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67화 (966/1,307)

# 967

진통 효과가 있는 디오나이아의 열매 혹은 해독작용을 하는 쏘러리스의 간 등이 그것이다.

아니면 율리안 영지에서 제조한 질 좋은 무구이거나, 테세린의 특산물이 된 질 좋은 마나석 또는 엘리터 가죽이나 이빨일 경우도 있겠다.

전에는 이를 구하기 위해 국토의 최남단까지 갔다가 다시 북상해야 했다. 되돌아오려면 간 길을 되짚어야 하는데 때로는 1년 이상이 소요되기도 했다.

그런데 라수스 협곡을 통과하면 이 기간이 대폭 줄어든다.

따라서 출입증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평상시엔 협곡 내부로 들어가 만드라고라 같은 귀한 약초를 캔다든지 사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라이세뮤리안이 허락해 준 일정 범위 내에서의 일이다.

현수는 세 영주의 간절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하여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세 영지에도 출입증을 주겠네.”

“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은 세 영주만 좋은 일인 듯싶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들 셋은 로니안 공작의 배려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는 세 귀족의 전폭적인 지지이다.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일이 일어나려는 것이다.

아무튼 현수는 간단한 식사를 마쳤다. 스테이크에선 심한 누린내가 났다. 다른 이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냄새이겠지만 현수는 역한 냄새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후춧가루를 꺼냈다. 로니안 공작과 세실리아 공작부인, 그리고 로잘린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후춧가루를 처음 접한 세 영주는 눈을 크게 뜬다.

처음 보는 물건인데 그 효능이 너무도 신묘했던 때문이다.

출입증과 도로 개설 이외엔 아무런 논점이 없는 관계이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쳐졌다.

후식으로 나온 차는 너무도 밍밍했다. 하여 인스턴트커피를 돌렸다.

로니안 공작뿐만 아니라 세 영주 모두 깊고 그윽한 향과 달콤한 맛에 흠뻑 젖어든 듯 보인다.

‘흐음, 하인스 상단의 다음 품목은 정해진 것 같군.’

환경보호를 위해 커피믹스는 제공하면 안 된다.

비닐포장 때문이다. 유리병에 담긴 커피와 크리머는 있으니 설탕만 준비하면 될 듯하다.

아공간에도 상당량이 있지만 아르센 대륙 전체를 상대하려면 상당히 많은 양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굳이 메이커 커피를 살 필요가 없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본산지이다.

크리머와 설탕의 원료인 야자수와 사탕수수는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많이 난다.

공장을 짓고, 기술자만 고용하면 즉시 생산 가능하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아프리카에 소재한 이실리프 자치령에서도 이 모든 원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이실리프 군도에서도 이들 셋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다. 적도 인근이라 재배 여건은 충분하다.

‘흐음! 커피, 크리머, 그리고 설탕 회사에 다니다 은퇴한 분들을 스카우트해야 하는군. 공장도 지어야 하고.’

메모하면서 현수가 중얼거린 소리이다.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의 실업률은 약 3.4% 정도 된다.

일할 능력과 취업할 의사가 있는 사람 가운데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이 실업률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년 실업자도 많지만 일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직장에서 밀려난 장년인도 많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그러하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기대수명은 100살로 늘어났는데 50대에 접어들자 직장에서 나가라고 눈치를 준다. 하여 베이비부머 세대 실업자들이 갑작스레 증가하는 추세이다.

거의 모두 재취업을 원하지만 전과 동일한 수준의 직장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그래도 호구지책을 해결하여야 하므로 소규모 창업을 계획한다. 대표적인 게 음식점과 치킨집, 그리고 커피숍이다.

그런데 성공하는 이가 극히 드물다.

통계에 따르면 소규모 창업자 중 85%는 2년 이내에 망한다. 나머지 중 10%는 3년 이내에 망한다고 하니 거의 다 실패한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소규모 창업을 하면 3년 이상을 버틸 확률이 불과 5%뿐이다. 그런데 이들 전부가 성공한다는 뜻은 아니다. 일부는 성공하지만 나머지는 버틸 힘만 얻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베이비부머 세대는 창업은 쉽지 않고,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인 세상을 살고 있다.

게다가 많은 돈이 필요한 자녀의 결혼 등이 목전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직장에서 밀려나 수입이 끊긴 것이다.

연금을 수령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수입이 없다면 어떤 일이 빚어질까?

거기에 벌어놨던 돈을 소규모 창업으로 모두 잃었으니 중산층이었던 가정이 급전직하하여 극빈층으로 주저앉게 된다.

2009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베이비부머 세대 남성은 인구 10만 명당 62.4명이 자살했다. 20년 전 같은 연령대의 자살률(15.6명)보다 무려 4배나 많은 수치이다

이혼율도 증가 추세다. 2006년과 2009년을 비교해 보면 남성 이혼자는 34.8%, 여성은 53.2%나 늘어났다.

소리 없이 심각한 가정파괴 현상이 빚어지는 중이다.

사회적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임이 분명하지만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수는 이들 은퇴자들을 재취업시키는 것이 서로에게 윈-윈이라 생각했다.

은퇴자 입장에선 살던 곳을 떠나 멀고 먼 곳으로 가야 하는 불편함이야 있겠지만 질 좋은 새 직장에 취업하여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쾌적한 거주지를 아주 싼값에 제공받으니 한국처럼 수억 원이나 하는 부동산을 가질 필요가 없다.

부족한 것은 있겠지만 물가는 싸고,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년퇴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노후 걱정은 한결 덜어지니 더 좋다.

