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39화 (938/1,307)

# 939

“에구, 성자라고 부르지 말라니까요.”

“아니에요. 성자님 맞잖아요. 그러니 성자님이라 불러야지요. 근데 아픈 사람이 있는데 혹시 봐주실 수 있어요?”

“어디가 아파요?”

“성자님 소문을 듣고 디레다와에서부터 온 사람이에요.”

“디레다와(Diredawa)요?”

남의 나라이기에 지명만 듣고는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다.

디레다와는 에티오피아 동부에 위치한 높이 약 1,300m의 고원에 있는 도시이다.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이며, 커피ㆍ피혁 따위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네, 거기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는 분이신데 호흡이 곤란하다고 해요. 기침도 많이 하구요.”

스잔은 매우 조심스런 표정이다. 바쁜 현수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어디 있어요?”

“…봐주실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에 있느냐구요.”

“저희 집에 있어요. 우리 외삼촌이거든요.”

“갑시다. 마신 커피값을 해야지요.”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정빈은 왜 그러냐는 표정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었던 모양이다.

“이 감독님! 제가 볼일이 생겼네요. 또 봬요.”

“네? 아 네에.”

주빈(主賓)이 일어서니 따라서 일어설 수밖에 없다는 듯 어정쩡한 자세와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스잔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아스토우 할아버지는 내용을 알기에 고개만 끄덕인다.

현수가 가기만 하면 기식(倚息)이 엄엄하던 스잔의 외삼촌이 금방 쾌차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촌장의 집은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다. 촌장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천지약품 직원으로 채용되어 많은 월급을 받아오게 된 때문이다. 그전엔 고색창연한 것 일색이었는데 최신형 LED 텔레비전이 있다. 자세히 보니 한국산이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아스토우 할아버지를 위해 약간은 무리한 듯싶다.

“이쪽으로…….”

잔뜩 쌓여 있는 물건들 사이의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졸고 있던 아낙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선다.

그녀의 곁에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맹이와 여덟 살쯤 된 계집아이가 있다.

같이 졸고 있다가 엄마가 깨니 따라서 일어난 듯하다.

“외숙모! 인사드려요. 성자님이세요.”

“…이분이……? 어, 어서 오세요. 성자님! 우리 그이 좀 살려주세요. 흐흑! 우리 그이 하루 종일 일만 한 죄밖에 없어요. 근데, 근데… 흐흑! 숨도 제대로 못 쉬어요.”

여인의 눈에서 금방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엄마가 우니까 곁의 아이들의 눈도 금방 습해진다.

“한번 봅시다.”

현수가 발걸음을 내딛자 여인과 아이들이 물러선다.

그리고 보니 이곳은 촌장의 집 후원의 흙벽에 양철지붕을 얹은 집이다. 한낮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아 후끈거린다.

어두컴컴한 실내로 들어가니 구석에 침상이 놓여 있다.

“허어억! 허어어억! 쌔에에엑! 쎄에에엑! 쿨럭, 쿨럭!”

호흡이 원활치 못하고 기관지도 좋지 않다는 뜻이다.

‘시멘트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지? 그럼 진폐증(塵肺症)일 확률이 높군.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릉―!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아무런 향기도 없는 마나가 사내의 몸으로 스며든다.

현수는 사내의 몸속으로 번지는 마나를 살폈다. 예상대로 폐 쪽에서 답답한 흐름을 보인다.

진폐증이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먼지가 숨을 쉴 때, 코와 기관지를 통해 폐로 들어가서 쌓이게 되어 정상적인 폐가 굳어지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현대의 첨단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다.

“헤에엑! 누, 누구? 헤에엑! 누구시오? 흐아악!”

잠들어 있던 사내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힘겹게 눈을 뜨곤 고통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호흡하기 힘들고, 기침이 자주 나며,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집니까?”

“허어억! 허어억! 그, 그렇습니다. 그, 근데 누구……?”

“시멘트 공장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공장……? 이, 이십오 년이오.”

“알겠습니다. 슬립!”

마법이 구현되자 사내의 눈이 감긴다. 워낙 작은 음성이었는지라 뒤에 있던 사람들은 듣지 못했다.

“스잔! 진폐증인 것 같소. 치료할 테니 물러서요.”

“네, 성자님!”

