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0
“그래도 약간은 부족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라인 증설은 고려치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엔 부침(浮沈)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가던 것이 어느 날부터 서서히 떨어지거나 아예 폭삭 주저앉는 경우이다.
전자제품인 경우는 거의 100% 그러하다. 삐삐라 불리던 호출기가 그랬다. 워크맨이나 MP3도 마찬가지다.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는 필름과 동시에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도 이 규칙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민 사장은 쉐리엔의 인기 또한 언젠가는 수그러들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설비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잘못된 것이다.
인류와 비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쉐리엔의 수요는 결코 줄지 않는다. 오히려 늘어난다. 누구나 다 날씬하니 적당한 체형의 사람들도 찾기 때문이다.
대신 동네마다 있던 헬스클럽들이 문을 닫는다. 건강기구 업체들은 도산하고, 각종 다이어트 제품 또한 사라진다.
쉐리엔이 최강자 자리를 차지하면서 나머지 전부를 휩쓸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쉐리엔은 수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하여 일부 국가에서는 웃돈 받고 거래된다.
“드모비치 상사로 가는 건 어때요?”
“전에 말씀하신 게 있어서 내수보다도 그쪽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주문량이 늘어서 골치 아픕니다.”
“후후후!”
행복한 고민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그래서 현수는 나직한 웃음만 지었다.
실제로 드모비치 상사는 단 한 번도 결제일을 어기거나 클레임을 걸지 않았다. 현수와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상품 자체가 워낙 뛰어난 효능을 가진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한의약품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대한동물의약품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 이실리프 애니멀 매디슨이요?”
“헐! 회사명 바꾸신 겁니까?”
“그래야지요. 회장님 지분이 절반이 넘으니까요.”
“엥?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 지분은 49%잖아요.”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는가 싶어 기억 더듬어봤지만 지난해 6월 20일에 매입한 지분은 분명 49%이다.
경영권을 위협하지 않기 위함이다.
“제가 돈이 좀 필요해서 매각을 했습니다.”
“그거 놔두면 가치가 많이 올라갈 텐데…….”
민윤서 사장은 이실리프 그룹사 대표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보유주식 중 21%를 매각했다. 매입자는 민주영이지만 실 소유자는 현수이다.
현수가 없었다면 대한동물의약품은 벌써 망했을 회사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소유권 및 경영권을 갖는 게 옳지 않다 판단하여 처분한 것이다.
“그렇겠죠. 하지만 나머지 30%만으로도 제겐 충분합니다. 자족함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민 사장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자신의 뜻을 알아달라는 뜻이다.
“괜한 일 하셨습니다. 도로 무르시지요.”
“아닙니다. 많이 생각해 보고 내린 결정입니다. 저는 정말 30%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콩고민주공화국, 러시아, 몽골,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등지에 조성되고 있거나 조성될 이실리프 자치령엔 많은 가축들이 사육될 것이다.
자치령은 물론이고 남한과 북한을 비롯한 6개국의 내수를 충당할 정도는 될 것이다. 따라서 상당히 많은 가축약품이 필요하다.
그걸 생산해 내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이득이 발생될 회사의 주식을 팔았지만 아깝다는 표정이 아니다.
“민 사장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뜻이 확고하다고 느낀 때문이다.
“참! 김지우 연구실장님 좀 불러주십시오.”
“그럴까요? 잠시만요.”
“저도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말을 마친 현수는 주차장으로 가서 아공간에 담겨 있는 쏘러리스의 간과 쉐리엔의 열매를 꺼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네, 실장님. 안녕하셨죠?”
“하하! 그럼요. 회장님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김지우 박사의 안색은 환했다.
예전엔 연구실 자체가 폐쇄될 위기였다. 급여가 밀려서 지급되는 동안엔 언제 조만간 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비싼 최신 연구설비들로 가득한 연구실에서 원하던 연구를 원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급여도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상향되어 지급되고 있다.
얼마 전 회사는 향남제약단지 전체를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이젠 이실리프 제약단지라 부른다.
뿐만이 아니다. 주변 토지를 상당히 많이 사들였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직원 복지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김지우 박사의 자택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있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할 경우 왕복 네 시간이 소요된다.
민 사장은 연구시간도 부족한데 길바닥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 아니냐면서 이사를 권유했다. 반드시 서울에 거주지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슨 소린가 싶어 물어보니 새로 매입한 토지에 사원들을 위한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김지우 박사의 외아들은 현재 유학 중인지라 부부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그걸 감안하여 65평짜리 아파트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한다.
사원 아파트는 재직기간 동안 무료로 사용 가능하며 전기와 수도, 그리고 가스 사용료까지 회사에서 부담해 준다.
연구직의 경우 정년퇴직 연령이 75세로 상향되었다. 따라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 수 있다.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고문으로 위촉되면 계속해서 살 수 있다. 이 정도면 거의 평생 동안 주거지를 보장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 사장은 이미 건축설계가 의뢰된 상태이며 허가가 떨어지는 즉시 착공할 것이니 기대하라면서 환히 웃었다.
그때의 김 박사는 상상도 못하던 혜택이기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있는 향남읍엔 65평짜리 아파트는 있지도 않다. 가장 넓은 게 55평짜리인데 전용면적은 44.5평이다.
민 사장의 말에 의하면 제공해 줄 아파트는 효율적인 설계가 되어 전용면적이 무려 60평 정도라 한다.
큰 방이 네 개나 있으며 부모님을 위한 거실이 별도로 있는 아파트이다. 김 박사 가족을 겨냥한 설계라며 웃었다.
아무튼 회사가 순항을 거듭하면서 급여는 빵빵해졌고, 사원 복지는 대폭 상향되었다.
당연히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졌다. 하여 김 박사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마루타 삼는 실험을 한 바 있다.
