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8
얽혀 있던 거미줄은 이그드리아가 뜨거운 입김 한 방으로 정리했다.
“오늘 아침 메뉴는 뭐죠?”
“블루베리 잼을 곁들인 크로와상, 그리고 커피와 오렌지 주스입니다.”
“완전 프랑스식이군요.”
“부족하시면 스테이크를 조금 준비할까요?”
“좋죠! 기왕이면 야채 스프도 곁들여 주세요. 블루베리 잼은 빼구요. 참, 샐러드도 조금 부탁해요.”
“네에, 알겠습니다. 알리사! 들었지? 가서 식재료 준비해.”
“네! 시녀장님.”
알리사가 주방으로 가자 엘린은 마리나와 셀레나에게 시선을 준다.
“올라가서 주인님 침실 정리하도록!”
“네, 시녀장님.”
명을 받자 둘은 지체없이 이행하려 몸을 돌린다. 이때 현수의 음성이 있었다.
“안 올라가도 돼요. 다 정리하고 내려왔으니까.”
“네? 주인님! 왜 주인님이 그런 일을 하세요? 그런 건 저희가 해야 할 일인데…….”
“나 혼자 자서 정리하고 말 것도 없었어요. 알죠? 나 잠 험히 안 자는 거.”
이 저택에 머무는 동안 침실에서 자본 건 손으로 꼽을 일이다. 여러 번 저쪽 세상으로 차원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예 침실을 사용하지 않았던 날이 많다.
그렇기에 시녀들은 현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올라가보면 손볼 것 없을 정도로 말끔하곤 했기 때문이다.
현수가 직접 정리를 하고 내려온 것으로 알고 매번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또 그런 모양이다.
들리는 말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후안무치하게 거들먹거리거나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수는 이런 범주에 들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 많은 배려를 해준다. 미워하거나, 욕하고 싶은 윗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하는 일 없이 많은 급료만 챙기는 기분이 들어 더욱더 정성 들여 일하는 중이다.
청소를 할 때면 어떤 구석이라도 먼지 한 톨 쌓이지 않도록 치워가며 일을 한다.
워낙 넓어 청소기를 끌고 다니면서 먼지를 빨아들이는 일만으로도 땀이 나야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주인님이 배려해 주신 항온의류 덕분이다.
어쨌거나 마리나와 셀리나는 고맙다는 뜻으로 공손히 절을 하곤 주방으로 물러났다.
현수는 조용히 야채 스프를 떠먹었다. 간이 적당하여 그런지 이것 또한 매우 맛이 있다. 문득 아르센 대륙에서 먹던 스튜가 떠올랐지만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조만간 가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12장 봤지? 마음에 들어?
“미스터 가가바!”
본인의 이름이 불리자 피터스 가가바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대통령궁 경호팀장이었던 옛 모습은 찾기 힘들다.
마치 아르센 대륙의 여느 귀족가 시종장 같다.
여전히 경호팀을 총괄하고 있지만 저택 관리까지 총괄하는 총관 역할까지 맡으면서 조금씩 변한 결과이다.
물론 아직은 경호원으로서의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네! 주인님.”
“빈관 손님에게 식사 같이하자고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가가바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벽에 걸린 전화기를 든다.
저택 건물들의 이동 간격이 제법 되기에 각각과 연결된 내선이 있는 것이다.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식당으로 갔다.
싱그러운 꽃들이 식탁 위 화병에 꽂혀 있다.
초록색 잎과 오렌지색 파장화, 그리고 작은 폭죽이 터지는 듯한 흰색 연화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좋네요.”
“그쵸? 주인님 오셨다고 알리사가 새벽부터 정원을 돌아다녔답니다. 마음에 드시니 다행이에요. 호호호!”
엘린이 웃음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모든 게 만족스러워 그러는지 근심 걱정 하나 없는 아주 편한 얼굴이다.
‘내가 저렇게 해줄 수 있으니 다행이야.’
본인으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피곤해질 수도 있는 것이 현대사회이다. 하지만 이곳 저택 사람들은 모두가 편안하다.
경호해야 할 대상이 없는지라 무료한 나날이 계속되자 경호원들은 기량이 녹슬지 않도록 매일매일 훈련을 한다.
힘들고, 인내력을 요구하는 고된 훈련이다.
