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40화 (939/1,307)

# 940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하여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안 되는 곳이다. 도시에 있지만 환경은 열악하고 발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나마 천지약품 에티오피아 지점과 물류창고 등이 들어서면서 활력이 생겼으나 그것만으론 코리안 빌리지 전체에 영향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우선적으로 참전용사의 가족을 뽑았고, 차순위는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만 뽑았기 때문이다.

천지약품 직원들이 높은 월급을 지급받자 취업하고 싶어 기웃거리는 사람이 많지만 당분간은 직원수를 늘리지 않을 계획이다. 자선업체가 아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코리안 빌리지는 곤궁을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한국의 쪽방촌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사는 이유는 딱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촌장도 이곳의 주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나이 먹은 이들 가운데에서 읽고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벌써 10년이 넘도록 촌장이라 불리고 있지만 가난하기는 여느 집이나 다를 바 없다. 아들이 천지약품에 취직하고부터 살림이 확 피지 않았다면 여전했을 것이다.

다른 아들들과 시집보낸 딸들 역시 코리안 빌리지의 주민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직업 없이 지낸다.

그런데 아와사로 이주하면 가족 전부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니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끼어든 것이다.

“그, 그럼 우리 아이들도 거길 가기만 하면…….”

“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모두 취업 가능할 겁니다.”

“세상에…….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촌장이 고개 숙여 예를 갖추니 현수 역시 고개를 숙였다. 이때 꼬맹이가 현수의 바지를 잡는다.

“아저씨! 우리 아빠 이제 안 아픈 거예요?”

“…그래! 다 나으신 것 같구나. 걱정 많이 했어?”

“네……! 근데 이제 괜찮아요. 울 아빠 다 나았으니까요.”

말을 마친 꼬맹이는 제 아빠에게 다가간다.

“그래! 아빠 이제 다 나았어. 여기 계신 성자님이 고쳐주셨으니까 이제 안 아플 거야. 걱정 많았어? 우리 딸!”

“응! 근데 이제 걱정 안 해. 나 이제 나가서 놀아도 돼?”

“그럼, 그럼! 나가서 돌아와.”

“알았어. 그럼 오빠랑 나가서 놀다 올게. 오빠, 가자!”

아이들 둘이 나갈 때 촌장과 구경 왔던 사람들 모두 사라졌다. 한시바삐 복음(福音)을 전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복음이란 아와사로 이사 가면 더 이상 배고픈 거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의 개발은 성자께서 친히 하시는 것이므로 웬만한 병으론 걸려도 죽지 않을 것이란 소문이 번진다.

나중의 일이지만 코리안 빌리지 주민 대부분이 떠난다. 남은 이들은 거주지를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4만 명이나 되던 인원 가운데 무려 3만 9천 명이나 옮겨가기에 코리안 빌리지는 일시적인 공동화 현상이 빚어진다.

아무튼 이실리프 자치령 입장에선 큰 힘 들이지 않고 필요한 인원이 충당되므로 좋은 일이다.

이들의 살던 주거지는 천지약품이 매입한다.

그거라도 팔아야 아와사까지 가는 동안의 여비가 되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떠난 후 천지약품은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을 벌인다. 흙벽에 함석지붕을 얹었던 낡은 집들 모두 헐어내고 한국식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아디스아바바는 고산지대인지라 적도 부근이지만 기온이 높지 않다. 일 년 내내 비슷한 기온을 보이는데 최저가 14℃, 최고 25℃ 정도 된다.

따라서 에어컨과 보일러가 필요 없다.

상수와 하수, 그리고 전기와 가스만 공급되면 되기에 건축비는 한국보다 훨씬 싸다.

아파트 분양가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땅값 자체가 워낙 저렴한데다가 작업에 동원될 인부들의 인건비 역시 말할 수 없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잡부는 일당이 대략 10만 원 정도 된다. 이 사람이 한 달 내내 현장 일을 하면 월 300만 원이 수입니다.

