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1
현수는 사인을 부탁하는 그의 등에 커다란 사인을 해주었다. 근무복은 더 이상 입을 수는 없지만 기념은 될 것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관님!”
“그러게 말이네. 이러다 얼굴 잊어먹겠어.”
가에탄 카구지 콩고민주공화국 내무장관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현수를 맞이한다.
“하하! 네에. 그간 안녕하셨죠?”
“안녕? 아니, 그러지 못했네.”
가에탄 카구지는 진심으로 안녕치 못했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네의 노천금광 말이네.”
“노천금광이요? 아! 이실리프 자치령에 있는 거요?”
“그래, 그것 때문에 아주 몸살을 앓았네.”
“왜요?”
있지도 않은 노천금광이라는 걸 가에탄 카구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곤욕이라도 치른 듯한 표정이다.
“미국 재무부에서 사람이 왔네. 게리 론슨 차관보가 수시로 찾아와 자네의 노천금광에서 나는 금괴를 매입하게 다리를 놓아 달라고 했네.”
“게리 론슨 재무부 차관보요?”
“그래, 어찌나 귀찮게 하는지 머리가 다 셀 뻔했네.”
“아! 그래요? 저 때문에 괜히……. 죄송합니다.”
정말 많이 귀찮게 했는지 말을 하는 가에탄 카구지의 표정엔 불쾌감이 어려 있었다.
게리 론슨의 고압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때문이다.
뭔가 부탁을 하러 왔으면 공손히 굴든지 정중해야 한다.
그런데 게리 론슨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모두 제 것인 양 거만하게 굴었다. 아무 때나 찾아와 면담을 요청하고, 바빠서 그럴 수 없다고 하면 미국과 척지어 좋을 일 없을 거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본인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실세 중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곳은 안방인 킨샤사이다.
똥개도 자기 집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한다. 따라서 최소한의 정중함은 갖췄어야 한다.
그럼에도 게리 론슨의 태도는 마치 자기네 나라를 찾아와 뭔가를 부탁하는 최빈국 장관 대하듯 했다.
하여 사람을 보내 진짜 재무부 차관보인지를 확인했다.
아니라고 하면 잡아서 작살낼 생각이었다. 오지의 탄광으로 보낼 것도 고려해 보았다. 그만큼 불쾌했던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차관보가 맞다는 보고가 있었다.
하여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안방이긴 하지만 미국 재무부 차관보를 건드려서 좋을 일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현수가 오기 전에 왔다가 갔다. 현수와 연락해 보았느냐는 물음에 그랬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한 번도 현수에게 전화를 걸거나, 천지약품, 또는 천지건설을 통해 연락하려 하지 않았다.
게리 론슨이 싫었던 때문이다.
그랬더니 게리 론슨은 국토의 일부를 조차까지 해줄 정도로 친밀한 관계에 있으면서 왜 연락이 되지 않느냐며 비아냥거렸다.
마음 같아선 아구창이라도 한 번 갈겨 봤으면 했다. 그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던 것이다.
게리 론슨은 내일 다시 방문할 테니 그때까지 현수와 연결을 해주든지, 아니면 노천금광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놓으라고 위협하곤 사라졌다.
그가 돌아섰을 때 서랍 속에 있는 권총을 꺼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으나 애써 참았다.
그리고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아 현수가 온 것이다.
둘은 존재 자체가 다르다. 게리 론슨은 보기만 해도 부아가 치밀지만 현수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어펜시브 참 마법의 영향이 크다. 하여 가끔은 현수와 같이 있는 꿈을 꾼다.
“아무튼 자네가 왔으니 이제부터 자네가 알아서 하게.”
“네! 그러지요. 그쪽에서 또 연락이 오면 제게 전화하라고 하세요. 제 번호 아시지요?”
“그럼, 그럼! 근데 그뿐만이 아니네.”
“네? 또 무슨 일 있으셨어요?”
“지나에서도 사람이 왔네. 통상부 국장 왕리한이라네. 그 역시 노천금광에 관심이 많은 듯 여러 가지를 묻더군.”
“……!”
현수는 이들이 왜 자신을 찾는지 짐작되지만 짐짓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가에탄 카구지 장관의 말이 이어진다.
