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52화 (951/1,307)

# 952

1장 왕국 선포

미판테 왕국으로부터 온 이주민들 모두 무사히 코리아도에 당도하자 하리먼이 다가와 정중히 예를 올린다.

“역시 로드십니다.”

현수는 오늘 매스 텔레포트를 20여 번이나 실행했다. 매번 엄청난 마나가 소모되었다.

그럼에도 현수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생생한 모습이다. 같은 마법사로서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리먼은 본시 4서클 마법사였다.

귀족의 딸을 수도까지 수행하는 임무를 맡고 항해하던 중 해적들을 만났다. 애꾸눈 잭이 이끄는 성정 흉포한 놈들이다.

하리먼 일행이 탄 배는 일반 상선이고 해적선은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훨씬 빠른 배들이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고, 갈고리 달린 밧줄들이 던져졌다. 상선과 해적선이 맞닿게 되자 격렬한 해전이 벌어졌다.

이에 하리먼은 본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마법을 난사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주군의 딸이 생포된 걸 보았다.

마스트 꼭대기에 있던 견시수가 해적선이 다가온다는 고함을 지른 직후 하리먼은 주군의 딸에게 안전하다는 전갈을 보내기 전까지 선실 깊숙한 곳에 숨어 있으라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지 않고 나왔다가 해적에게 잡힌 것이다. 하여간 이럴 때 말 안 듣는 귀족 나부랭이들은 볼기를 쳐서라도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

아무튼 주군의 딸을 사로잡은 해적은 괴소를 머금은 채 하리먼을 협박했다.

“어이, 거기 있는 마법사!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그럼 이 계집은 안전할 테니.”

“……!”

하리먼이 대답 대신 매직 미사일 룬어 영창을 하고 있을 때 해적이 말을 이었다.

“크흐흐흐! 만일 말을 듣지 않으면 이 계집의 배 위로 최소 100명이 올라탈 거야. 그래도 좋아? 크흐흐흐!”

은밀히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하리먼은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놈이 주군의 딸이 걸치고 있던 의복을 찢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에 치열했던 접전은 멈췄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은 주군의 딸에게 향해 있다. 그녀의 안위가 걱정된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나신이 되어버리면 큰일이다.

그렇기에 두 손을 들어 항복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상당히 많은 해적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군의 딸이 한낱 해적들에게 수없이 능욕당할 수 있는데 어찌 그러겠는가!

이렇게 되어 포로가 된 하리먼은 해적의 근거지였던 이곳에서 애꾸눈 잭과 그 휘하의 명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주군의 딸은 거액의 몸값을 내고 풀려났지만 하리먼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죄를 물어 주군이 그의 몸값 내는 걸 거부한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군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어쨌거나 해적들은 필요할 때마다 하리먼의 손목에 채워진 마나구속구를 풀어주고 마법을 쓰도록 하였다. 하여 서클 손상을 입지 않은 유일한 마법사이다.

이후 현수가 해적들을 상대할 때 얼른 달려와 무릎을 꿇고 소상히 보고한 바 있다.

현재는 코리아도는 물론이고, 이실리프 군도 전체를 총괄하는 임시 책임자로 근무 중이다.

현수가 해적들을 소탕하면서 챙긴 각종 금은보화에 대한 임시 처분권도 받았다.

강낭콩만 한 다이아몬드는 1톤 트럭의 적재함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다.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 등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많다.

보석이 흔한 대륙이니 이상한 것은 아니다.

금화는 1,200여 궤짝, 은화는 3,800여 궤짝이나 된다.

그런데 궤짝이 상당히 크다. 하나의 내부 크기는 가로 1.2m, 세로 1.0m, 높이 1.0m이다. 실용적이 1.2㎥나 된다.

