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1
“알았어! 그건 아리아니를 통해 나중에 지시하지. 오늘은 이만 가서 쉬어. 애썼어.”
“네! 마스터! 감사합니다.”
노에스는 공손히 허리를 숙인 후 곧바로 사라졌다.
이제 다시 마리아나 해구 아래로 내려가 해저 망간단괴를 대한민국이 관장하는 북동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톤 해역으로 옮기려는 것이다.
일본과 지나는 배정받은 해역에 망간단괴가 하나도 없음을 알고 화를 내겠지만 훗날의 일이다.
“아라아니! 내가 혹시 잊더라도 나중에 나 대신 노에스에게 지시해.”
“뭘요?”
“다이아몬드와 금 말이야.”
“네, 어디로 위치 이동시킬까요?”
“아공간에 담아 한국으로 가져갈까 싶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게 조금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남한은 북한과 달리 지하자원 빈국이다. 하여 개미처럼 일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게다가 너무도 치열한 경쟁 사회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 비주류로 전락하고, 다시 올라서기 힘든 세상이다.
반면 말레이시아 북쪽에 위치한 경기도 반쯤 되는 나라 부루나이 왕국은 자원 부국이다.
국왕이 인구 40만을 다 먹여 살리고 있다.
휘발유 값은 1리터에 겨우 440원!
1인 1차인지라 가구당 평균 4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하여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
국민의 10% 정도는 수상가옥(水上家屋)에서 사는데 이게 낡았다며 나라에서 새집을 지어주었다.
전 국민의 3분의 1은 국가 공무원이고, 또 다른 3분의 1은 준공무원인 국영기업체 직원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이다. 장학 기준만 통과하면 다른 나라에서 유학하는 모든 비용을 대준다.
학교 다니는 동안엔 매달 용돈 30만 원, 책값 42만 원, 유류비 5만 원을 지원해 준다. 뿐만이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력이 나빠진다고 안경값 13만 원을 추가로 준다.
등록금은 한 푼도 안 내고 매달 90만 원씩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셈이다.
의료비도 매우 저렴하다.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더라도 치료비는 단돈 1부루나이이다. 나머지는 왕실에서 전액 지원한다. 참고로 1부루나이는 한화로 약 900원이다.
게다가 매년 설날엔 국왕이 국민 1인당 90만 원의 세뱃돈을 준다. 약 6만 명이 이 혜택을 입는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 비교하면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불행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부루나이가 자원 부국이라는 것이다.
“어디로 가져가실 건데요?”
“양평 집 아래 적당한 곳에 묻어두지.”
“네, 알겠습니다. 노에스와 상의해서 적당한 깊이에 묻어두라 할게요. 그것 말고 다른 지시 사항은 없으세요?”
“일본과 지나에도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게 있을 수 있잖아. 그치?”
“그럼요. 당연히 있겠지요.”
“거기 있는 것들도 적당한 곳에 매장시키라고 해.”
“네, 그럴게요. 또 없으세요?”
현수는 몇 가지를 더 지시했고, 아리아니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여 확실히 접수했음을 확인했다.
먼 미래의 어느 날, 현수는 아리아니로부터 말도 안 되는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란다.
양평 저택 부지 지하에 황금 15,000톤이 매장되어 있으며, 다이아몬드는 약 10톤 정도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원석인 상태이지만, 금은 거의 순도 100%짜리이다. 파기만 하면 그야말로 떼돈을 버는 것이다.
현수는 아리아니에게 아공간 관리 권한을 부여한 바 있다.
하여 현수가 일본 또는 지나에 갔을 때 그곳에 준비해 둔 모든 것을 싹쓸이해서 위치를 이동시킨 결과이다.
아리아니는 대화가 끝나자 아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관리인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흐음! 지구에 온 지 꽤 됐지? 이쯤해서 아르센에 다녀오자. 근데 어디로 가야 하지?”
아르센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은 본시 몬스터 해비탯으로 불렸던 곳이다.
약 30,000마리나 되는 웨어울프의 습격을 받아 4일간 사투를 벌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현수가 10분만 늦게 당도했으면 완전히 끝장이 날 뻔했던 곳이다.