“일본 대사관에서도 왔네. 가와시마 야메히토라고 하는데 그 역시 노천금광이 궁금한 듯하더군.”
“그래요? 그 사람들이 왜 저를 찾는지……. 정말 금이라도 매입하려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금을 매입해? 자네, 아직도 금괴가 남아 있나?”
“네! 조금 더 남아 있습니다.”
“…후와! 대단하군.”
가에탄 카구지는 진심을 담아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미 수백 톤의 금괴가 팔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개인이 보유하는 금괴의 양이 콩고민주공화국이 보유한 것보다도 많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오셨는가? 내가 도와줘야 할 게 또 있나?”
“네! 이곳에 오기 전에 에티오피아를 다녀왔습니다.”
가에탄 카구지는 현수의 말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어젯밤 뉴스를 보아 조차지를 얻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 축하하네. 그곳에서도 큰 성과를 이루시게.”
“네에, 감사합니다.”
“그래, 내게 부탁할 일은 뭔가? 내 힘으로 되는 거면 무조건 돕겠네.”
죠제프 카빌라 정권은 현수 덕에 지지율이 상승했다.
천지약품을 품은 것과 이실리프 자치령을 과감하게 조차한 것의 경제적 효과가 보이기 시작한 때문이다.
반군들과의 격전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실리프 자치령에 반군 가족들이 대거 취업한 이후의 일이다.
현수는 현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따라서 반군의 저항이 격화되면 애써 잡은 직장을 다시 잃을 수도 있다.
정부가 요구하면 현수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반군의 저항도 상당히 많이 줄었다.
서서히 정국이 안정되는 느낌이다.
게다가 대놓고 원주민을 무시하고, 착취하던 지나의 건설사들을 배제하고 상냥한 한국 회사로 바꾼 것에 대한 찬사를 듣는 중이다. 따라서 현수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어펜시브 참 마법의 영향이 아직까지 효력을 발휘한 때문이기도 하다.
“제 저택 인근의 땅을 매입하고자 합니다.”
“땅을? 그 집이 좁은가?”
킨샤사의 저택은 뒤에 있는 호수까지 포함되어 있기에 상당히 넓다. 호수를 빼도 마음만 먹으면 축구장 두 개 정도를 조성할 수 있을 만한 넓이이다.
그런데 땅 이야기를 하자 무슨 뜻이냐는 표정이다.
“집 근처에 뭔가를 조성해 보려 합니다.”
“그 인근의 토지는 거의 전부 정부의 것이니 땅이야 얼마든지 가질 수는 있지. 그런데 거기에 무엇을 하려 하는 겐가?”
“대단위 의료원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대단위 의료원……? 얼마나 크기에? 그리고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
“대략 2,000만㎡ 정도 사겠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하긴……. 자네라면…….”
방금 언급한 2,000만㎡를 환산해 보면 20㎢이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약 600만 평이다.
이는 서울시 마포구 전체보다 약간 작은 면적이다.
마포구 전체의 면적은 23.84㎢이며, 약 38만 5,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엔 공공 기관 8개, 학교 84개, 복지시설 94개, 보육 시설 219개, 의료 기관 619개가 있다.
기반 시설로 도로 420㎞, 도시가스 379㎞, 상수도 716㎞, 하수도 494㎞가 있다.
따라서 현수가 요구한 20㎢는 어마어마한 넓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반둔두와 비날리아 지역에 조차해 준 땅은 10만㎢가 넘는다. 여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정도이기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설마 그 땅 전체가 의료원이 되는 건가?”
“아뇨. 100만㎡ 정도만 의료원을 건립할 생각입니다. 최첨단 의료원으로요.”
참고로 100만㎡는 약 30만 평이다.
“최첨단 의료원? 그럼, 병상수는……?”
“그건 1만 병상 정도 될 겁니다.”
“뭐어……? 1만 병상이나?”
킨샤사엔 ‘건국 50주년 병원(Hopital du Cinquantenaire)’이 있다. 천지건설이 진출하기 전에 지나 건설사가 지은 건물에 입주해 있다. 이것은 100여 개의 병상을 갖추고 있는데 중부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고 홍보한다.
