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66화 (965/1,307)

# 966

현수를 위해 긴급히 준비시킨 듯하다.

하여 막 자리에 앉으려는데 사내 셋이 황급히 들어오더니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군례를 올린다.

“충-! 위대하신 마탑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이곳 마르헨 영지의 영주 다이칸 히킨스 반 마르헨 자작이옵니다.”

“충-! 후마엔의 영주 헤롯 에드윈 폰 후마엔 자작이 위대하신 하늘을 알현하옵니다.”

“충-! 롤리아의 영주 에드워드 지린 드 롤리아 남작이 드높으신 로드를 알현하옵니다.”

“…반갑네. 일어서게.”

“감사하옵니다.”

“감히 명을 받자옵니다.”

셋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공손히 고개 숙여 다시 한 번 예를 갖춘다. 이때 로니안 공작의 설명이 있었다.

“후마엔과 롤리아는 이곳 마르헨의 이웃 영지이네.”

“아!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셋을 바라보았다.

히킨스 자작과 지린 남작은 마법을 익혔고, 에드윈 자작은 검술을 익힌 모양이다.

이들 세 영지는 나란히 위치해 있는데 라수스 협곡과는 자그마한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예전엔 각각의 영지에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하나씩 있었다. 그것을 건너 라수스 협곡을 지나 미판테 왕국 서쪽의 영지들과 교역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이세뮤리안이 인간 출입금지를 선포했다. 수면기를 준비하던 때이다.

드래곤들은 자신들의 수면기를 방해받아 깨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내린 선포이다.

몬스터들은 드래곤의 소변 냄새만 맡아도 질겁해서 도망친다. 게다가 웬만한 몬스터들은 상대도 안 될 가디언들까지 있다. 따라서 일반 몬스터들은 감히 접근도 못한다.

그런데 인간은 그러하지 않다.

욕심 사납고, 억척스러우며, 집요한 구석이 있다. 여기에 깡다구까지 갖춘 놈들도 있다.

이런 자들은 드래곤이 잠들어 있다는 걸 알면 레어까지 침범하여 금은보화를 훔쳐 가려 한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욕심을 이겨내지 못한 때문이다.

여러 번 유희를 했기에 라세안은 인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수면기를 준비하면서 인간 출입금지를 명한 것이다.

예상대로 경고를 무시한 인간들이 침범했고 본때를 보여주었다. 거의 다 죽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자는 평생을 병신으로 지낼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2차 침입이 있었다. 이때는 아예 씨를 말려 버렸다. 그들의 짓이겨진 시체는 협곡 밖으로 던져졌다.

그중 멀쩡한 시신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후론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 곳이 라수스 협곡이다.

그런데 그 기록을 깬 인간이 있었으니, 바로 현수이다.

그리고 라세안을 꺾었다. 그 결과 라세안 스스로 알아서 기어주는 중이다.

10서클 마스터에 그랜드 마스터이며, 보우 마스터인 현수의 마법과 무력도 무섭지만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녔다는 핵배낭이 너무 무서워서이다.

어쨌거나 인간 출입금지가 선포된 그날 이후 다리를 건널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세월이 흘러 후마엔과 롤리아 영지의 목교는 썩어서 무너져 버렸다. 남은 건 마르헨 영지에 있던 돌다리뿐이다.

세 영지의 약초꾼과 사냥꾼들은 이 다리를 건너 협곡 근처까지 다녀온다. 그래서 후지긴 하지만 여관이 있는 것이다.

마르헨의 영주 히킨스 자작은 어제 당도한 로니안 공작 일행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지가 생긴 이래 최고위 귀족의 방문이었던 때문이다.

이곳은 라수스 협곡 덕분에 국토 중앙부에 위치해 있지만 변두리 취급을 받는 영지이다.

물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지리적 단점 때문에 다른 영지에 비해 낙후되어 있기에 더하다.

토질 또한 척박하여 소출도 적다. 하여 늘 식량부족을 겪는다. 그런데 심심치 않게 몬스터까지 출몰한다.

비교적 사냥하기 쉬운 소형 몬스터라면 잡아서 부산물을 팔아 이득이라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영지 인근에 사는 몬스터는 오거이다.

다리에서 협곡 입구까지 거리는 대략 4㎞ 정도 된다.

비교적 평탄한 지형인데 빽빽한 숲이 형성되어 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인적이 드물었던 까닭이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먹잇감이 풍부한 협곡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지만 오거는 가끔 이곳을 드나든다.

언제부터인가 숲 속에서 살기 시작한 멧돼지나 사슴, 늑대 같은 짐승들을 잡아먹기 위함이다.

숲의 넓이에 비해 출현하는 오거의 숫자는 많지 않다. 그리고 빈번하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짐승들의 개체수는 점점 늘어나 상당히 많은 지경이 되었다.

하여 사냥꾼들이 다리를 건너 사냥을 나서곤 하는데 자칫 재앙을 불러들일 수 있다. 오거를 피해 도주하는 것이 놈들을 유인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사냥을 막을 수도 없다. 영지에 필요한 육류와 가죽을 공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 다리 앞에 높고, 튼튼한 석성을 쌓아 두었고 병사들을 배치했다. 언제 올지 모를 오거의 침입을 대비한 것이다.

숲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거는 최소한 기사 다섯 명이 달려들어야 간신히 제압하거나 퇴치할 수 있다.

그리고 혼자 또는 둘이 돌아다닌다.

그렇다 하여 기사 열 명을 늘 상주시킬 수는 없다.

잡아봤자 가장 비싼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가죽 대부분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힘줄과 뼈 등은 간신히 얻을 수 있지만 노력 대비 성과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발전하고 싶어도 발전하기 힘든 곳이다.