기사와 병사들은 물론이고 자작이었던 영주와 그의 아들이 모두 사망하여 지휘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었다.
라수스 협곡 안까지 들어가 확인해 보니 웨어울프 말고도 많은 몬스터가 서식하는데 먹이가 변변치 않은 곳이다.
그냥 놔두면 모두 몬스터의 먹이로 전락할 곳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남자 3,000여 명에 여자 25,000여 명이다. 남자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어린아이와 노인이다.
하여 이들을 이실리프 왕국으로 이주하고자 했다.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을 그려놓았으니 도착하는 즉시 마법을 계속해서 구현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코리아도의 총책임자 하리먼은 동분서주하고 있을 것이다.
현수는 마법사의 전유물인 로브로 갈아입었다. C급 용병차림보다는 그게 더 편해서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형광색 르까프 운동화를 신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르까프는 프로스펙스와 휠라, EXR 등과 더불어 국산 스포츠 브랜드이다.
“좋아!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진다. 이곳은 킨샤사 저택이며 현수가 부르기 전엔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 곳이다.
* * *
“아! 드디어 오셨군요. 마법사님!”
현수의 신형이 드러나자 웅크리고 있던 세실리아가 반색하며 일어선다. 시선을 들어 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이 겁먹은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조금 늦었소?”
“네, 여기서 이틀을 기다렸어요.”
“아……! 내가 날짜 계산을 잘못했나 보군. 그사이에 몬스터들의 내습은 없었소?”
“네, 다행히도 없었어요.”
현수는 세실리아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이실리프 군도로 이주하기로 했다. 지긋지긋한 몬스터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가지 않겠다고 한 인원을 불과 20여 명이다. 원래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최근에 이쪽으로 왔던 이들이라 한다.
“좋소! 이제부터 순번을 정하시오. 늦으나 빠르나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니 다투지 말라 하시오.”
“알겠습니다, 마법사님! 그런데 한 번에 몇 명씩 갈 수 있는 건가요?”
“마법진 안에 쇠로 만든 상자를 꺼내놓을 것이오. 하나당 300명 정도가 적당할 것이오.”
“상자는 몇 개를 꺼내놓으실 건데요?”
“…6개요.”
“알았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그러구려.”
세실리아가 사람들에게 간 사이에 현수는 아공간의 컨테이너 셋을 꺼내 정렬시켰다.
세 개는 공간 확장 마법만 걸린 것이다. 나머지 셋은 지옥도와 연옥도에 나쁜 놈들을 데려다 놓을 때 쓰던 것이다.
인원이 너무 많아 아공간까지 쓰려는 것이다.
6개의 컨테이너로 한 번에 이주시킬 인원은 1,800명이다. 총원이 28,000명이니 16번은 왕복해야 한다.
매스 텔레포트는 제법 많은 마나가 소모되는 마법이다.
하여 혹시라도 마나가 부족할까 싶어 켈레모라니의 비늘을 점검했다.
이곳에 도착 즉시 마나 충진을 시작했는데 현재 약 30%가 소모된 상태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아이들에게 시선이 미쳤다. 열심히 엄마 젖을 빨고 있다.
“아! 식량.”
어쩌면 지난 이틀을 쫄쫄 굶었을 수도 있다.
하여 아공간의 먹을 것들을 꺼내려 했다. 그런데 28,000명을 똑같이 먹일 수 있는 건 라면 하나뿐이다.
“세실리아!”
“네, 마법사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세실리아는 현수가 부르자 즉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준다.
“잠깐, 이쪽으로…….”
“네에.”
쪼르르 달려온 세실리아는 왜 불렀느냐는 표정이다.
“모두들 배가 고픈 것 같소.”
“네! 어제부터 굶었거든요.”
세실리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사실 아르센 대륙에선 끼니를 모두 먹는 게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굶는 데 이력이 나 있다.
“전에도 많이 굶었소?”
“저는 아니지만 영지민은 많이 그랬지요.”
“흐음! 이 상태로는 갈 수 없소. 그리고 보퉁이들을 들고 저 상자 속에 들어가면 안 되오.”
