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26화 (925/1,307)

# 926

“이걸 다 마시면 되는 겁니까?”

자키르 하사노프 국방장관의 물음이다.

“그거 하나를 다 드시면 밤새 한잠도 못 주무십니다. 그러니 3분의 1만 드십시오. 만일 그걸로 부족하다면 절반까지 드세요. 가급적 적게 드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면…….”

“아니면 무슨 부작용이라도 생긴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다음 날 업무를 못 보실 수도 있습니다.”

현수의 말을 받은 이는 알리 아바소프 통신정보기술부 장관이다.

“거의 짐승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와! 대단하군요!”

둘은 바이롯을 달라고 할까봐 두렵다는 듯 얼른 품에 안는다. 사내들끼리 있으니 이 마음을 이해하는지 모두가 희미하게 웃음 짓고 있다.

“대통령님과 나, 그리고 당뇨가 있는 샤빈 무스타파예프 장관은 그렇지만 야바르 자말로프 방위산업부 장관은 왜 빼신 겁니까? 특별한 질병도 없는데.”

바기로프 장관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자말로프 장관은 더욱 그러하다.

본인 역시 바이롯이 절실한데 쏙 빼놓았기 때문이다.

“자말로프 방위산업부 장관님은 이걸 드실 수 없습니다.”

“왜… 요?”

“장관님은 호흡 소리가 많이 거치십니다. 기침이 잦고 가래가 있지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보기에 장관님은 현재 폐결핵을 앓고 계십니다.”

“폐결핵이요?”

“네, 소화불량과 식욕부진도 있으시지요?”

“…그렇습니다!”

장관은 심각한 표정이 된다. 폐결핵에 걸렸다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제가 귀국하면 곧바로 장관님께 특효가 있을 약을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복용법에 적힌 대로 하시면 다른 치료 없이 효험을 볼 것입니다.”

“…고맙소이다.”

방위산업부 장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본인조차 모르는 질병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그것도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진단했다.

이따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면 금방 결과가 나올 것이다. 현수는 분명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두뇌를 가진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럼 사람이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허언을 할 리 없다. 그렇기에 현수의 말이 맞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나저나 세 분 장관님께서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용무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현수의 말에 대꾸한 것은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다.

“에구, 이렇게 한자리에서 볼 일은 아닌데. 각부 장관님과 따로 자리를 만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러시죠. 그럼 어느 분 먼저…….”

“대통령님, 건설부부터 논의했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나머지 장관님들께서는 잠시 쉬시지요.”

잠시 후, 집무실에는 현수와 알리예프 대통령, 그리고 수석 보좌관 메디에프와 무스타파예프 건설부 장관만 남았다.

“장관, 이야기하세요.”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자 무스타파예프 장관은 가지고 온 서류를 현수에게 넘긴다.

“그걸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 아제르바이잔과 한국토지공사는 신도시 건설사업 총괄관리를 계약한 바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사업 중 1단계에 해당되지요.”

현수가 아는 척을 하자 그러면 이야기하기 쉽다는 듯 다음 장을 넘긴다. 따라서 넘기자 장관의 말이 이어진다.

“2단계는 사업관리 및 설계용역이고, 3단계는 건설관리입니다. 마지막은 시공 패키지지요.”

장관이 잠시 말을 끊자 현수가 이어받았다.

“2∼3단계는 약 8억 5천만 달러가 소요되고, 시공 패키지는 583억 달러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건설부는 신도시 건설 노하우가 많은 한국과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무스타파예프 장관의 말은 가식 없는 진실이다.

장관은 얼마 전까지 경제개발부의 수장이었다.

상당히 많은 나라를 둘러본 장관은 비용 대비 최고의 효율을 갖는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수도권에만 일산, 분당, 평촌, 김포, 동탄, 별내, 양주, 화성, 운정, 송도, 위례 신도시 등이 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니 비용은 적게 들고 개발기간은 짧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데다 경제적이기까지 하다.

하여 한국의 기업들과 접촉하려는 차에 천지건설과 유화단지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 즉시 천지건설에 대한 조사를 명했고, 보고서를 받았다. 김현수라는 걸출한 인재가 있어 쑥쑥 크는 회사라 한다.

재정 건전성을 파악하기 위해 재무제표까지 분석한 결과 천지건설은 어떤 공사를 맡기든 수행 가능하다 판단을 내렸다. 아주 탄탄한 회사인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리 좋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신도시 건설사업에 관한 자료가 없습니다.”

“그건 가시기 전에 저희가 제공하지요.”

“…제가 어떻게 해드리길 원하십니까?”

“공사를 맡기면 어떻게 해줄 것인지 제안해 주기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재정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자국 비하의 의미가 되었을 수도 있기에 얼른 사과한다.

“아닙니다. 계속하세요.”

대통령이 개의치 말고 의견을 피력하라는 뜻을 표하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잇는다.

“유화단지 건설처럼 차관을 제공해 주셨으면 합니다.”

“……!”

아무런 준비도 없는 자리이기에 현수는 금방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차관 제공을 요구했으니 적절한 금액을 제시하면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

돈은 얼마든지 있지만 너무 헤프면 안 된다. 상식선에서 결정되어야 할 일인 것이다.

“하한선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건…….”

