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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964화 (963/1,307)

# 964

그런데 해적들 모두가 제압되었다니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제부턴 길고 긴 해안선 전체를 지키느라 국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국왕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끝없이 돈이 들어가던 일 하나가 완벽하게 사라졌으니 마음이 편해져서이다.

“파이렛 군도는 이실리프 군도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가 손수 해적들을 제압하였으니 이름 바꾸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곳은 제 왕국이 될 겁니다.”

“네에……? 왕국이요?”

국왕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새로운 왕국이 탄생된다는 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기왕에 제압했으니 제가 다스려 보려구요. 국왕께서는 대륙 각국에 이러한 소식을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럼요!”

얼떨결에 하는 대답인 듯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이실리프 왕국은 아직 기틀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아 대외적인 업무를 추진할 능력이 없습니다. 도와주실 거죠?”

“무, 물론입니다. 대륙 각국에 사람들을 파견하여 마탑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드리안 왕국과 이실리프 왕국은 서로 호혜하는 사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의당 그리해야 하지요.”

아민 멘데스 폰 아드리안 국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아드리안 왕국은 전쟁 준비를 하느라 재화를 모두 써서 재정 고갈이 우려된다고 했었다. 삼국연합이 거의 모든 국경을 봉쇄하여 물가가 왕창 오른 때문이다.

“목화씨를 구해드릴 테니 그걸 재배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으십시오. 다른 나라로 종자가 흘러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셔야 특산물 대접을 받을 겁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문익점이 붓 대롱에 씨앗을 감춰온 것처럼 언젠가는 대륙 전체로 번질 것이다.

그래도 아드리안 왕국이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는 아주 중요한 수출 자원이 될 것이다.

아무튼 국왕은 목화를 독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이라도 느끼는지 부르르 떤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제게 스승님께서 남기신 재물이 조금 있습니다. 마탑을 위해 써야 하는 거라 말씀 안 드렸는데 이번에 해적을 소탕하면서 적지 않은 재물을 얻었습니다.”

“아……!”

지난 50년간 바다 위를 오가는 상선 중 상당수가 해적들에게 나포되어 갔다.

그중엔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배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보물을 얻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스승님께서 남기신 것을 드릴 테니 아드리안 왕국을 위해 쓰십시오.”

“감사합니다. 아껴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아드리안 왕국이라 하시는데 정확한 명칭은 공국입니다.”

국왕의 어투는 조심스러웠다. 마탑주의 실수를 지적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국이 아니라 왕국이라 하셔도 됩니다.”

“……?”

“라이셔 제국과 카이엔 제국엔 이미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미판테 왕국 역시 왕국 선포를 적극지지 할 것입니다. 우리 이실리프 왕국 또한 그러합니다.”

“……!”

국왕은 멍한 표정이다.

아드리안 공국은 카이엔 제국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따라서 카이엔 제국만 왕국으로 인정해 줘도 충분하다.

이럴 경우 카이엔 제국이란 보호막이 사라진다 생각하고 집어삼키려는 이웃 국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라이셔 제국와 미판테 왕국, 무엇보다도 이실리프 왕국의 지지가 있으면 감히 건드릴 수 없게 된다.

당분간 국방에 신경을 덜 써도 된다는 뜻이다.

“다만 왕국 선포일을 저와 상의해 주십시오.”

“네? 아, 그럼요, 물론입니다.”

국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 덕에 공국에서 왕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니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그날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 옥타누스 카로길라아지바랄과 골드 드래곤 제니스케리안 인터누스 지노타루이마덴이 아드리안 왕국의 수호룡 선포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헉! 네에?”

국왕은 대경실색하는 표정이다. 이때 현수의 결정타 한 방이 더 날아간다.

“아! 깜박했는데 제니스케이안은 현재의 드래곤 로드인 옥시온케리안과 쌍둥이입니다.”

“끄응!”

국왕은 너무도 놀라 신음만 토한다.

“스승님께서는 후손들의 나라가 위험에 처한 것을 몹시 가슴 아프게 생각하셨습니다.”

“……!”

국왕은 시조님의 이야기가 나오자 숙연한 표정이다.

“라이세뮤리안과 제니스케리안이 살아 있는 동안 아드리안은 안전할 겁니다.”

“그, 그럼요.”

위대한 존재 둘이 수호하는 국가를 어떤 미친놈이 건드리겠는가!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기에 국왕의 고개는 크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제 경우는 몇 번의 바디체인지를 겪으면서 수명이 대폭 늘었습니다.”

“……!”

국왕은 아직 바디체인지를 겪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모른다. 하여 몹시 궁금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제 수명은 대략 1,300년 정도입니다. 앞으로 1,000년 이상 살겠지요.”

“아……!”

건강히 오래 살고픈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국왕이라 하여 어찌 다르겠는가! 하여 몸에 좋다는 건 다 구해다 먹는다.

그럼에도 오래 살 것이란 보장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국왕의 자리가 공고하고, 자식들 가운데 왕위를 탐내는 녀석들이 없다는 것이다.

안 그렇다면 언제든 독살당할 수 있는 것이 국왕이다.

실제로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왕이 독살당했다. 전체의 25% 정도이다.

