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7
이과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를 선택한다. 이공계를 전공할 경우 취업 후 좋은 대우를 못 받고 연구 환경도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인재들이 국내로 오지 못하고 외국을 떠돌고 있는 이유 또한 정치가 삼류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마련되어야 할 정책은 한 치 앞을 못 보는 멍청한 계획이거나 미봉책일 뿐이다.
사고가 나면 그걸 해결하려 애를 쓰는 게 아니라 감추려고 더 많은 돈을 들이니 어찌 제대로 되겠는가!
인명을 구하는 것보다 의전이 먼저인 놈들이 현재의 공무원이고 정치인들이다.
수뇌부가 이토록 무능하니 수년 내에 지나, 혹은 일본에 먹힐 수도 있고, 영원한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공무원 중 일부는 모리배에 불과하다.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자들이 국가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말 바꾸기는 일상사이다.
뒷구멍으로 뇌물을 받아 챙기면서 얼굴 한번 붉히지 않는 철면피이기도 하다.
정의롭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제 이익을 위해 왜곡하거나 은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현수는 이들의 못된 짓거리에 대한 보도를 보면 모조리 지옥도나 연옥도, 또는 징벌도에 데려다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너무 바빠 그러지 못하는 중이다.
앞으로 2년 후인 2016년엔 20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모조리 솎아낼 생각이다.
네티즌이 그들의 과오에 대해 치열하게 검열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오전 5시 20분쯤 되었다. 현수는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작업하는 동안 아리아니는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는 대신 주인님을 위해 정령들을 활용하였다.
엘리디아는 몸을 닦으면서 새롭게 발생되는 피부 각질을 제거했다. 실라디아는 늘 쾌적한 온도와 신선한 공기가 유지되도록 능력을 발휘했다.
이그드리아는 저택 상공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처했고, 노에디아는 저택이 위치한 부지 지하를 돌아다니며 상황을 파악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현수는 지현의 침실을 열어보았다.
그녀에겐 어제저녁 식사 이후 10시간쯤 남편을 보지 못한 것이지만 현수는 두 달 하고도 보름 동안이나 사랑하는 아내를 안지 못했다.
“하음! 자기 왔어요?”
잠결에도 이불 속을 파고드는 현수를 느끼는지 팔을 벌려 목을 휘감으며 안겨온다.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래. 내가 자는 거 깨운 거야?”
“네, 그러니 책임져요.”
지현은 입술을 뾰족이 모으고는 마치 참새처럼 뽀뽀한다.
“알았어. 책임질게.”
잠시 후 뜨거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현은 열락에 겨운 몸짓을 하며 열렬히 환영하였고, 현수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진군했다.
폭풍이 스치고 지나간 뒤 지현은 너무나 힘들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며 칭얼거렸다.
“그럼 조금 더 자.”
“치이! 그럼 지각한단 말이에요. 여기서 서초동까지 얼마나 먼지 뻔히 알면서 그래요?”
“에구, 알았어. 그럼 얼른 씻어. 아침은 먹고 가야 하니까.”
“네.”
자리에서 발딱 일어난 지현은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뭉그적거리다간 진짜 지각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 * *
“어서 와라.”
“그래, 이제 업무 파악은 다 되었냐?”
“아니. 내가 너무 많이 놀았나 보다.”
주영은 대략난감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은정과 주영은 융프라우 별장을 거쳐 킨샤사의 저택과 모스크바의 저택에 머물면서 18일 동안 신혼여행을 즐겼다.
귀국 후엔 처가 친척들을 만나 인사하느라 며칠을 더 쉬었다.
그리곤 곧바로 출근했는데 문제가 있다.
그사이에 상당히 많은 일이 벌어졌는데 그걸 파악하려면 하루 종일 허덕여야 한다는 것이다.
몽골, 러시아와 체결한 조차로 어마어마한 넓이의 자치령이 또 생겼다. 그곳들을 개발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사람을 뽑아야 하고, 각종 중장비도 매입해야 한다.
이실리프 상사 덕에 대한민국의 중장비들은 감가상각이라는 것을 모른다. 수요는 많고 공급이 적어지자 중고가가 대폭 상승한 때문이다.
북한과는 안주에 대규모 기계공업단지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곳에 보낼 각종 건축 재료 또한 준비하여야 한다.
이실리프 뱅크에선 본격적으로 직원을 모집하였다. 천지기획에서 스카우트한 김지윤 행장대리 전무가 전권을 쥐고 일을 진행하곤 있지만 가끔은 들여다봐야 한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실리프 브레인이 설립되면서 이준섭 인사부장이 전무이사로 발령이 난 상태이다.
사람 구하는 일을 전적으로 맡아준다니 고맙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주 만나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이쪽이 원하는 바를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천지건설 자재과 곽인만 대리가 스카우트되어 이실리프 상사 자재부장에 임명되어 있어 인사를 나눴다.
한때 현수의 사수였기에 직급으론 아랫사람이지만 정중히 대해야 할 것이다.
사장실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서류를 보니 현수가 에티오피아에서도 조차지를 얻게 될 모양이다. 이것에 대한 대비도 하고 있어야 한다.
자산관리실 최 차장은 지하에 있는 룸살롱 락희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후 테러를 당했다.
지금은 멀쩡하지만 한때 중환자실까지 갔다고 한다.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본인이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괜스레 섬뜩한 기분이 들어 외출을 자제했다.
계열사가 될 이실리프 정보가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고 하니 그쪽 사장과도 인사를 나눠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할 일이 그야말로 태산처럼 산적해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건의 개발 사업만으로도 벅차기에 일이 널리고 널린 기분이다.
