 배시시 웃는다.
“영화에 나와서 한번 사봤어요. 맛있을 거예요.”
“그래? 그럼 맛 좀 볼까?”
정일환 집사가 잔에 따라준 것의 향부터 맡아봤다. 달착지근할 것이라는 느낌이 확연하다.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는 한 모금 맛을 보았다. 과연 그렇다.
“이거 드세요.”
지현이 손으로 민 접시엔 하트 모양으로 잘린 치즈와 딸기가 있다. 와인과 어울리는 안주답다.
“자, 이제 식사해요.”
“그래, 맛있겠다.”
셋은 하하, 호호 하며 즐거운 저녁 식사를 즐겼다. 서로 음식을 덜어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정겨운 식사였다.
그러는 내내 정 집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중한 태도로 시중을 들어주었다. 이에 현수는 뭐라 하려다가 말았다.
아르센 대륙으로 가면 이실리프 왕국의 국왕이면서,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이며, 이실리프 자치령을 다스리는 지엄한 영주로서 생활해야 한다.
카이로시아과 로잘린, 그리고 케이트는 공작의 딸인 공녀 신분이 되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모두 왕비가 된다.
스테이시는 모든 신관의 우러름을 받는 성녀이다.
따라서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걸 이곳에서 연습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곤 2층으로 올라갔다. 신혼인지라 2층과 3층은 도우미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함이다.
하여 현수와 신부들이 부르지 않는 한 올라오지 못하게 되어 있다.
현수는 두 아내와 더불어 따끈한 차 한 잔을 즐겼다. 그리곤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앱솔루트 배리어! 타임 딜레이!”
현수의 서재는 상당히 층고가 높다. 사방은 서가로 채워져 있고 많은 책이 꽂혀 있다.
서재의 중앙엔 커다란 탁자가 있고, 그 위엔 석 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다. 최고의 사양을 갖춘 것이다.
현수는 자리에 앉아 아공간에 담긴 하드 디스크들을 꺼냈다. 지나 국안부 제3국에서 가져온 것과 일본 내각조사처 도쿄3지부에서 복사해 온 것, 그리고 록히드 마틴 비밀연구소에서 복사해 온 것들이다.
엄청나게 많은 양이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에게 자료를 넘기기 전에 한 번은 살펴봐야 할 것들이다. 하여 진득하니 자리 잡고 앉아 내용을 살폈다.
록히드 마틴의 자료들은 예상대로 항공기와 전투기, 그리고 우주왕복선 등에 관한 것이 많았다.
특히 F22 랩터, F35 라이트닝Ⅱ, F16 파이팅 팰콘, F15 스트라이크 이글은 물론이고 C―130 허큘리스 수송기는 설계도면 전부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랩터는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이고, 라이트닝Ⅱ는 대한민국 공군이 차세대 전투기로 도입하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록히드 마틴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SR―71 블랙버드의 후계기인 SR―72의 개발도면 역시 있다.
이것은 마하6로 장거리 정찰을 할 수 있는 초음속 무인정찰기이다.
현수는 모르고 턴 것이지만 록히드 마틴 비밀연구소는 전략 무기들을 총괄하는 브레인과 같은 곳이다.
그렇기에 이런 엄청난 자료들이 고스란히 있는 것이다.
이 밖에 MX 미사일4) 및 패트리엇 미사일(PAC―3)과 퍼싱 미사일5), 트라이던트 미사일6)에 관한 자료도 있다.
물론 완전한 설계도면이다.
인공위성, 우주선 발사 장치, 정보 및 기술 용역에 관한 자료와 전자제품에 관한 것도 많이 있다.
이것들의 내용을 훑어보면서 정리하는 데만 꼬박 열 시간이 걸렸다. 내, 외부 시간 비가 180:1인 곳에 있었으니 1,800시간, 즉 75일이나 걸린 일이다.
인류 최고의 IQ를 가졌으며, 가장 활성화된 두뇌 활용도까지 겸비했음에도 꼬박 두 달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은 내용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고, 외부로 발표되지 않은 첨단 기술이 적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바디 체인지 이후 극강의 체력을 갖게 되었고, 육체적 피로를 훨씬 덜 느끼는 몸이 되었다.
게다가 끼고 있는 전능의 팔찌에는 브레인 리프레쉬 마법진이 그려져 있어 늘 최적의 상태가 유지되도록 한다.
그럼에도 눈이 침침하고 사지가 찌뿌듯함을 느낄 정도다.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일로 인해 현수의 각종 무기에 대한 이해도는 상당히 업그레이드되었다.
“휴우∼! 이제야 정리가 되었군.”
마지막으로 열어본 폴더를 닫고는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으, 크으으!”
작업에 몰두하느라 긴장되어 있던 근육이 이완되는지 시원한 느낌이 든다.
“흐으음, 이제 남은 건 내각조사처 자료와 국안부 자료인데, 이건 언제 하지?”
이것들 하나하나는 록히드 마틴의 것보다 더 방대하다. 전략 무기에만 국한된 자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자료를 읽을 사람들이 일본어와 지나어를 모를 수도 있다. 따라서 작업하면서 영문, 또는 한글로 번역까지 해놓아야 한다.
분명 만만치 않은 일이다.
“휴우∼! 하나당 최소 열두 시간 이상은 걸리겠군.”
타임 딜레이 마법이 구현된 장소에서 열두 시간이면 실제 시간으론 90일이다. 석 달 동안 꼼작 않고 모니터에 시선을 주고 있어야 하는 일이 두 건이나 대기하고 있다.
“에구, 내 팔자야.”
현수는 나직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나날이 강해지는 주변 국가들에 대항하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국내 정치가 워낙 한심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