단둘만 있는 자리라면 알려주었을지도 모르지만 대통령도 있고 수석보좌관도 있는 자리이다. 그렇기에 무스타파예프 장관은 슬쩍 둘의 눈치를 본다.

이 순간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어펜시브 참!”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소리 없이 스며들 때 현수는 대통령에게 시선을 주고 있다.

“그 정도는 알아야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음! 그야 그렇겠지요. 워낙 큰 공사이니……. 장관, 혹시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그냥 이야기하세요.”

대통령 역시 어펜시브 참 마법의 영향으로 현수에게 지극한 호감을 갖고 있기에 한 말이다.

“우리가 예상한 금액은 2단계부터 최종 단계까지 591억 5천만 달러입니다. 이 중 20% 정도를 차관해 주시면…….”

591억 5천만 달러의 20%는 118억 3천만 달러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14조 2천억 원 정도 된다.

“흐음! 액수가 많군요. 그런데 제가 알기론 아제르바이잔 국영 석유기금(SOFAZ) 중 18억 달러는 위안화에 투자하고, 서울 을지로 2가 파인애비뉴 A동 오피스 빌딩은 4억 4,700만 달러에 매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헉! 그걸 어찌…….”

현수가 이런 것까지 알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는지 장관은 잠시 말을 끊는다.

“또한 도쿄 긴자의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티파니 빌딩도 매입하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끄응……!”

장관이 침음을 낼 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제가 알기론 현재의 아제르바이잔은 수출액이 수입액의 두 배 이상이라 달러 유입이 과한 상황입니다.”

“……!”

대통령 등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현수는 얼마 전 읽은 자료의 내용을 상기해 냈다.

“아제르바이잔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환은 117억 달러이고, 석유기급 보유 외환은 433억 달러입니다. 게다가 지속적인 무역 수지와 경상 수지 흑자로 외환이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지요.”

돈도 많으면서 왜 그런 과한 요구를 하느냐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김 부사장님! 우리 아제르바이잔은 개발할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장관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기분이 든다. 현수에게 허를 찔린 때문이다.

“압니다.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쓸 데가 너무 많지요. 그래서 차관을 요청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아까 118억 달러 정도를 차관해 달라고 하셨는데 그 금액은 너무 과합니다. 그러니 10% 정도 되는 60억 달러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갑자기 절반 정도로 확 깎였지만 장관은 불만이 없는 표정이다. 애초부터 그 정도를 예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스와 원유로 드리면 되겠습니까?”

“좋지요. 세부사항은 추후에 따로 논의하도록 하죠.”

“좋습니다. 일단 신도시 개발 자료부터 드리겠습니다. 공사기간과 소요비용부터 확정 짓는 게 우선이니까요.”

장관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이다. 어느 나라의 누구에게 일을 맡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무사히 잘 끝나도 정적들은 트집 잡을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온 정신이 갈가리 찢길 때까지 씹고 또 씹을 것이다.

이런 대형 공사는 의례히 뒷돈이 오간다. 국제적인 거래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흔적만 남지 않는다면 챙기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 모든 게 전산처리 되므로 감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자료는 저와 동행한 두 직원에게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장관은 굳은 악수를 하곤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른 장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국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때는 건설부로 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장관님.”

무스타파예프 장관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리 아바소프 통신정보기술부 장관이 들어선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차관 및 휘하 국장들까지 달고 왔다.

모두와 인사하느라 잠시 시간이 지났다.

“장관님께서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국의 발전된 IT 기술을 우리 아제르바이잔에 접목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LTE기술이 탐납니다.”

“정확히는 롱 텀 에볼루션(Long Term Evolution)을 넘어선 LTE A X3기술이 있었으면 합니다.”

장관의 말을 받은 사람은 차관이라는 사람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공무원이 아닌 과학자 내지는 기술자이다.

“흐음! 이건 한국의 이동통신 업체에 직접 연락하시면 될 일 같습니다만.”

“연락을 했지만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더군요.”

“그럴 리가요? 돈 되는 일이잖습니까.”

“그렇죠. 그런데도 별 흥미를 못 느끼는 듯한 눈치입니다. 기술제휴 의향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도 없습니다.”

한국의 이동통신사들은 돈 되는 일을 외면할 기업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만간 저희가 한국으로 갈 것이니 그쪽과 연결을 지어주셨으면 합니다.”

보아하니 기술까지 완전히 전수받고 싶은 모양이다. 이는 현수가 어찌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발을 뺄 수도 없다.

“알겠습니다. 귀국하는 대로 그쪽과 접촉하여 의향을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은 현수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여기는 듯싶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사람이고 눈부신 성과를 일으키는 직장인의 신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겠는가!

착각은 자유이고, 망상은 해수욕장이다.

통신정보기술부 사람들이 나간 후엔 자키르 하사노프 국방장관과 야바르 자말로프 방위산업부 장관이 동시에 들어왔다. 이들 역시 실무자들과 동행이다.

눈치를 보니 아무래도 로템과 같은 방위사업체와의 연계를 부탁하려는 듯싶다.

“저는 건설회사 직원인데 국방을 담당하시는 분들께서 보자고 하신 이유는 뭐지요?”

“이실리프 상사에서 KAI와 세트렉아이, 그리고 퍼스텍의 주식들을 매집하여 지배주주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상당히 놀라운 정보력이다. 하여 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전능의 팔찌』 39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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