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59화 (958/1,307)

# 959

“네? 아, 네에. 으윽!”

부친의 명에 따라 벌떡 일어서려던 로스톤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맛살을 찌푸린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바디 리프레쉬!”

샤르르릉-!

“……?”

천천히 몸을 움직이려던 로스톤은 갑자기 모든 통증이 사라지자 눈을 크게 뜬다. 그러다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 숙인다.

“마스터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가자!”

“네!”

부친의 명이 떨어지자 로스톤은 앞장서서 걸어가며 땅바닥에 떨궈져 있는 돌이나 지푸라기 같은 것들을 걷어낸다.

영주성 내부인지라 다른 곳처럼 오물이 널려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깨끗한 것도 아니다.

사람의 분뇨는 없지만 말들이 쏟아낸 변들은 여기저기 보인다. 보아하니 말똥을 말려 연료로 쓰는 듯하다.

“뫼시기에 너무 누추하여 죄송합니다.”

영주성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 낫기는 하나 무(武)를 숭상하는 자답게 모든 게 투박하다. 장식품이라고 걸어놓은 건 방패 혹은 검, 창 따위이다.

“흐음, 조금 삭막하군.”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덴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팔머 백작이 말끝을 흐리며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접견실 풍경이 드러난다. 급하게 청소는 시킨 모양인데 이곳 역시 삭막하긴 마찬가지이다. 소파 비슷한 게 보이는데 몹시 투박하다.

나무로 만든 벤치에는 지푸라기를 넣어 만든 쿠션이 올려져 있다. 오래 사용하여 보나마나 딱딱할 것이다.

앉아 보니 과연 그러하다. 지푸라기를 씌운 천은 더럽고 낡았다. 냄새도 났지만 백작 체면이 있어 현수는 입술만 달싹였다.

“워싱! 클린! 에어 퓨리 파잉!”

아르센 대륙은 다 좋은 냄새가 참 고약한 곳이다.

이곳 사람들이야 날 때부터 그런 걸 보아왔으니 적응되어 있지만 현수는 아니다. 지구에선 모든 것이 정갈하다. 악취 풍기는 물체는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렇기에 이처럼 차원 이동 이후 얼마 동안은 냄새 때문에 이맛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자리에 앉자 차라고 뭔가를 내온다. 약간의 향기를 가진 꽃잎을 뜨거운 물에 담가놓은 것 정도이다.

후루룩-!

“흐음……!”

‘이 싱겁고 무미한 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밍밍한 맛이다.

“아공간 오픈!”

현수는 아공간에서 헤이즐넛 커피를 꺼냈다. 생수도 꺼냈고 커피잔도 꺼냈다.

“히팅!”

쪼르르르륵-!

두 개의 커피잔에 물이 채워지면서 향긋한 냄새를 풍긴다.

팔머 백작은 눈을 크게 뜬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달콤한 냄새가 신경을 자극한 것이다.

“마시게!”

“네? 아, 네에. 감사히 먹겠습니다.”

현수가 밀어준 커피잔을 조심스레 집어 든 백작은 슬그머니 냄새를 맡아본다. 그리곤 한 모금을 삼킨다.

“……!”

달콤한 건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입안 가득히 느껴지는 단맛에 또 한 번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곤 조심스레 남은 커피들을 즐겼다. 이내 잔이 비었고, 또 먹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이곳에도 노예 상인이 있다고?”

“네? 아, 네에. 그렇습니다. 노예 매매를 하는 시장이 간헐적으로 개장됩니다.”

“어떤 자들이 노예가 되는가?”

“전쟁포로 및 빚을 지고 갚지 않은 자, 부모가 팔아치운 아이들 등이 노예가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판다고?”

현수의 시선을 받은 팔머 백작은 고개를 끄덕인다.

“과한 세금으로 먹을 것이 없을 경우에 가끔 그런 일이 빚어집니다.”

무슨 소리인지 훤히 짐작되는 말이다.

“영주들이 세금을 너무 많이 걷는 모양이군.”

현수의 어투가 차가워졌다는 느낌에 팔머 백작은 즉시 허리를 꺾는다.

“죄송합니다. 얼마 전까지 삼국연합군의 공격이 우려되어 군비를 증강시키느라 일시적으로 세율을 올렸습니다.”

“지금은……?”

