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32화 (931/1,307)

# 932

조금 전에도 ‘보스’라는 호칭을 썼고 지금도 그러하다. 확실하게 현수를 윗사람 대접하는 것이다.

“억시모프에게 나이트클럽으로부터 받는 보호비를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건 보스의 뜻대로 될 겁니다.”

왜 그랬느냐는 물음조차 없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러시아에선 음지의 조직이 차츰 양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드모비치 쉐리엔과 드모비치 모터스, 그리고 지르코프 상사가 요즘 호황이라 하더군요.”

압둘라이에프는 잘 안다고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마피아가 무슨 살 빼는 약과 자동차, 그리고 옷을 파나 싶었다.

그런데 내용을 알아보니 무기밀매나 마약밀매, 인신매매, 고리대금업보다도 훨씬 낫다. 게다가 떳떳하기까지 하다.

쉐리엔은 유럽 전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다이어트 보조제이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살을 빠지게 하니 여자들이 환장을 한다. 하여 결혼 예물로 쉐리엔을 주는 집도 있다.

허리가 ‘배둘레햄’이 된 사내도 많이 찾는다. 운동하지 않아도 살이 빠지니 너도나도 사서 모으는 지경이다.

조만간 품절 사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드모비치 모터스에서 판매하는 스피드는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은 초경제적 자동차이다.

대량생산이 개시되면 세계 TOP 1의 자리를 갖게 될 것이며, 국제 유가를 하락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이다.

결코 저렴하지 않음에도 없어서 못 판다. 소문에 의하면 현재는 계약 후 1년을 대기해야 차를 받을 수 있지만 이 기간은 점차 늘어날 것이라 한다.

파는 사람 입장에선 엄청 남는 장사일 것이다.

지르코프 상사에서 파는 항온의류는 압둘라이에프 본인도 몇 벌 가지고 있다. 효능은 이미 체험했다.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면 무조건 사려고 벼르는 중이다.

정식으로 들여온 것이 아니라 노보로시스크나 모스크바 같은 러시아 대도시를 다녀온 사람들이 보따리 장사처럼 가져다 파는 것이다.

이것 역시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다.

압둘라이에프는 음지보다는 양지가 낫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음지에 머무는 중이다.

그렇기에 러시아의 조직들이 몹시 부러웠다.

자세히 알아보니 이 모든 것의 배후엔 김현수가 있다. 세계 최고의 IQ를 가진 사람이며, 축구의 신이다.

게다가 웬만한 나라보다도 큰 자치령을 몇 개씩이나 가진 사람이다.

러시아에선 밤의 황제 이바노비치의 사위이며, 낮의 제황인 푸틴과는 막역한 친분이 있다.

실세 총리 메드베데프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맺어진 인연이라 전폭적이다 못해 가족처럼 대한다고 했다.

압둘라이에프 본인은 아제르바이잔의 조직 전체를 장악하고 있지만 현수와 견줄 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현수에게 선을 댈 수만 있으면 음지를 탈출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듯싶다. 하여 만날 수만 있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 때문이다.

압둘라이에프에게는 딸이 셋 있는데 남자친구를 가져 본 적이 없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때부터 그러하다.

아빠의 신분을 알게 되면 도망가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레드마피아의 조직원들은 가난하고, 무식하며, 무지하다. 하여 엄청 잔인한 일을 많이 저질렀다.

팔다리를 자르거나 수급을 베어 배달시킨 적도 많다.

심기를 거스르면 그런 잔인함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누가 접근하겠는가!

아예 접근부터 차단하는 것이 상수이다. 하여 압둘라이에프의 세 딸은 철저히 왕따당하고 있다.

조직원들을 보내 은근한 위협도 해보았지만 상황만 더 악화되었을 뿐이다.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계집아이들조차 딸들과 거리감을 유지하려 모두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고등학생인 큰딸은 졸업 후 쓸 만한 녀석을 만나 결혼도 해야 하는데 골치가 아프다. 딸과 평생을 같이하겠다는 녀석이 없을 것 같아서이다.

