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2
게다가 화살촉에 오러를 싣는 유사 이래 최초의 보우 마스터이며, 물과 바람, 그리고 불과 땅의 최상급 정령을 부릴 수 있는 정령 마스터이다.
여기에 아리아니라는 숲의 요정까지 따른다 하는데 어찌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카이로시아와 자신 이외에도 케이트 에이런 판 포인테스와 다프네, 그리고 스테이시 아르웬도 부인으로 맞아들일 것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실망하는 기분이 들었었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찌 안 그렇겠는가!
참고로, 이 말은 남편이 첩을 얻으면 부처같이 점잖고 인자하던 부인도 시기하고, 증오하게 됨을 이르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눈치 챈 현수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성녀는 가이아 여신이 직접 점지하였고, 케이트는 골드드래곤 제니스케리안의 제자이며, 다프네는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의 딸이라는 내용이다.
어찌 만났으며, 어떻게 해서 아내로 맞겠다고 약속했는지를 들은 로잘린은 더 이상 기분 나빠할 수가 없었다.
하나같이 쟁쟁한 배경을 가졌다.
자신도 공작의 딸이지만 순전히 현수와의 인연 덕분에 아버지가 공작위라는 지고무상한 작위를 받은 결과이다.
현수는 먼저 만나 인연을 맺은 순서에 따라 카이로시아를 이실리프 왕국 제1왕비가 되게 하고, 자신은 2왕비로 맞이한다고 한다.
가이아 여신의 총애를 받는 성녀보다, 드래곤의 딸보다, 드래곤의 제자보다도 서열이 빠르다.
이 대목에서 어찌 감격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늘 흠모와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대화를 하던 중 로잘린이 생각보다 영특함을 깨달은 현수는 슬쩍 마법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신기해하고 본인도 배우고 싶다 하여 마법을 가르치는 중이다.
현수는 매일 밤마다 아드리안 왕국 멀린으로 텔레포트하곤 했다. 다프네의 행방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나흘이나 지나도록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아민 국왕은 몹시 송구스런 표정을 지으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는 없다.
아드리안 왕국은 현재 하던 일을 모두 제쳐두고 검은 로브를 걸친 사내와 꽃보다 아름다운 다프네의 행방을 찾느라 야단법석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모든 영주에 비상령이 내려졌고, 모든 기사와 병사, 그리고 행정관까지 나서서 둘의 행방을 찾는다.
이에 국왕은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누구든 다프네를 찾는데 결정적인 제보를 하면 10,000골드를 하사하기로 했다. 참고로, 이 금액은 한화로 약 100억 원이다. 그야말로 대번에 팔자 고칠 거금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결정적 제보자 본인이 노예라면 즉시 평민이 되게 하고, 평민이라면 남작에 봉하며, 귀족이라면 한 작위를 올려주겠다고 하였다.
이러니 어찌 전국이 들썩이지 않겠는가! 은밀하기로 이름난 정보길드까지 만사를 제쳐주고 둘의 행방을 쫓는 중이다.
하지만 나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한 상황이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 속으로 꺼졌는지 알 수 없다.
현수는 얼른 다프네를 구해내지 못하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지만 행방을 모르니 방법이 없었다.
“흐으음! 어디에 있는 거야? 대체!”
깊은 밤, 로잘린은 킹사이즈 침대에 잠들어 있다.
항온마법이 구현된 상태라 실내 온도는 24℃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이다.
요즘 로잘린은 매일 샤워하고, 양치질까지 한다.
치약과 칫솔 사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샤워를 마치면 슈피리어 듀 닥터로 피부를 관리한다.
손상된 피부를 원상으로 회복시킴과 동시에 탄력저하와 미세주름을 보정해 주는 제품이다.
또한 칙칙한 안색과 피부건조로 인한 속당김 등 피부노화 문제를 완벽하게 관리해 주는 것이다.