하지만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인지라 기꺼이 그 힘든 과정을 감내해 내고 있다.
가장 힘든 건 정원사들이다. 매일매일 자라나는 초목들을 다듬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럼에도 콧노래를 부르며 일한다. 포근한 거주지를 제공받았고, 매일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는다. 여기에 많은 급여까지 받으니 절로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Good morning, Mr. Kim!”
“네, 좋은 아침입니다. 앉으시죠.”
게리 론슨은 지난밤 숙면을 취했는지 아주 좋은 얼굴이다.
“우리 집 음식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아! 걱정 마십시오. 뭐든 잘 먹습니다.”
잠시 후, 게리 론슨은 글자 그대로 폭풍 흡입을 시작한다.
엘린의 뛰어난 음식 솜씨가 발휘되어 스테이크가 거의 꿀맛이었던 때문이다.
현수는 야채 스프부터 떠먹었다. 생각보다 껄쭉했는데 이것을 먹으니 아르센 대륙에서 먹던 스튜가 떠올랐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조만간 가기는 가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금광을 볼 수 있는 겁니까?”
“네! 하지만 금광까지만입니다. 제련소는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하시죠?”
“그럼요. 은근히 기대됩니다.”
육즙이 살아 있는 스테이크를 씹으면서도 말은 잘한다.
“식사 후 헬기를 타고 이동할 겁니다.”
“혹시 사진을 찍어도 됩니까? 상부에 보고하려면…….”
게리 론슨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현수 때문이다.
“찍어도 됩니다. 다만 외부로 유출되는 사진은 제가 지정하겠습니다. 동의하시죠?”
“…그러시죠.”
아무나 와서 금덩이를 주워갈 수 있는 노천금광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보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후의 식사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둘 다 먹느라 여념이 없었던 때문이다.
“여기… 입니까?”
타타타타, 타타타타, 타타타타타!
타고 온 헬리콥터의 로터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게리 론슨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여 큰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고요?”
“여기가 금광 있는 곳이냐구요.”
현수의 귀에 대고 게리 론슨이 고함지르듯 소리친다. 현수 역시 큰 소리로 대꾸해 주었다.
“…맞아요. 저 앞에 있어요. 가요.”
어젯밤 만들어놓은 오솔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동굴 입구가 보인다. 하여 게리 론슨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라! 노천이라더니 아닌 건가요?”
“저건 우리가 뚫은 갱도가 아니라 천연 동굴이에요. 가요.”
“아……!”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니 커다란 동굴 입구가 드러난다. 현수는 입구에 놓아두었던 랜턴을 켰다.
“현장에 아무도 없네요. 왜죠?”
“작업자가 없는 건 오늘이 쉬는 날이라 그래요.”
“예에……? 금광에 쉬는 날도 있어요?”
금은 캐내는 족족 돈이 되는 물건이다. 따라서 조명을 켜고라도 24시간 내내 캐는 것이 일반적이다. 채광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채산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우리 금광은 일주일에 하루는 쉽니다.”
“왜요? 그럼 생산량이 줄잖아요. 차라리 교대 근무를 시키지 그래요?”
자기 것도 아니면서 괜한 참견이다.
“그건 가보면 압니다. 제련하는 것보다 채광하는 게 더 빠르거든요.”
“설마요……!”
게리 론슨은 커다란 금덩이가 마구 굴러다니는 장면이라도 상상한 듯 눈을 크게 뜬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대략 30여 발자국 정도를 들어간 뒤 현수가 멈춰 서자 게리 론슨은 왜 그러느냐는 표정이다.
이때 현수가 랜턴을 비추며 입을 연다.
“여기부터 금맥이 시작되었어요.”
랜턴에 비춰진 곳은 개울 바닥에 흠이 길게 나 있다.
이미 채굴하여 현재는 평범한 돌덩이만 남아 있는지라 볼 건 없다. 그럼에도 게리 론슨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어두운 곳인지라 플래시가 펑펑 터진다.
현수는 설명을 이어줬다.
“여기에 있던 것은 다 캤어요. 깊이가 좀 되죠?”
곁에 있던 나무로 깊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폭은 2.3m 정도이고, 깊이는 대략 50㎝쯤 된다. 이것 1m 길이의 부피는 약 1㎥ 정도이다.
참고로 금의 비중은 약 19.3g/㎤이다. 따라서 1m만 파도 약 10톤의 황금이 얻어진다.
