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61화 (960/1,307)

# 961

헤센 남작을 비롯한 노예상 관련자들 모두 고개를 떨군다. 자신의 목숨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하늘같은 마탑주의 부인 되실 분을 노예로 팔아넘겼는데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다만 마탑주의 분노가 가족에까지 미치기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삼족 내지 구족을 멸하라는 명이 두려운 것이다.

현수에게 돌아간 팔머 백작은 무척이나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보고했다.

“……!”

결과적으로 보면 아무런 성과도 없는 셈이다. 현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팔머 백작을 바라본다.

“면목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 영지에서 이런 일이 있어 정말 죄송합니다, 마탑주님!”

“헤센 남작은 단승 준남작으로 작위를 강등한다. 그가 가진 재산의 9할은 이 영지의 재정에 편입시키도록!”

==> 여긴 아드리안 공국입니다. 현수는 국왕과 동급이에요. 당연히 귀족의 작위를 주거나 뺐을 수 있습니다.

“네? 아! 네에.”

헤센 남작은 작위를 돈 주고 살 정도로 부유한 노예상이다. 그가 가진 재산의 9할은 이 영지의 1년 예산보다도 많다. 그런 걸 가지라니 의아한 표정이다.

“그가 헌납한 재물은 모두 영지민을 위해 쓰게. 헤센은 그걸 집행하는 행정관으로 근무토록 하고.”

“……!”

팔머 백작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영지민들 거의 전부가 몇 번이나 호의호식할 거금이기 때문이다.

“그 일이 끝나면 다시 평민으로 강등한다. 그리고 헤센의 부하들과 노예 사냥꾼들은 10년간 노역형에 처한다. 농노에 준하는 대접을 하게.”

“알겠습니다.”

“향후 이 영지에선 노예매매가 없어야 할 것이네.”

“무, 물론입니다.”

“좋아! 수고했네.”

현수의 치사에 팔머 백작은 황송하다는 표정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됐네! 그나저나 자네 아들 로스톤을 부르게.”

“네! 지금 즉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팔머 백작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현수는 로스톤에게 당분간 떠나 있을 것이니 개인 소지품을 챙기라 하였다. 명이 떨어지자 찍소리 않고 자신의 것들을 챙겨왔다.

현수는 팔머 백작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영지다운 영지가 될 수 있도록 조언한 것이다.

그리곤 로스톤과 함께 수도 멀린으로 텔레포트했다.

* * *

“여, 여긴 어딥니까?”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이네. 남자는 출입금지인 곳이니 너는 저곳에 가서 내가 보냈다 이야기하고 대기하도록.”

“아! 네에, 알겠습니다.”

로스톤은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 입구에 지어져 있는 여러 건물 가운데 현수가 지적한 곳으로 갔다.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가 제대로 유지되도록 지원해 주는 곳이다.

“누구냐? 발걸음을 멈춰라! 이곳은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이다. 신분을 밝혀라.”

“나는 홀로렌 영지의 라이온 기사단 소속 기사 로스톤 팔머 드 홀로렌이라 합니다.”

로스톤은 귀족의 자제이지만 상대는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의 경비기사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기에 정중히 고개까지 숙여주었다.

“홀로렌? 아! 그럼 팔머 백작님의 자제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로스톤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기사는 창을 거두곤 반갑다는 듯 웃음 띤 얼굴이 된다.

“반갑습니다. 나는 피친트 아델 드 팔리안입니다.”

“아! 그럼, 팔리안 백작님의……?”

“네! 저도 차남입니다. 이웃 영지인데 처음 뵙는군요.”

경비기사 피친트의 말처럼 홀로렌 영지와 팔리안 영지는 이웃해 있다.

둘 사이의 교류가 없었던 이유는 커다란 산이 영지와 영지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곳인지라 왕래하기 힘들어 처음 만난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헥사곤의 경비기사라니요.”

