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13화 (912/1,307)

# 913

“이것으로 보고를 마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애쓰셨네요.”

최 부장은 당치 않다는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흔든다.

“아닙니다.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준비한 거고, 외국의 대형 건설사들과 경합을 벌일 때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은 무엇입니까?

“으음! 유리한 점은 짧은 공기와 비교적 저렴한 공사비입니다. 불리한 건 국제적인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한국은 아파트 천국이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널린 게 고층아파트이다.

그리고 천지건설은 풍부한 건설 경험이 있다. 따라서 공사비를 절감하는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건설사들이 짧은 기간에 공사를 마치는 건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사실이다. 공기가 줄어들면 그에 비례하여 인건비도 줄어드니 낮은 가격 입찰도 이해가 된다.

“흐음! 그래요? 지명도 이외엔 문제가 없을까요?”

“워낙 큰 공사이니 경제협력 같은 것을 들고 나오면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정부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 거라서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렇죠.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수고는요. 다음은 아와사―아디스아바바 간 고속도로 신설 공사에 대한 보고입니다. 윤 차장!”

“네, 부장님!”

고개를 끄덕인 윤 차장이 밖으로 나가더니 무언가를 들고 온다. 여러 사람이 들락날락하며 바닥에 세팅한 것은 지형을 나타내는 모형이다.

“여기 이건 아와사 지역으로부터 아디스아바바까지의 모형입니다. 이걸 보시면…….”

또 설명이 시작되었다. 아와사와 아디스아바바 사이엔 샤세메네(Shashemene)와 나즈렛(Nazret) 등 몇몇 도시가 있고, 중간중간 경관이 뛰어난 곳도 여러 군데 있다.

고속도로는 이곳들을 거치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나중에 도로 연결공사를 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로의 총연장은 길어졌지만 효율은 높아진 것으로 여겨진다.

고속도로 공사에 이어 아와사―베르베라 철도공사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고속도로보다 훨씬 거리가 먼 곳이다.

4차선 고속도로 공사는 약 600㎞이다. 표준궤 철도공사는 이보다 훨씬 거리가 먼 1,500㎞나 된다.

에티오피아 영토 남쪽 끝 중심부에서 아와사까지 잇는 500㎞짜리 철도공사를 추가한다면 영토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듯한 노선이 될 것이다.

에티오피아 정부 입장에선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일이 될 것이다. X자형 철도공사를 추가로 하게 되면 피자를 여섯 조각으로 자른 듯한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의 중심에 수도 아디스아바바가 있다면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형도를 살핀 현수는 이를 메모해 두었다. 제안을 해서 저쪽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약 8,000㎞에 이르는 철도공사를 추가로 수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에티오피아는 아직 가난한 나라이니 추가공사를 발주할 여력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에티오피아는 국토의 대부분이 현무암과 습곡작용을 받지 않은 중생대의 두꺼운 층으로 덮여 있다.

하여 광물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금, 동, 아연만은 비교적 풍부하다.

천연가스전도 두 곳이 발견되었으며, 석유 매장 가능지역도 다섯 곳이 있다. 하지만 아직 발견된 것은 아니다.

‘가만 있자. 내가 이걸 어디서 읽었지?’

현수가 잠시 기억을 더듬자 최 부장은 즉시 브리핑을 멈춘다. 직장생활에 도가 튼 게 확실하다.

이때 현수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다.

‘맞아. 오가덴 지구대, 청나일강 지구대, 그리고 메켈레 지구대와 감벨라 지구대, 마지막으로 남부 지구대에 매장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고 되어 있었어. 이건 어디서 본 거더라?’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랬더니 전부 한자로 적힌 화면이 떠오른다.

‘맞아. 지나 국안부 자료군. 근데 에티오피아의 자원까지 노리고 있었던 거야? 하여간 이놈들은…….’

욕지기가 터져 나오려 한다. 지나인 특유의 끝도 없는 욕심이 느껴진 것이다.

‘근데 이걸 어떻게 놈들이 알았지? 으으음!’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보니 국안부에서 석유개발 전문가를 비밀리에 파견하여 에티오피아를 샅샅이 훑었다는 내용의 기록이 떠오른다.

