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55화 (954/1,307)

# 955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시급히 곡식을 들여오지 않으면 조만간 굶을 수도 있사옵니다, 폐하!”

해적들은 약탈을 멈췄고, 짓던 농사라는 건 변변치 않다.

따라서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자 현수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남아 있지?”

“각각의 섬마다 약간씩 사정이 다르나 코리아도의 경우는 앞으로 한 달가량 여유가 있을 뿐이옵니다.”

“흐음! 한 달이라…….”

현수가 잠깐 말꼬리를 흐리자 하리먼의 보고가 이어진다.

“시급히 배를 띄워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쿠르스 왕국과 제라스 왕국, 그리고 아드리안 공, 아니, 왕국으로부터 식량을 구해 와야 하옵니다.”

“하면,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어찌 되나?”

“두 나라 모두 가는데 10일, 오는 데는 12일 정도 걸리옵니다. 해류 때문에 오갈 때 시차가 있습지요.”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계속하라.”

“어디든 도착하여 그곳 상단과 협상하는 데 최소 2~3일은 걸릴 것이옵니다. 협상이 되어 곡식을 가져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배에 싣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7~10일 정도 예상되옵니다.”

하리먼의 말대로라면 최소 31일, 최대 35일이다.

이 말 그대로라면 코리아도 전 주민은 1~5일을 굶는다는 소리이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곡식 배급량을 줄이면 가능하다.

그런데 현수는 섬을 떠나기 전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렇기에 노예일 때 먹었던 양의 거의 세 배를 지급하고 있다.

“현재 코리아도의 총인원은 얼마나 되지?”

“해적이었던 노예까지 합치면 12만 5,618명이옵니다. 이 수는 오늘 입도한 2만 8,118명을 포함한 숫자입니다.”

“흐음, 12만 5천이라…….”

해적들이 강탈해 놓은 금은보화는 많다. 그리고 해적선도 많지만 나포해 온 상선도 상당히 많다.

이것들을 동원하면 쿠르스 왕국과 아드리안 왕국, 또는 제라스 왕국으로부터 곡물과 각종 생필품 등을 구입해 오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예전 같으면 해적들을 걱정해야 할 바다지만 현재는 그들 전부가 노역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딱 하나 염려가 되는 존재가 있다면 크라켄이다.

이에 비등한 해양 몬스터로 레비아탄과 씨 써펀트가 있다.

레비아탄은 딱딱한 비늘에 덮인 거대한 뱀의 모습으로, 등에는 방패와 같은 돌기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놈이다.

웬만한 도검으로는 어쩔 수 없는 존재이다.

씨 써펀트는 동양 전설에 등장하는 용처럼 생긴 거대한 바다뱀이다. 이놈 역시 도검으로는 상대하기 어렵다.

다행히도 이들 둘은 아리아니와 물의 정령왕 엘라임의 지시에 순응한다.

자신들이 감당해 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드리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저 유유자적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반면 크라켄은 막무가내이다. 아무런 자극을 가하지 않아도 먼저 공격한다. 오로지 자신의 본능에만 따른다.

이는 크라켄이 레이아탄이나 씨 써펀트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보다 한 등급 아래로 여겨지는 빅죠는 엘라임의 말을 더 잘 듣기에 아무런 문제될 게 없다.

해수 라니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현수는 하리먼에게 크라켄에 대한 것을 물으려다 멈췄다. 대륙의 마법사로 지내다가 해적들에게 잡혀서 살았다. 당연히 바다에 대해 모를 것이다.

다시 말해 물어봤자 ‘잘 모르겠사옵니다’라는 대답만 있을 것이기에 묻지 않았다.

“지금 즉시 은퇴한 해적 중 바다에 대해 잘 아는 자들을 찾아 그중 다섯을 데리고 오게.”

“네! 폐하! 곧 다녀오겠나이다.”

정중히 허리 숙인 하리먼은 황급히 물러난다. 국왕의 명이 떨어졌으니 즉시 이행하기 위함이다.

멀어져 가는 하리먼의 등을 보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 가장 앞에 있던 컬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위대하시고, 또 존엄하신 국왕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어 소인들의 병든 몸이 나아졌사옵니다. 대대손손 폐하와 이실리프 왕국에 충성할 것임을 다시 한 번 맹세드리옵나이다.”

컬리의 말이 떨어지자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친다.

“맹세하옵나이다.”

“맹세하옵나이다.”

두 번째로 복창한 건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28,000여 미판테 왕국인이다.

눈앞에 펼쳐진 기적을 보고 감복한 것이다.

“자손만대 내내 번성하고 강녕하시옵소서.”

“국왕 폐하! 부디 번성하고 강녕하시옵소서!”

“죽는 그날까지 폐하께 충성하겠나이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소서! 신명을 다 바쳐 폐하와 이실리프 왕국을 위하여 봉공하겠나이다.”

“끄응……!”

문득 사극을 보는 기분이 든 현수는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하지만 어찌 한 마디 안 할 수 있겠는가!

“들어라!”

현수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현재 현수의 시선을 받은 자들은 해적에게 잡혀와 이곳에 억류된 채 노예생활을 했던 마법사, 기사, 행정관, 상인 등이다.

하리먼과 컬리, 그리고 로드젠에 의해 노예들 가운데 추려진 인물들이다. 심사기준은 읽고, 쓸 수 있는지 여부였다.

다시 말해 일반 영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숲 속에서 사냥을 하던 일반인들과는 다른 인재들이다.