“하하!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 경비기사단은 왕실기사단과 늘 비교되던 자리이다.

현수가 출현하기 전까진 왕실기사단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탑주의 출현 이후 경비기사단의 위상은 급상승했다.

그랜드 마스터인 마탑주로부터 한 번이라도 조언을 얻으면 무위가 수직 상승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온 이후의 일이다.

하여 왕실기사단 소속 기사들의 전임신청이 쇄도하였다.

하지만 국왕은 이를 윤허하지 않았다. 그간 왕실기사단을 알게 모르게 홀대하던 것에 대한 보답 차원이다.

그리고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 경비기사단에게 추호의 과오도 없기 때문에 명분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전에는 소드 익스퍼트가 아니어도 입단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새롭게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의 경비기사단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소드 익스퍼트 중급은 되어야 한다.

아울러 심지가 굳고, 충성심이 남달라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검에 대한 재능도 있어야 하고, 의지력도 강해야 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다 일선에서 물러나면 대부분 국경수비대 지휘관으로 영전되어 가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치면 여단장급이다.

참고로, 여단은 2,000~4,000명의 인원으로 구성되며, 지휘관인 여단장은 대령 혹은 준장이다.

피친트는 로스톤을 보며 웃음 짓는다. 승자의 여유 있는 웃음과 비슷하다. 이곳에서 10년간 근무하면 여단장급이 되니 어찌 마음이 편치 않겠는가!

“그래,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이웃 영지 영주의 작은아들이라니 예우해 주는 모습이다.

“아! 마탑주께서 저더러 이곳에 가서 대기하라 명을 내리셔서…….”

로스톤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피친트가 대경실색하며 반문한 때문이다.

“마, 마탑주께서 오셨습니까?”

“네, 방금 전 저와 함께 텔레포트하여 당도하셨습니다.”

“헉! 가, 같이요?”

피친트가 몹시 놀란 표정을 짓자 로스톤은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된다.

“네, 제가 수행하고 왔지요.”

“그, 그래요? 그, 그럼 이쪽으로…….”

마탑주를 수행하여 왔다면 일행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귀빈 대접이다. 그렇기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 만만하던 피친트가 허둥지둥거린다.

잠시 후, 로스톤은 경비기사 단원들에게 둘러싸여 현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00개가 넘는 매직 미사일과 200개가 넘는 파이어 애로우로 친히 자신을 수련시켜 줬다는 뻥을 치는 중이다.

“그때 마탑주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로스톤! 인간의 동체시력은 무한하다. 정신을 집중하여 잘 살피면 순차적으로 쇄도하게 될 파이어 애로우를 모두 막아내거나 피할 수 있다. 집중과 노력! 이 두 가지를 잊지 마라!”

“정말 마탑주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로스톤에게 묻는 이는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의 경비기사단장 파드린 헤곤 판 라디우 백작이다.

그럼에도 로스톤에게 경어를 쓴다. 마탑주로부터 직접 사사한 제자인 것으로 오인한 때문이다.

반문한 이유는 마탑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금과옥조인지라 다시 한 번 들어 마음에 새기려는 의도이다.

“그럼요. 그러면서 말씀하셨지요. 동체시력은 수련만 하면 얼마든지 나아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스톤의 뻥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탑주가 그랬다고 하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뻥에 속아 넘어가자 로스톤은 말을 잇는다.

“그리고 나서 마탑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피해 보아라! 파이어 애로우!”

모두들 뒷 상황이 궁금하다는 듯 침을 삼킨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스톤의 뻥은 이어진다.

“그러자 엄청나게 많은 불화살이 허공에서 돋아나는데 그때 그걸 보고 진짜 겁먹었지요.”

“왜요?”

누군가의 물음에 로스톤은 시선을 한번 주고는 입을 연다.

“그건 단순한 불화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하나의 크기가 거의 굵은 창이었으니까요.”

“창이요……?”