아디스아바바의 경우는 잡부가 한 달 일한 품삯이 10만 원 정도 된다. 다시 말해 임금이 3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히 건축비가 싸질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천지약품이 재개발하여 지은 이실리프 아파트 단지는 아디스아바바 주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고위 공무원 거의 대부분이 분양 신청을 할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의 풍부한 아파트 건설 경험이 그대로 녹아든 대단지이기 때문이다.

4만 명이 살던 곳이다. 얼마나 큰 단지가 형성되겠는가!

단지 내에는 아이들 놀이터 이외에도 축구장, 농구장 같은 체육시설과 작은 놀이공원, 그리고 음악당도 지어진다.

할인마트 역시 당연히 지어지고, 주민들을 위한 각종 근린시설 또한 골고루 갖춰져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곳이 된다. 물론 나중에 일어날 일이다.

현수는 스잔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눈짐작으로 헤아려 봐도 300명은 족히 되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금방 500명이 넘을 듯하다.

“성자님! 아와사로 가면 진짜 일자리가 있습니까?”

“아픈 환자가 있는데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아와사에 갔다가 허탕 치면 어쩌죠? 성자님!”

“아와사는 여기에서 얼마나 먼 곳에 있는 거죠?”

보아하니 그냥 가면 말들이 무성할 듯싶다. 성자로 소문난 현수를 욕하는 말이 아니라 근거 없는 헛소문이 난무할 수 있다. 자칫 부풀려지기라도 하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잠시만 조용히 해주세요.”

“……!”

현수가 두 손을 들어 조용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몸짓을 하자 이내 잠잠해진다.

“몇 가지 궁금하신 게 있는 듯해서 설명드립니다. 제 말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해주실 거죠?”

“네에!”

“그럼요!”

합창하듯 소리를 내고는 시선을 집중시킨다.

현수는 뒤에 있던 박스를 앞으로 끌어당긴 후 올라섰다.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냥 놔두면 코리안 빌리지 사람들이 다 올 수도 있다.

직업이 절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8장 의료원을 지어야겠습니다

“저는 에티오피아 정부와 협의하여 아와사 지역에 약 40,000㎢에 달하는 조차지를 얻었습니다. 조차지란…….”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현수는 가급적 쉬운 말로 설명을 이어갔다. 뒤늦게 당도한 사람들을 앞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고 물었다가 면박만 당했다.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고 있는데 방해한 때문이다.

현수는 조차지를 어찌 개발할 건지, 그곳에서 무엇을 재배하며, 무엇을 기를 것인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실리프 자치령은 앞으로 200년 동안 하나의 왕국처럼 운영될 곳이다. 따라서 농산물과 축산물 이외에도 각종 생필품이 생산될 예정이다.

자치령은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러시아, 몽골,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케냐에도 조성된다.

각각의 자치령은 비누, 치약, 칫솔, 샴푸, 린스 같은 일상 용품들을 자체 생산하게 된다.

선풍기나 텔레비전, 컴퓨터 같은 것도 여건만 되면 만든다. 한국에서 만든 부품을 가져다 조립하는 수준이다.

지하자원이 개발되면 그에 적합한 공장도 설립한다. 다만 환경을 고려하여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가급적 자제한다.

제법 긴 설명이 이어졌지만 어느 누구도 중간에 방해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제 설명을 마칩니다. 아직 초기 단계라 많은 것이 미흡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와사 지역에는 굶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만세! 만세! 만세! 성자님 만세! 만세! 만세!”

누군가의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만세 소리가 파도처럼 번지더니 마치 1919년 3월 1일에 있었던 독립선언서 낭독에 이은 그것처럼 커져만 간다.

현수가 걸음을 옮기자 사람들로 이루어진 파도가 스르르 벌어진다. 마치 모세의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현수는 천천히 걸어 코리안 빌리지를 빠져나왔다. 이곳에서의 용무는 이제 끝이기 때문이다.

현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코리안 빌리지 주민들의 시선은 떼어지지 않았다. 살아 있는 성자의 뒷모습을 두 눈을 통해 뇌에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스잔의 외삼촌도 그들 중 하나이다.