게다가 사내를 유혹하는 은은한 향기까지 풍긴다.
로잘린은 샤워를 마친 후엔 얇은 나이트가운을 걸친다. 실크로 만든 것으로 하늘하늘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안에는 아주 야한 속옷뿐이다.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게 하는 망사 브래지어와 망사 팬티이다. 물론 현수가 준 것이다.
로잘린은 잠자리에 들 때 가운을 벗는다.
얌전히 누워 잠을 청하는가 싶더니 잠시 뒤척이곤 모로 누워 이불을 가랑이 사이에 끼고 있다.
세상에 이런 유혹이 어디에 있는가!
아내로 맞이하기로 한 여인이기는 하나 아직 어리다. 그리고 식도 올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직 슈퍼포션을 복용시키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유혹을 해도 안아선 안 된다.
그런데 너무도 고혹스런 모습이 계속에서 눈에 뜨이는데 어찌 감내해 내겠는가!
현수는 평생을 청빈과 독신으로 살겠다고 서원한 가톨릭 사제가 아니다. 물론 부처님 앞에 귀의한 승려도 아니다.
지구에선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와 결혼한 유부남이다. 그리고 너무도 혈기가 왕성한 사내이다. 하여 매일 밤마다 권지현, 강연희, 이리냐라는 절세미녀들을 품는다.
그런데 이곳 아르센에선 성욕을 해소시킬 수 없었다.
결혼을 약속한 여인이 다섯이나 있고,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에는 손만 뻗으면 언제든 안을 수 있는 미녀가 여섯, 아니, 일백오십 명이나 있다.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 안에 거주하는 여인들은 원칙적으로 마탑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금욕주의자처럼 살았다.
그런데 로잘린이 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자고 있다.
얼굴만 소녀처럼 예쁘지 몸은 성인과 다름없다. 들어갈 곳은 확실히 들어가 있고, 나올 것은 더 확실히 튀어나와 있다.
그런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모든 걸 보여준다.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로잘린은 자신이 이불을 잘 덮고 자는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로잘린의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는 잠버릇이 몸매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혈기왕성한 현수로선 참기 힘든 유혹이다.
참으려 했지만 계속 안에 있어선 안 될 것 같아 밖으로 나와 컨테이너 위로 올랐다. 그리곤 마나에 의지를 실어 라세안을 여러 번 불렀지만 무반응이다.
“빌어먹을 친구 같으니……. 아니! 빌어먹을 장인이 되는 건가? 대체 어디서 뭘 하기에 자신의 레어를 비어놓고 돌아다니는 거지? 쩝!”
입맛을 다신 현수는 자신의 행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로니안 공작을 데리고 곧장 테세린으로 가려던 계획은 어그러졌다. 한 이틀이면 충분했을 일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달 이상 걸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나 몰라라 하고 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인이 사라지면 감당하기 힘든 몬스터들의 공격이 있을 수도 있고, 드래고니안 또는 라세안을 만나게 되면 몰살당할 수도 있다.
“흐음! 어떻게 하지?”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이실리프 왕국의 기틀을 잡는 일도 중요하고, 바세른 산맥 아래에 자리 잡은 이실리프 자치령의 건설현장도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
아무리 일 잘하는 드워프들이라 하지만 맡겨놓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가이아 여신의 성녀 스테이시 아르웬과 결혼하려면 교황과 황제를 예방해야 한다. 케이트도 아내로 맞이하기로 했으니 포인테스 후작, 아니, 포인테스 공작도 찾아가야 한다.
‘처갓집 족보는 개 족보’라는 말이 있다.
남자들이 결혼을 하면 처갓집이 생긴다.
자신이 성년이 될 때까지 교류를 하던 친가와 외가 친척들은 아주 또렷하게 촌수를 구별할 수 있지만 결혼하면서 만나게 된 처갓집 친척들의 촌수를 정확하게 따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일 년에 한두 번 가보는 처갓집이기에 갈 때마다 새롭게 만나게 되는 처갓집 친척들의 촌수를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거의 대부분 돌아서면 까먹기 때문이다.