“네! 엄청 굵고 긴데다가 맞아보니 아주 살벌하게 뜨거웠거든요.”

“…그거에 맞았는데도 부상을 입지 않았습니까?”

“입었지요. 그때 저는 풀아머 상태였습니다. 바이저까지 내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어휴……!”

“어휴요? 왜요?”

궁금함을 참지 못한 누군가의 물음에 로스톤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중에 보니까 아머가 거의 걸레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찌나 강렬했는지 다 찌그러져서 벗는 게 힘들 정도였지요.”

“아……!”

누군가 파이어 애로우가 갑옷에 격중되면서 움푹 찌그러지는 장면을 상상한 듯싶다. 이때 로스톤이 소매를 걷는다.

“보십시오. 이게 그 흔적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 곳엔 시퍼렇게 멍든 자국이 있었다.

“으으, 많이 아팠겠네요.”

“아이구 그럼요! 그때는 그대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금방 괜찮아졌습니다.”

“금방 괜찮아져요? 어떻게요? 전신이 다 이랬다면 며칠은 끙끙 앓아누워야 정상 아닌가요?”

“마탑주님이 누구십니까? 이 세상 모든 마법사의 정점이신 위저드 로드이십니다. 제가 고통에 겨운 신음을 내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로스톤이 잠시 말을 끊자 모두들 어서 말을 이으라는 표정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바디 라프레쉬! 너는 이제 괜찮을 것이다. 나의 로스톤아! 많이 아팠느냐?”

꿀꺽-!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를 낸다.

“그 순간 온몸이 시원해지더군요. 그리고 모든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아! 과연…….”

“역시! 마탑주님이시군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누군가 로스톤에게 묻는다.

“근데 그걸로 끝입니까? 혹시 검을 뽑아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마탑주님은 그랜드 마스터이기도 하시잖습니까.”

“…그랬죠.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탑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로스톤! 이제부턴 검법 수련이다. 네가 가진 모든 재간을 부려봐라.”

“그, 그래서요?”

기사들의 눈빛이 조금 더 강렬해진다.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로부터 검법을 사사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해서이다.

“저는 그동안 수련했던 가문의 검법을 모두 동원하여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마탑주께서는 너무도 쉽게 저의 검을 막아내셨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괜히 그랜드 마스터겠습니까?”

경비단장 파드린 헤곤 판 라디우 백작의 말이었다.

고위귀족이지만 로스톤에게 높임말을 쓴다. 로스톤을 현수의 제자로 인식한 때문이다.

이를 눈치 채지 못한 로스톤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검을 꺼내 이렇게 했다는 듯 휘두른다.

“이렇게 했는데 순식간에 반격을 하시면서 네, 어깻죽지를 찌를 테니 막아보라 하셨습니다.”

“그, 그래서요?”

저도 모르게 반문한 경비단장은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마치 장난감을 앞에 둔 어린아이 같다.

“근데 그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러 블레이드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마스터께서는 그런 거 없이 순수한 검법으로만 저를 제압하셨습니다. 그때…….”

로스톤은 점점 더 심한 거짓말쟁이가 되어 갔다. 기사들이 묻는 말에 조금씩만 살을 붙이면 이야기가 되기에 그렇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로스톤은 현수가 직접 거두고, 키우는 제자로 인식되어 갔다.

대략 2시간에 걸친 뻥의 결과는 최고급 객실로 이어졌다.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 외곽엔 마탑주와 동행한 다른 마법사들을 위한 숙소가 지어져 있다. 물론 시설이 좋다.

로스톤은 이 중 가장 좋은 방을 배정받았다. 두 명의 시녀가 배정된 이 방으로 진귀한 요리들이 줄줄이 들어갔다.

술도 당연히 곁들여졌다. 시녀들은 마탑주의 제자라는 로스톤의 환심을 사려 경쟁적으로 애교를 부렸다. 로스톤의 아내가 되면 그야말로 팔자 고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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