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8
가슴속에 뭔가 응어리가 진 기분이다. 그걸 발산시키고 싶은데 그러기엔 나이트클럽이 제격이다.
그리고 심심한 스테파니가 혹시라도 그곳에서 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생각이 든 때문이다.
“네? 사장님!”
“……!”
곁에 있던 박진영 과장은 상사에게 어리광부리듯 하는 구본홍 대리를 제지하려 했다. 그런데 그러다 만다.
이곳에 온 목적은 당도하자마자 별 힘 안 들였음에도 다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본인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놀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까짓것, 갑시다.”
현수는 소위 클럽이라는 곳과 궁합이 좋지 않다. 갈 때마다 사건이 터지곤 했다.
지난해 6월 김수진과 이지혜의 입사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태백호텔 나이트클럽 엑스터시(Ecstasy)를 갔었다.
그때 평화시장을 근거지로 악행을 일삼던 김치성 무리에게 이은정이 봉변을 당했고, 녀석들은 현수에게 혼쭐이 났다.
강남 최고의 나이트클럽이라고 소문이 난 청담동 클럽 제이(Club J)를 찾았을 때에도 시비가 있었다.
이제는 몰락해 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국회부의장 자리에 앉아 떵떵거리던 변의화의 아들 변병도와의 악연이다.
덕분에 하룻밤을 유치장에서 보내야 했다.
모스크바에 갔을 땐 메트로클럽 앞에서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였다. 그 후로 한 번 더 갔을 때에도 이리냐를 보고 ‘노랭이와 붙어먹은 갈보’라는 말을 하던 놈들과 시비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매번 시비가 붙은 건 아니다.
세정파를 조사하기 위해 갔던 월계동 해피클럽에선 H일보 강민경 기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
조경빈, 이현수, 이수정, 이수연은 물론이고 한창호 등과 역삼동 클럽을 찾았을 때에도 별일 없이 잘 놀다 왔다.
하버드 대학 로스쿨 출신인 테리나와 나이트클럽에 갔을 때엔 섹시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했다가 열렬하고 진한 키스를 하기도 했다.
클럽에 갔을 때 벌어졌던 이런저런 일을 떠올린 현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에이, 클럽 징크스 그런 게 어디 있어? 여기선 별일 없겠지. 여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인데.’
아제르바이잔은 멀고 먼 타국이다.
이곳 사람들에게 일행은 여행자로 보일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선 여행자들에게 친절하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현수 일행이 나이트클럽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내려가자 웨이터 차림의 사내가 허리를 숙인다.
“어서 옵셔!”
물론 아제르바이잔어로 한 말이다.
“세 명이구요. 여긴 처음입니다. 좋은 자리 부탁합니다.”
“와아! 외국인이신 거 같은데 우리말 참 잘하십니다.”
현수가 내미는 팁을 받아 들던 웨이터는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
무려 50마나트짜리 지폐였던 때문이다. 이걸 한화로 환산하면 7만 2,500원 정도이다.
현수가 이처럼 큰 액수를 팁으로 준 이유는 아제르바이잔의 물가가 유럽 못지않게 비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 최고의 대접을 받아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부하직원인 박진영 과장과 구본홍 대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혼자 왔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현수처럼 큰 액수의 팁을 주는 이는 매우 드물다. 돈이 많다는 미국인들도 기분이 매우 좋아야 간혹 10달러짜리 지폐를 내밀 뿐이다.
웨이터는 무척 기분이 좋은 듯 연신 뒤돌아보면서 떠든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오늘 물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클럽 입구에 있는 아가씨들을 가리킨다.
“손님! 저기 있는 저 아가씨들의 입장료만 내주시면 같이 노실 수 있습니다. 아! 그렇다고 쟤들이 몸을 판다는 건 아닙니다. 그냥 같은 테이블에서 놀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요?”
“네, 근데 저기 저 아가씨와 저 아가씨는 고르지 마세요.”
“왜죠?”
“쟤들 여기 죽순이에요. 그리고 꽃뱀이기도 하구요. 쟤들 뒤에 마피아가 있어요. 그러니 쟤들은 빼세요.”
웨이터가 나직한 음성으로 해준 말이다. 물론 한국식으로 해석해서 들은 결과이다.
