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34화 (933/1,307)

# 934

“박 과장! 우리가 낸 견적 기준이 뭐였지요?”

“네! 부사장님께서 수주하신 킨샤사―비날리아 간 고속도로 공사에 준한 견적입니다.”

“그럼 과한 금액은 아니겠군요.”

“과하지도 않지만 그리 박하지도 않은 금액입니다.”

박진영은 당연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 현수의 뇌리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공사를 하다 보면 돌발적인 상황이 빚어지곤 하는데 그것도 대비한 금액인 건가요?”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너무 싸면 남는 게 없을 텐데.”

“그건 아닙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시된 가격엔 적정한 이윤이 붙어 있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참! 견적실장님이 말씀하시길 에티오피아에서 더 많은 공사를 수주할 수만 있다면 기존에 반입시킨 장비 등을 재활용할 수 있으므로 같은 단가로 다른 공사를 수주하더라도 더 많은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현수와 진영은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났을 때 다시 회의장으로 들어가자는 신호가 왔다.

현수는 다시 단상 앞에 서서 아와사―아디스아바바간 4차선 고속도로 공사에 대한 개요를 설명했다.

아까와 달리 건설부 직원들의 질문이 상당히 많았다. 그것에 대한 답변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고속도로에 대한 설명을 모두 마쳤을 때 건설부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공사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관은 메모해 놓은 것을 들여다보곤 입을 연다.

“우선 공사비의 타당성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우리는 천지건설 이외에도 지나의 두 업체로부터 고속도로 신설공사에 대한 견적을 받은 바 있습니다.”

“네에! 의당 그리하셨어야 하지요, 이해합니다.”

한두 푼 드는 공사도 아니고, 국가의 예산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큰 공사를 자력으로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면 국제입찰에 붙이는 것이 관례이다. 그리고 공정한 잣대로 심사하여 가장 적합한 업체에 맡기는 것이 올바른 행정이다.

그런데 이번 공사는 천지건설에 주는 것으로 이미 내정되어 있다. 이실리프 그룹이 자비를 들여 아와사 지역 전체를 개발하고, 그 결과인 산물의 50%를 에티오피아 정부가 우선 수매할 권리를 받는 등의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공사는 주었지만 부르는 값을 다 치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하여 공사비 타당성을 확인하려 지나의 건설사들을 이용한 것이다.

그걸 모르기에 지금도 지나의 A와 B 건설사는 건설부 관료들은 물론이고, 의원들에 대한 로비를 하고 있다.

또 하나의 막대한 이익을 위한 것이다.

기오르기스 대통령은 의회에서 조차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고속도로와 철도공사에 관한 것도 발언했다.

한국산 무기도입을 의뢰했음도 탁 까놓고 말했다.

감추고 자시고 할 게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야당에서는 이번 공사로 어떤 놈 주머니로 얼마나 많은 액수가 흘러들 것인가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게 지금까지의 관례였으니 이번에도 의당 그러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여 지나의 건설사들이 제안한 공사비 내역을 은밀히 확보한 상태이다. 천지건설과 계약하고 나면 차액이 얼마인지 확인해 볼 요량인 것이다.

“천지건설은 이 공사를 수행함에 있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추가로 설계변경을 요구하거나 노선변경을 하지 않을 것인지부터 확인하고 싶군요.”

건설부 장관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지나의 건설사들은 공사가 시작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수정을 요구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공사비는 조금씩 늘어났다.

그 결과 1,000만 달러짜리 공사가 준공 후 정산해 보면 1,500만 달러짜리로 둔갑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결과를 보면 처음과 그다지 달라진 것도 없는데 돈은 50%나 더 들어간 것이다. 천지건설 역시 같은 동양 회사이니 혹시 이러하지 않을까 싶어 물은 것이다.

“저희는 에티오피아 정부에서 요구하지 않는 이상 가급적 원안대로 공사할 것입니다. 가장 적합한 노선으로 결정되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건설부 장관은 재차 다짐이라도 받으려는 듯한 눈빛이다. 이에 현수는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다만 저희가 현지를 일일이 방문하여 노선을 결정한 것이 아니므로 공사구간 중 절벽 또는 호수가 있을 경우 적당한 선에서 우회하는 노선변경 또는 교량 추가 정도는 요청드릴 수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특별한 경우라면 우리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때에 따라 양보해 줄 수 있다는 뜻의 발언이기에 현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때 건설부 장관의 발언이 이어진다.

“그럼, 조금 전에 말씀하신 금액으로 공사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죠. 솔직히 말씀드려 저희가 견적을 의뢰한 두 업체로부터 받은 가격보다 천지건설의 것이 너무 저렴해서 그런 겁니다.”

안 봐도 뻔하다. 지나건축공정총공사와 같은 회사로부터 견적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수행하는 공사는 오로지 눈앞의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수와 천지건설은 다르다.

에티오피아는 점점 발전해 가는 중이다. 따라서 조금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는 것이 결과적으론 더 이득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교류의 물꼬를 트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하였기에 합당한 공사비를 제시한 것이다.

