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16화 (915/1,307)

# 916

현수가 준 돈을 사용하면 해결될 금액이지만 주 사장은 그걸 사용하지 않았다.

개인적 어려움을 해결하라고 준 게 아니라 업무에 도움이 되라는 뜻으로 지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력으로 해결하려 했다.

처음엔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미 신용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도 기웃거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다른 사채업자를 찾아갔다. 이자율은 높지만 신용불량자도 대출해 준다고 광고하던 업체이다.

더 비싼 이자를 지불해야 하지만 벌어서 갚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대출을 거절당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 사장에게 돈을 내놓으라던 사채업자가 압력을 넣은 것이다. 그것은 극동 솔라파워가 있는 시화공단 인근의 모든 사채업자도 마찬가지이다.

극동 솔라파워가 아주 큰 공사를 따서 조만간 막대한 이득을 볼 것이란 소문이 번지자 얼마 안 되는 돈을 빌미로 회사를 삼키려는 계략을 꾸민 것이다.

어쨌거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돈을 구할 수 없던 주 사장은 평소 업무 관계로 자주 연락하던 민주영에게 연락하였다.

그리곤 자사주 매입을 요청했다.

어차피 회사는 남의 손으로 넘어갈 상황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지극히 호의적인 이실리프 상사에게 주는 것이 낫다 판단한 것이다.

당시 주식 평가액은 회사를 통째로 넘겨도 빚을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적인 이득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사현장이 아프리카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니 주식의 가치를 판단할 기준이 미흡했던 것이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주영은 갚아야 할 금액을 내주면서 극동 솔라파워의 주식 60%만 받았다. 곧 실현될 이익이 얼마나 될지 알기에 제대로 된 평가를 해준 것이다.

주 사장은 거듭해서 감사의 뜻을 표했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이에 주영은 사장 자리를 계속 맡아줄 것을 요구했다. 안 그러면 주식을 외부인에게 팔아버리겠다고 했다.

어찌 남이 평생을 일군 회사를 통째로 날름하겠는가!

주 사장의 피와 땀이 어린 회사라는 걸 알기에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언제든 매수 요청을 하면 주식을 되팔겠다고 했다.

그때의 거래가는 이실리프 상사가 매입한 가격에 시중은행 정기예금 이자 정도가 얹힌 금액으로 정했다.

얼마 안 되는 은행 정기예금 이자율로 돈을 빌려줄 테니 얼른 벌어서 회사를 되찾아가라는 뜻이다.

참고로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 2.6% 수준이다.

그때 주 사장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말하길, 어떻게 이 회사는 회장이나 사장이나 마음씀씀이가 이렇게 따뜻하냐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은혜를 갚는 길이라며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꼭 회사를 되찾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이야길 들으니 현수는 괜히 흐뭇하다.

“회장님, 우리 주영 씨가 잘한 거죠?”

“쩝! 그러네요.”

현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주영의 처사가 아주 마음에 든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극동 솔라파워는 이실리프 솔라파워로 사명을 바꿨어요. 주 사장님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에요.”

“지금 남편 편들어주는 거죠?”

“어머! 그렇게 들리셨어요?”

은정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몹시 사랑스러워 보인다.

‘주영이 녀석, 장가 한번 잘 갔네.’

둘이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보고 사항은 없어요?”

“네, 대충은 보고드린 거 같아요. 한마디로 종합하면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쾌청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조용한 강가에서 즐겁게 배를 타는 것 같아요.”

“잘되고 있다는 뜻이죠?”

“이것보다 더 잘될 수 없을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느닷없이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의도가 뭘까 싶다.

“네?”

“저를 이 회사에 뽑아주셔서… 주영 씨를 만나게 해주셔서… 그리고 너무 막중한 자리에 앉혀주셔서요. 모두 회장님 덕이에요.”

“에구, 너무 이렇게 정색하지 말아요, 제수씨. 그나저나 집들이 안 해요?”

