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27화 (926/1,307)

# 927

1장 아제르바이잔의 밤

“저희는 FA―50과 수리온 등 무기를 도입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유럽(E.U.)은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기 위해 중앙아시아로부터 가스 직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환경 파괴와 카스피해의 영토 분쟁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러시아는 지금껏 투르크멘의 가스를 싼값에 산 뒤 이를 유럽에 재판매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겨왔다.

아제르바이잔도 러시아에 하루 300만㎥의 가스를 공급해 왔지만 지난 1월 13일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2013년에는 약 13억 7천만㎥의 가스를 공급했는데 이는 2012년보다 31.5%나 감소한 것이다.

유럽에 파는 것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이를 좋게 볼 리 없다.

불똥이 튀면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러시아에 편입된 것처럼 아제르바이잔 역시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

문제는 전력 열세이다. 이를 극복할 무기 도입이 절실하다. 하여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그런데 무기값을 너무 비싸게 받으려 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비싼 값을 부른 것이다.

2014년 현재, 세계 무기 수출국 서열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것은 좋기는 한데 너무 비싸고, 러시아에선 무기를 도입할 수 없다. 프랑스도 문의해 봤는데 매우 비싸다.

지나의 경우는 가격을 떠나 품질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순위인 한국은 아직 접촉하지 못했다.

하여 이런저런 조사를 하던 중 현수가 KAI 등 방산업체를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업내용공시를 한 때문이다.

줄여서 기업공시라고도 하는 이것은 상장법인의 경영 상태 등 증권시장에서 주가 및 거래량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한 사실이 발생하면 이를 투자자에게 신속·정확하게 공시함으로써 공정거래질서가 확립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증권거래법 등에 따른 의무 사항이다.

지난 2월, KAI는 한국정책금융공사, 현대자동차, 삼성테크윈, 두산, 오딘홀딩스 등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전부가 이실리프 상사 회장 김현수에게 매도되었음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김현수는 KAI의 전체 지분 중 97%를 확보한 절대주주가 되었으며 나머지 지분 역시 추가 매입하여 100%를 확보하면 상장폐지를 할 것이라 발표하였다.

현재는 개별주주와 접촉하여 나머지 주식을 매수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다. 이 일은 민주영이 총괄 지휘 중이다.

KAI는 아제르바이잔이 필요로 하는 FA―50과 수리온 등을 생산하는 업체이다. 그렇기에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은 혹시 있을지 모를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여 K―9구룡 자주포와 K―2 흑표 전차, 그리고 신형 MLRS 천무 다연장포와 K―30 자주대공포 비호 등과, 미사일 현무 시리즈와 신궁 등을 대량으로 구입할 생각을 품었다.

한국의 방위사업청을 직접 방문하는 것과 현수를 통해 매입하는 것을 비교하였을 때 후자가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작년 연말에 한국의 국방장관을 만났고, 방위사업청까지 방문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리지 못한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우려하여 적극적일 수 없었던 것이다.

현수는 천지그룹을 등에 업고 있다. 거의 핵심인물이나 다름없다. 이실리프 그룹은 전대미문한 사업을 펼치는 곳이다.

따라서 한국 내에서 현수의 입김은 상당히 강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기에 만나기를 청한 것이다.

“흐음! FA―50이나 수리온, 정찰용 무인기 송골매 등은 수출을 적극 고려토록 하겠습니다. 나머지는 귀국하는 대로 관련자와 접촉하여 상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니, 아닙니다.”

방위산업부 장관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하지만 이내 말을 끊는다. 기술 이전 문제를 언급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 아제르바이잔은 1991년 10월에 새롭게 세워진 국가입니다. 경제적으로 나아지고는 있지만 완전하진 못합니다. 그리고 소국입니다. 부디 우리의 입장을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기술 이전은 포기할 테니 무기 도입 가격이라도 낮춰달라는 뜻이다.

이 자리에 있는 대통령, 국방장관, 방위산업부 장관은 무기 도입의 최종 결정권자들이다. 그렇기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현수는 일일이 시선을 주었다.

“리베이트를 생각지 않으신다면 생각보다 저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린 그런 걸 생각지도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지요.”

장관들과의 이야기를 마친 현수는 만찬을 함께했다.

친해 두어 손해 볼 사람들이 아니기에 오펜시브 참 마법을 한 번 더 구현시켰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부사장님!”

만찬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자 박진영 과장은 경외에 찬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진심으로 감탄하는 눈빛이다.

구본홍은 거의 공황 상태에 있는 것처럼 멍한 표정이다.

기 계약된 172억 달러짜리 석유화학단지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덩치가 큰 신도시 개발공사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처음 아제르바이잔 건설부 공무원들로부터 서류가 가득 담긴 박스를 받을 때는 이게 뭔가 했다.

약 20여 개나 되었던 때문이다.

그중 영어 가능자가 있어 왜 이런 것을 주느냐고 물었을 때 건설부 공무원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서류는 우리 정부가 계획한 신도시에 관한 겁니다.”

“신도시요?”

“네! 다바치주와 하츠마스주에 걸친 샤브란 평원 일대에 설립되죠. 7,200만㎡ 규모가 될 겁니다.”

“상당하군요. 거기는 베드타운이 되는 건가요?”

베드타운이란 도심에 직장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주거지 역할을 하기 위해 대도시의 교외에 위치하는 도시이다.

“아뇨! 거긴 신 행정도시입니다. 행정뿐만 아니라 관광·문화·레저·의료시설 등 복합기능을 갖춘 친환경 도시로 설계되었습니다.”

나머지 사항을 물어보니 인구 50만 명을 수용할 도시이다. 한국으로 치면 분당의 3.6배 정도 되는 규모이다.