인조, 선조, 소현세자, 효정, 현종, 경종, 정조, 고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즉위할 때 반대세력이 있었다는 것과 독살당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미래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독살 당해 죽은 후엔 그 반대세력이 민 사람이 다음 왕이 되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조선시대의 왕은 지존이지만 절대적인 충성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이고, 욕심 많은 무리는 제 이득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임금에게 독약을 썼음을 의미한다.

7장 가자! 라수스 협곡으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봐도 그러하다.

이조판서 박충서 무리는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 왕을 죽이기 위해 팥죽에 독약을 넣으라 지시한다.

이에 기미나인 사월이가 고마웠던 임금을 대신하여 그것을 삼키고 대신 죽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일이 많았기에 조선 후기엔 왕의 독살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백자은구약주전자(李朝白磁銀具藥茶罐)’라는 것을 만들어 사용해야 했다.

왕실용 탕제나 약주에 독극물을 넣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은으로 만든 자물쇠가 부착된 백자 주전자와 잔이다.

대놓고 신하들을 의심한다는 의미의 유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국왕은 현수 덕분에 모든 시름으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이다. 당연히 몹시 고맙다는 마음이 들어 정중히 사례하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아공간 오픈!”

또 시커먼 입구가 일렁인다.

[아리아니, 안쪽에 스승님이 남기신 금은보화들이 있을 거야. 그것들을 이 앞에 꺼내줘.]

[네, 주인님!]

말 떨어지기 무섭게 아공간으로부터 금은보화들이 튀어나와 국왕의 앞에 쌓이기 시작한다.

금화와 은화는 물론이고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사파이어, 호박, 진주, 오팔, 루비, 아쿠아마린 등이다.

“허어! 세상에…….”

현수가 꺼내놓은 것들의 가치는 아드리안 공국 시절 가장 번성했을 때 국고 전부와 비슷할 지경이다.

멀린은 7서클 대마법사 시절에 상당히 많은 마법검 등을 제작하여 팔았다. 8서클에 이르려면 많은 실험 등을 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적은 돈이 들었기에 엄청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드리안 왕국이 지금보다 번영하려면 인재 발굴에 힘써야 할 겁니다.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과 노예 가운데에서도 영리한 자들을 찾아 쓰는데 사용하십시오.”

“…마탑주님의 금언,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나중에 이실리프 왕국으로 한번 오십시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보기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꼭 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왕은 정중히 허리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마땅히 반례로 대응해야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스승을 대신하여 이실리프 마탑주로서 받은 하례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국왕께 도움을 청할 일이 있습니다.”

“네……? 아! 네에, 말씀만 하십시오.”

국왕은 자신이 10서클 마법사에게 도움 줄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던 모양이다.

“미판테 왕국에 제 아내가 될 여인이 있었는데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었습니다.”

“네에?”

세상 모든 마탑 위에 우뚝 솟은 이실리프 마탑주의 부인이 될 여인을 누군가 납치하였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게다가 노예 상인이라고 한다.

하여 대경실색할 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노예 상인에게 물어보니 이곳 멀린에서 경매에 붙여졌었다고 합니다.”

현수의 말을 듣는 순간 국왕의 뇌리로 스치는 사건 하나가 있다. 아드리안 공국이 건국된 이래 가장 비싼 값에 경매된 여자 노예 사건이다.

당시 경매에 참여했던 귀족들의 말에 의하면 지상 최고의 미녀였다고 한다.

경매 시작가는 300골드였다.

그날 마지막으로 경매된 노예의 면사를 벗겨내는 순간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너무 아름다워 입을 다물 수 없어서 그러했다. 그전까지 경매된 여자 노예들은 꾀죄죄하고,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괜찮은 의복이며 장신구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매 참가자들을 구경하는 여유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여 어느 몰락한 귀족가의 여식이라 생각했었다.

어쨌거나 300골드에서 시작된 호가는 305골드, 310골드, 315골드에 이어 320골드, 330골드로 늘어났다. 이것은 계속해서 350골드, 380골드, 420골드, 470골드로 이어졌다.

서로 차지하려는 경쟁이 붙은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1,000골드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 돈으로 치면 약 10억 원이다.

이때부터는 조금씩 뜸해졌다. 여자 노예 하나의 가격이 10억 원이라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가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러다 누군가가 1,200골드라 외치자 조용해졌다.

네 자리 숫자가 되면서부터 여자 노예 하나의 값치고는 너무 높은 가격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때문이다.

이에 경매 진행자는 더 높은 가격을 부르실 분 없으면 낙찰시키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곤 하나, 둘에 이어 셋이라 외치며 의사봉을 두드리려던 순간 누군가의 음성이 있었다.

“1,600골드에 사겠소!”

“……!”

경매 참가자 전원이 얼음처럼 굳어버린 순간이다. 한 번에 호가가 400골드나 뛰어오른 때문이다.

곧이어 모두의 시선은 1,200골드를 외쳤던 사람에게 향했다. 얼굴이 익히 알려진 공작가의 집사이다.

그런데 그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1,600골드 이상을 부를 엄두가 나지 않은 때문이다.

잠시 후 진행자의 의사봉이 세 번 두드려졌다. 건국 이래 최고가 노예가 낙찰된 것이다, 하여 이 사건은 한동안 사교계에 회자되었다. 그렇기에 국왕까지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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