10m만 파도 거의 100톤의 황금이 되니 이거야말로 진짜 노다지(No Touch)라 할 수 있다.
“자, 이제 조금 더 갑시다.”
100여 발자국을 더 가는 동안에도 개울 아래 흠은 누런색을 띄지 않는다. 성인 남자의 보폭은 약 70㎝이다.
100발자국이면 70m를 뜻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700톤의 금을 얻었다는 뜻이다.
현수는 계속해서 걸었다. 여전히 홈만 파져 있다. 랜턴으로 안쪽을 비춰주는데 동굴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다.
아무튼 조금 더 가다 멈춰선 현수는 랜턴으로 다시 바닥을 보여준다.
“여기 있네요. 금맥! 이거 보이죠? 이게 저 안쪽까지 쭉 이어져 있어요.”
말을 하며 랜턴으로 동굴 안쪽을 훑어서 보여준다.
얕은 개울 아래 있는 건 분명 누런 황금이다. 개울 바닥 거의 전체가 황금으로 이루어진 듯한 모습이다.
“세상에……! 와아……!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게리 론슨은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며 입을 딱 벌린다.
깊이는 알 수 없지만 폭 3m짜리 금띠가 동굴 안쪽으로 이어져 있는 장관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 여기 샘플이라 할 수 있는 게 있군요.”
현수는 곁의 수북한 돌무더기에서 누런빛이 완연한 주먹 크기의 짱돌을 집어 든다.
그리곤 랜턴으로 비춰주며 입을 연다.
“금광석은 1톤당 5g 정도 금이 있으면 캡니다. 그런데 우리 건 1톤당 약 500㎏ 정도 되죠. 아마 지구 역사상 최고의 금맥일 겁니다.”
지난 1998년 영풍산업은 톤당 20.8g이나 함유한 노두 4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지표 위에만 34만 4,420톤의 금광석이 있는데 여기서 7.2톤의 순금을 얻는다고 했다.
발표 직후 영풍산업의 주가는 수직 상승했다.
“아! 그래요?”
인공위성으로 노천금광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게리 론슨은 금광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렇기에 방금 현수가 한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돌은 정말 절반 정도가 황금인 것 같다. 누런색이 너무도 확연한 때문이다.
“흐음! 이건 한 2㎏쯤 되는군요. 미스터 론슨! 이건 제 선물입니다. 받으세요.”
“네에? 저, 정말 이걸 줄 겁니까?”
얼떨결에 받아든 게리 론슨이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다.
절반이 황금이라면 1㎏짜리 금덩이를 준 셈이다. 오늘 시세로 따지면 5만 7,680달러의 가치가 있다.
무게를 가늠해 보니 현수의 말처럼 2㎏ 정도 되는 것 같다. 나중에 달아보니 실제 무게는 2.2㎏이고, 제련 후 추출된 황금은 1.36㎏이다.
현수의 말처럼 절반 이상이 금인 것이다.
참고로, 미국에서 가장 평균 급여가 높은 기술직 직업은 다음과 같다.
얼떨결에 현수가 준 금광석을 받아 든 게리 론슨은 멍한 표정이다. 남들이 1년간 죽어라 일하고 받는 연봉을 한 손에 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온 첫 번째 외부인이니 선물로 드리는 겁니다. 마음에 들죠?”
“네? 아, 네에. 그, 그럼요!”
줬던 걸 다시 뺐을까 싶은 듯 얼른 가방 속에 넣는다.
“자아! 그럼 안으로 더 들어가 볼까요?”
“자, 잠깐만요! 사, 사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다만 금맥만 찍으세요.”
“그럼요!”
게리 론슨은 얼른 대꾸하곤 계속해서 사진을 찍는다.
속으론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현실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후로도 론슨은 거의 다섯 발자국에 한 번씩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500여 걸음을 걸었다.
이 거리는 약 350m에 해당된다. 1m당 10톤 정도라면 본 것만 따져도 3,500톤이다.
그런데 금맥은 안쪽으로 더 이어져 있다.
“자아, 너무 많이 들어왔네요. 이 정도면 충분하죠?”
“그, 그럼요.”
게리 론슨은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가는 동안 사진을 더 찍어도 됩니다. 단, 나가서는 찍지 마십시오.”
“그, 그럼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