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6
갑론을박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현수에게 시선을 준다.
“이 자료를 얻은 곳이 지나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누가 염탐을 했고, 누가 살인 행위를 했는지는 불명확합니다. 이런 걸로 지나를 압박해 봤자 모르쇠로 일관할 것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
에티오피아가 같은 입장이라도 그랬을 것이기에 모두가 다음 말을 이으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저도 에티오피아 국민 중 하나입니다.”
“……?”
정말이냐는 표정을 짓는 이들이 있자 내무장관이 나선다.
“대통령님과 의무부장관께서 의약개혁을 위해 진출하는 천지약품이 외국인 기업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우리 국적을 부여한 바 있습니다.”
현수는 부언 설명을 해준 내무장관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예를 갖춘 후 말을 이었다.
“지나는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하여 많은 부와 자원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지나인들과의 협력관계를 단절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꾼 바 있습니다.”
모두들 알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지나가 차지하려던 거의 모든 자리가 한국 기업들에게 돌아갔다.
그 중심에 현수가 있고, 천지그룹을 위시하여 백두그룹 등이 진출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나인들과 달리 원주민과의 친화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지나 정부에 항의해 봐야 사실을 알아보겠다는 대답을 할 것이고, 결과는 밝혀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항의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현수의 말이 끝나자 하나둘 착석한다. 분위기는 금방 바뀌었다. 모두가 하던 말을 계속하라는 표정이다.
“지나와의 관계를 어찌할 것인지는 대통령님을 비롯한 각 부 장관님들의 의중대로 처리하시면 될 듯합니다. 그럼, 아까 드리려던 말을 이어서 하겠습니다. 저희는…….”
현수는 에티오피아 영토 남동쪽 끝부분에 위치한 오가덴 지구대의 유전을 개발하여 그곳에서 얻은 원유로 공사비를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4년 현재,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는 배럴당 106달러, 북해산 브렌트유는 110달러, 두바이유는 108달러 정도 된다.
이것들의 평균은 배럴당 108달러이다.
그런데 8,000㎞짜리 초대형 철로공사의 금액은 412억 달러이다. 이걸 전부 원유로 지불하려면 약 3억 8천만 배럴을 줘야 한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4억 배럴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오가젠 지구대의 유전에 과연 그 정도의 원유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시추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도에 표시된 곳은 유전 가능성이 있다는 표시만 있을 뿐 추정 매장량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가덴 유전엔 약 12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건 지나인 기술자의 의견이기에 빼버린 것이다. 잘못된 추정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유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오가덴 지구대의 위치는 시벨리(Shibeli)강 동쪽에 위치한 웨르데르(Werder) 인근지역이다. 소말리아 영토와 가깝다.
이 유전의 소유권은 에티오피아 정부에 있지만 공사비가 완납될 때까지 천지건설이 원유를 가져가기로 한 것이다.
유전 개발비용은 당연히 에티오피아 정부 부담이다. 소유주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사는 천지건설이 하게 된다.
“만일 원유가 예상보다 적으면 어찌할 것입니까?”
경제부 장관의 물음이었다.
“다른 유전을 추가로 개발하여 원유로 주셔도 되고, 다른 지하자원으로 지불하셔도 됩니다.”
“그럼, 구리와 아연도 괜찮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면 외환 부담 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 즉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간의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다.
한참 후 모두가 잠잠해지자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늘의 제안은 국무회의와 의회 의결이 필요한 일입니다. 조만간 결정하여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의 설명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수가 정중히 허리를 숙이자 배석한 인원들 모두 일어나 맞절을 한다.
잠시 후, 현수는 자리를 옮겨 대통령 및 몇몇 장관과 마주 앉았다.
“아와사―베르베라 간 철도공사와 아와사―아디스아바바 간 고속도로 공사는 제시한 금액을 깎지 않는 대신 최상의 품질이 나오도록 천지건설에서 맡아서 잘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최상의 공사품질이 나오도록 각별히 유념하여 정밀 시공토록 하겠습니다.”
건설부 장관과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다. 천지건설에서 제안한 금액에 공사를 준다는데 뭘 더 말하겠는가!
“전에 주문한 백신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마우 바이할 의무부장관의 물음이다.
“아마 곧 도착할 겁니다. 항공편으로 보낼 겁니다.”
“항공운송이라니요? 운송료가 많이 들겠군요.”
“많은 양을 주문하셨으니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태을제약은 홍역과 말라리아, 그리고 콜레라 백신 3,000만 명분을 수송하려 보잉 747―8F를 전세 낸 바 있다.
날개 너비가 68.5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 화물기이다.
이건 한번에 134톤까지 화물을 실을 수 있다. 당연히 많은 비용이 들지만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고맙군요. 김현수님 덕분에 접종시기를 당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로 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비행기로 오면 길어야 이틀이다. 빨리 도착하면 할수록 좋지만 비싼 항공운송을 요구할 수 없었는데 간지러운 곳을 긁어준 느낌이라 기분이 좋은 듯 환히 웃는다.
“참! 천지약품 소매약방 선정에 잡음이 조금 들리더군요.”
“그래요? 확인해서 조치토록 하겠습니다.”
소매약방은 차리기만 하면 돈이 벌린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이미 입증된 사실이기에 너도나도 신청을 하면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먹고살 만한 사람이 많은 곳의 수익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하여 서로 부촌(富村)에 내겠다는 신청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천지약품 소매약방은 일종의 지역 총판개념이다.
하여 공무원, 경찰, 군인, 정치인 등의 압력이 상당하다. 서로 자기 가족 내지 친척이 유리하게 하려는 것이다.
