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22화 (921/1,307)

# 922

“네, 회장님!”

현수의 스피드를 운전하는 이는 공군 SART팀 1팀장 이동춘 중위이다. 일전에 걸어둔 절대 충성 마법의 결과 지금은 거의 사적인 경호원의 마인드가 되어 있다.

안정적으로 질주하고 있는 스피드의 전후좌우에는 경호 차량이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다.

공군에서 파견한 아홉 개 팀 가운데 두 팀이 함께 움직이는 중이다. 팀당 여섯 명씩이니 열두 명이다.

이는 공군의 명령과 현수의 바람이 일치하기에 빚어진 결과이다. 이토록 정중하고 깍듯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저택으로 이사하던 날 모든 경호원에게 각기 한 장씩 체크카드가 주어졌다. 이것의 한도는 매월 1일마다 발생된다.

그 한도액은 월 300만 원이다. 본인과 아내들, 그리고 장인과 장모 등의 안전을 위해 애써주는 것에 대한 보답이다.

각자 본인이 소속된 군, 또는 기관으로부터 급여를 지불 받고 있기에 이 정도 금액이다.

얼마 전, 육군 경호팀의 회식이 있었고, 카드가 사용되었다. 안 되면 육군에서 결재한다는 마음에서 시험 삼아 쓴 것이다. 아직 결제일은 되지 않았지만 비용은 육군에 청구되지 않을 것이다.

“회장님, 어디 지방 가세요?”

운전하며 이동춘 중위가 묻는다.

“오늘은 일본에 잠시 다녀오려 합니다.”

“아……!”

이동춘 중위는 나지막한 탄성을 낸다.

자신들은 현수의 움직임에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수의 스케줄은 고정적이지 않다.

지금처럼 느닷없이 출국한다고 하면 경호에 구멍이 뚫린다. 직업이 군인인지라 비자가 없는 곳으로 갈 경우 따라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비용도 문제가 된다.

먼저 사용한 후 추후에 결제를 요청하면 100% 지급될 것이다. 그런데 그럴 만한 여분의 자금이 없다.

참모총장의 명령을 받아 경호를 하는 중이지만 SART팀의 원래 임무는 조난당한 조종사 구조이다.

그에 적합한 훈련은 지겹도록 받았지만 경호 훈련은 배워가는 중이다. 하여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다.

노련한 경호원들은 VIP의 사흘 후 스케줄까지 환히 꿰고 있다. 오늘처럼 느닷없는 일정 변경에 대한 대비도 어느 정도 되어 있다. 소위 매뉴얼이라는 것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동춘 중위는 상당히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저희 신분이 군인이라 따라 나갈 수가……. 어떻게 하죠?”

“그 문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실리프 정보 소속 경호원들이 따라갈 것이니 괜찮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공항까지만 경호해 주시고 좀 쉬세요. 일본에 갔다고 되돌아올 때까진 시간이 걸릴 듯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동춘 중위는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대화가 끊기자 현수는 사사키 노조미가 대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제법 유명한 연예인이고 사생활도 깨끗하기에 야쿠자 등으로부터 위협 받을 일이 없다. 지은 빚이 많아 사채업자의 협박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스피드는 올림픽대로를 지나 공항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 ♬♪♪∼ ♩♪∼ ♪♩♬∼

현수의 휴대폰 착신음 지현에게가 울린다. 액정을 보니 윌리엄 스테판이라고 떠 있다.

“네.”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회장님. 언제 도착하시는지요?”

“곧 갑니다. 전에 그곳으로 가면 되죠?”

“네,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것 변동 없으시죠?”

“그렇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30여 분 후, 현수의 Aerion사의 SBJ 자가용 제트기가 이륙했다.

“회장님, 음료수 드릴까요?”

“사과주스 있어요?”

“물론입니다.”

스테파니가 환히 웃으며 돌아선다. 그리곤 둔부를 살랑거리며 주방으로 향한다.

웬만한 남자 같으면 육감적인 움직임에 시선을 고정시키겠지만 현수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사사키 노조미가 왜 갑작스런 구원 요청을 했는지 의아한 때문이다.

“흐음! 가보면 알겠지.”

생각대로 가보면 알 일이고, 미리 걱정할 일도 아니다. 본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은 아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말이 있다.

이미 어떤 일이 벌어졌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없으므로 제대로 된 대응만 하면 된다.

스테파니는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 살게 해준 것에 대해 현수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덕분에 한류에 푹 빠져 있던 동생이 소원하던 한국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포항공대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려 했는데 집이 서울이니 서울대학교로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하여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어보니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교 컴퓨터공학과라고 한다. 그러면서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하여 피식 웃어주었다. 그저 그런 대학에서의 높은 성적은 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방금 말한 대학이 ‘유럽의 MIT’라 불린다는 걸 상기해 냈다. 실제로 로잔대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테파니의 동생 샌디가 이 학교를 졸업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고등학교 과정을 단 1년 만에 마쳤다는 것이다.

흥미를 갖고 몇 마디 물어보니 샌디는 걸그룹 다이안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 발표된 ‘지현에게’와 ‘첫 만남’이라는 곡에 푹 빠져 산다는 것이다.

한 번만이라도 다이안 멤버들을 만나 사인 받는 것이 소원이라는 대목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다녀오면 적당한 시간을 봐서 다이안과 만나게 해줄 수 있어. 샌디에게 내 선물이라고 전해.”

“어머! 정말이요? 우와, 샌디가 엄청 행복해하겠어요. 근데 저도 그 그룹 팬인데 같이 가서 만나도 될까요?”

“물론이야. 같이 와도 돼.”

“와아! 고맙습니다, 회장님.”