현수를 도와 기적을 일으켰던 리야 아스토우는 현수가 어떤 방법으로 치료하는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여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되는 모양이다.

스잔은 물론이고, 사내의 아낙과 아이들 역시 눈빛을 빛내며 바라보는 중이다.

[아리아니! 엘리디아 불러줄래?]

[네! 주인님. 엘리디아! 주인님께서 부르신다, 어서 나와.]

아리아니의 의지가 허공으로 번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색투명한 엘리디아의 동체가 나타난다.

아리아니와 엘리디아는 현수 이외의 인간에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짐승들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전엔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부르셨사옵니까? 마스터!]

[그래! 이 사내의 폐 속에 들어가 보면 아주 작은 알갱이가 많이 박혀 있을 거야. 그것들 다 끄집어낼 수 있겠어?]

[그리 어렵지 않은 일 같사옵니다. 마스터! 그런데 이 인간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현수가 스잔과 외숙모를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은 이유는 마법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폐에 박혀 있는 작은 알갱이들을 빼내는 것은 컴플리트 힐이나 리커버리로는 불가능하다.

회복포션이나 마나포션을 써도 소용이 없다.

인간의 생체조직의 이상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박혀 있는 이물질들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엘리디아가 스스로의 몸을 가늘게 하여 환자의 폐까지 들어가 작은 알갱이들을 일일이 걷어내야 하는 것이다.

현수는 엘리디아가 쉽사리 환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도록 살짝 뒤로 물러서며 속삭였다.

“스테츄!”

샤르르르릉―!

“허어억―!”

힘을 줘야 간신히 호흡을 할 수 있던 사내는 갑자기 눈동자마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놀란 듯 깨어난다.

그런데 표정이 괴이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이대로 죽는다 생각한 모양이다. 이 순간 엘리디아의 몸이 가늘어지면서 사내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현수 본인도 처음인 상황이라 눈을 크게 뜨고 살피는 중이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두 손을 살짝 들고 있다.

손바닥이 펴진 상태라 뒤에서 보면 현수가 사내에게 신성한 기운을 불어넣는 모습으로 보인다.

“……!”

스잔과 그녀의 외숙모, 두 아이,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촌장 부부와 몇몇 사람은 숨죽인 채 현수와 환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어두컴컴했던 실내는 아까보다 훨씬 밝아져 있다.

일반 백열전구가 아닌 수은등을 쓰기 때문이다. 가로등으로 주로 사용되는 수은등이 왜 실내에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어쨌거나 수은등이 천천히 밝아지는 이유는 발광관의 내부에 봉입된 수은가스의 압력이 열에 의해서 서서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점점 밝아지더니 220V에 100W짜리 백열전구 두어 개를 켠 것만큼이나 밝아진 상태이다.

당연히 환자와 현수의 모습이 또렷이 보인다.

“흐어억, 흐어어억―! 쌔에엑! 쎄에에엑!”

환자의 호흡 소리는 여전히 거칠다. 마치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그런 느낌 때문인지 모두 긴장한다.

그럼에도 현수를 제지하거나 왜 이러는지를 묻지 않는다.

현수는 코리안 빌리지의 성자이다.

지금까지 고쳐내지 못한 환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어 잠자코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헤에엑! 헤에엑―! 쿨럭! 쿨럭!”

기침과 함께 뭔가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작은 알약만 한 크기의 뿌연 것이다.

“쿨럭! 쿨럭! 쿨럭!”

또 기침을 했고, 매번 알약 크기의 이물질들이 배출되고 있다. 뭔지는 모르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구경하는 모든 이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다.

한마음 한뜻으로 기적을 바라는 모습이다.

“흐어억! 쿨럭! 헤에엑! 쿨럭! 흐으읍! 쿨럭! 쿨럭!”

호흡 소리가 조금씩 달라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이물질이 배출된다. 약 20여 개의 알약이 배출된 후론 호흡이 한결 편안해진 듯 거친 숨소리가 아니다.

“흐으음! 휴우우! 흐음! 휴우! 쿨럭! 쿨럭!”

또 두 개의 이물질 덩이가 튀어나왔다.

[마스터! 이 사내의 폐 속엔 더 이상의 이물질은 없어요.]

[그래! 수고했어. 이상 있는 부분은 없어?]