그렇다고 무식한 조직원들에게 딸을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딸 가진 아빠가 다 그러하듯 진짜 괜찮은 녀석과 짝 지워 주고 싶지만 어둠 속에 있는 한 요원한 일일 것이다.

어쨌거나 오늘 억시모프 패거리로부터 연락이 있었다.

본인이 직접 통화한 것이 아니라 밑에 있는 놈이 받은 전화이다.

평상시엔 매달 한 번 상납금을 보낼 때만 통화를 했었다.

전화를 건 억시모프는 지르코프라는 놈이 어디서 뭐하는 자식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자신조차 쩔쩔매야 하는 인물을 찾았다는 말에 깜짝 놀라 무슨 상황인지를 확인토록 했다.

그런데 아주 황당한 보고를 받았다.

본인이 장악하고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일반인과 시비가 붙었고, 조직원 전부가 기절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해 보자 지르코프보다도 서열이 높은 사람과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벌였다.

당연히 대경실색할 일이다. 다행히도 억시모프 패거리가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고 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례의 정도가 그마나 경미하다 생각한 것이다.

압둘라이에프는 본인이 뵈러 갈 것이니 절대 무례히 굴지 말고 있으라고 하곤 후다닥 달려온 것이다.

현수는 압둘라이에프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늠해 보았다.

겸손 떨고 있지만 한 조직의 수장이다.

함부로 거동하지 않으니 같은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끼리 인사나 하러 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여 의향을 떠보려 말을 걸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스도 음지보다는 양지쪽이 낫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들었습니다.”

동감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천지건설이 이곳에서 큰일 몇 개를 수행할 겁니다.”

압둘라이에프는 머리가 좋아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얼른 고개를 숙인다.

“무엇이든 전폭적으로 돕겠습니다.”

“많은 일꾼이 필요할 것이고,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도 많이 있어야 합니다.”

조폭더러 현장 일을 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니 조직에서 사람 다루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맡겨만 주시면 잡음 없이 공사가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압둘라이에프의 표정은 밝아졌다.

어쩌면 딸이 평범한 사내와 결혼하는 모습을 곧 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비아니 아자한은 환히 웃는 낯으로 현수를 맞이했다.

“차를 준비했습니다. 이쪽으로…….”

“네, 감사합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정중한 안내를 받아 가는데 뒤따르던 박진영 과장이 나직한 음성으로 묻는다.

“그런데, 부사장님! 저분은 누구신지요?”

“에티오피아 대통령님의 비서실장이에요.”

“네에? 뭐라고요?”

놀란 나머지 음성이 다소 높았기에 앞서 가던 비아니 아자한이 뒤를 돌아보며 왜 그러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대통령 비서실장께서 직접 공항까지 나오셨다고 하니 이 친구가 몹시 놀란 모양입니다.”

둘의 대화는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이다.

당연히 박진영과 구본홍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렇기에 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박 과장이 놀랐다고 하니 웃는군요.”

실제로 비아니 아자한 비서실장은 환히 웃고는 다시 앞장을 섰다.

전에는 국정의 대부분을 총리가 도맡았다. 정치구조로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허울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리였다. 그러니 여러 국빈이 방문했어도 대통령 비서실장이 관여할 일이 없었다.

어쨌거나 비아니 아자한이 이렇듯 직접 걸음을 한 이유는 대통령이 권력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현수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높아지는 중이다. 이전엔 천지약품이 진출하여 의료분야에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는 역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미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조차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웃 나라인 콩고민주공화국이 선례를 보였기에 의회승인 절차 때에도 치열한 설전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 결정적 이유는 현수 때문이다.

국무회의 의결 직후 ‘코리안 빌리지의 성자’가 에티오피아의 발전과 안녕을 위해 초대형 농장을 설립하려 한다는 소문이 번졌다. 누군가가 회의 내용을 발설한 것이다.