아드리안 왕국은 모든 겁난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이다. 물론 이실리프 마탑주인 현수 때문이다.

“저희 영지는 이전보다 세율을 낮췄습니다. 그간 영지민들이 많이 고생을 했으니까요.”

팔머 백작은 자칫 현수의 분노라도 살까 두려운지 얼른 음성을 낮춘다. 알아서 기겠다는 뜻이다. 이러는데 더 뭐라 하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하여 화제를 돌렸다.

“…나는 노예 제도가 가급적이면 사라지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제 영지에서 모든 노예매매를 금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길 바라네.”

“물론입니다.”

팔머 백작은 계속해서 현수의 눈치를 살피며 뜻을 거스르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쿵, 쿵-!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누군가의 보고가 이어진다.

“영주님! 노예상 전원 압송했음을 보고드립니다.”

원칙은 안에 들어와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안에는 영주조차 하늘로 여기는 마탑주가 계시다. 그렇기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보고하는 것이다.

“백작! 나는 이곳에 있겠네. 스트마르크 영지의 해밀턴 무리로부터 다프네를 노예로 산 게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가급적 빨리 알고 싶네.”

“충! 명대로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정중히 고개 숙인 팔머 백작은 서둘러 밖으로 나가며 휘하 기사 및 병사들에게 고문도구를 준비시킨다.

인권법이라는 것이 없는 곳이기에 고문을 가해 최대한 빨리 마탑주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함이다.

잠시 후, 영주성 앞뜰에선 요란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팔머 백작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먼저 항의한 것은 이 영지 최대 노예 상인 헤센 남작이다.

노예를 사고팔면서 번 돈으로 작위까지 샀다. 따라서 귀족에 대한 적절한 예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다른 노예상이나 노예 사냥꾼들과 똑같이 제압 후 압송당했다.

상대가 마법사들인지라 변변한 저항조차 못했다. 설마 귀족인 자신까지 잡아들일 것이라곤 상상을 못한 때문이다.

“영주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를 모르십니까? 저, 헤센 남작입니다. 공국법, 아니, 왕국법에 의하면 귀족은…….”

헤센 남작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팔머 백작의 냉랭한 명령이 떨어진 때문이다.

“저놈을 당장 두들겨라. 무엇을 묻든 순순히 대답할 때까지 아주 흠씬 두들겨라.”

“네! 영주님!”

퍽, 퍼억! 퍼퍽! 퍼퍼퍼퍽!

“아악! 악! 커억! 케엑! 끄아악!”

한국에서 흔히 쓰는 말로 ‘젠장’이라는 것이 있다.

요즘엔 제 뜻에 맞지 않고 불만스러울 때 혼자 욕으로 하는 말로 사용되곤 한다.

이것의 어원을 찾아보면 젠장은 ‘제기 난장’의 준말이다.

‘제기’는 형사고발을 한다는 뜻이 있다. 따라서 ‘제기랄’은 ‘형사고발을 할’이라는 뜻이다.

또한, ‘난장(亂杖)’은 조선 시대 형벌로써 주장당문(朱杖撞問)이라고도 하던 것이다.

죄수 또는 취조대상자를 형틀에 묶어놓고 여러 형리(刑吏)가 매를 들고 신체의 각 부위를 일제히 구타하는 것이다.

지금이 그러하다. 헤센 남작은 여섯 명의 병사에게 둘러싸인 채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다.

병사들의 손에는 작지 않은 몽둥이들이 들려 있다.

한국으로 치면 박달나무쯤 되는 것으로 아주 단단하여 목검을 제작할 때 사용되는 것이다.

헤센 남작은 자지러질 듯한 비명 소리를 내며 몸부림쳤지만 소용이 없다.

조금 전, 형틀용 의자에 앉혔을 때 제 딴엔 귀족이랍시고 의연한 척하는 동안 아주 단단히 결박된 때문이다.

헤센 남작의 머리, 어깨, 등, 가슴, 허벅지, 어깻죽지, 장딴지 등에 작렬하는 몽둥이엔 매서움이 배어 있다.

한낱 노예 상인이었던 놈이 돈 좀 벌었다고 거들먹거리더니 어느 날 갑자기 돈 주고 작위를 사서 귀족이 되었다.