현수 입장에서도 머리 좋고, 부지런하며, 일할 의욕이 넘치는 숙련된 기술자 내지 직원을 별다른 경쟁 없이 쉽게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이직률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실리프 자치령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재능과 적성에 따라 다른 일을 할 수는 있다. 다시 말해 이실리프 자치령 안에서는 이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 봤자 현수의 손아귀 안에 있기는 마찬가지이니 이런 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흐음, 숙련된 기술자들이니 젊은이들도 잘 가르치겠지?’

청년실업률 또한 만만치 않은 곳이 대한민국이다.

2014년 3월 현재 10.9%이다.

전년에 비하면 2.2%나 상승한 수치이다. 이 수치엔 알바생, 취업포기자, 고시 및 공무원 준비자는 빠져 있다.

상당히 많은 수가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백수가 되기에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의 첫 글자를 딴 ‘이태백’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이다.

하여 요즘 청년세대는 ‘3포세대’라 부르기도 한다.

‘취업, 결혼, 출산’을 모두 포기했다는 뜻이다.

직장을 구하기 어려우니 결혼할 엄두가 안 나고, 출산을 하면 지출이 어마어마해진다. 여성의 경우엔 직장생활을 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렇듯 청년들은 취업이 어렵다는데 기업에선 인재 구하기가 어렵다고 투덜댄다.

근무여건을 떠나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고, 그것도 언제든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만 뽑으려는데 누가 가고 싶겠는가!

적절한 급여를 지불하고, 근무안정성이 확보된 정규직을 뽑겠다고 하면 기업에서 인재 구하기 어렵다는 말은 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기업에선 월급 나가는 거 줄이고, 조금이라도 마땅치 않으면 바로 자르려고 인턴십이라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청년들은 수개월간 이용만 당하고 쫓겨나기도 한다. 당연히 박봉이다.

이건 법으로도 개선시킬 수 없다.

하지만 이실리프 자치령은 가능하다.

여러 곳에, 그것도 각각 대한민국 영토보다 큰 자치령이 만들어지고 있다. 모두 사람이 사는 곳이니 각각 하나의 국가에 버금갈 구조를 갖춰야 한다.

향후 이실리프 자치령에서 대한민국의 취업희망자 거의 모두를 고용해 버리면 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이게 된다.

사람이 필요해도 지원자가 없으니 전처럼 인턴십이나 비정규직 같은 단어를 쓸 엄두조차 못 내게 될 것이다.

급여는 물론이고, 근무여건까지 웬만하지 않으면 정규직으로 뽑는다 해도 갈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이비부머 세대와 청년층만 고통받는 것은 아니다. 질 낮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갑-을 관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유업계 대리점주들이 그들이다.

자신들이 하는 짓이 부끄러운 줄은 알아 본사 건물에도 간판을 달지 않는 어떤 업체가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 유업계 빅3 안에 드는 기업이다.

이 업체에선 말도 안 되는 밀어내기와 부조리한 떡값 요구 등으로 대리점의 고혈을 빨았다. 그리고 본사의 젊은 직원은 나이 많은 대리점주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본사가 대리점에 빨대를 꼽고 쭉쭉 빨아먹으면서 덩치를 키웠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 회사의 위탁 대리점주들도 신음하고 있다.

이들이 대형 마트나 백화점으로부터 받은 주문물량은 본사를 통해 직접 공급된다. 지역 소매상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일반 도매대리점과는 약간 다른 형태다.

그리고 이들의 주요 수입원은 판매알선 수수료다.

대형마트의 할인행사는 보통 위탁대리점 의사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유통업체와 본사의 계약에 의해 이뤄진다.

계약이 되면 납품가가 싸져야 하는데 본사는 이 비용을 위탁 대리점주들에게 부담시켰다.

판매알선 수수료를 받는 게 아니라 거꾸로 돈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반면, 본사는 단 한 푼의 손해도 보지 않고 매출에 따른 이익을 챙겼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적 공분을 샀고, 곧바로 불매운동이 벌어졌었다.

처음엔 뻔뻔스럽게도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매출 급감은 견딜 수 없었는지 생색내기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는 말뿐인 사과였다. 언론이 잠잠해지자 본사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본사의 밀어내기 횡포를 고발했던 100개 대리점 중 현재에도 영업을 하는 곳은 불과 30여 군데이다.

이들은 다른 대리점과 달리 높은 공급가를 적용받고 있다.

다시 말해 본사에 찍혀 다른 대리점보다 10% 정도 높은 가격을 주고 물건을 받는다. 자신들을 고발한 대리점들을 고사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회사는 망해야 한다.

또 다른 어떤 업체는 무상급식 우유와 관련하여 지자체로부터 대금회수가 늦어지자 대리점주들에게 대신 납부하도록 강요했다. 이것만으로도 불공정한 처사이다.

대리점에게 과실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사는 자신들이 지정한 날에 대금을 입금토록 하고, 하루라도 늦으면 근거도 없는 연 25%의 지체상금을 물렸다. 한마디로 갑(甲)의 횡포를 부린 것이다.

이 회사 역시 아주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

유업계만 이런 건 아니다. 장업계 역시 본사의 횡포 때문에 대리점주들이 눈물 흘리고 있다.

화장품은 방문판매 사원의 능력이 매출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된다. 각자가 개인사업자이지만 대리점 소속이다.

그런데 본사 마음대로 대리점 소속 판매사원들을 빼돌린다. 실적 좋은 판매사원들을 빼돌려 다른 대리점에 소속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원래의 대리점은 매출부진이라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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