제수씨라는 표현이 들어갔으므로 이제는 사적인 이야길 하자는 뜻이다.

“쳇! 아주버님도 집들이 안 하셨잖아요. 멋진 집으로 이사하셨다면서요?”

“에구, 그러네요. 알았어요. 우리 집에서 한번 뭉칩시다.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놓으라 할 테니 와요.”

“호호! 그럼요. 기대돼요.”

“기대해도 될 거예요. 음식 만드는 사람들 솜씨가 좋으니까요. 그날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요.”

“그래도 되요?”

조심스럽게 묻는다. 피차 신혼이기 때문이다.

“빈 방이 조금 있으니까 몸만 오면 될 거예요.”

“아, 네. 그럴게요.”

빈방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은정은 아직 모른다.

나중의 일이지만 현수의 초대에 가벼운 마음으로 양평 저택을 찾은 주영 부부는 들어서면서부터 입을 딱 벌린다.

진입로부터 온갖 꽃이 너무도 탐스럽게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모든 식물은 더 이상 싱싱할 수 없을 정도로 푸르며 제각기 향을 뿜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피톤치드로 세상이 가득 찬 듯한 느낌이다.

호흡할 때마다 폐부가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들숨 때는 세상의 모든 신선함이 폐부로 스며드는 것 같고, 날숨 때는 체내의 모든 나쁜 것이 함께 배출되는 듯한 감각이 든다.

이는 첨탑의 마나 집적진 때문에 세상의 모든 마나가 몰린 결과이며, 아리아니의 각별한 가호가 스며든 때문이다.

여기에 가이아 여신의 신성력 또한 부어졌다.

하여 저택 인근의 숲은 병든 식물이 하나도 없다.

진입로의 폭은 대략 15m이며 길이는 300m 정도 된다. 바닥엔 가로세로 15㎝짜리 화강석이 촘촘히 박혀 있다.

이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자 둥근 분수대가 보인다.

가운데엔 멋진 조형물이 서 있고,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주변의 온도를 낮춰준다.

분수대 뒤쪽엔 커다란 건물이 있다. 저택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한 멋진 건축물이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설계된 이 건물을 보는 순간 주영·은정 부부는 압도당한다. 신혼여행 가서 킨샤사와 모스크바 저택에서 각각 닷새씩 머물렀다. 그렇기에 큰 건물에 조금은 익숙함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수 부부와의 만찬, 그리고 즐거운 시간이 계속된 후 깊은 밤이 되었을 때 둘은 빈관으로 안내된다.

150평짜리 초특급 스위트룸에 들어선 둘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고급스럽고, 깔끔하며, 세련되었기 때문이다.

꿈결 같은 하룻밤을 보낸 주영·은정 부부는 그곳에서 하루 더 머물고 월요일 아침에 현수와 같이 출근하게 된다.

“친구야, 니네 그 집 자주 이용해도 되냐?”

“얼마든지!”

현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고, 주영·은정 부부는 툭하면 주말을 그곳에서 보낸다. 호젓한 숲속의 초특급 호텔 같은 분위기이니 어찌 안 그러겠는가!

7성급 호텔은 두바이에 있는 버즈 알 아랍 이외에도 브루나이 엠파이어 호텔 등이 있다.

양평 저택의 빈관 최상층은 7성급을 넘어 8성급이라 할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부다비에 있는 에미리트 팔레스(Emirates Palace) 호텔 정도가 될 것이다.

이 호텔은 본시 아부다비 왕의 궁전으로 지어진 것이다.

그런데 왕이 국민과 함께하고 싶다 하여 궁전을 호텔로 개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황금 40톤이 소모되었다.

어찌 호화롭지 않겠는가!

그런데 빈관 또한 이러하다.

황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화려하고 우아하며, 고급스럽고 고상하면서도 안락하게 꾸며져 있다.

주영·은정 부부 입장에서 보면 집에서 한 시간 이내에 있는 주말 별장이다.

