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30화 (929/1,307)

# 930

“안 그러면……? 그래서 어쩔 건데? 야! 이놈 포위해.”

말 떨어지기 무섭게 나머지 사내들이 현수와 스테파니를 에워싼다. 미쉘이나 세실에겐 흥미가 떨어졌는지 구석으로 밀쳐 버린다.

사내의 강한 힘을 견뎌내지 못한 둘이 볼썽사납게 바닥으로 나뒹굴자 박진영과 구본홍이 얼른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이들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춤추던 사람들도 사단이 벌어진 것을 알고는 슬슬 피한다.

그런 사람들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가, 가자! 억시모프 패거리야. 억시모프!”

“뭐어? 어, 억시모프……? 가, 가자! 어서 가!”

억시모프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자 순식간에 플로어의 한 부분이 텅 비어버린다.

“스테파니! 저쪽으로 가 있어요.”

“네? 네에. 그런데 어떻게 해요?”

“내 걱정은 말고 저쪽으로 가요.”

현수의 시선을 받은 구본홍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짝 나서자 사내들이 길을 터준다.

잘 빠진 계집이기는 하지만 감히 행동대장을 건드린 녀석에 대한 처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쉘과 세실 역시 사내들로부터 풀려났다.

박진영과 구본홍은 얼른 아가씨들을 뒤로 빼돌리는 한편 두리번거린다. 공중전화를 찾는 것이다.

클럽 구석, 화장실 입구에 빨간색 전화 부스가 보인다. 황급히 달려간 박진영은 주머니를 뒤진다.

동전을 넣어야 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 당도하여 환전을 하지 않았다.

자가용 제트기에서 내리자마자 바기로프 장관의 영접을 받아서 그럴 여유가 없었던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주머니 속의 동전을 찾아 밀어 넣었다. 500원짜리는 컸고, 100원짜리는 작은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곳 경찰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112, 113, 119, 911이란 번호를 떠올렸지만 그거라는 확신은 없다.

동전이 들어갔지만 통화대기음이 들리지 않는다. 번호를 알아도 소용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철커덕―!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돌아서는 순간 박진영 과장의 눈이 커진다.

플로어에 있던 현수가 위기에 처해 있었던 때문이다. 현수를 에워싼 사내 열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었다.

“아! 안 돼!”

큰 소리를 낸 박진영은 후다닥 달렸다. 비겁하겠지만 뒤통수를 갈겨서 하나라도 숫자를 줄여주기 위함이다.

같은 순간 구본홍 대리는 탁자에 있던 양주병을 움켜쥔다. 그것으로 현수를 공격하려는 자를 후려갈기려는 것이다.

이때 현수의 섬전과 같은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마치 가만히 서 있는 마네킹 사이를 빠르게 움직이며 각기 한 방씩 먹여주는 듯한 모습니다.

퍼퍽! 퍼퍼퍼퍽! 퍼퍼퍽!

“윽! 아악! 켁! 크억! 악! 컥! 케엑! 크윽! 커컥! 으아악!”

순식간에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면 거의 동시에 들린 것 같을 것이다.

콰당! 우당탕! 콰당탕―!

건장한 체구의 사내 열이 거의 동시에 나자빠진다. 달려들던 박진영은 그중 하나에 걸려 엎어질 뻔했는데 간신히 균형을 잡는다. 막 한 녀석의 뒤통수를 갈기려던 구본홍 대리는 움직임을 멈춘 채 놀라운 광경에 시선을 주고 있다.

신 나게 춤추며 놀다가 억시모프 패거리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공간을 비워줬던 손님들 모두 멍한 표정이다.

슈트를 걸친 현수는 전혀 근육질로 보이지 않는다. 다소 호리호리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벗겨놓으면 다르다.

근육의 볼륨은 작은 듯 보이지만 정말 보기 좋은 몸이다.

게다가 일반적이지도 않다. 수차례에 걸친 바디체인지의 결과 평범한 사람들보다 월등한 힘을 내는 근육이다.

