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38화 (937/1,307)

# 938

코리안 빌리지 사람들이야 현수에게 입은 은혜가 있기 때문에 이처럼 헌신적인 것이다.

참전용사 가족들은 최소 1인 이상이 고용되어 급여를 지불받는 중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인원이 천지약품의 정직원으로서 근무한다.

이들에겐 각기 한 채씩 사택이 주어진다. 근무하는 기간 동안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연립주택이다.

당연히 이전의 거처에 비하면 궁궐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건축자재가 사용되며, 한국산 가전제품들이 빌트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수가 지적해 준 곳에서 뽑아 올린 물의 수질은 상수도로서 충분하였다. 그런데 현수의 양에는 차지 않는다.

하여 물의 최상급 정령 엘리디아를 호출했다. 그리곤 지하수의 수질개선을 명령했다. 아마도 내일부터는 생수 가운데에서도 최상급인 물이 나오게 될 것이다.

아디스아바바에선 교사 급여가 월 100달러 수준이다. 그런데 천지약품은 직원들 평균 급여가 300달러이다.

하는 일의 난이도와 중요도, 그리고 숙련도에 따라 약간씩 차등을 두었다. 동기부여를 위함이다.

최고는 350달러이고, 최하가 250달러이다.

불과 100달러 차이지만 여기선 교사 급여와 같은 금액이다. 그렇기에 지각, 결근, 태만하는 직원을 볼 수 없다.

누구든 열심히 일해 맡은 분야의 일의 전문가가 되면 최고등급의 급여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무 교육을 할 때에도 조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한 것을 깨우치기 위한 질문이 빗발친다.

직원들이 가장 많이 놀란 건 회사에서 점심식사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질 좋은 식재료를 사용한 뷔페식이다.

무제한 공급되는 신선한 채소와 각종 축산물은 직원들의 영양상태 개선에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점심때 많이 먹으려고 아침을 굶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배를 곯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장감독 이정빈은 요즘 꿈결 같은 공사현장에 머문다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본인은 잘 모르지만 이실리프 자치령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이곳 상황이 어떤지 궁금한데 정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감독은 사람들의 질문에 성심껏 댓글을 단다. 밤이 되면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공사는 언제쯤 끝납니까?”

“처음 발주된 천지약품 사무실과 물류창고 공사는 앞으로 한 달 정도만 더 있으면 완공이 됩니다. 연립주택도 1차 발주된 건 비슷한 시기에 지어질 겁니다.”

“그래요? 다행입니다. 자재수급이랄지 뭐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전혀요! 한국에서 공사하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다 괜찮습니다. 근데 참,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연립주택 공사가 계속해서 추가되고 있는데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끝나게 됩니까?”

이정빈은 이곳에 온 이후 한 번도 귀국하지 못했다.

해외근무이고, 환경 자체가 열악하다 하여 많은 급여를 받기는 하지만 이러다 아이들 얼굴을 잊을까 싶은 것이다.

이곳 코리안 빌리지의 위치는 아디스아바바 시내의 워레다(Woreda) 13지역 케벨레(Kebele)이다.

이곳에 마을이 생긴 지 어언 4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참전용사가 아닌 사람들이 이전해 오기도 했다.

거꾸로 참전용사들은 타지로 이전하기도 했다.

하여 현재에는 4만여 명의 주민 중 겨우 30여 명만이 참전용사이다. 많은 수가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하직한 때문이기도 하다.

“직원들에게 각기 한 채씩 거주지를 제공될 때까지 지을 겁니다. 처음보다 인원이 많이 늘다 보니 계속 추가 공사가 있는 모양이네요.”

“아! 네에.”

맨 처음 채용했던 50여 명을 위한 집은 다 지어지는 중이고, 추가로 채용한 50여 명을 위한 집은 착공된 상태이다.

집 짓는데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므로 몇 달 후면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이정빈은 환히 웃는다.

향후 15년을 더 에티오피아에서 머물게 되며, 가족들까지 모두 이주해 올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연립주택 공사가 끝날 즈음 아와사 지역 공사책임자로 발령 나기 때문이다.

