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24화 (923/1,307)

# 924

“맞습니다. 많이 바쁩니다. 하지만 김 부사장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 이쪽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위치한 헤이다르 알리예프 국제공항까지 마중 나온 사람은 후세인굴루 바기로프 환경부 장관이다.

둘의 대화는 아제르바이잔어로 이루어지고 있다.

천지건설 박진영 과장과 천지기획 구본홍 대리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중이다.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화기애애하다는 것만은 분명하여 마음이 놓이는지 미소 띤 얼굴이다.

“김현수 부사장님은 저와 함께 가시지요.”

“네, 그러지요.”

현수가 먼저 차에 오르자 바기로프 장관이 곁에 앉는다. 이러는 사이에 박진영과 구본홍은 따로 준비된 차에 오른다.

“계약식에 참석치 못하여 죄송합니다.”

“아이구, 무슨 말씀을. 김현수 부사장님이야말로 엄청 바쁘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또 만났으니 괜찮습니다. 하하하!”

바기로프 장관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다. 천지건설과 계약한 이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을 하기 전 아제르바이잔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로부터 견적을 받았다.

지나의 건축공정총공사와 동북연화공정 유한공사 컨소시엄, 그리고 미국의 벡텔과 일본의 미쓰이화학 컨소시엄에서 보내온 것이 가장 마음에 갔다.

지나의 것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미국과 일본의 컨소시엄은 기술력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둘 중 어느 것에 낙점할 것인가를 고심할 때 현수를 만났다. 공사비는 지나보다 비싸지만 미국과 일본보다는 싸고 기술력은 믿을 만하다.

한국이 IT 강국이라서가 아니다.

현대그룹의 창시자 고 정주영 회장이 울산에 조선소를 만들려 할 때의 일화가 있다.

당시의 현대그룹엔 조선소를 세울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와야 건설할 수 있었다.

정 회장은 건립 자금을 구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 등 여러 나라 은행을 다녀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후진국에서 무슨 조선소냐?’는 눈빛들이었다.

정 회장은 마지막으로 영국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도 거절당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모든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일이 가능하다 여깁니다. 꼭 해낼 것입니다.”

정 회장은 A&P 애플도어13)의 찰스 룽바툼 회장을 찾아가 주머니에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걸 보십시오. 우리의 거북선입니다. 당신네 영국의 조선 역사는 1800년대부터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물리친 민족입니다. 우리가 당신네보다 300년이나 조선 역사가 앞서 있습니다. 산업화가 늦어져 국민의 능력과 아이디어가 녹슬어 있을 뿐 우리의 잠재력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롱바툼 회장은 웃으면서 추천서를 써주었고, 결국 조선소 건립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긴 지난번 대화 때 현수가 한 말 중 일부이다.

엔지니어링 경험이 없는 천지건설에서 이 일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 섞인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처음 만난 이후 바기로프 장관은 한국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비서관들에게 자료 수집을 명했다.

현수가 한 말이 사실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 결과 몇 가지 통계자료를 보고 받을 수 있었다.

동양의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은 영토 면적으로 따지면 세계 109위에 불과하다. 인구수는 27위, 인구밀도는 20위이다.

좁은 땅덩이에서 복닥거리며 살고 있다.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 이후 완전한 폐허가 되었던 국가이다. 그런데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고도성장이 이어졌고, 현재는 세계 무역 순위 6위에 랭크되어 있다.

IT 강국이며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중이다.

특히 전 세계 조선 그룹별 수주 잔량 순위에서 한국 조선사들이 세계 1위부터 5위까지를 싹쓸이하고 있다.

전 세계 가전시장을 휩쓸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한국 기업이다.

이 밖에 컴퓨터 보급률과 초고속 인터넷 사용률 세계 1위인 국가이다. 제철 조강 생산량 및 단일 원자력발전소 이용률, 휴대폰 보급 성장률도 세계 1위이다.

의약 캡슐과 전자레인지용 고압콘덴서, 자기테이프, 오토바이 헬멧, 손톱깎이, 텐트, 낚싯대, 냉동 컨테이너 제조 부문에서도 세계 1위에 랭크되어 있다.

기술력이 없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바기로프 장관은 국무회의 때 이러한 내용을 브리핑했다.

아제르바이잔의 미래 또한 이래야 함을 강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통신기술부 장관님과 건설부 장관님, 그리고 국방장관님께서 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하하! 제 공이 크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바기로프 장관은 뜬금없는 말을 하면서도 몹시 유쾌하다는 듯 큰 소리로 웃는다.

“이런 줄 알았으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시지요. 그분들이 관심 가진 것에 대한 자료조사라도 해갖고 왔으면 그분들과의 대화가 더 쉬었을 텐데 말입니다.”

“김 부사장님의 평상시 순발력을 알고 싶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IQ 보유자이시니 대단하겠지요? 하하하!”

“에구!”

뭐라 할 말이 없기에 낮은 침음만 냈다. 그러는 동안 벤츠는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궁으로 들어서고 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대통령이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니 의복을 정제하고 장관의 뒤를 따랐다. 대통령 집무실 앞에선 라미즈 메디에프 대통령 수석보좌관과 간단한 수인사를 나눴다.

딸깍―!

집무실 문이 열리자 서류에 시선을 주고 있던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고개를 든다.

시선을 받은 현수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하하! 이게 누굽니까?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 또한 몹시 기분이 좋은 듯 환히 웃으며 맞이한다. 오펜시브 참 마법에 걸려 있으니 보기만 해도 좋은 것이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요. 당연히 환대해야죠. 이렇게 먼 길을 와줘서 고맙습니다. 자, 앉으시죠.”

