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73화 (972/1,307)

# 973

이것은 한옥단지 전체를 휘감아 돈다. 화재 발생 시 소방수로 쓰기 위함일 것이다.

“좋군!”

현수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멋진 단지가 조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파빌리온을 보러 갈까?”

11장 에구, 오랜만입니다

몸을 날려 현장으로 가보니 외형은 거의 다 갖춰졌다. 그런데 불 켜진 방이 꽤 많다.

“어라! 아직 완공된 것도 아닌데 벌써 쓰는 거야? 아! 여긴 지구가 아니지.”

한국이라면 공사를 마치고 준공검사까지 떨어져야 입주가 가능하다. 공사 중이라면 완공된 부분만 임시 사용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곳은 아르센 대륙이고, 어떤 나라의 국법도 미치지 못하는 이실리프 자치령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사전 입주가 가능하다.

“밤이 깊었는데 뭘 하는 거지?”

현수가 비행고도를 낮추자 창문 안쪽이 환히 보인다.

안에선 하일라 토들레아가 여섯 명의 학생을 데리고 정령학 수업을 하고 있다. 물의 정령과 어떻게 친화력을 쌓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 교육이다.

“으잉? 벌써 수업을 해? 다른 데도 그런가?”

불 켜진 다른 방을 들여다보니 행정학 수업 중이다. 입은 옷을 보니 낮에는 작업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듯싶다.

다른 방에선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꾸벅꾸벅 조는 녀석들이 보인다.

아무래도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모양이다.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니 90% 정도 지어졌다. 인원이 많고, 콘크리트처럼 양생 기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빠른 듯싶다.

다른 곳은 어떤가 싶어 살펴보니 기사들을 양성하는 연병장이 보인다. 이곳 역시 사용하는 중인 듯 바닥엔 말발굽 자국 등이 남아 있다. 이때 금속음이 들린다.

챙, 챙-!

“야압-!”

“어림도 없어! 허리가 비었잖아. 이렇게 피하고, 이렇게 공격하면……. 봐! 넌 죽은 목숨이야.”

“크으으! 죄송합니다.”

“정신 바짝 차려. 아차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까.”

“네! 주의하겠습니다.”

자세히 살피니 대략 20여 쌍이 대련을 하고 있다. 도제식 수업인 듯 학생 하나와 교관 하나가 짝을 이루고 있다.

다음엔 타지마할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쓸 곳이다.

이것 역시 규모가 상당히 크다. 완공된 부분엔 서가가 세워져 있는데 책은 아직 꼽혀 있지 않다.

“휘유~! 1,000만 권은 꼽을 수 있겠네.”

규모가 상당히 크기에 저절로 나온 감탄사이다.

고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열람실이 준비되고 있다.

벌써 책상과 의자가 배치된 곳도 있다. 드워프의 손길을 받아 그런지 예술품 반열에 오를 것들이다.

어쨌든 도서관 역시 90%쯤 지어져 있다.

다음은 루드비히로 이름 붙은 언덕 위의 별장이다.

“와아! 세상에…….”

거의 다 지어진 루드비히는 모든 벽이 예술품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화려한 조각들로 채워져 있다. 현수 일가가 별장으로 쓸 곳이기에 각별히 공을 들이는 듯싶다.

안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들려 들어가 보니 드워프들이 조각물을 다듬고 있다.

각자 본인의 실력 뽐내기 대회라도 열린 듯 모두가 열심이다. 어찌나 심취해 있는지 현수가 가까이 다가가 기척을 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흐음, 빌모아 일족의 솜씨는 생각보다 괜찮군.’

현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 곳을 모두 둘러본 현수는 자치령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바실리로 향했다.

“이 밤중에 누구냐? 혹시… 마탑주님이세요?”

어딜 갈 때마다 곤욕을 치렀기에 이곳에 오기 전에 백색 로브로 갈아입었더니 대번에 알아보는 것 같다.

“그래! 수고 많다.”

“헉! 자, 잠깐만 기다리세요.”

바실리 입구에서 위병 근무를 서던 기사는 너무도 놀라 예를 갖추지도 않고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현수가 온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잠시 후, 일단의 무리가 헐레벌떡 튀어나온다.