현수가 연구용으로 제공한 마나 포션과 회복 포션을 마셔본 것이다. 그리고 그 놀라운 효능에 푹 빠져 있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숱이 상당히 많이 줄었는데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희끗희끗하던 새치도 뿌리 쪽은 검은색이다.
늙은 나이는 아니지만 회춘하는 기분이다.
게다가 잘 낫지 않던 발톱 무좀도 사라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지발톱이 노랗게 변하더니 두꺼워졌다.
발톱이 쉽게 부서지고 광택이 없어지더니 형체 자체가 변해 버렸다. 피부과를 찾았지만 호전되다 재발하곤 했다.
그전에는 언제 회사가 망가질지 모른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피부과를 지속적으로 방문할 수 없었다.
최근엔 연구할 게 많아져 가지 못한 게 원인이다.
그런데 발톱무좀이 사라졌다. 별다른 치료도 하지 않았건만 멀쩡하던 예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어쨌거나 발톱무좀은 완치된 듯싶다.
뿐만이 아니다. 김 박사는 고혈압과 당뇨증상이 있었다. 둘 다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건만 혈당치가 정상범위 내에 머문다. 혈압 역시 정상범주 내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잦은 음주와 흡연으로 간 기능이 많이 저하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이것도 말끔히 고쳐졌다.
일련의 상황을 접한 김 박사는 정밀 건강진단을 받았다. 본인의 몸에서 일어난 각종 현상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어쨌거나 건강검진 결과 100% 건강한 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거의 20대 중반의 몸 상태라는 평가였다.
박사는 마나 포션과 회복 포션의 효능이라는 걸 직감했지만 민 사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알면 신약으로 내놓자는 말이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회복포션은 현수의 도움을 얻으면 제조가 가능하다.
그걸 희석한 게 미라힐Ⅰ과 Ⅱ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된 증기는 청향이라는 상품명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하여 마나포션의 성분 분석에 들어갔다. 그런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성분이 많았다.
회복포션은 두 가지 성분만 합성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마나포션의 경우는 무려 아홉 가지가 합성할 수 없는 성분인 듯하다. 이건 현수에게 물어야 할 일이기에 지금껏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심리적 압박을 주던 모든 것이 말끔히 사라졌으니 당연히 안색이 좋을 수밖에 없다.
“잘 지내신다니 다행입니다. 오늘은 박사님께 새로운 연구 과제를 부탁드려 볼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하, 또 뭔가 새로운 게 있는 겁니까?”
현수를 바라보는 김 박사의 눈에는 경의의 빛이 담겨 있다. 대체 어디서 이토록 신기한 것들을 가져오는지 너무도 궁금한 때문이다.
“네, 이겁니다.”
“이건… 간이군요.”
“맞습니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알려지지 않은 동물의 간입니다. 그런데 탁월한 해독작용을 한다는군요.”
“탁월한 해독작용이요?”
해독작용이란 체내에서 생성된 독물이나 체외로부터의 약물, 이물(異物)이 산화ㆍ환원ㆍ가수분해 등의 화학반응이나 복합작용에 의해서 무독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간에서 이루어지는데 사람의 경우는 간세포의 소포체에 존재하는 시토크롬 P450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간은 이 밖에도 탄수화물ㆍ단백질ㆍ지방의 대사, 소화 작용, 비타민 및 호르몬의 대사, 살균 작용 등 참으로 다양한 기능을 한다.
지구엔 ‘검은 과부거미’라는 놈이 있다. 거미 중 가장 강한 독을 가졌다. 방울뱀의 열다섯 배에 달하는 독성이다.
중동 지역에만 서식하는 ‘데스 스토커’는 전갈 중 가장 강한 독을 가졌다. 물리면 두 시간 내에 사망한다.
‘상자 해파리’는 바다 생물 중 가장 강한 독을 가졌다.
‘블랙맘바’는 킹코브라에 버금가는 독을 가졌는데 가만히 있는 사람까지 공격할 정도로 포악한 놈이다.
남미에서만 서식하는 ‘독화살 개구리’는 한 마리가 보유한 독으로 성인 남성 200명을 즉사시킬 수 있다.
‘자이언트 센티패드’라는 지네에게 물리면 라이터불로 지지는 듯한 발열증상이 나타나며 금방 상처 부위가 썩기 시작한다.
이 밖에도 해파리, 복어, 살모사, 코브라, 수수 두꺼비, 독거미 등의 독이 체내로 들어갈 경우 목숨을 잃는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빨리 해독제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각각은 해독제가 다르다.
그리고 이것들을 다 갖춘 병원은 없다.
현수는 테세린을 떠나 율리안 영지까지 가는 동안 샌드 웜에 물려 중독된 줄리앙에게 해독포션을 먹인 바 있다.
그때 지구에도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독포션은 모든 독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노타우르스의 조상쯤 되는 쏘러리스가 좋아하는 열매는 아주 지독한 독을 가지고 있다.
트롤이나 오거처럼 덩치 큰 몬스터라 할지라도 자두만 한 것 하나만 먹어도 목숨을 잃을 정도로 강렬한 독이다.
이것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독성 물질로 평가되는 보툴리늄톡신(C6760H10447N1743O2010S32)이라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맹독이다.
말 나온 김에 지구에서 가장 강한 독의 서열을 따져보면 보툴리늄톡신이 부동의 1위이다.
1g만 있으면 성인 10,000,000명을 죽일 수 있다.
2위는 해양 생물에서 나는 독 중 가장 위험한 마이토톡신이다. 이것 1g으로 98,000여 명이 사망한다.
5위는 강력한 발암물질로 알려진 다이옥신이다. 1g만 있으면 27,000여 명이 세상과 영원한 아듀를 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