아내 입장에선 남편이 처갓집 촌수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서운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래서 생긴 말이 처갓집 족보는 개 족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포인테스 공작은 케이트의 조부이다. 단순한 처갓집 친척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케이트의 부모와는 일면식도 없다. 가만히 있다가 결혼식장에서 장인과 장모를 처음 보게 되는 건 말도 안 된다. 따라서 조만간 찾아가 뵙고 인사드려야 마당하다.
물론 케이트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는 뜻도 전해야 한다.
마법사 가문이니 위저드 로드의 청혼을 거절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격식은 갖춰야 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작스레 마음이 급해진다.
“안 되겠군. 먼저 자치령에 가봐야겠어.”
깊은 밤이기에 교황과 황제, 그리고 포인테스 공작을 만나러 가는 건 실례이다. 하지만 이실리프 자치령은 예외이다.
드워프는 인간과 생체 리듬 자체가 다르다. 기분이 내키면 몇날 며칠이라도 밤을 새며 작업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자다가도 맥주 마시라는 소리를 들으면 벌떡 일어나는 알코올 중독자 집단이기도 하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컨테이너 위에 있던 현수의 신형이 스르르 사라지자 근방 수풀이 흔들린다. 혹시라도 한 말씀을 들을까 싶어 컨테이너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마법사들의 움직임 때문이다.
* * *
샤르르르릉-!
뚝딱, 둑딱! 쾅쾅쾅쾅! 뚝딱뚝딱! 뚝딱뚝딱!
이실리프 자치령에 당도한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드워들의 밤샘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시선을 돌리던 현수가 나직한 탄성을 낸다.
“어라! 벌써……?”
현수의 눈에 뜨인 것은 눈에 익은 것이다.
가장 먼저 바실리 대성당과 똑 닮은 건물이 보였다. 화려한 지붕이라 눈에 확 뜨인 것이다.
그런데 조금 커 보인다. 현수가 준 사진을 보고 나이즐 빌모아는 처음으로 설계라는 것을 시도했다.
대성당의 모습을 보고 일생의 역작을 만들려는데 사소한 실수라도 있으면 안 된다 생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바실리 성당보다 규모가 커졌다. 약 1.5배이다. 그렇기에 눈에 확 뜨인 것이다.
“플라이!”
허공으로 몸을 띄운 현수는 바실리 뒤쪽에 지어지고 있는 한옥단지를 살펴보았다.
이것 역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창덕궁과 원림(園林)보다 규모가 크다.
약 10만 평에 달하는 한옥 단지는 창덕궁의 담장 못지않은 높은 석성으로 둘러싸이고 있다. 높이는 15m 정도 되고, 담장 위로 병사들이 이동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방의 대문에는 성벽 중 일부를 돌출 시켜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전면과 좌우 양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든 치(雉)가 설치되고 있다.
수원에 있는 화성(華城) 사진을 보고 따라한 듯싶다.
또, 성벽 위에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은신할 수 있는 방패 역할을 하면서 활을 쏘기 위해 구멍이나 사이를 띄어서 쌓은 작은 성벽 여장(女墻)도 조성되고 있다.
성벽 바깥과 안쪽엔 해자가 설치되어 물이 찰랑이고 있다. 눈대중으로 살펴보니 폭 10m, 깊이 3m 정도 된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는데 바닥엔 굵은 자갈들이 깔려 있다. 그러고 보니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닌다.
어종은 모르지만 길이 30㎝가 넘는 월척도 상당히 많다. 지구와 달리 민물고기들도 색깔이 화려하다.
이런 것을 넣어두었다는 것은 적의 무단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조성했지만 평상시엔 관상용으로 쓰라는 뜻인 듯싶다.
하늘에서 살펴보니 포석정처럼 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