현재의 직급은 차장이다. 그런데 아와사로 전보발령이 나면서 일약 이사가 된다. 급여도 대폭 늘어나는데다 에티오피아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순박한지를 깨닫기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고강철 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고강철은 거짓 자백을 하여 청송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사람이다. 현수가 지현과 여행을 할 때 구해주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엔 영어 공부에 매진했고, 이곳에 도착해서는 코리안 빌리지 촌장댁에 머물렀었다.

부인 이숙희 여사와 두 딸과 함께였다.

“고 지점장님이요? 아마 저쪽 현장에 계실 겁니다.”

이 감독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천지건설 물류창고가 지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런 거 물어서 좀 그렇긴 한데 이 감독님 보시기에 고 소장님은 어떻습니까?”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아침 여섯 시면 현장에 와서 하루 종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살피는데 얼마나 깐깐한지 모릅니다. 미장공이 일하고 나면 바닥이 편평하지 않다고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정빈 감독 입장에서 보면 고강철 천지약품 아디스아바바 지점장은 건축주에 해당된다.

이 감독은 현장소장이 아니라 감독이다.

도면대로 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파악하고 기술적인 자문을 요구할 때 적절한 답변을 해주는 사람이다.

시공에 문제가 있을 경우엔 건설사에서 파견한 현장소장에게 클레임을 걸어야 하는데 매번 이 감독에게 투덜거린다.

현장소장 고현덕은 고강철보다 훨씬 연배이다.

게다가 고(高) 씨는 본관이 하나뿐이다. 처음 만났을 때 항렬을 따져보곤 아저씨라 부른다. 항렬까지 높은 것이다.

그러니 대하기 어려워 이 감독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고강철 지점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정빈의 표정은 지겹다거나 짜증난다는 것이 아니다.

“……!”

“처음엔 건축에 문외한이 분명했는데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 지금은 콘크리트 양생 기간까지 따져요, 그리고, 벽돌 작업을 할 땐 하루에 1,200㎜ 이상 못 쌓게 하려고 야단이었어요. 사실, 1,500㎜까지는 괜찮은데 말이죠.”

현수도 자재과에 있으면서 건축시공이라는 책을 읽은 바 있다. 건설사 직원이니 최소한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너무 놓게 쌓으면 양생되면서 휘어지는 현상이 발생될 수 있어 그런 거잖아요.”

“네에, 그렇긴 하죠. 아무튼 점점 더 전문가가 되고 있습니다. 정말 성실한 분입니다. 사리사욕도 없구요.”

현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고강철은 사촌형인 고진철, 고인철을 대신하여 옥살이를 한 바 있다. 그동안 아내는 험한 꼴을 당했고, 아이들은 고아원에 보내졌었다.

처지가 안타까워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는데 이제는 든든한 협력자가 된 듯하다. 그러니 기분 좋은 것이다.

7장 코리안 빌리지의 성자

현수는 이정빈에게 현장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걸림돌은 없다.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공사를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자재는 즉시 현금으로 지불하고 반입한다.

이쯤 되면 불량배들의 시비가 있을 법도 하다. 돈 많은 현장이라 소문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다.

현수에게 무례를 범해 옷을 벗을 뻔했던 아디스아바바 경찰서장 때문이다. 본인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베켈레 경위와 킬라 경사로 하여금 부하들을 이끌고 상주하게 한다.

다시 말해 공사장 전체를 경찰이 지켜주고 있다. 이러니 불량배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것이다.

한국으로부터 들여오는 각종 건축자재는 일사불란한 통관절차를 거쳐 곧바로 현장으로 보내지는 중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 대부분은 실력을 인정받은 자들이다. 그렇게 되도록 에티오피아 정부가 손을 쓴 결과이다.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데 아스토우 할아버지가 들어선다.

“에구, 감독님도 여기 계셨구랴.”

“네, 할아버지.”

이 감독은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갖춘다.

“어라! 손님이 계시네. 아하, 현장감독이라는 양반이구만. 거봐라, 스잔! 내가 넉넉한 게 좋다고 했지?”

“네에, 할아버지. 그러네요.”