“근데 이 서류들을 왜 저희에게 주시는 겁니까?”

“한국의 천지건설이 이 공사 전체를 맡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답니다. 높은 분들의 결정이죠.”

말을 마친 공무원은 트럭에 싣고 온 서류 박스들을 나르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서류가 담긴 박스를 받던 박진영 과장은 이 순간부터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정확한 금액은 제대로 산정해 봐야 알겠지만 최하가 591억 5천만 달러짜리 공사이다. 이걸 한화로 환산하면 약 71조 원이다.

사전에 아무런 조짐도 없던 초대형 공사를 김현수 부사장은 한 번 만나서 뚝딱 가져온다. 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런 결과가 빚어지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제르바이잔 신도시 개발공사는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완벽한 도시 하나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공사이다.

그런데 리우 쪽 공사도 수주할 것 같은 예감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 강하게 든다.

두 공사 모두를 수주하면 천지건설은 세계 10대 건설사 안에 들어갈 것이다.

큰 사고만 없다면 어마어마한 순이익이 발생될 것이니 직원들에 대한 처우도 많이 좋아질 것이다.

구본홍은 천지기획 소속이지만 본인은 천지건설 소속이다. 이번 건이 확정되면 차장이 아니라 부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수가 공을 나눠줄 것이기 때문이다.

“부사장님!”

“네!”

“오늘 같은 날 술 한잔 없이 되겠습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나가시죠. 근데 이 동네 술 문화는 어떨까요?”

아무리 비싸도, 석 달 치 월급이 한 번이 나가도 오늘 계산은 본인이 하리라 마음먹은 박 과장의 말이었다.

“이곳도 사람 사는 데니 비슷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나갑시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 과장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 나는 표정을 짓는다.

“구본홍 대리, 뭐해요? 어서 부사장님, 모시지 않고.”

“네? 아, 네에. 이, 이쪽으로…….”

아제르바이잔은 국민의 95%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하지만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편이라 종교의식을 하지 않거나 음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다수 있는 등 세속적 종교관이 보편화되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호텔을 나서면서 괜찮은 술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데스크에 있던 사내는 웃는 낯으로 어디 어디가 괜찮으니 어떻게 어떻게 가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나와 보니 막막하다.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때문이다.

사내가 알려준 대로 큰길을 따라 걷다가 꺾으라는 곳에서 꺾었는데 그냥 뒷골목만 나온다.

“으잉? 또 뒷골목이네? 부사장님,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은 거 같은데요? 어디로 가죠?”

“그냥 아무 데나 가봅시다. 거기가 다 거기 아니겠습니까?”

“네에.”

터벅터벅 걸어가던 중 Karavan Sara라는 간판을 보았다.

“저기 식당 같은데 한번 가봅시다.”

“네에.”

열린 문 사이로 양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여기 괜찮겠네요.”

현수와 박 과장, 그리고 구본홍은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아제르바이잔어를 아는 사람이 현수뿐이라 주문까지 책임져야 했다.

한쪽에선 전통음악이 연주되고 있다.

주문한 음식과 술이 나오자 박 과장은 어떻게 하여 신도시 건설에 대한 M.O.U.를 따냈는지 묻는다.

이에 현수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우리가 올바른 마음으로 이곳에 와서일 거예요.”

“올바른 마음이요?”

“삿된 생각 없이 진심으로 대한 결과 같습니다.”

“아……!”

박 과장은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지 나직한 탄성을 끝으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식사는 간단하게 끝났다. 박진영과 구본홍은 곁들인 술로 불콰해져 있다.

“사장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잖습니까? 우리 2차 가요. 네?”

“……!”

큰 공사를 수주하게 되어 기분이 몹시 좋은 듯 상기된 표정이다. 이럴 땐 부하직원의 기를 꺾어선 안 된다.

“나이트클럽이요?”

“네! 스테판 기장님이 머물고 있는 ‘파크 인 바이 래디슨 아제르바이잔 바쿠 호텔’에 나이트클럽 있습니다. 거기 괜찮다는데 한번 가시죠. 네?”

구본홍 대리는 눈빛을 반짝이고 있다. 꼭 가고 싶다는 뜻이다. 현수는 슬쩍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자가용 제트기에 오르는 순간 이후 구본홍 대리의 시선은 오로지 스테파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물론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으니 말을 걸어야 뭐를 해도 한다. 하지만 구본홍 대리는 스테파니와의 대화가 어려웠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파니는 이 중 독일어는 유창하고, 프랑스어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구본홍 대리는 독일어의 아베체데(ABCD)도 모르고, 프랑스어의 아베세데(ABCD) 역시 모른다.

영어는 둘 다 더듬더듬이니 몇 마디 하다 뻘쭘한 표정만 지었을 뿐이다.

현수는 이미 결혼을 했고, 박진영 과장은 이실리프 뱅크 은행장대리 전무이사가 된 김지윤과 연애 중이다.

기장인 윌리엄 스테판 역시 기혼자이니 미혼인 스테파니와 대화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 생각하고 있다. 하여 뭔가 사건을 일으키고 싶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몸매 또한 끝내주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본인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독일어를 배우든지, 스테파니가 배우기 어렵기로 소문난 한국어를 익히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대화는 어려울 듯싶다.

참고로, 한국어는 영어권 외국인이 익히기 어려운 언어 Best 5안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조지훈 시인의 ‘승무’ 같은 시는 10년 동안 한국어 공부에 매진한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얇은 사 하이야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이 시가 전하려는 느낌은 영어는 물론이고 이 세상 어떤 언어로도 번역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스테파니에게 눈길이 가고 마음 또한 움직이지만 하늘같은 사장님인 현수에게 통역을 부탁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대다 이곳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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