독재를 일삼던 멜레스 제나위 전 총리가 죽은 후 대통령은 빠르게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곤 의원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정치구조를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를 일삼던 의원과 관료들은 대거 떨려 나갔다.

구조적 문제가 있던 부분은 혁파되고 있으며, 진취적인 의견을 받아들여 날마다 새로운 과업이 생겨나는 중이다.

처음엔 야당 인사들도 환영했다. 눈에 가시 같던 부정부패한 놈들을 발본색원하는데 어찌 싫다 하겠는가!

하지만 의원 및 고위직 관료 중 거의 절반이 잘려 나가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전 총리인 제나위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그 자리를 기르마 올데 기오르기스 대통령의 사람들로 채워 넣는 것으로 보인 때문이다.

곧 새로운 독재가 시작될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여 환영하던 태도를 바꿔 하나하나 따지는 야당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의혹이 있는 부분은 철저한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때론 개혁에 대한 반대의견을 내놓고 격렬한 성토까지 행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외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국가개조를 가속화하는 중이다.

반대 여론도 일리가 있지만 일일이 논리적인 설명을 하고 일을 진행하려다간 임기 내에 개조작업 완수가 힘들다 여긴 때문이다.

어쨌거나 요즘의 에티오피아 정국은 날카롭게 대립하는 형국이다.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많은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슬쩍 국무회의 내용을 흘렸다.

언론은 물론이고 야당 또한 이실리프 그룹에 아와사 지역을 200년간 조차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이견을 내지 않았다.

코리아 빌리지의 성자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반대하면 야당은 서민 및 극빈층의 표를 거의 모두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4장 더 넓혀진 행보

현재 현수와 이춘만 사장은 에티오피아 국적도 가지고 있다. 명예국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다. 따라서 내국인에게 조차지를 부여하는 형식이 되었음에도 반대 의견을 안 낸다.

현재 에티오피아의 도시 내 실업률은 무려 70%나 된다. 10명 중 7명이 직업이 없어 놀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가난한 이가 널려 있다.

이실리프 자치령이 들어설 경우 실업률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자치령에 고용되는 인원도 많겠지만 아와사―아디스아바바 간 4차선 고속도로 공사와 아와사―베르베라 간 표준궤 철도공사만으로도 엄청난 고용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혜택을 받는 이는 대부분 서민 내지 극빈층일 것이다. 그러니 야당은 반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기르마 올데 기오르기스 대통령은 현수와의 관계를 국정에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수를 앞장세워 반대 여론을 잠재우는 방패막이로 쓸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현수의 위상이 대폭 상승하여 비아니 아자한으로 하여금 공항에서 영접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현수는 볼레 국제공항 한편에 준비된 벤츠에 몸을 실었다. 보아하니 의전용 차량인 듯하다.

선두엔 에티오피아 국기를 단 오토바이 두 대가 달리고, 전후좌우에 각기 한 대씩 경호차량이 달린다.

후미에도 네 대의 오토바이가 따르고 있다.

두 번째 차량은 박진영과 구본홍이 탄 벤츠이고, 현수는 세 번째 차량 뒷좌석에 있다.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네! 제가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죄송합니다. 가급적 빨리 왔어야 하는데……. 늦은 건 아니죠?”

“그럼요, 그럼요! 대통령님이 조금 기다리신 것만 빼면……. 만나시면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사실은 언제 오시나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아! 네에. 죄송합니다. 꼭 사과의 말씀드리겠습니다.”

“에구, 사과까지는 아닙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시니 대통령님도 이해는 하십니다. 그나저나…….”

비아니 아자한 비서실장은 그간에 있었던 일들과 현재의 상황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은 지난 2월 2일이다.

그때 시라즈 페게싸 셰레파 국방장관은 현수에게 한국산 무기 수출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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