[있는데 고쳤어요. 괜찮죠?]

[그럼! 고마워!]

[고맙기는요. 마스터께 봉사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래? 나도 기뻐. 수고했어.]

현수가 시선을 돌리자 엘리디아는 스르르 물러난다.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르릉―!

또 한 번 마나나 환자의 체내로 스며든다.

아까와 달리 흐름이 나쁘지 않다. 특히 폐를 지날 땐 다른 부위보다도 더 원활하다.

아직 젊어 그런지 특별한 이상은 없다.

“매직 캔슬!”

“흐으음! 휴우우! 흐으으음! 휴우우우!”

스테츄 마법이 취소되자 비로소 움직일 수 있게 된 환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짧은 사이이지만 확연히 안색이 좋아졌고, 호흡 소리는 정상인과 다를 바 없다.

시선을 든 사내는 눈앞의 동양인을 보고 스잔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뾰족한 침 몇 개로 수많은 환자를 고쳐낸 코리안 빌리지의 성자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자 자신에게 기적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하여 서둘러 침상에서 내려오더니 현수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서, 성자님……! 이 은혜를 어찌……!”

“아아! 성자님이시여! 감사하옵니다.”

“아빠! 아빠!”

“아아! 성자시여.”

환자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촌장을 비롯한 모두가 무릎을 꿇는다. 눈앞에서 펼쳐진 기적이 만든 현상이다.

현수는 두 손만 약간 벌린 채 환자를 바라보며 입술 몇 번 달싹인 게 전부이다. 그런데 폐 속에 박혀 있던 미세 분진들이 덩어리 져 튀어나왔고, 환자는 멀쩡해졌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뭐가 기적이겠는가! 이런 기적을 직접 목격했으니 전율을 느끼며 무릎 꿇은 것이다.

“이제 괜찮아요?”

“네, 성자님! 멀쩡해졌어요. 정말 멀쩡해졌습니다요. 감사합니다. 흐흑! 감사하옵니다.”

“이름이 뭡니까?”

“소, 소인의 이름은 세나이, 세나이 아브라힘입니다요.”

“그래요, 세나이! 몸이 괜찮아졌으니 다행이에요. 앞으론 그 시멘트 회사에서 일하지 말아요.”

그렇지 않아도 시멘트 회사에서 일한 것 때문에 숨쉬기 힘든 거 아닌가 생각했었다. 거의 매일 자욱한 분진 속에서 작업하곤 했다. 그럼에도 변변한 마스크조차 지급해 주지 않아 수건으로 대충 입과 코를 감싼 채 작업을 했다.

어찌 먼지를 들이마시지 않았겠는가! 그게 원인이 되어 진폐증에 걸려 오늘내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자의 말을 모두 들은 세나이 아브라힘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해서 병에 걸렸는지 깨달은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아와사로 이사 가세요.”

“아와사요……?”

“네, 거기 가면 새 직장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아와사는 세나이가 살던 디레다와에서 엄청나게 먼 거리에 있다. 디레다와는 도시라도 형성되어 있지만 아와사 지역은 변변한 마을조차 찾기 힘든 오지이다.

“성자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와사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곳인데 어떻게 새 직장을 구합니까요?”

“아와사가 곧 변할 거예요. 아주 살기 좋은 곳이 될 테니 내 말 믿고 꼭 이사 가세요. 아셨죠?”

“네에.”

대답은 하지만 힘이 빠진 듯하다.

멀고 먼 곳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한 기분이 들어서이고, 평상시 친하게 지내던 이웃과 친지들 모두를 내버려 두고 떠나려니 내키지 않아서이다.

이런 심사를 눈치챈 현수는 한마디 더 했다.

“이웃과 친지들도 함께 가자고 해보세요. 아와사는 아디스아바바보다도 살기 좋은 곳이 될 테니까요.”

“그 말… 정말입니까?”

중간에 끼어든 이는 코리안 빌리지 촌장이다.

시선을 돌린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그곳의 개발권을 내가 갖게 되었습니다. 코리안 빌리지에서도 직장 구하기 힘든 사람들은 그곳으로 보내세요. 가족 전부가 취업할 수 있을 겁니다.”

이곳 코리안 빌리지에는 약 4만 명이 산다. 거의 전부 극빈자이고, 직장을 가진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