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47화 (946/1,307)

# 947

조금 전까지 탐색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면 지금은 천진난만한 아이의 그것과 비슷하다.

“미스터 론슨! 재무부 차관보라고 했죠?”

“네,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궁금하군요. 당신의 진실한 신분은 뭐고,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은 뭐죠?”

“저는 CIA 비밀요원이며, 특별요원이기도 합니다. 극동 담당 중간 책임자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국가안전부 차장보쯤 됩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게리 론슨은 평생 처음으로 속에 있는 그대로를 표현해 낸다. 듣고 있는 현수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누군가 인공위성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고 한다. 어디서든 마법이 구현되는 걸 보여주면 안 됨을 의미한다.

하여 지금까지 마법을 썼던 것을 되새겨 보았다.

다행히 거의 모두 실내에서 이루어졌다. 아직은 인공위성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건 뭐……! 하늘에 떠 있는 것까지 신경 쓰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제기랄!’

어쩌면 우미내 마을 뒷산을 쏜살같이 쏘다녔던 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여 몇 가지를 물었다.

게리 론슨은 당연히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한국에 있는 동안의 모습은 살피지 않았다고 한다.

현수는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더 묻고는 론슨에게 시선을 준다. 또 다른 대인 마법을 구현시키려는 것이다.

“매직 캔슬! 어펜시브 참!”

샤르르르르릉―!

순차적으로 마나가 스며들자 게리 론슨의 눈빛이 두 차례나 변한다. 순진무구에서 탐색으로, 그리고 존경과 흠모의 빛으로 바뀐 것이다.

“미스터 론슨!”

“네, 회장님.”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태도이다.

“귀국하는 대로 누가 나에 대해 조사하는지를 조사해서 알려주실 수 있죠?”

“그럼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근데 어떻게 알려드리죠? 제가 전화를 할까요?”

“아뇨. 저희 쪽에서 연락할 때 알려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마법의 결과 게리 론슨은 현수에게 지극한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이런 속내를 이야기하면 안 되기에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마법은 해제한 것이다.

“미스터 론슨! 노천금광이 보고 싶다고요?”

“보여주시면 좋죠. 어쨌거나 저희가 고객이니까요.”

“그럽시다. 대신 보안 유지는 필수인 거 아시죠?”

“물론입니다. 언제 볼 수 있습니까?”

“일단은 여기서 쉬고 있어요. 지금은 밤이라 갈 수 없으니 내일 아침에 출발합시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게리 론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수는 인터컴을 눌러 피터스 가가바를 불렀다. 그리곤 론슨을 빈관에 머물도록 하였다.

모두가 물러간 후 현수는 창밖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부터 그럴듯한 노천금광을 구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쓸 건지 구상하는 것이다.

“그래! 그 정도면 되겠군. 아리아니!”

“네, 주인님!”

기다렸다는 듯 창밖으로부터 아리아니의 교구가 날아와 어깨 위에 사뿐히 앉는다. 그리곤 친밀감을 표시하려는 듯 현수의 귀에 얼굴을 비빈다.

“최상급 정령들 전부 불러줄래?”

“그럼요. 실라디아, 노에스, 이그드리아, 엘리디아 나와!”

“…땅의 정령 노에스가 마스터를 뵈옵니다.”

“엘리디아가 마스터를 알현하옵니다.”

“이그드리아 마스터의 부름받고 대령했습니다.”

“실라디아가 마스터를 뵈어요.”

“그래, 다들 모였군, 너희와 상의할 게 있어서 불렀어.”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가 시선을 들어 바라본다. 무엇이 되었든 말만 하라는 뜻이다.

“내가 필요한 건 노천금광이야. 아리아니, 내 아공간에 품질이 조금 낮은 금 아직 많지?”

“그럼요! 산더미처럼 있어요. 그게 필요하신 거예요?”

“그래! 그걸 좀 써야겠어. 내가 필요한 건 말이지…….”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정령들과 아리아니는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고만 있었다.

이윽고 현수의 말이 모두 끝나자 자기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다. 아주 빠른 속도로 이야길 하는지라 현수는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휙 사라진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3시간 정도이다.

정령들 앞에 나선 아리아니는 앙증맞은 날갯짓을 하며 벽에 걸린 지도를 가리킨다.

“주인님! 장소는 여기가 좋을 것 같대요.”