적어도 그에겐 현수는 살아 있는 신(神)이다. 폐 속에 박혀 있던 분진들을 아무런 도구도 없이 뽑아냈다.

스잔에게 자신이 꼼짝도 못하고 있을 때 어떤 치료가 있었는지를 들었던 것이다.

“성자님! 죽을 때까지 믿고 따르겠습니다.”

세나이 아브라힘은 무릎을 꿇고 정중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 역시 같은 모습이다.

절망 속에 빠져 있던 한 가정을 완벽하게 구원해 냈으니 감사의 마음이 절로 솟은 때문이다.

이런 이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질하거나 소곤대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지금껏 성자께 무례했다는 것을 깨닫기라도 한 듯 무릎 꿇는 이들만 늘어났을 뿐이다.

다음 날, 에티오피아의 주요 일간지에는 코리안 빌리지의 성자가 만들어낸 기적이 보도되었다.

텔레비전 뉴스 시간엔 세나이 아브라힘이 토해낸 알약 크기의 알갱이들을 분석한 결과가 방영되었다.

예상대로 분진이 뭉친 것이다. 이를 물에 풀어보니 알갱이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아주 미세한 입자라는 의미이다.

아무런 도구도 없이 폐 속에 박힌 분진을 뽑아냈다는 보도에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확인 전화가 걸려왔다.

세나이 아브라힘 같은 진폐증 환자의 가족들이 건 것이다. 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당연히 성자의 행방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수는 아디스아바바를 떠나 킨샤사로 향한 뒤이다.

같은 날,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실리프 자치령에 대한 발표를 한다.

조차 기간 및 조건 등에 관한 상세한 보도가 있었다.

이쯤 되면 얼마나 받아먹고 땅을 팔아먹었느냐고 들고 일어날 야당이 웬일인지 조용하다.

오히려 환영 성명을 내고 정부의 처사를 지지했다.

성자가 개입된 일이고, 천지건설이 제시한 공사 금액이 자신들이 입수한 것보다 훨씬 쌌던 때문이다.

견적을 내주고도 욕을 먹은 건 지나의 건설 업체들이다. 비슷한 게 아니라 월등히 비쌌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얼마나 바가지를 씌웠는지를 가늠하게 된 야당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더라도 지나의 건설사와는 상종치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공무원 및 국희의원과 정치인, 군인들은 지나 사람들과의 약속을 줄줄이 파기한다. 그들과 접촉하면 뇌물을 받아먹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어버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도 지나의 입김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거나 아와사 지역이 성자에 의해 개발된다는 소문이 번지자 빈민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당연히 코리안 빌리지가 가장 먼저 비워진다. 다음으로 아디스아바바 등 도시 빈민들이 이동한다.

이에 에티오피아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한다. 아와사에서 일할 사람이 많이 필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 * *

에티오피아를 떠나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이동한 현수는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

고요히 앉아 명상할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을 곳을 찾아 앱솔루트 배리어로 결계를 치고 타임 딜레이 마법까지 구현시켰다.

그리곤 오래도록 참오에 들어갔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모든 관공서가 쉬는 날이니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곳으로 즉시 이동하는 마법을 만들어보려던 것이다.

흑룡을 잡아낼 유일한 방법이라 여긴 것이다.

현수는 만 하루를 결계 안에서 지냈다. 1 : 180이니 180일, 다시 말해 거의 반년을 마법 창안에 골몰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없었다. 하나가 가능해지면 다른 하나가 간섭하여 무효가 되는 일이 연속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계 밖으로 나오기 전에 적어도 실마리는 잡았다. 그럼에도 계속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도 지겨웠던 때문이다.

현수는 바쁜 오전 일과가 끝나갈 점심 무렵에 내무부를 찾았다. 청사 밖 위병 근무를 서던 경찰은 현수를 보자 곧바로 경례부터 올려붙인다.

그는 어려서 축구선수였으나 불의의 사고를 겪은 뒤 경찰에 입문한 축구광이다. 그런데 축구의 신을 만났으니 어찌 경례하지 않겠는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