하지만 책임감 강한 주영은 비서가 사온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서류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결과 다크서클이 축 늘어져 있다.
“신혼 재미는?”
“그거야… 너랑 똑같다. 좋지?”
“그래, 당연히 좋지. 이런 줄 알았으면 한 10년쯤 전에 할 걸 그랬다.”
“겨우 스무 살에? 야, 그때는…….”
주영이 말을 이으려 할 때 현수가 제지했다.
“야야, 그건 그냥 하는 말이지. 그만큼 좋다는 뜻이잖아. 아무튼 너도 만족한다니 다행이다.”
“그, 그래.”
주영의 고개가 크게 위아래로 끄덕여진다.
“주영아, 너 일 많은 거 안다. 그러니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사람을 더 뽑아서 해. 적절히 전권을 주는 것도 괜찮을 거야. 알았지?”
“…알았다. 그렇게 할게.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할게.”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마. 그리고 아직 신혼이니까 잘 지내고.”
“오냐. 신경 써줘서 고맙다. 그렇게 할게.”
주영은 따뜻한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이 친구 덕에 나락에서 천국으로 올라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사 같은 아내도 얻었다.
그야말로 성심을 다해 봉사하라고 해도 할 판이다.
그런데 너무나 대우가 좋다. 친구지만 충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솟는다.
“참! 몽골과 러시아에 이실리프 자치구 개발 건 있잖아.”
“그래. 근데 일을 너무 많이 벌리는 거 아니냐? 에티오피아도 있고 우간다와 케냐에도 만든다며.”
“나도 더 이상은 안 하고 싶어. 그런데 어쩌냐. 자꾸 생기는 걸. 아무튼 너랑 나는 일복 하나는 타고난 듯싶다.”
“그래. 근데 거기서 뭘……?”
“러시아 쪽은 일을 맡길 사람이 있는데 몽골은 좀 그렇다. 괜찮은 사람 좀 찾아서 추천해라.”
“어휴! 또 사람 찾아내는 일이야?”
주영은 질린다는 표정이다.
성실하고, 신뢰감 가며, 능력도 있고, 성품도 괜찮은 사람을 찾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종교이든 광신자는 절대 사절이다.
몽골에서 얻은 땅은 대한민국 전체 영토보다도 크다. 이걸 개발하여 하나의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급 인재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국무총리는 물론이고 각부 장관급 인사들 또한 필요하며, 이들의 지휘를 받아 일사불란하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능력자들도 있어야 한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지끈거리는지 주영이 머리를 짚는다.
둘의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세부 사항보다는 굵직굵직하게 방향을 잡는 정도였음에도 몇 시간이 걸렸다.
이유는 주영이 사업 전반에 대해 이해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영은 현수가 자리를 비울 때 그 역할을 대신할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을 만한 친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영은 숫자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수학을 전공한 것이다. 물론 본인이 생각하던 그런 숫자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만 잔뜩 배웠다.
아무튼 주영은 숫자에 관해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다.
12자리 숫자라도 한 번만 집중해서 들으면 잊지 않는다. 1년 전에 우연히 들은 전화번호도 기억한다.
주영이 골치 아파하는데 현수는 에티오피아와 우간다, 그리고 케냐에 조성될 자치구에 대한 준비를 주지시킨다.
그러던 중 전에 없던 이야기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킨샤사 저택 인근에 대규모 종합병원인 이실리프 의료원 건설에 관한 이야기이다.
민주영은 또 이맛살을 좁힌다.
규모가 어마어마한 만큼 각종 설비와 시설, 그리고 의료기구 또한 상당히 많이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진 수급까지 고려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수도권 종합병원의 병상 수 서열은 다음과 같다.
4장 아르센의 공주
현수가 지으려는 것은 부지 100만㎡에 병상 수 10,000개짜리 초대형 종합의료원이다.
부지는 표에 있는 모든 병원을 합친 것보다 넓고, 필요한 의료진 및 직원 수는 비슷할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의료센터를 아프리카 최빈국에 지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거대한 종합병원 하나를 짓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먼저 부지 매입과 도로 개설이 선행되어야 한다.
설계는 한창호 건축사사무소에, 공사는 천지건설에 의뢰하면 된다. 완공되기 전에 갖춰야 할 의료기구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간호조무사 등 의료진을 구하는 것부터가 문제이다.
많은 급여를 준다고 해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최빈국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간호사들 대부분이 여성이다. 기혼도 많겠지만 미혼도 많다. 그런데 산도 물도 낯설고 덥기만 한 타국까지 가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장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의료진은 국내에만 국한하지 않고 외국인들도 적극 채용키로 했다.
이실리프 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입원할 환자들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할 것이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지나어, 일본어, 스와힐리어 등이다.
이들을 채용하려면 숙소가 있어야 한다. 하여 의료원 인근에 작은 신도시를 설립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아파트는 물론이고 빌라와 단독주택 단지를 설립하고 각종 근린생활 시설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이 밖에 환자와 그 가족들이 머물 호텔 등 숙박 시설과 각종 위락 시설 또한 들어가야 한다.
서울시 마포구는 동서 9.8㎞, 남북 2.9㎞ 정도 된다.
실면적은 23.88㎢로 서울시 전체의 3.9%이다. 이곳엔 약 17만 세대, 4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훗날 이실리프 의료단지라 불리게 될 곳은 이곳보다 약간 작은 20㎢로 조성된다. 약 600만 평이다.
현재는 아무것도 없는 미개발지이며, 진입 도로조차 없으므로 땅값이 매우 저렴하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평당 1,000원도 안 할 것이다.
이걸 평당 1,000원이라 계산하면 부지 매입 비용으로 대략 60억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