남의 나라에 들어가 허락 없이 제멋대로 헤집고 다닌 것이다. 그러다 인상적인 자료가 떠올랐다.

‘그 자식들,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었군. 나쁜 놈들!’

석유 매장 가능성을 조사하는 동안 안내를 맡은 에티오피아 원주민들은 대부분 국안부 소속 첩보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자신들이 조사했다는 것 자체를 감추기 위함이다.

희생된 인원은 열세 명이다.

‘가만, 어디가 제일 가능성이 크다고 되어 있었지?’

또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오가덴 지구대군.’

오가덴은 소말리아와 인접한 곳으로 에티오피아 영토 남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자료에 의하면 오가덴 지역 중 시벨리(Shibeli) 강 동쪽에 위치한 웨르데르(Werder) 인근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흐음! 여기부터 가봐야겠군. 유전이 발견되면 8,000㎞짜리 철도공사도 급진전을 이룰 수도 있겠어. 노에디아에게 알아보라고 하면 되겠지.’

알아보는 김에 인근에 금이나 은이 매장되어 있는지 찾아보라고 할 생각이다. 추가로 금광이 발견되면 공사비를 금이나 은으로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어, 설명을 이을까요?”

“아! 미안합니다.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요. 네, 설명 더 듣죠. 근데 어디까지 말씀하셨지요?”

“소말리아 영토 내에서의 공사에 대한 겁니다.”

“그래요? 마저 해주세요.”

에티오피아는 완전한 내륙 국가인지라 바다에 접한 항구가 없다. 하여 소말리아 정부와 협의하여 베르베라를 항구로 사용하는 중이다. 이곳까지 철도를 연결하려면 소말리아 영토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의 설명이었다.

이윽고 모든 설명이 끝났다. 긴장했는지 최 부장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아낸다.

“그런데 두 분, 제대로 씻지도 못하신 것 같습니다.”

“에… 저희가 그렇게 보입니까?”

“머리 못 감은 지 한 이틀 되셨죠?”

“…용케도 아시네요.”

“사우나라도 다녀오십시오. 수면실에서 눈도 좀 붙이시구요. 너무 피곤해 보입니다.”

최 부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닙니다. 아까까지는 정말 피곤하다 느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사실이 그러하다. 오전까지만 해도 죽을 지경이었다. 물론 너무 피곤해서이다. 그런데 지금은 말짱하다.

바디 리프레쉬 마법 덕분이다. 사람이 죽기 전에 반짝 기력을 되찾는 걸 회광반조라고 한다.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에 잠시 그런 거라 생각했지만 얼른 고개를 흔든다. 근무시간에 상사 앞에서 사우나를 가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녀오세요. 면도도 좀 하시구요. 제가 직속상관인 거 아시죠?”

“…네, 알겠습니다.”

실제로 현수가 직속상관인 게 맞다. 기획영업단을 발족시키는 순간 해외영업부에 대한 지휘권이 주어진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추한 몰골로 돌아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고, 보고를 마친 이상 오늘은 더 할 일이 없다.

“이 보고서는 제가 조금 더 볼 테니 두고 가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이거 만드느라 애쓰셨습니다.”

최 부장과 윤 팀장은 해외영업부 직원들을 데리고 단체로 사우나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해외영업부장실로 봉투 하나가 배달되었다. 그 안엔 회식비가 담겨 있다. 물론 평범함 액수는 아니다.

같은 금액이 설계팀에도 보내졌다. 이들을 보좌하느라 애쓴 업무지원팀 역시 금일봉이 전달되었다.

덕분에 천지건설 사옥 인근 고깃집과 주점, 그리고 노래방 등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게 된다.

7장 국가의 균형 발전을 위하여

“어머! 회장님 오셨어요?”

현수가 이실리프 무역상사에 발을 들여놓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은정 사장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숙인다.

뒤를 이어 김수진과 이지혜 차장이 인사를 한다.

보아하니 점심 먹고 셋이서 수다를 떠는 중인 듯싶다.