살펴보니 여덟 명이 들도록 손잡이가 달려 있는데 과연 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금화나 은화가 가득 담기면 둘 다 비중이 큰 물질인지라 엄청난 무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뚜껑을 열어보니 경량화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저서클 마법사가 인챈트한 것이라 효율이 낮아 무게를 2분의 1 정도로만 줄여줄 뿐이다.

현수는 모르지만 이 궤짝들은 이동할 때 밑에 둥근 나무를 깔아놓고 밀어서 이동시켰다.

경량화 마법의 효율이 너무 낮기에 여덟 명이 온 힘을 다해도 들 수 없었던 때문이다.

사실은 온 힘을 다해 밀어야 간신히 이동 가능했다.

금의 비중은 약 19.3g/㎤이다. 만일 궤짝 가득 금화가 담겼고, 용적의 70%를 차지한다면 그 무게는 16톤 정도 된다.

이것의 2분의 1은 8톤이다. 어찌 여덟 명이 들 수 있겠는가! 헤라클레스가 와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현수에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지라 슬쩍 마법진을 손봤다. 2분의 1이었던 무게가 이제부터 2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궤짝 자체 무게를 뺀 내용물의 무게만 810.6㎏이나 된다. 여전히 들기는 힘들겠지만 밀어서 이동시키는 것은 한결 쉬울 것이다.

아무튼 궤짝마다 가득 담긴 금화와 은화는 헤아려 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이 될 것이다.

이 밖에 동화 또한 상당히 많다.

이건 조금 작은 궤짝에 담겨 있다. 가로 60㎝, 세로 40㎝, 높이 50㎝짜리 궤짝으로 약 10,000개이다.

워낙 수량이 많으니 이 액수 또한 상당할 것이다.

현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하리먼을 바라본다.

“하리먼, 이곳에선 로드라 부르지 말라 했다.”

“아! 죄송합니다, 국왕폐하!”

하리먼이 고개를 숙이자 그의 뒤에 있던 마법사와 기사, 그리고 귀족과 행정관들이 일제히 허리를 꺾는다.

마법사들의 선두엔 컬리가 서 있다.

3서클 마법사로 하리먼을 만나기 전 모든 마법사에 대한 지휘권한을 부여했던 자이다.

컬리의 곁에는 체격 당당한 사내가 서 있다.

본시 미판테 왕국 홀렌 영지의 수석기사였던 로드젠 아우딘 준남작이다.

이 역시 주군의 명을 받아 수도로 가다 해적에게 잡힌 운 없는 사내이다. 그러는 사이에 홀렌 영지는 영지전에 패해 완전히 몰락해 버렸다. 주군과 그 일가 모두 목숨을 잃었으니 충성의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 현수에 의해 구함을 받았고, 지고무상한 그랜드 마스터라는 걸 알고는 그 즉시 무릎을 꿇었다. 그때 현수는 기사출신 포로들에 대한 지휘권을 로드젠에게 부여한 바 있다.

현재 하리먼은 전체를 통솔하고, 컬린은 마법사들을, 로드젠은 기사들을 지휘하고 있다.

어쨌거나 모든 마법사와 기사, 그리고 행정관과 상인들 모두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

“신들이, 국왕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이 모습을 본 세실리아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다.

“네에? 구, 국왕 폐하시라구요?”

“그러하오! 앞에 계신 분은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이시자 위대하신 위저드 로드이시며, 우리 이실리프 왕국의 지엄하신 국왕폐하이시오.”

“네에……?”

세실리아는 너무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는 듯 교구를 휘청거린다. 순간적으로 다리의 힘이 풀린 때문이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라면이라는 요상한 음식으로 28,000여 명을 배불리 먹이는 것을 보고 범상치 않은 인물일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 세상 모든 마법사의 수장이며, 한 왕국의 국왕이라는 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 소녀가 감히 폐, 폐하게 무례를 저질렀사옵니다. 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실리아가 무릎을 꿇자 따라왔던 28,000여 명의 난민 모두 따라서 꿇는다.

영주로 모셨던 자작만 해도 감히 우러러볼 수 없는 존재였다.