아스토우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들어온 아가씨는 촌장의 손녀이다. 현수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본 적이 있다.

“어머! 성자님!”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스잔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가 아픈 할머니를 말끔하게 고쳐준 고마운 이이기 때문이다.

“에구, 성자라니요.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스잔! 그나저나 오랜만이네요. 할머니는 좀 어떠셔요?”

현수와 스잔의 대화는 암하라어이다.

그렇기에 이 감독은 눈만 동그랗게 뜬다. 원주민보다도 더 원주민 같은 유창한 현수의 발음 때문이다.

현수가 아스토우 할아버지를 치료해 준 날 본 촌장의 부인이자 스잔의 할머니 역시 현수의 손길을 받았다.

그때 스잔의 할머니는 녹내장으로 조만간 시력을 잃을 상황이었다.

녹내장은 안압의 상승으로 인해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 공급에 장애가 생겨 시신경 기능에 이상이 초래되는 질환이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치료가 어렵다.

안과를 찾아도 악화되는 속도만 간신히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녹내장에 걸리면 언젠가는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스잔의 할머니는 말짱한 두 눈을 가졌다.

마나포션 반병과 리커버리 마법이 빚어낸 기적이다.

그날 이후 스잔은 현수를 진짜 성자로 대접하는 중이다.

아무튼 영어가 아닌지라 이정빈 감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는 것 정도만 짐작할 뿐이다.

“할머닌 괜찮으셔요, 기력도 많이 좋아지셔서 이젠 마실도 다니시구요. 이 모든 게 성자님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고맙기는요. 그나저나 그 커피 우리 줄 거예요?”

“네? 아, 네에, 그, 그럼요. 잠시만요.”

스잔은 가져온 포트의 커피를 잔에 따르며 쫑알거린다.

“이건 예가체프 G1 코케(Koche)예요. 향과 맛이 확실히 괜찮을 거예요.”

“예가체프 G1 코케라고? 그럼 많이 비쌀 텐데. 어떻게 이 비싼 걸…….”

에티오피아는 커피등급을 매길 때 G1∼G8로 나눈다.

숫자 앞에 ‘G’는 Grade의 이니셜이고, 뒤의 숫자가 작을수록 좋은 등급이다.

이는 커피생두 300g에 결점두가 얼마나 많이 섞여 있는지에 따른 구분이다. 참고로 G1은 0∼3개, G2는 4∼14개, G3는 13∼25개이다. 최하등급인 G8은 340개 이상이다.

어쨌거나 예가체프 G1 코케는 최상급 커피이다. 기가 막힌 꽃향기가 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허름한 판자촌이나 다름없는 코리안 빌리지 사람들이 즐기기엔 매우 비싼 물건이다.

“아무리 비싸도 성자님이 오셨는데 이 정도는 드려야죠. 어서 맛을 보세요.”

“고마워요, 스잔. 이 감독님! 이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도 최상급이라고 합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아! 그래요? 그럼 감사히…….”

후륵, 후루루룩―!

“흐으으음……! 아아아!”

이정빈 감독 역시 커피 애호가이다. 그렇기에 맛과 향의 섬세한 차이를 금방 알아낸 모양이다.

“와아! 이건 정말 좋네요.”

이 감독은 워낙 커피를 좋아하기에 에티오피아 현장감독으로 누가 가겠느냐는 공고가 붙었을 때 모두가 꺼려할 때 가장 먼저 지원했다.

멀고 먼 타국이고,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하겠지만 본고장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지원 배경이다.

아무튼 이곳에 부임한 이후 틈만 나면 아디스아바바 시내를 돌아다니며 오리지널 본고장 커피를 두루 섭렵한다.

하여 스스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라고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오늘 마신 게 그중 최고인 듯하다.

그렇기에 이정빈 감독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곤 고개를 끄덕인다.

“그쵸? 흐음, 향기도 좋고 맛도 좋네요.”

현수 역시 향긋한 커피향이 마음에 들었다. 하여 홀짝거리며 금방 잔을 비운다.

“더 드려요?”

“좋죠!”

스잔이 따라준 커피 역시 금방 비웠다.

“성자님이 좋아하셔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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