방금 전 현수는 각자에게 딱 한 방씩을 먹였다. 훅 아니면 어퍼컷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맨 정신인 자가 없다.

힘 조절 실패로 모두가 기절한 때문이다.

“세상에……! 부사장님, 괜찮으세요?”

“응? 네, 아! 그럼요.”

“대체 무슨 운동을 하신 거예요? 혹시 비전으로 전해지는 무술이라도 배우신 겁니까?”

구본홍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런 건 아닌데……. 이놈들 되게 약하네요. 그냥 툭 친 것뿐인데 다들 왜 이러죠?”

실제로도 툭 친 것이 맞다. 다만 강도가 셀 뿐이다.

조지 포먼(George Foreman)이라는 복싱선수가 있었다. 1949년생이니 올해 65세이다.

조지 포먼은 20살에 데뷔하여 4년 만에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28세 때 은퇴했다가, 38살의 나이에 복귀했다.

이후 홀리필드와의 경기 전까지 24연승을 기록하였고, 45살엔 다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된 선수이다.

복싱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하드펀처로 조지 포먼을 꼽는다.

한동안 링을 장악했던 핵이빨 마크 타이슨도 조지 포먼에겐 한 수 밀리는 것이다.

조금 전 현수의 펀치는 조지 포먼의 전성기 때 그것보다 조금 더 강했다. 힘은 뺀다고 뺀 건데 그러하다.

만일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면 기절이 아니라 몸이 뚫렸을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이니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억시모프 패거리 열 명 모두 플로어에 기절한 채 엎어져 있거나 자빠져 있다.

고막을 울리던 음악도 멈췄다. 클럽 안엔 200명 이상이 있지만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눈앞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억시모프 패거리는 이 구역을 주름잡는 레드마피아 단원이다. 사람들은 시선이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로 악명이 높다.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억시모프도 그렇지만 자빠져 있는 나머지 아홉 명도 결코 만만한 놈들이 아니다. 하루 종일 체육관에서 체력 단련 및 격투기 훈련을 하고 저녁때가 되면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놈들이다.

강도짓은 하지 않지만 가게들로부터 보호비를 뜯고,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끌고 가서 욕심을 채운다.

경찰에 신고해 봤자 소용이 없다. 경찰은 레드마피아와의 마찰을 꺼려한다. 그리고 거의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억시모프는 이 동네의 밤을 지배하는 깡패들의 두목이다. 경찰도 건드리지 못하던 패거리인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동양인에게 맞아 모두가 기절해 있다.

“소, 손님……!”

지배인쯤 되는지 제법 나이 든 사내가 다가와 있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데 몹시 당황한 표정이다.

현수는 정장 차림인 사내에게 당위성을 이야기했다. 국내가 아닌 국외이기 때문이다.

“이놈들은 내 일행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내게도 그러려 해서 어쩔 수 없이 행한 정당방위였습니다.”

“네에, 압니다. 그보다 어서 여길 뜨십시오.”

지배인은 현수와 일행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이다. 혼절에서 깨어난 뒤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근데 이놈들은 대체 어떤 놈들입니까?”

“네? 이놈들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나쁜 놈들입니다. 레드마피아 단원이구요.”

“그렇군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파니에게 서슴지 않고 폭력을 행사했기에 그럴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서 가십시오. 이쪽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지배인이 대기하고 있던 웨이터들에게 손짓을 하자 일제히 달려들어 놈들을 끌고 간다.

대부분 덩치 큰 녀석들이라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지배인은 두 손을 비비고 있다.

불안 초조함을 나타내는 몸짓이다.

지금이야 기절한 상태이니 별문제가 없지만 녀석들이 깨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좀 앉겠습니다.”

“그냥 가시는 것이…….”

현수가 말을 이으려는 지배인을 보고도 몸을 돌려 테이블로 돌아가자 나머지 일행 역시 따른다.

“고마워요! 회장님.”

“고맙긴… 내 일행이니 당연히 내가 보살펴야지.”

“죄송해요.”

“죄송하긴……. 놈들이 잘못된 거지 스테파니에겐 잘못 없어요. 그러니 마음 편히 먹어요.”