“소매약방 허가권한은 전적으로 천지약품에 위임했습니다. 그러니 원칙대로 배정하십시오. 잡음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으면 명단만 통보만 해주시구요.”
로마우 바이할 의무부장관은 살짝 열 받은 표정이다. 부끄러운 곳을 들킨 기분인 것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준비된 만찬을 대통령과 함께하고 호텔로 향했다. 현수가 탄 차 주위는 경호원 12명이 탄 차들이 따른다. 거의 대통령에 준하는 경호를 받는 것이다.
현수의 곁에 앉은 박진영과 앞좌석의 구본홍은 현수를 볼 때마다 그룹회장 바라보듯 극진한 눈빛이다.
오늘 둘은 현장에서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살폈다.
모두가 암하라어로 나눈 대화이기에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갔는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몇 가지 분명한 건 있다.
첫째는 현수가 40,000㎢에 달하는 조차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곳은 향후 이실리프 자치령이라 불리며 200년간 치외법권 지역으로 유지될 예정이다.
크기는 대한민국 영토의 절반에 육박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이 개인에게 개발권이 넘어간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그런데 110억 달러짜리 아와사―아디스아바바 간 4차선 고속도로 신설공사와 76억 2천만 달러짜리 아와사―베르베라 간 철로 부설공사가 원안대로 확정된다고 한다.
합계 186억 2천만 달러짜리 공사가 치열하게 밀고 당기는 네고(Negotiation)도 없이 단번에 결정된 것이다.
추가로 제안한 총연장 8,000㎞짜리 철로 부설공사 역시 천지건설이 수주할 확률이 매우 높다.
총액 412억 달러짜리 공사이다.
이것까지 합산하면 에티오피아에서만 무려 598억 2천만 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공사를 수주하게 되는 것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71조 원이 넘는 금액이다. 그런데 이게 결정되면 유전개발 공사까지 자동으로 따라온다.
적어도 10억 달러 이상짜리 공사는 될 것이다.
유전개발은 특성상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유전을 확보할 때까지 많은 돈이 든다. 20억 달러를 쓰고도 기름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2013년 10월 성공만 하면 4억 배럴을 가져올 수 있다던 유전을 탐사한 바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이남광구’였다.
대한민국의 1년 원유 도입량이 약 9억 배럴이니 성공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탐사는 막대한 비용만 들인 채 실패로 끝났다. 투자한 돈 전부를 날린 것이다.
그런데 현수는 오가덴 지구대에 원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성공 가능성을 100%라고 장담하고 있다.
근거가 뭐냐고 물었지만 유전에 관한 온갖 기술과 용어만 들었을 뿐이다. 골치가 아파진 둘은 세계 최고의 두뇌를 가진 사람이니 뭔가 특별한 수가 있나 보다 했다.
6장 원유 시추 100% 성공 비법
현수는 원유 시추에 앞서 땅의 최상급 정령 노에디아를 불러낼 생각이다. 그리곤 어디를 얼마만큼 파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하라고 명령한다.
땅의 최상급 정령이니 유전에 관한 몇몇 특성만 이야기해 주면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유전개발에 성공하면 나머지 지역에 관한 조사를 지시한다. 그리곤 하나하나 빨대를 박고 쭉쭉 빨아올릴 계획이다.
유전이 많을수록 에티오피아는 발전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천지건설 등 한국 기업들은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엔 이런 걸 일컬어 ‘꿩 먹고 알도 먹는다’고 한다.
비슷한 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 ‘마당 쓸고 동전 줍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 ‘님도 보고 뽕도 딴다’, ‘굿도 보고 떡도 먹는다’라는 것도 있다.
한자어로는 금상첨화(錦上添花)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말이 많은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상황을 은근히 바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공사가 있다. 아제르바이잔 신도시 개발공사이다.
출국 직전 현수 일행은 아제르바이잔 건설부를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무스타파예프 장관은 60억 달러를 차관해 주는 조건으로 591억 5천만 달러짜리 공사를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이 정도면 MOU를 체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박스 20여 개에 담긴 자료는 천지건설 해외영업부로 긴급 특송된 상태이다.
이것들은 도착 즉시 검토가 시작된다. 현수가 즉각적인 자료 검토를 지시한 때문이다. 워낙 양이 많은지라 해외영업부와 견적실, 업무지원팀은 또 한 번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검토 결과 타당성이 있다고 하면 즉각 일이 진행될 것이고, 현수의 능력이라면 또 한 번 성과를 거둘 것이다.
이것까지 모두 계약한다면 에티오피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무려 1,189억 7천만 달러어치를 수주하는 셈이다.
기존에 계약한 석유화학단지는 뺀 금액이다.
어쨌거나 1,189억 7천만 달러를 한화로 환산하면 142조 7,640억 원이나 된다.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현대건설은 1965년에 태국의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한 바 있다. 첫 번째 해외공사 수주였다.
그로부터 48년이 흐른 2013년 11월엔 14억 달러짜리 UAE원전공사를 수주하였다.
이 공사까지 합친 금액이 약 1,000억 달러이다.
이에 현대건설은 다음과 같은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현대건설 국내 건설업계 최초
해외누적수주액 1천억 달러 달성!
그런데 현수는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큰 공사를 수주한 것이다.
박진영과 구본홍은 건설업계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현대건설의 이런 홍보문구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
이제 천지건설도 대대적인 홍보를 할 수 있게 된다.
2013년 2월 11일에 수주한 35억 달러짜리 잉가댐 공사를 시작으로 한 일이니 불과 1년 3개월이 맞을 것이다.
이제 다른 모든 건설사가 부러워할 상황이 되는 것이다.
“부사장님! 나머지 공사도 수주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