“왜… 그런 거죠?”
“가는 건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 일단은 배부터 채웁시다. 이건 말이오. 이렇게…….”
현수는 라면 끓이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곤 약 60,000봉지를 꺼냈다. 인원은 28,000여 명이지만 1인당 최하 2개는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지난해 백두그룹 라면 공장을 털 때 무려 1,400만 봉지를 가져왔다. 따라서 아공간엔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양이 쌓여 있다.
이곳 사람들 입맛에 매운 게 문제지만 계란은 그만큼이 없다. 하여 있는 대로 꺼내주며 아이들에게 주라고 했다.
먹을 것을 준다는 말이 번졌는지 가족 단위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곤 보퉁이를 풀러 취사도구를 꺼냈다.
나무젓가락이 있지만 그걸 주진 않았다. 줘봤자 여기 사람들은 그걸 쓰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현수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컨테이너 위로 올라가 어떻게 하는 건지를 보여주었다. 모두들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 후 라면 특유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면이 어느 정도 되면 먹으라 했지만 배가 고팠는지 곳곳에서 성급히 먹기 시작한다.
잠시 후, 후루룩 쩝쩝 소리가 사방에서 난다.
“후와! 맵다. 매워!”
“맞아! 엄청 매워, 근데 이상하게 맛있어.”
“으으! 너무 매워. 으으! 물, 무울!”
여기저기서 매운맛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이것 이외엔 방도가 없다.
그러다 문득 빙과류 600톤을 떠올렸다. 라면을 다 먹은 뒤 그걸 주면 매운 맛은 금방 잊을 것이다.
먹는 소리로 시끄럽던 장내는 불과 20분 후 국물 마시는 소리로 줄어들었다. 여전히 맵다는 소리를 하면서도 마시는 것이다. 하긴 까다로운 한국인들도 중독된 맛이다.
“세실리아! 이것은 이렇게 먹는 것이오.”
현수는 아공간에서 빙과류를 꺼내 먹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잠시 후 장내는 쪽쪽 빠는 소리로 가득하다.
아까는 맵다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면 이번엔 몹시 달면서도 시원하다고 신기해한다.
“우와! 이건 대체 뭐래? 뭔데 이렇게 시원하고 달고, 맛이 있지? 이것도 마법으로 만든 건가?”
“그러게, 너무 맛이 있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야. 아! 맛있어.”
이러는 동안 현수는 모아놓은 라면과 빙과류 껍질을 모두 회수하여 아공간에 담았다. 가급적 아르센 대륙의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세실리아가 나서서 장내를 정리한다.
“자아! 보퉁이는 모두 이곳에 내려놓으세요. 저쪽에 가면 다시 받을 수 있대요. 아줌마! 그거 놓고 가라니까요.”
“아이고, 안 돼요. 이거 잃어버리면 우리 가족은 못살아요. 이거 없이 어떻게 살라고…….”
보아하니 취사도구와 옷가지 몇 개, 그리고 은화 한 두어 개가 들어 있는 모양이다.
“그거 없어지면 내가 물어줄 테니 놓고 들어가.”
현수는 짐짓 말을 놓았다. 아르센에선 다들 마법사를 안하무인인 무시무시한 존재로 알기 때문이다.
“네? 아, 네에.”
세실리아의 말은 따르지 않던 아낙이 살그머니 보퉁이를 내려놓는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하는 표정이다.
“어서 안으로!”
“네? 아, 네에.”
여섯 개의 컨테이너에 각기 300명씩 들어갔다. 모두들 불안한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이다.
“아공간 오픈! 입고!”
현수의 입술이 달싹이자 시커먼 구멍이 생겼고, 3개의 컨테이너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모두들 두렵다는 표정으로 변한다. 마법사의 실험 재료가 되는 건 아닌가 싶었던 모양이다.
세실리아 역시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매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마법진 전체에서 마치 빛처럼 뿜어진다. 그와 동시에 마법진 중앙에 놓여 있던 컨테이너 셋과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스러진다.
『전능의 팔찌』 40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