그러다 보니 영주성 자체도 후져졌다. 손보고 싶어도 재원이 부족하여 낡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세 영지의 영주가 한자리에 모인 건 오래간만의 일이다. 각자 자기 영지를 건사하기에도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듯 모인 건 새롭게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로니안 공작을 뵙기 위함이다.

수도에서 승작식을 했지만 이들은 가지 못했다.

작위가 낮은 때문도 있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몬스터 러시가 결정적 요인이다.

8장 실크로드

숲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고 지난 며칠간 이들 세 영지의 기사와 병사들은 다리 바깥 석성을 지키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협곡 인근에 서식하는 오거들의 수효는 대략 300여 개체인 것으로 파악되어 있다.

이는 사냥을 나섰던 사냥꾼들의 보고이다.

따라서 놈들을 막아내지 못하면 세 영지 모두 쑥밭이 된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 다리를 막으려 병력을 집결시켜 놓고, 대기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확인한 것보다도 오거의 수효는 많았다. 대략 400여 개체 정도 되었던 것이다.

놈들은 석성으로 몰려들었다. 강의 중심부의 수심은 대략 15m 정도 된다. 그런데 오거는 헤엄을 치지 못하며, 유속이 너무 빠르므로 강을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석성은 오거들의 무지막지한 몽둥이질을 간신히 견뎌냈다. 이곳저곳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인 곳도 있지만 어쨌든 견뎌내기는 했다.

하다하다 안 되니까 강을 건너려던 오거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급류에 휘말려 익사했다. 덕분에 아주 말짱한 사체 여섯 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무튼 몬스터 러시가 끝난 후 각각의 영주는 병력을 되돌려 자신들의 영지로 되돌아갔다. 그러다 로니안 공작이 온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되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어젯밤, 세 영주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로니안 공작 일행이 하인스 마탑주와 함께 라수스 협곡을 가로질러 율리안 영지로 간다는 것이다.

지난 1천 년간 어느 누구도 지나가 보지 못한 길이다.

하여 전설처럼 전해지는 학살 사건을 이야기했다. 라수스 협곡을 지나가려던 왕자와 기사들 이야기이다.

그런데 로니안 공작은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 하여 연유를 물었다가 기함할 듯 놀랬다.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인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과 마탑주가 친구 관계라는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인간과 드래곤의 우정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쨌든 로니안 공작의 일행에는 이레나 상단뿐만 아니라 아렌시아 상단 관계자도 포함되어 있다.

공작의 영토로부터 수도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얻기 위함이다. 개척만 되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테세린은 이웃국가인 테리안 왕국과의 교역이 가장 활발한 곳이라 미판테 왕국엔 없는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승작하면서 하사받은 루데란 영지에선 질 좋은 철광석이, 마인테 영지에선 구리광석이 나온다.

이 밖에 영지전을 통해 차지한 예전의 유카리안 영지는 곡창지대일 뿐만 아니라 최고등급 마나석 광산까지 있다.

이것들을 독점적으로 거래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이익이 생길 것이다.

일행 중 하인스 상단을 대표하는 얀센이 빠진 이유는 이런 품목들을 거래하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현수가 아르센 대륙에 와서 가장 먼저 만났던 케이상단도 빠져 있다. 이들은 테세린을 통해 테리안 왕국와 미판테 왕국의 교역을 독점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아울러 바세른 산맥 아랫자락에 조성되고 있는 이실리프 자치령과의 교역만으로도 많은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공작은 세 영주에게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동행할 것을 권유했다. 도로를 내기 위함이다.

도로가 생기면 그 길을 따라 상단들이 이동하게 된다.

협곡 저쪽 율리안 영지에서 시작한 길은 이곳 마르헨 영지의 돌다리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것만 건너면 각각의 영지로 이동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들 세 영지는 새로운 물류의 출입구가 된다. 미판테 왕국을 동서로 잇는 통로 중 동쪽을 장악한 때문이다.

권유를 받은 세 영주는 황급히 도로공사를 준비토록 했다.

머리가 나쁘지 않기에 로니안 공작의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깨달은 때문이다. 하여 기사와 병사들은 물론이고 영지민들까지 몰려오고 있는 중이다.

현수는 세 영주를 일견하곤 로니안 공작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제가 무엇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로니안 공작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꾸한다.

“출입증을 주었으면 하네! 각각의 영지에 하나씩이면 되네. 부탁하네.”

라수스 협곡을 지나려면 가장 먼저 라세안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다음은 1세대 드래고니안 마을의 허가이다.

드래고니안은 자신들이 인간보다 우월하다 생각한다. 따라서 허락 없이 돌아다니다간 이들의 분노를 살 수 있다.

현수처럼 무지막지한 무력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면 수십 명에 달하는 소드 마스터를 어찌 감당해 내겠는가!

따라서 1세대 드래고니안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들의 후손들까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조상이 허가한 것을 아니라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혼돈의 숲을 지나게 할 안내인이 있어야 한다.

안내인 없이 이 숲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미로진 속에 갇힌 것처럼 헤매다가 말라죽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것들 모두가 가능하게 할 것은 현수가 제작하고 라이세뮤리안이 승인한 출입증 뿐이다.

공작과 이레나 상단, 그리고 아렌시아 상단에 각기 2개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세 영지의 영주들에게도 주라는 뜻이다.

“도로를 만들려면 많은 재원도 들지만 세 영지는 너무 낙후되어 있네.”

로니안 공작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출입증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협곡 동쪽의 어떤 영지에서 긴급히 서쪽 영지로 가야 할 경우가 있다. 상단 파견일 수도 있고, 저쪽에 있는 것을 구해 와야 할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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