“으음! 저희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저희가 공사비를 산출할 때에 에티오피아의 상황을 고려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에티오피아는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 때 전투병력을 파견해 준 바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배석 인원 전부 현수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느닷없는 전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발언은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셀라시에 황제께서는 칵뉴(Kagnew) 부대에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Fight until win, or die)’라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아주 유명한 말이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칵뉴부대는 253번의 전투에 참여하여 253승을 거두었습니다. 참전국 16개 국 중 유일하게 포로가 없었던 용맹스러운 부대이지요.”

대놓고 하는 칭찬이 분명하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좋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자부심 가득한 표정이 된다.

“모두 6,037명의 보병이 참전하였는데 이 가운데 123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장렬히 전사하시고 부상당하신 분들에 대한 은혜를 저희가 어찌 잊겠습니까?”

“……!”

이번에도 아무런 말이 없다. 모두들 속에서 울컥하는 기분이 든 때문일 것이다.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휴전협상 막바지에 미군 포병대가 하루에 7만 7,000여 발의 포탄을 발사한 ‘폭 찹 힐(Pork Chop Hill)’ 전투가 있었습니다. 세계대전 사상 어느 전투보다도 치열한 포격전이었습니다.”

대통령 등 일부는 이 내용을 알고 있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보낸다.

“당시의 전투는 중공군과 벌인 것입니다. 그 전투에 자랑스런 칵뉴부대가 참전했었지요. 그리고 많은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중공은 지금의 지나입니다.”

“……!”

모두들 정신이 번쩍 든다는 표정이 된다. 지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새삼 느껴지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천지건설은 대한민국의 건설사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중공군과 끝까지 맞서 싸웠던 에티오피아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쏠린다,

현수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지고 있었던 때문이다.

잠시 말을 끊었던 현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뜻이다. 그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 공사를 수행함에 있어 회사의 이익보다는 에티오피아의 발전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 말씀드린 공사비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크게 남는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수행 의지가 있습니다.”

현수가 잠시 말을 끊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곤 말없이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짝, 짝, 짜짝! 짜짜짜짜짝! 짜짜짜짜짜짜짜짜짝!

“……!”

현수는 모두에게 시선을 주곤 다시 한 번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진심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주었던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한 것이다.

박수 소리는 한참을 이어졌다.

모두가 상기된 표정이지만 박진영과 구본홍은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가늠하느라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있다.

휘이익! 휘이이익―!

누군가의 휘파람이다. 손가락을 입에 넣고 내는 소리이다. 현수는 그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언제 당도했는지 의무부장관 로마우 바이할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전의 연설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는 뜻일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착석하자 건설부 장관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선다. 상당히 상기된 표정이다. 방금 전 현수의 연설이 장관의 마음을 건드린 듯하다.

5장 이간질은 이렇게!

“천지건설이 이 공사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주무장관인 저는 아무런 이견도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천지건설에서 제시한 공사비는 지나의 건설사들로부터 제안받은 금액의 57.2%밖에 되지 않습니다.”

“……!”

모두들 정말이냐는 표정으로 건설부 장관을 바라본다.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 건설부에서 흘러나온 의견은 천지건설의 공사비가 지나 건설사들에 비해 약간 높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나에 비해 물가 및 인건비 등이 비싸므로 그럴 것이라는 것이 이 의견의 배경이었다.

따라서 공사비를 지나에서 제안한 수준 이하로 깎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금액의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라니 모두가 놀란 것이다.

이때 건설부 장관의 발언이 이어졌다.

“반대로 비교해 보면 지나의 건설사들은 천지건설보다 75%나 더 비싼 공사비가 있어야 공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건설되고 있는 공사 중 상당수가 지나의 건설사들이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 전부 엄청난 바가지를 쓴 거라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건설부 장관의 발언이 이어진다.

“저는 우리 칵뉴부대에게 포격을 가해 부상과 사망을 경험하게 했던 중공이 지나의 전신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

장관의 발언은 향후 지나의 건설사에게 일을 맡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만 끄덕인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장관의 뜻에 동조한 것이다.

현수는 잠시 마음의 진정이 이루어지도록 시간을 두었다.

“험험! 다음은 아와사―베르베라 간 철도공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총연장 약 1,500㎞짜리 이 공사는 표준궤로 설치될 예정입니다. 광궤와 표준궤, 그리고 협궤는…….”

잠시 광궤, 표준궤, 협궤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건설부 직원들은 열심히 받아쓰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스크린에 비춰진 여러 자료에 시선을 주고 있다.

“저희가 예상한 노선의 총사업비는 약 76억 2천만 달러로 예상합니다.”

공사비 이야기가 나오자 건설부 장관이 또다시 일어선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을 마치곤 또 건설부 직원들을 부른다. 우르르 몰려들더니 뭔가를 확인한다.

아프리카 국가인 지부티의 수도 지부티로부터 아디스아바바까지 약 740㎞짜리 레일 부설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이 공사는 이미 지나의 지나토목공정이 맡았으며 2015년 10월 개통 예정이다.

총사업비는 40억 7천만 달러이며, 이 중 70%는 지나 수출입은행의 차관으로 충당하기로 되어 있다.

지금껏 그래 왔듯 향후 설계변경, 노선변경, 공법변경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사업비는 60억 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