“손님! 제가 좋은 애 추천해 드릴까요? 쟤들처럼 나대거나 흑심이 있어서 온 애들 말고 순수하게 놀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가는 애들이 좀 있습니다.”
말없이 웨이터의 말을 듣던 현수는 박진영과 구본홍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 과장! 구 대리! 저기 있는 아가씨들이랑 부킹해서 놀자는데 의향 있어요?”
“네……? 저, 저는…….”
진영이 먼저 발을 뺀다. 김지윤과 사귀는 걸 모두가 아는데 이곳에서 다른 여자랑 놀았다는 이야기가 그녀의 귀에 들어가면 여러모로 안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머리를 가로저으려 할 때 구본홍이 나선다.
“네, 저는 좋습니다. 고르기만 하면 됩니까?”
구본홍이 눈빛을 빛내며 서성이는 아가씨들 가운데 하나를 고르려 할 때이다.
“어머! 회장님, 여기 놀러가시려구요?”
“아! 스테파니. 그러는 스테파티는 여기에 웬일……?”
“호호! 호텔에서 우연히 친구들을 만났어요. 여기 여행 중인데 같이 놀자고 해서 따라왔어요.”
스테파니의 뒤에는 아가씨 둘이 있다. 둘 다 늘씬한 팔등신 미녀들이다. 미모는 스테파티에 비하면 약간 떨어진다.
“인사드려! 우리 회장님이셔.”
“아,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한 아가씨가 인사를 한다. 당연히 독일어로 말한다. 따라서 박진영과 구본홍은 대체 뭔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회장님! 걔는 미쉘이구요. 얘는 세실이에요.”
“아! 그래요? 만나서 반가워요. 김현수라 합니다.”
가볍게 눈웃음 지으며 고개를 까딱이자 미쉘이 묻는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혹시… 축구선수 아닌가요?”
세실 역시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현수를 살핀다.
현수가 선수도 뛴 한·일 사회인축구팀 간의 경기는 유투브를 통해 이미 전 세계로 번졌다.
그 동영상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호날두와 메시를 애송이로 만드는
축구의 신 지구에 강림하다!
전·후반 경기가 모두 들어 있는 이 동영상의 말미엔 하이라이트 부분만 따로 편집되어 있다.
당연히 현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나온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우와! 정말 기막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진 장면들이다.
미쉘과 세실은 축구경기를 간혹 보는 편이다.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월드컵 경기 정도이다.
반면 남친들은 둘 다 열렬한 축구팬이다.
입소문이 난 현수의 경기를 이들이 어찌 안 보았겠는가!
남친들과 함께 본 현수의 경기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았다. 하여 현수의 얼굴을 기억하기에 확인 차 물어본 것이다.
이때 스테파니가 끼어든다.
“맞아! 일본 축구팀을 아작 내버린 분이셔. 그리고 한국 드라마 신화창조에 카메오로 출연하셨던 분 맞고.”
“아! 맞다. 맞아!”
미쉘이 손뼉까지 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본 모양이다. 이때 스테파니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 회장님은 ‘지현에게’와 ‘첫 만남’을 작사 작곡한 분이시기도 하셔. 놀랐지?”
말을 하며 스테파니는 우쭐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 이런 사람의 자가용 제트기 승무원이야’ 하는 표정이다.
“헐! 정말……?”
“우와, 진짜로? 진짜, 진짜 이분이 그 노래들을 작사, 작곡하셨다고? 축구선수인데?”
미쉘과 세실의 눈이 퉁방울만 해진다.
그룹 다이안이 발표한 두 곡은 전 세계 음악계를 강타하는 중이다.
현재 미국의 빌보드차트 1위는 ‘지현에게’이고, 2위는 ‘첫 만남’이다. 발표된 다음 주부터 현재까지 부동의 1∼2위이다.
유투브 역시 마찬가지이다. 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의 음악차트 역시 1위와 2위는 다이안이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지현에게가 1위이고, 첫 만남은 2위에 랭크되어 있다. 간혹 이게 뒤집힌 나라도 있다.
“아니! 회장님은 축구선수가 아니셔. 엄청나게 커다란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이시지.”
스테파니는 한껏 자랑스럽다는 표정이다.
“헉! 축구선수도 아닌데 그렇게 잘한단 말이야?”
“말도 안 돼! 축구의 신이 어떻게 축구선수가 아닐 수 있어? 너, 뻥치는 거지?”