그날 이후 얼마나 잘난 척을 하는지 눈꼴 시려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귀족이랍시고 큰 잘못도 없는 평민들을 잡아다 두들겨 패는 등 포악을 떨었다.

평민들에게 이러했으니 본인이 거래하는 노예에겐 어떻게 했겠는가!

이가 대여섯 개쯤 부러져 나가는 구타는 평범한 일이다.

노예 거래는 이문이 많기에 한둘쯤 죽어도 그만이라며 수시로 멍석말이 비슷한 것을 가하기도 했다.

그리곤 두들겨 맞은 노예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음식과 술을 즐겼으니 일종의 변태이다.

뿐만이 아니다. 여자 노예 중 눈에 뜨인 것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의 모두 그의 밤시중을 들어야 했다.

하룻밤에 하나가 아니라 둘, 셋을 한꺼번에 안곤 했는데 아침이면 여인들은 모두 반쯤 맛이 간 상태가 되어 있었다.

헤센 남작은 채찍과 몽둥이, 가시, 칼, 촛불 등으로 여인들을 괴롭혀야 기분이 좋아지는 지독한 사디스트였던 때문이다.

소문이 번졌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제지할 수 없었다.

휘하에 그를 따르는 불량배가 많았고, 노예 사냥꾼들도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귀족이라 잘못 건드리면 귀족 모독죄로 처벌받아 노예로 전락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꼴도 보기 싫었는데 제대로 걸렸다.

하여 그간의 묵은 감정을 합법적으로 풀어내는 중이다.

당연히 병사들의 손속엔 인정이 배어 있지 않다. ‘너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감정이 잔뜩 실려 있었다.

휙! 퍼억! 휘익! 빡! 휙! 퍽! 휘익! 퍼억!

“케엑! 커억! 사, 사람 살려! 끄악! 악! 아파! 크윽! 너무 아파! 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아악!”

헤센 남작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매질에 실신 일보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병사들의 매타작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다른 곳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진행되는 중이다. 헤센 남작 아래에 있으면서 온갖 못된 일을 가행하던 졸개들 전부이다. 이 밖에 헤센 남작과 거래하던 노예 사냥꾼들도 전원 생포되어 와 고문당하는 중이다.

귀족인 헤센의 비호가 있었기에 아주 안전하다 생각하여 마음 놓고 있다가 잡혀온 것이다.

휘익! 퍼억!

“큭! 끄응……!”

어느 순간 헤센의 고개가 힘없이 꺾인다. 견뎌낼 수 없는 고통에 혼절한 것이다.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팔머 백작이 입을 연다.

“찬물을 끼얹어라.”

“네, 영주님!”

촤아악-!

“끄으응……!”

아직 추운 계절이다. 그런데 뼛속까지 얼어버릴 냉수 세례를 받았다. 헤센 남작은 혼절의 나락으로부터 올라와 정신을 차린다. 머리를 흔들어 뚝뚝 떨어지는 물을 떨구려는데 팔머 백작의 음성이 있었다.

“다시 시작하라.”

“네에, 영주님!”

휙! 퍽! 휘익! 퍼퍽! 휙휙! 퍼퍼퍽!

“케엑! 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백작님! 아악! 크윽!”

헤센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팔머 백작을 바라본다. 하나 백작의 시선은 다른 데 있다. 헤센 백작 뒤쪽 형틀의자이다.

“거기……! 너무 약하다. 더 세게 쳐라. 죽지만 않으면 된다. 눈알이 터져도 되고, 온몸의 뼈가 부러져도 괜찮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입만 살려 놔라.”

“네! 명대로 하겠습니다. 더 세게 쳐라.”

휘익! 파악! 휙! 퍼억! 휙! 빠각! 휙! 퍼퍽!

“악! 윽! 켁! 끅! 컥! 케엑! 끄윽! 커컥! 으아악!”

영주성 앞뜰은 순식간에 비명 소리로 그득하다.

얻어 터져 흘러내린 피가 형틀 의자를 흥건하게 적셔도 몽둥이는 멈출 줄 올랐다.

그렇게 5분여의 시간이 더 흘렀다.

“그만!”

“……!”

백작의 명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일제히 물러나 뒤쪽에 선다. 하지만 그 거리는 짧다. 언제든 명만 떨어지면 뒤통수를 갈길 수 있는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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