아리아니가 지적한 곳은 반둔부 자치령의 중심부에 있는 험준한 지형의 산골짜기 아래이다.

게리 론슨이 말하길 반둔두와 비날리아 지역의 노천금광을 찾기 위해 회전장(Spin field) 탐사 기술을 썼다고 했다.

이는 러시아에서 개발한 기술로써 회전장의 파장 속도가 광속보다 10배 이상 빨라 모든 광물 정보를 기억함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위성에 잡힌 회전장 사진을 통해서 어디에 금이 있는지 찾을 수 있다.

사실 콩고민주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고품질인 금광을 보유하고 있다.

우간다와 접하고 있는 동쪽 이투리(Ituri) 지방의 킬로모토(Kilo―Moto) 금 벨트에 주로 매장되어 있다.

이곳은 반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지역이다.

그리고 이곳의 광업권은 이미 ‘오키모’와 ‘제카민’이라는 회사로 넘어가 있는 상태이다.

이 지역 이외엔 금이 지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반둔두와 비날리아 지역엔 금이 없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외국 탐사 업체에 용역을 주어 회전장 기술로 이미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가에탄 카구지에게 노천금광 이야길 꺼냈을 때 전혀 의심치 않고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아까 정령들에게 설명할 때 이러한 부분도 이야기되었다.

따라서 아무 데나 노천금광을 조성해선 안 된다. 그렇기에 반두두와 비날리아 지역 전체를 세밀히 둘러보고 온 것이다.

아리아니의 설명을 들어보니 험준한 산속 동굴이다.

이 동굴의 상층부에는 철광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어 회전장 탐사 기술로도 금맥의 존재를 알기 어렵다.

“동굴 바닥으로 얕은 물이 흐르고 있어요. 엘리디아가 그걸 멈추면…….”

아리아니의 설명이 이어졌다.

흐르는 물을 멈추게 한 후 땅의 정령 노에스가 적당한 깊이로 거죽을 긁어낸다. 그러면 불의 정령 이그드리아가 금을 녹여 그 틈에 부어버린다.

이때 불순물들이 가급적 위로 올라가도록 조절한다.

다음은 바람의 정령 실라디아가 나서서 용융된 금을 빠르게 식힌다. 불순물이 많은 모습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다시 엘리디아이다. 다시 물이 흐르게 하여 원래의 모습이 되게 한다. 그러는 사이에 노에스는 작업자들이 이동하는 계단, 통로 등을 조성한다. 이곳에서 캐낸 금광석을 어디론가 운반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하려는 것이다.

“금방 돼?”

“서너 시간만 주시면 가능해요.”

“좋아! 가자. 어디지?”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실라디아가 나선다.

극상의 아름다움을 가진 아가씨가 발가벗고 있는 모습이기에 시선 주기가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마스터! 좌표는 661DDE312KER ― QTP21745N56S ― 11QHL168TTY2이에요.”

“오케이, 알았어! 자, 그럼 가보자고.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현수와 아리아니, 그리고 네 정령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곳은 현수의 킨샤사 저택 2층이다.

현수와 지현, 그리고 연희와 이리냐는 아무 때나 드나들어도 되지만 2층 담당 시녀인 알리사와 마리나, 그리고 세레나도 부르기 전엔 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야? 숲이 아주 울창하네.”

목적지에 당도해 보니 울창한 숲 가운데이다. 약 10여 평 정도 되는 공간의 바닥은 바위이다. 식물이 자랄 수 없어 빈 공간인 것이다. 사방은 울창한 숲이다.

컴컴한 어둠 속에 있지만 현수는 대낮처럼 보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오올 아이 마법을 구현시킨 때문이다.

“네! 저기 저곳 보이시죠?”

아리아니가 손짓한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제법 큰 동굴의 입구가 보인다. 높이는 5m쯤 되고, 폭은 7m쯤 되는 듯하다.

울창한 수풀이 주변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기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가보지.”

“네!”

숲을 헤치고 다가가 보니 시냇물이 흐른다. 발목이 겨우 잠길 정도로 얕은데 아주 시원하다. 이 물 덕분에 주변 식물들은 목마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기요. 이쯤에서부터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긴 작업자들이 드나드는 통로로 꾸미구요.”