“아니! 정말 축구선수 아냐. 니들도 신문에서 봤지? 우리 회장님은 IQ는 255로 기네스 세계기록 보유자이기도 해.”
“헐……!”
미쉘과 세실은 멍한 표정으로 현수와 스테파니를 번갈아 바라본다. 방금 들은 말들이 정말 사실이냐는 뜻이다.
그러다 황급히 스테파니 바라본다.
“파니야! 종이와 펜 있지?”
“…그건 왜?”
“사인! 사인을 받아야지. 그리고 이분이 수학 6대 난제를 모조리 풀어내신 그분이지? 맞지?”
“그, 그래!”
“그럼 당연히 사인을 받아야지. 펜! 펜 내놔. 종이도 내놓고. 어서! 어서!”
미쉘의 채근에 백을 뒤지던 스테파니가 꺼낸 건 전화번호를 기록하는 작은 수첩이다. 그런데 작아도 너무 작다. 손바닥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찌이익―!
미쉘은 지저분하게 찢긴 부분을 감추기 위해 얼른 종이를 접고는 손톱으로 몇 차례 문지른다.
“…여기요. 사인 부탁드려요.”
볼펜과 자그마한 종이를 내놓는데 사인할 방법이 없다. 현수라도 허공에서 끄적거리는 기술은 없기 때문이다.
“에구… 여의치 않군요. 조금 있다가 해드릴게요.”
“그, 그러세요.”
미쉘이 머쓱한 표정을 지을 때 현수는 슬쩍 안내하던 웨이터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독일어로 대화를 했기에 웨이터는 무슨 내용을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렇게 떠들 것이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일행 때문에 입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통로 한가운데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갑시다. 우리 때문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어머! 독일어도 정말 유창하셔.”
“그럼 신화창조 티저 영상에 나왔던 게 연습이 아닌 거였어? 그런 거야?”
미쉘과 세실은 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스테파니를 바라본다.
“응! 우리 회장님은 딱 일주일 공부하고 아제르바이잔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시는 분이야.”
“세상에……!”
뭘 더 말하겠는가! 미쉘과 세실은 입은 벌리고, 눈은 크게 떴다. 모든 방면의 천재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때 현수는 웨이터를 바라보고 있다.
2장 클럽 징크스
“아가씨들이 동행할 듯싶은데 안내해 주시겠소?”
“봤지? 우리 회장님의 아제르바이잔어를……!”
“……!”
미쉘과 세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때 웨이터가 입을 연다.
“그럼요! 제일 좋은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일행이 안내된 곳은 플로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2층 좌석이다. 앉아 보니 매우 푹신한 소파였다.
주문을 하고 세팅이 끝날 때까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아제르바이잔어로 대화를 나누니 끼어들기는커녕 알아들을 수도 없었던 때문이다.
“자아! 이쪽은 천지건설의 박진영 과장입니다. 이쪽은 천지기획의 구본홍 대리구요.”
“Hallo! Sie kennen zu lernen.”
“사장님! 무슨 뜻인가요?”
“만나서 반갑다는 뜻입니다.”
“아!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를 독일어로 뭐라고 하죠?”
현수는 피식 웃고는 구 대리를 대신하여 뜻을 전해줬다.
미쉘과 세실은 각자 박진영과 구본홍의 맞은편에 앉아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같은 순간, 스테파니는 플로어에 시선을 주고 있다. 신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회장님! 저 나가서 놀아도 되죠?”
강렬한 비트에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다.
“하하, 그럼요. 얼마든지 놀다 와도 됩니다.”
“야! 우리 나가자.”
스테파니에 이어 미쉘과 세실마저 자리에서 일어서자 박진영과 구본홍도 얼떨결에 따라 일어나더니 플로어로 내려간다.
쿵쾅거리는 음악에 맞춰 흥겹게 몸을 흔드는 사람들 틈으로 일행이 사라진다. 거대한 물결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현수는 잠시 시선을 주고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내 상념 속으로 잠겨든다.
‘흐음, KAI에서 생산하는 걸 파는 건 문제가 없는데 러시아가 문제군.’
아제르바이잔이 매입하려는 무기는 러시아의 공격을 우려한 것이다. 그런데 현수와 러시아 권력의 쌍두마차인 푸틴 & 메드베데프와 밀월관계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