테이블엔 커피와 과자 부스러기가 놓여 있다. 이 여인네들은 쉐리엔을 믿고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는 모양이다.

쉐리엔으로 인하여 한국은 물론이고 그것이 보급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비슷한 시장 재편 현상이 빚어지는 중이다.

가장 먼저 비싸기만 하고 효과는 별로이던 다이어트 보조 식품들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 효능에 비하면 결코 비싸지 않은 쉐리엔의 등장이 그들을 몰아낸 것이다.

두 번째로 몰락의 길을 걷는 건 헬스클럽이다.

여자들은 거의 모두 사라지고 뇌까지 근육인 사내들만 남았다. 회원수가 대폭 줄면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 번째는 반대로 좋아진 경우이다. 외식산업과 식품시장, 그리고 야식업계와 주류산업이 급속도로 신장되었다.

한국을 예로 들자면 실컷 먹고 마셔도 살이 찌지 않으니 여성들의 깨작거림이 사라졌다.

밤만 되면 치맥과 족발, 보쌈, 찜닭, 피자 배달원들이 천지사방을 누비고 다닌다.

아이스크림 판매량도 늘었고, 술도 많이 팔린다. 과자와 케이크도 많이 팔리는데 대부분 여성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어떻게 안 먹고 살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하여 인터넷엔 아래와 같은 우스갯소리가 떠돈다.

아아! 참으로 위대한 여인네들이시여.

그간 어찌 굶고 살았소?

변신에 가까운 당신들의 화장술에 사내들은 많은 속았소.

당신들의 민낯 한번 못 보고 결혼한 사내들은 밤이면 밤마다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오.

비너스인 줄 알고 몸과 마음을 주었는데 알고 보니 오크였소. 그런데 소개팅 하던 날 사내들 앞에서 깨작거리던 모습까지 전부 위장이었구려.

아아! 당신들의 위장은 무한대로 늘어나나 보오.

치킨, 족발, 탕수육, 보쌈, 피자를 어찌 한 번에 다 먹소?

혹시 저팔계의 변신은 아니시오?

제발 나는 잡아먹지 마시오.

당신들 덕에 엥겔계수7)한참 올라 극빈 가정이 되었소.

첫 줄의 위대는 ‘도량이나 능력, 업적 따위가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뜻의 偉大가 아니라 ‘엄청나게 먹을 수 있으니 위장의 크기가 크다’라는 胃大일 것이다.

네 번째는 의류업계의 변화이다.

66, 77, 88 같은 큰 사이즈의 웃을 제작할 필요가 없어졌다.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55 사이즈 이하의 웃을 입게 된 때문이다. 덕분에 의류 가격이 소폭이지만 줄어들었다.

이 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빚어지는 중이다. 하여 인류는 예상치 못한 대변혁을 겪는 중이다.

이것은 쉐리엔이 빚어낸 새로운 사회현상이다.

어쨌거나 이은정 사장과 김수진 차장, 이지혜 차장 역시 여인이기는 마찬가지인 듯싶다.

탁자 옆 쓰레기통에 수북한 과자 봉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환히 웃어주었다.

“이 사장님, 오랜만에 보네요. 신혼여행 잘 다녀왔죠?”

“그럼요. 회장님 덕분에 좋은 데서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왔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감사는요. 김수진 차장님, 그리고 이지혜 차장님, 오랜만에 보죠? 진급 축하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모두 회장님 덕분이에요. 호호호!”

둘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직원 수가 적으니 대기업이 아니다. 하지만 복리후생과 급여 체계는 대기업보다도 월등하다.

이은정 사장의 연봉은 3억 원이다. 다음은 김수진과 이지혜 차장으로 각각 1억 5천만 원씩 받는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새파란 나이이다. 한국식으로 따져도 불과 스물네 살밖에 안 되었다.

다른 회사로 갔으면 막내 사원이 되어 온갖 잡일과 심부름으로 하루해를 넘기고 있을 것이다.

상사들의 커피도 타야 하고, 타이핑과 복사 심부름을 하면서 곁눈질로 무슨 일을 하는가를 배우기 시작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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