너무도 기쁜 나머지 스테파니는 현수를 와락 안았다. 그 순간 육감적인 무엇인가가 물컹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 * *

“아! 김현수 씨, 반가워요.”

사사키 노조미의 한국어 발음은 아주 많이 좋아졌다. 현수가 이에 대해 말하려 할 때 노인수가 고개를 숙인다.

“반갑습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두 분 모두 그간 안녕하셨지요?”

“……!”

둘 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 분명 뭔가가 있다.

“일단 자리를 옮기죠.”

“네.”

공항 밖으로 나온 현수는 노인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어디로 가는 거죠?”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를 빌렸습니다.”

이것은 도쿄 세타가야 구의회의 재정 지원을 받는 비영리 극장이다. 언젠가 들어본 것이기에 현수가 반문한다.

“600석짜리 주극장입니까, 220석짜리 소극장입니까?”

“소극장입니다. 아직은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오셔서 못 온다는 사람들도 조금 있구요. 아무튼 오늘은 다 모여 봤자 200명 정도 될 것 같아서요.”

“아, 그래요?”

이주를 권유한 이후 소정의 성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돈 많이 쓰셨겠네요.”

“아닙니다. 소극장은 현재 수리 중이라 공연이 없습니다. 마침 아는 사람이 있어서 빌릴 수 있었습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사키 노조미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끼어든다.

“혹시 내부 피폭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말을 듣는 순간 왜 도와달라고 했는지 납득이 된다.

“…두 분 중 어느 분인 겁니까?”

현재의 일본에서 내부 피폭되는 방사능은 주로 세슘이며, 간혹 플루토늄도 있다.

동일한 양의 방사능일지라도 세슘은 우라늄보다 약 6,000만 배, 플루토늄은 약 500만 배 더 위험하다.

내부 피폭을 겪게 되면 여러 중상이 나타난다.

먼저 피로함이 증가하고 무기력증이 온다.

동시에 눈이 침침해지고 어질어질함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려 해도 잘 기억나지 않으며 힘이 없다.

뿐만 아니라 면역력 저하와 빈혈, 그리고 출혈을 겪는다.

뼈에 있는 골수가 피폭을 당하면 백혈구와 적혈구를 제대로 생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면역력 저하는 감염증에 쉽게 노출됨을 의미하며, 백혈병이나 갑상선암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피폭 후 2∼3주 안에 나타날 수도 있다.

임산부가 내부 피폭이 될 경우 태아가 기형아로 태어날 확률도 증가한다.

외부 피폭에 비해 내부 피폭은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며 뚜렷한 치료법조차 없다. 그렇기에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와 인수 씨 모두예요.”

대답하는 사사키 노조미의 음성은 확연히 떨리고 있었다. 분하고 억울한 때문이다.

“주의한다고 주의했는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노조미의 말이 끝나자 노인수가 말을 잇는다.

“후쿠시마 산 농산물 중 일부가 시판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그것 중 하나를… 휴우!”

차마 끝말을 내뱉지 못하고 한숨을 쉰다.

방사능 피해를 입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였건만 누군가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부린 농간에 당했다 생각한 것이다.

후쿠시마 산, 또는 방사능에 오염된 것으로 측정된 농·축 ·수산물은 가격이 없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것을 몰래 반입하고 조작된 방사능 측정기로 무해하다 홍보하며 팔아치웠다.

당연히 상당한 이득을 취했을 것이다. 그런데 재수없게도 그중 일부를 노인수 커플이 섭취한 것이다.

“으으음!”

현수는 방사능으로 인한 내부 피폭은 치료제가 없음을 알기에 나직한 침음을 냈다.

이때 노인수가 말을 잇는다.

“소극장엔 저희가 설득한 사람들이 모일 겁니다. 정말 그들에게 주거와 직장을 제공해 주실 수 있는 겁니까?”

“그건 제가 개발하고 있는 이실리프 자치령으로 이주하신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작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십만 명이 될 수도 있다. 한 나라의 정부가 아니라면 해주기 어려운 일이다. 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시겠다는 분은 많습니까?”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그 조건만 충족되면 떠나겠다는 분들이 상당수 있을 겁니다.”

점점 심해지는 차별, 장기 침체에 빠진 경제, 실패한 아베노믹스12), 그리고 늘 불안한 방사능 때문일 것이다.

“그래요? 다행이군요.”

“그런데 그쪽에 가면 병원은 있습니까?”

노인수는 초조해하는 표정이다. 본인과 사사키가 피폭된 상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챈 현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방사능 피폭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제가 조치를 취해보도록 하지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주를 하게 되면 사사키는 직업을 잃게 된다.

노인수는 부친이 일군 리브21의 지점을 낼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벌이가 시원치 않을 것이다.

새로운 터전에 자리 잡는 사람들이 머리카락 때문에 돈을 쓰거나 시간을 할애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주를 결심한 이유는 며칠을 살더라도 마음 편히 지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아울러 곧 생길지 모르는 2세가 기형아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자동차가 목적지에 당도하였지만 주변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사실을 알게 되면 재특회 같은 혐한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에 보안 유지를 당부한 때문이라 한다.

소극장 안에 들어가 보니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차 있다. 220석 규모인데 상당수가 서 있는 걸 보면 적게 잡아도 300명은 넘는 듯하다.

현수의 얼굴은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진 상태이다. 아울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두가 알고 있다.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이실리프 자치령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원하는 곳으로 이주가 가능하며 주거와 직장을 제공하겠다는 말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쉰다.

노인수와 사사키가 상당히 저명하지만 누가 그런 혜택을 주겠는가 하는 비관론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인원수를 파악해 보니 이주 희망자는 312가구 1,431명이다. 가구당 4.59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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