그런데 그것의 100배나 되는 병원을 만들겠다고 한다.
현수가 통 큰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지구엔 1만 병상짜리 병원이 없다. 다시 말해 전 세계 최대 병원을 짓겠다는 뜻이다.
가에칸 카구지는 내무장관이다.
이런 병원이 지어지고, 진짜 최첨단 의료 기구들이 망라된다면 콩고민주공화국은 의료 관광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막대한 의료 관광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외환 보유고가 늘어나고, 세수도 확보된다.
변변한 의료 기관조차 드물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던 국민들에겐 최첨단 의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내무장관으로서, 그보다 먼저 콩고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바라마지 않을 일이다. 그렇기에 관심 있다는 듯 의자를 당겨 앉는다.
구미가 확 당긴다는 무언의 몸짓이다.
“그, 그럼 나머지 1,900만㎡는 뭔가?”
“이실리프 의료원은 다양한 국적의 의료진들이 포진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환자들이 진료 받게 될 겁니다.”
“그, 그렇겠지. 1만 병상이라면…….”
“의료진과 그 가족을 위한 숙소도 지어야 하고, 환자와 그 가족 또는 간병인이 머물 호텔 등 숙박 시설과 각종 위락 시설을 조성해 볼까 합니다.”
“호텔과 위락시설도……?”
“네, 한국엔 에버랜드라는 놀이 시설이 있습니다.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벤치마킹한 것이지요.”
“아네. 에버랜드!”
가에탄 카구지는 복합 리조트인 에버랜드에 대한 자료를 보고받은 바 있다. 언젠가는 콩고민주공화국에도 그런 것이 필요하기에 사전 준비 개념으로 조사시킨 것이다.
에버랜드 리조트에는 테마파크 에버랜드, 워터파크 캐리비안 베이, 숙박 시설 홈브리지, 자동차 경기장 스피드 웨이, 그리고 에버랜드 교통박물관, 호암미술관, 글렌로스 골프 클럽이 있다.
이 밖에 아쿠아리움과 수목원도 추가될 예정이다.
참고로 에버랜드 리조트의 면적은 6.61㎢이다. 약 200만 평 규모인 것이다.
“그래요? 아신다니 이야기가 쉽겠습니다. 제 집 근처에 테마파크를 만들고 싶습니다.”
현수가 구상하는 테마파크는 마법과 과학이 어우러진 것이다. 예를 들어 공포 체험을 위한 ‘귀신의 집’ 같은 경우엔 흑마법으로 스켈레톤과 구울을 투입할 것이다.
입장객의 안전을 위해 방탄 플라스틱이 중간에 있겠지만 가짜가 아닌 진짜인지라 모두들 대경실색하게 될 것이다.
이 밖에 다양한 흑마법으로 입장객들의 혼을 쏙 빼놓을 계획이다. 물론 안전은 분명히 챙긴다. 너무도 실감나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목원은 아리아니가 정령들과 함께 가꾸게 될 것이다. 싱싱함을 넘어서는 초록의 향연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사파리는 바람의 정령들이 투입될 예정이다.
맹수가 입장객을 다치게 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입장객에 의해 맹수들이 놀라는 일이 없도록 한다.
분수쇼는 물의 정령들이 세상에 없는 쇼를 보이도록 할 예정이다. 흔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를 지상 최고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실리프 테마파크에서 선보이게 될 분수쇼는 이 말이 무색하도록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는 하급 정령들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들이 능력을 발휘하면 허공에 솟은 물은 잠시 동안 떨어지지 않고 형상을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방울로 만들어진 왕관이나 티아라 같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
중급 정령이 능력을 발휘하면 물로 이루어진 공룡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를 걷는 모습을 구현시킬 수 있다.
상급이 투입되면 확연히 달라진다.
아나토티탄을 사냥하는 티라노사우르스의 모습을 생생하게 구현시킬 수 있다.
검치호가 매머드를 사냥하는 모습도 가능하다.
얼룩말이 초원을 달리는 모습과 이를 사냥하는 사자의 모습 또한 구현 가능하다.
모두 수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고, 물로 만들어진 동체이지만 적당한 조명을 사용하면 진짜에 버금갈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