영주의 면전에선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불경죄를 범했다며 치죄했다. 그런데 그런 영주들조차 감히 우러르기 힘든 존재가 바로 국왕이다.

그렇기에 찍소리 않고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린 것이다.

말없이 그들의 곁에 있던 루시와 카시발 또한 대경실색하며 무릎을 꿇는다. 현수가 일국의 국왕이라는 건 전혀 상상도 못한 때문이다.

스트마르크 영지 창공기사단 소속 기사이며 스트마르크 백작의 아들인 하인스 후안 반 스트마르크와 그의 아내가 될 실비아 역시 무릎 꿇고 있다.

루이체 영지 에드몬드 지안 반 루이체의 작은아들 왈로드 역시 정중히 고개 숙이고 있다.

남작의 딸이었으나 해적들에게 잡혀 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밝음과 쾌활함을 잃지 않았던 라시아의 짝이 될 녀석이다.

이 밖에 호마린 영지의 소영주 스미든 코린 반 호마린도 있다. 경솔한 판단으로 병사와 영지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뻔한 녀석이다.

아드리안 공국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콘트라를 다스리는 파이젤 백작의 똘똘한 아들 피터와 유모 엠마도 있다.

이곳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조만간 처조카가 될 이냐시오 에델만 드 로이어와 더불어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되어 명성을 드날릴 녀석이다.

아무튼 각각 현수가 위저드 로드 또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국왕이라는 지엄한 신분까지 있는 것은 몰랐기에 모두들 놀란 표정이다.

그렇기에 현수의 말에 따라 고개를 들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시선까지 맞추진 못한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 때문이다.

현수는 천천히 걸어 단상 비슷한 곳에 올랐다. 그리곤 장중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들어라! 나는 악의 무리가 점령하고 있던 이 땅을 정복하고 모든 해적을 노예로 삼았다. 이제 바닷길을 정화하여 세상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 만들려 한다.”

“……!”

마나가 실린 장중한 음성이 퍼져 나가자 모두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카리스마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알다시피 나는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이자 위저드 로드이며, 그랜드 마스터이고, 보우 마스터이기도 하다.”

현수가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끊은 사이에 저마다 한마디씩 중얼거린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대강 아래와 같다.

“아아! 경애하는 위저드 로드께 영원한 영광 있으시길 기원드리옵나이다.”

“위대하신 그랜드 마스터님께 온 마음을 다해 깊고, 높은 경배드리옵니다. 천세 만세 하시길……!”

“허억! 보우 마스터이시기도 하다니……. 참으로 위대하시옵나이다. 진심을 다해 경배드리옵니다.”

잠시 중인들의 중얼거림을 들어준 현수는 말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물과 불, 그리고 바람과 물의 최상급 정령들을 부리는 정령사이기도 하다.”

“허억……! 사람이 어찌……?”

“말도 안 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운 게 정령사인데… 그것도 하급이나 중급이 아니라 아예 최상급 정령을 부리시다니……! 그렇다면 가히 정령왕급이시네.”

“아니야! 물과 불, 바람과 물 이렇게 4대 속성 정령 전부를 부리신다면 정령왕이 아니라 정령신이신 거야.”

“끄으응……!”

모두들 기함할 듯 놀란다. 그만큼 귀한 것이 정령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잠시 말을 끓었던 현수는 중인들을 둘러보았다. 장차 이실리프 왕국의 백성 될 자들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대대손손 절대적인 충성심이 발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이 땅을 이실리프 왕국으로 선포한다. 아울러 내가 곧 초대 국왕이다. 이를 자축하는 의미로 물의 최상급 정령 엘리디아는 여기 있는 모든 이에게 물의 세례를 베풀도록 하라.”

쏴아아아아아-!

물의 최상급 정령은 전설처럼 전해지는 용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런데 자유자재로 동체의 크기를 조절할 능력이 있는 존재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이미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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