이들을 추려낸 이유는 59개에 달하는 섬과 그에 딸린 부속도서를 다스릴 인재가 필요했던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무조건 데려다 놓은 것은 아니다. 성정이 포악하거나, 현저히 사회성이 떨어지는 자들은 배제되었다.

옥이라 하더라도 쓸 만하지 않으면 사석 처리한 것이다.

“너희는 우리 왕국의 동량이 될 인물들! 짐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라. 다만 본인의 안녕과 행복을 돌보지 않는 자는 엄히 벌할 것인 즉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우선임을 잊지 않도록 하라! 알겠는가?”

“와아아아아! 국왕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이실리프 왕국 만세! 만세! 만세!”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동안 많은 사람이 벅찬 희열을 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라는 국왕, 영지를 위해 가진 걸 다 내놓으라는 영주, 조금이라도 빌미가 있으면 가진 것을 빼앗으려던 관리들만 보아왔다.

그런데 본인부터 돌보라고 한다. 이런 국왕은 아르센 대륙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

모두들 훌륭한 군주를 만나 이제부터 복 많은 세상을 살게 되었다는 벅찬 기쁨에 겨워 눈물 흘리는 것이다.

이때 현수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오늘은 총리와 내무대신, 그리고 군부대신과 궁내 시녀장만을 임명했다. 너희에 대해 내가 아는 바 없어 그러하다. 짐은 이실리프 군도 전체를 기름진 옥토로 개간할 것이다. 땅에서는 농사를 지으며 가축을 기르게 될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또 쏠려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발언은 이어진다.

“수확된 곡물은 왕국 전체가 먹고도 남을 것이며, 가축은 신선한 육류가 되어 밥상에 오를 것이다. 해적들 중 일부는 어부가 되어 생선을 잡아올 것이며, 부지런한 아낙은 바닷가의 어패류만으로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현수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러려면 우리 왕국의 체계가 잡혀야 할 것이다. 너희가 안을 내놓고 그게 좋다 판단되면 과감히 시행될 것이다. 능력을 발휘해라. 그 능력을 인정받으면 너희 또한 컬리나 로드젠에 버금갈 지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컬리와 로드젠은 국왕과 하리먼을 제외하곤 가장 높은 지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에 버금갈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모두의 눈빛이 반짝인다.

“아직 임명되지 않은 지위는 외무대신, 건설대신, 해양대신, 교육대신, 보건대신, 법무대신, 농림대신 등이다. 이 밖에도 빈자리가 많다. 능력 있는 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중히 쓸 것이니 나서주길 바란다.”

현수가 방금 언급한 자리들은 아르센 대륙의 다른 국가의 백작급 이상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이다.

그런데 아무런 구별 없이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와아아아! 국왕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와와와와와와!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한참 동안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이 소리가 잦아들 때 선두에 있던 내무대신 컬리가 묻는다.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신 궁금한 점이 있사옵니다.”

“말하라!”

“방금 전 59개의 섬을 개간하면 우리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 하셨사옵니다.”

“그래, 그렇게 말했지.”

현수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컬리의 말이 이어진다.

“우리 왕국은 국경을 마주한 나라가 없습니다. 게다가 해전 경험이 풍부한 해적 전부가 노예가 되었사옵니다.”

“그래! 그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전쟁의 위험이 없는 태평성대가 이루어질 것으로 사려되옵니다.”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이자 그랜드 마스터인 내가 왕위에 머물고 있으니 덤벼들 나라가 없겠지.”

아르센 대륙의 어떤 미친 나라가 감히 이실리프 왕국을 공격하겠는가!

먼저 마법사들이 전투 참여를 거부할 것이다. 위저드 로드는 모든 마법사 위에 군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사들 또한 고개를 저을 것이다. 검의 길을 걷는 기사들에게 있어 그랜드 마스터는 제국의 황제보다도 더 찬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병사들만 이끌고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전부는 이실리프 군도를 치기 위해 배를 오르기도 전에 전멸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마법사와 기사들 전부가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실리프 왕국은 지리적으로도 그러하지만 정치적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가 될 것이다.

“네! 국왕 폐하의 말씀처럼 아국은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인구가 늘 것이옵니다.”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수는 49,039,986명이고, 면적은 9만 9,720㎢이다. 1㎢당 약 492명이 살고 있다.

이실리프 군도의 총면적은 2만 6,000㎢정도 된다. 산술적으로 같은 인구밀도라면 1,281만 8,000명이 살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인구수는 약 303만 명이다. 따라서 인구가 웬만큼 늘어나는 것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어쨌거나 태평성대가 되면 인구가 늘어난다. 하리먼은 그 인원까지 가능하겠느냐는 뜻으로 물은 것이다.

이에 어찌 대답하지 않겠는가!

“짐에겐 다섯 명의 왕비가 있다.”

“……!”

아르센 대륙엔 많은 국가가 있다.

카이엔 제국, 라이셔 제국, 크로완 제국, 미판테 왕국, 테리안 왕국, 브론테 왕국, 아드리안 왕국, 쿠르스 왕국, 제라스 왕국, 샨크스 왕국 등이다.

이 나라들엔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지배계급이 가질 수 있는 부인의 수이다.

남작은 오로지 1명의 처만 가질 수 있다.

자작은 3명, 백작은 5명, 후작은 7명, 공작은 9명이다.

대공 이상은 이러한 제한이 없는데 국왕은 의무적으로 4명 이상의 왕비를 둬야 한다. 황제가 되면 최하가 7명이다. 제1황후부터 제7황후까지 거느려야 한다.

귀족은 물론이고 왕가와 황가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많은 처를 둘 수 있게 허용하는 이유는 보다 나은 후손으로 하여금 가문을 잇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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