어린 소녀가 자기 방을 꾸미는 기분이라도 드는 듯 아리아니의 음성은 살짝 들떠있다.

“좋아, 시작하지. 무엇부터 하면 되지?”

“제가 말하는 대로만 해주시면 되요. 자아, 먼저 엘리디아, 물부터 어떻게 해봐.”

“네, 아리아니님!”

잠시 후 흐르던 물줄기가 멈춘다.

“자아, 이제 노에스 차례야. 시작!”

“네에.”

아리아니의 지시에 따라 바닥이 파지고 아공간 속에 담겨 있던 히데요시의 금이 꺼내졌다. 미국, 일본, 지나 등에서 가져온 건 너무 순도가 높아 적합하지 않은 때문이다.

일련의 작업이 마쳐진 후엔 여기저기 곡괭이, 삽, 망치, 운반 도구 등을 벌여놓았다.

진짜 작업장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들 중 일부는 라이셔 제국 수도에 있는 신전 농장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당연히 신품이 아닌 중고이다. 황학동에서 구매한 것들은 너무 새것이라 적합지 않아 이걸 꺼내놓은 것이다.

최종적으로 현수가 고개를 끄덕인 건 오전 여섯 시경이다.

본인이 봐도 그럴듯하다 싶을 정도로 만드느라 애를 많이 썼다. 그렇기에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자아, 수고들 했어. 정령들은 이곳에 남아 손볼 게 더 있는지 확인해. 혹시 정령력이 필요해?”

“아뇨! 괜찮사옵니다.”

엘리디아의 말이었다.

“그럼 아리아니! 갔다가 금방 올 테니까 여기 잘 살펴보고 있어.”

말을 이렇게 했지만 사대 정령과 힘을 합쳐 미진한 부분이 있거든 손보라는 뜻이다.

“네에, 주인님! 다녀오세요.”

“그래! 그럼 부탁해.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사라지자 아리아니는 노에스를 부른다.

“노에스! 여기 진짜 금맥은 없어?”

“우리가 만든 거 말고 다른 거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이렇게 산이 깊으면 그 정도는 있어줘야 하는 거 아냐? 내 생각엔 뭐가 있어도 있을 거 같은데. 아까 보니까 쇠뜨기와 뱀고사리도 많이 보이던데.”

쇠뜨기는 금의 표지 식물이다.

다른 식물에 비해 구리, 아연, 카드뮴, 납 등의 중금속을 흡수하여 축적하는 능력이 높다.

쇠뜨기 생체 1톤은 금 135g을 축적시킬 수 있다.

이 정도면 웬만한 금광석보다 훨씬 더 경제적 가치를 지녔다 할 수 있다.

뱀고사리는 금뿐만 아니라 구리 매장지 근처에도 많이 난다. 이것 역시 잎에 금속 성분을 저장한다.

따라서 이 두 식물이 유난히 많다면 근처에 금맥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예전엔 자박마니들이 이것으로 금맥을 탐사하곤 했다.

“그럼 한번 찾아볼까요?”

“그래! 주인님 오시려면 시간 걸릴 테니 한번 뒤져봐. 그러는 동안 우린 여길 좀 더 살펴볼 테니.”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노에스의 신형이 마치 땅속으로 스며들 듯 스르르 사라진다. 실라디아와 엘리디아, 그리고 이그드리아는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현수가 내린 명령에 따른다.

진짜 사람들이 와서 작업을 한 것처럼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바람의 정령은 나뭇가지들을 부러뜨려 사람이 드나든 것처럼 해놓았고, 이그드리아는 작업자들이 취사 행위를 한 것 같은 흔적을 만들었다.

물의 최상급 정령 엘리디아만은 특별히 할 일이 없는지라 아리아니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인근 숲을 활기차게 만드는 일에 동조했다.

같은 시각, 현수는 저택 2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주인님!”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

피터스 가가바와 엘린 가가바 부부가 환히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네에, 좋은 아침이네요. 간만에 아주 푹 잤습니다.”

이 말은 뻥이다. 현수는 도착 즉시 샤워부터 했다. 동굴에 거미가 많이 살아서 온몸이 거미줄투성이였던 때문이다.

녀석들 전부는 동굴 밖으로 쫓겨 나갔다. 이 일을 한 것은 아리아니이다. 그녀가 거미들에게 거처를 옮길 것을 명했더니 슬금슬금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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