둘이 대화하는 동안 다시 음악이 터져 나온다. 싸움은 싸움이고 영업은 영업이기 때문이다.

“손님! 지배인께서 어서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계산은 안 하셔도 된다고 합니다.”

처음 현수를 안내했던 웨이터가 한 말이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레드마피아 단원이라고 했죠?”

“네! 억시모프 패거리라고 이 구역을 장악한 레드마피아의 행동대원들 맞습니다. 아주 나쁜 놈들이죠.”

“흐음! 나쁜 놈들이라.”

“네! 그러니 얼른 떠나는 게 좋을 겁니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아주 지독한 놈들이거든요.”

“흐음! 레드마피아라.”

현수가 나직이 중얼거릴 때 박진영과 구본홍의 안색은 창백해지고 있다.

현수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을 때 레드마피아가 어떤 조직인지 알아본 바 있기 때문이다.

레드마피아가 있는 곳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들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안 그러면 업무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구 소련에 속했던 나라 거의 대부분이 이러하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와 계약한 공사라 할지라도 일정 부분은 그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안 그러면 자재수급이랄지 노동자 확보 등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엔 공사현장으로 가는 길조차 여의치 않을 수 있다. RPG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조직원들이 노리는데 어찌 진입할 수 있겠는가!

이런저런 내용을 알기에 박진영과 구본홍은 얼른 도망가야 한다 생각했다. 천지건설 직원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기 계약된 유화단지 공사부터 난항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 사장님! 가, 가시죠.”

“네! 얼른 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말을 마친 박진영은 스테파니에게 시선을 준다. 어서 소지품을 챙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쩌죠? 제가 이 호텔에 투숙한 걸 알아요.”

억시모프가 스테파니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을 때 외국인이라는 걸 들켰다. 아제르바이잔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던 때문이다. 하여 더듬거리며 영어로 물었다.

한국 사람들도 흔히 쓰는 표현이다.

“Hey! Miss. Where are you come from?”

이 물음에 스위스라 대답하자 여행을 왔느냐고 물었다. 하여 고개를 끄덕여주자 어느 호텔에 머무느냐고 물었다.

이에 스테파니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나이트클럽이 있는 이 호텔이라는 뜻이다. 이는 호텔의 보호를 받는다는 뜻이니 함부로 굴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빚어질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방금 스테파니가 무슨 말을 했는지 현수에게 물었던 박 과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걸 왜……?”

레드마피아가 들이닥쳐 투숙객 명부를 보자고 하면 호텔에선 거절치 못할 것이다. 안 그러면 심각한 영업 방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이 호텔을 떠도 스테파니가 현수의 자가용 제트기 승무원이라는 건 파악될 것이다.

“어떻게 해요?”

“괜찮아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현수는 스테파니에게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박진영에게 시선을 준다.

“박 과장! 스테파니와 친구들을 호텔까지 안내해 줘요.”

“네? 어, 어쩌시려구요?”

“여기 일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여기 장관님들과 통화를 해서라도 해결을 볼 테니, 어서 가요. 어서요. 놈들이 오면 몸을 빼는 것도 여의치 못할 수 있으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일행 모두가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현수는 억시모프 패거리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부탁했다.

3장 보는 눈이 없으니 그렇지

웨이터는 몹시 불안해하면서도 현수를 내실로 안내했다.

“여깁니다. 지금쯤 깨어났을 겁니다.”

“알았어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가서 일 보세요.”

“그래도 어떻게……?”

제법 팁을 많이 줘서 그런지 웨이터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이다.

“아까 봤잖아요. 이런 녀석들 다루는 데 이골이 났으니 걱정 말고 가서 일 보세요.”

말을 마친 현수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혼절에서 깨어나 어찌 된 영문인지 생각하던 억시모프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어라! 너는……?”

벌떡 일어나 한바탕하려던 억시모프는 일행 전부가 현수에게 당했음을 상기하고는 말끝을 흐린다.

“내게 맞은 게 억울해? 억울하면 기다려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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