이용하는 비용은 당연히 한 푼도 안 든다.

모든 식사와 음료, 그리고 주류까지 몽땅 공짜이다.

세탁 서비스도 무료이고, 음주 후 귀가할 땐 운전까지 대행해 준다. 친구 잘 둔 덕에 엄청난 혜택을 받는 셈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서류 뭉치 속에 둘러싸여 있던 박근홍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환히 웃는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척추가 굳었다는 듯 허리를 펴며 소리를 낸다.

“으드드드!”

“여전히 바쁘시네요.”

“하하! 네, 그래야죠.”

“두바이 여행은 재미있었습니까?”

“그럼요. 덕분에 아주 잘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회장님께 고맙다는 말 전해달라더군요.”

“잘 다녀오셨다니 다행입니다.”

“앉으시죠.”

“네.”

전에 있던 소파는 다소 낡아서 바꾼 듯하다. 그런데 엄청 호화롭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 비싸 보인다.

왠지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할 법한 디자인이다.

“소파 좋네요.”

“그쵸? 이거 라일라 아지즈 사장이 선물한 겁니다.”

“라일라 아지즈 양이요?”

현수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라 어찌 된 건지 이야기해 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바이 독점 총판권을 달라던 팩스 기억하시죠?”

“그럼요.”

“회장님이 여기 왔다 가신 다음 날 이게 배달되었습니다. 선물이라는 쪽지가 붙어 있더군요.”

“아! 그랬군요.”

“이번에 만났을 때 고맙다는 뜻 전했습니다.”

“네, 아주 비싸 보이는데 그러셨어야죠. 그나저나 계약은 하셨어요?”

“아랍에미리트 독점 총판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인심 좀 쓰셨네요.”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연합(United Arab Emirates)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것은 페르시아만의 해안에 위치한 일곱 개 국가가 뭉친 소합중국이다. 소속 국가는 아부다비, 아즈만, 두바이, 푸자이라, 라스 알 하이마, 샤르자, 움 알 까이와인이다.

라일라는 하나만 원했는데 여섯을 추가로 준 셈이기에 선심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두바이에 당도한 박 사장은 라일라 아즈지를 만나 여러 부문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라일라는 두바이에서는 완전한 독점을, 그리고 나머지 연합국가엔 지점을 설치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아울러 여타 아랍국가와도 거래할 수 있기를 요청했다.

한참을 대화한 후 박 사장은 흔쾌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줬다. 아랍에미리트 연합 전체에 대해 완전한 독점 판매권을 준 것이다.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아랍국가에 대한 판매도 당분간은 허용하지만 그쪽에 총판이 들어서면 철수하기로 했다.

대신 쉐리엔과 듀 닥터, 스피드도 취급할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다 같이 이실리프라는 명칭을 쓰는 계열사이니 도와달라는 말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라일라는 아주 즐거워했다. 자신의 미인계에 박근홍 사장이 홀딱 넘어간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박 사장은 아내밖에 모르는 사내이다. 그럼에도 미인계에 넘어가 준 척한 것은 현수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일라 아지즈의 능력을 믿고 그것들의 판매도 맡겨보자고 한 것이다.

일주일간 머물며 많은 구경을 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라일라 아지즈는 만사 제쳐놓고 박 사장 부부를 위한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해줬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라일라의 모친 ‘나지마 알 막툼’이 왕족이라는 것이다.

현재 두바이의 왕세자인 ‘세이크 함단 빈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의 고모라는 것이다.

왕가의 여인이 어찌 일개 기념품 장사꾼인 아미르 아지즈와 맺어져 평범한 삶을 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한다. 덕분에 일반인은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왕궁까지 구경한 것이 그 증거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라일라 아지즈에게 왕세자가 정식으로 만남을 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금빛 초청장을 보여주었다.

둘은 사촌지간이다. 따라서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왜 그러느냐는 물음에 그건 결혼을 전제로 사귀자는 뜻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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