현수가 자리에 앉는 동안 대통령이 메디에프 수석보좌관에게 뭔가 지시를 내리자 총총걸음으로 물러난다.

“비행시간이 꽤 길었을 텐데 피곤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젊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 그래요? 젊음 좋지요. 나도 아직은 혈기 왕성합니다.”

대통령은 1961년생이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올해 54세이다. 건강관리를 잘했다면 아직은 팔팔할 수도 있다.

“네, 그래서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말을 마친 현수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마나포션과 바이롯 두 병씩을 꺼냈다.

둘 다 이건 대체 뭔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상표도 없는 삼각플라스크는 코르크 마개가 끼워져 있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관련된 회사 중 제약사가 있습니다.”

“압니다. 이실리프 메디슨! 쉐리엔을 수출하는 회사지요. 우리 집사람도 그 제품을 애용합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기로프 장관도 거든다.

“우리 집엔 그걸 셋이나 복용합니다. 마누라와 두 딸이죠. 그거 덕분에 식비가 늘었습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이건 그 회사 연구실에서 최근에 완성시킨 신약 비슷한 것입니다.”

“아! 그래요?”

둘의 눈빛이 반짝인다. 신약이라 함은 세상에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대체 뭔가 싶은 모양이다.

“이건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종의 보신제입니다. 몸이 좋은 건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신약은 임상실험까지 완벽하게 마치고 식약청 같은 곳으로부터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안정성이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수의 이런 행동은 무례한 것이다. 대통령이 마셨다가 이상 반응을 일으키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별일 아닌 듯 미소 띤 표정이다. 둘이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현수가 말을 잇는다.

“으음! 이걸 굳이 뭐라 표현하자면 자양강장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인체에 유해한 성분은 전혀 없습니다.”

현수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바기로프 장관이다.

“이거 혹시 비싼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엄청나게 비싼 거지요. 장관님부터 복용해 보시겠습니까?”

“주십시오.”

현수에 대한 지극한 호감을 가지고 있기에 서슴지 않고 손을 내민다.

뿅―!

마개를 빼자 경쾌한 소리에 이어 그윽한 향기가 풍긴다.

“흠흠! 흐으음!”

둘은 본능적으로 심호흡을 한다. 냄새만으로도 심신이 상쾌해지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자, 천천히 드십시오.”

“그럼 감사히…….”

꿀꺽, 꿀꺽, 꿀꺽!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플라스크 안의 마나포션이 줄어든다.

“크흐으음!”

플라스크를 완전히 비운 장관은 나직한 침음을 내곤 지그시 눈을 감는다. 체내로 퍼지고 있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기 위함이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장관의 체내로 스며든다. 물론 곁에 앉아 있는 대통령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바기로프 장관은 제2당뇨병 환자이다.

고열량, 고지방, 고단백의 식단을 즐기지만 운동은 부족하고, 스트레스는 잔뜩 받아 인슐린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인 것이다.

아울러 고지혈증까지 있다.

그런데 마나포션에 이어 리커버리 마법까지 구현되자 이 모든 것이 치유되는 중이다. 천지건설을 택해준 것에 대한 보답치고는 과하다 할 수 있다.

“대통령님도 드셔보시겠습니까?”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향기부터 남다른 데다 장관의 반응을 보니 상당히 좋은 듯싶다. 하여 기다리던 차이다.

뿅―!

또 하나의 마나포션이 개봉되었다.

“천천히 음미하듯 드십시오.”

“알겠소.”

마음이 급한 듯 얼른 입에 댄다. 그리곤 천천히 마신다.

“흐음!”

플라스크를 비운 뒤 내쉬는 숨이 비강을 빠져나가자 아깝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상쾌한 향기가 느껴진다.

하여 대통령 또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이다. 이번에도 현수의 입술이 달싹여진다.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자 장관과 다르게 살짝 몸을 떤다. 지구인치고는 보기 드물게 마나 감응이 좋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가계는 대대로 고혈압 환자가 많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혈압을 재는데 오늘은 수축기 혈압 168mmHg, 확장기 혈압 110mmHg이었다.

이 정도면 2기 고혈압, 또는 중등도 고혈압이라 불리는 상태이다. 평상시엔 별다른 증상이 없다.

간혹 뒷머리가 당기거나 어지러울 때가 있는데 1년에 한두 번 정도이다. 다만 두통은 자주 겪는다.

문제는 그 두통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끼로 머리를 쪼개는 듯한 지독한 통증이다.

어떤 때에는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줄지 않아 프로포폴 같은 수면 마취제의 힘을 빌려야 할 때도 있다.

어쨌거나 대통령의 체내에서는 마나포션과 리커버리의 효능이 만나 이상 있는 것들을 개선하는 중이다.

떨어진 장기의 효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노화된 세포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크으음! 냄새.”

장관과 대통령의 몸에서 심한 악취가 풍겨 나온다. 체내 노폐물이 빠른 속도로 배출되기 시작한 때문이다. 이는 현수가 겪은 바디 체인지와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몸에서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을 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아니! 엘리디아와 실라디아 좀 불러줘.]

[네, 주인님!]

잠시 후 반투명한 용의 형상을 한 엘리디아와 발가벗은 절세미녀 실라디아가 나타난다.

“부르셨어요, 마스터?”

“저를 또 불러주셔서 고맙사옵니다, 마스터!”

엘리디아는 여전한 사극 투이다.

“엘리디아는 이 사람들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깨끗하게 해주고 실라디아는 이 방의 공기 좀 정화해 줘.”

“네, 마스터!”

이구동성으로 대답한 둘은 대통령과 장관의 몸을 훑는다. 그와 동시에 악취가 스르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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