아카데미에서 마법학부 교수가 된 카이엔 제국 소속 영광의 마탑주 스타이발 후작과 테리안 왕국의 스멀던 후작, 그리고 미판테 왕국의 로윈 후작이 선두에 있다.

기사학부를 책임진 스미스 백작, 가가린 백작, 그리고 전장의 학살자 하인스도 보인다.

정령학부를 맡은 후렌지아 토들레아와 레이찰 토들레아, 그리고 오마샤 토들레아도 있다. 하일라는 수업 중이라 없다.

아카데미 원장 토리노 백작과 도서관장 리히스턴 자작도 헐떡거리며 뛰어나온다.

“충-! 검의 하늘을 알현하옵니다.”

“위대하신 로드를 뵙사옵니다.”

무두가 무릎을 꿇고 있다. 현수가 없는 동안 이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기사들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했고, 마법사들은 서클 하나를 올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현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10서클 반열에 오른 마법사이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이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현수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져 모두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모두들 일어서시게. 과공비례(過恭非禮)라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나친 공손은 오히려 예의를 벗어난다는 뜻이네. 과유불급(過猶不及)과 일맥상통하지.”

“과유불급이요? 일맥상통은 또 뭡니까?”

마탑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금과옥조일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잘 모르는 게 나오면 체면을 무릅쓰고 묻기로 하여 이러는 것이다.

“별로 중요한 말은 아니네. 아무튼 모두들 일어서시게.”

나이로 따지면 본인보다 어린 사람은 단 하나도 없지만 어쩌겠는가! 현수는 이실리프 자치령의 주인이고 이들은 스스로 휘하에 들기를 자청한 사람들이다.

상관이 부하에게 깍듯한 존댓말을 쓸 수는 없다. 위계질서가 문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선다. 스타이발 후작이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려 고개를 숙였을 때이다.

“잠깐-!”

후다다다다!

누군가의 고함에 이어 후다닥 달려오는 이가 있다. 그런데 키가 몹시 작다. 빌모아 일족의 나이즐 빌모아이다.

“헉헉! 헉헉!”

멀리 있다 급히 달려오느라 숨이 찬지 헐떡인다. 현수는 빙그레 웃으며 시선을 주었다.

“오랜만입니다. 족장님!”

“야! 이……. 험험, 아니. 자네는 어떻게……? 허험! 이것도 아니다. 자네……. 이것도 아니고…….”

현수와 단둘이 있는데 아니라 그런지 어휘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그러다 결국 찾아낸 말이 있는 듯 입을 연다.

“하인스 마탑주님!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나이즐 빌모아는 영광의 마탑주 스타이발 후작 등 아카데미 교수진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결국 존댓말을 쓴다. 나이로 따지면 스타이발 후작의 고조부 이상이지만 겉보기엔 비슷하게 늙어 보인 때문이다.

내심 웃겼지만 어찌 그러겠는가! 현수는 애써 웃음을 참고 물었다.

“네? 무슨 일 있습니까?”

“무슨 일이라니… 요. 일을 맡겨놓고 한 번도 안 와보면 대체 우리더러 뭘 어쩌라고… 나중에 공사가 잘못되었느니, 애초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는 등의 말을 하면…….”

나이즐 빌모아는 부러 말끝을 흐린다. 끝에 가서 존댓말을 쓰는 게 마땅치 않은 때문이다. 이를 눈치챈 현수는 일부러 다가가 나이즐 빌모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렇게 왔으면 된 거지요. 대강 둘러봤는데 아주 괜찮더군요. 기왕에 오셨으니 상세한 안내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내? 아암, 하고 말고… 요.”

“자, 그럼 가실가요?”

어서 앞장서라는 표정을 보여주고는 스타이발 후작 등에게 말했다.

“잠시 현장을 둘러보고 올 테니 자네들은 안에서 기다리게. 너무 늦는다 싶으면 자도 괜찮네.”

“네! 로드!”

“알겠습니다. 마스터!”

모두가 고개를 숙이곤 물러난다. 하늘의 명이 떨어졌으니 그에 따르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에이! 나이도 어린 것들이….… 끓는다, 끓어!”

나이즐 빌모아는 현수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은 음성으로 투덜거린다. 상대가 마법사나 소드 마스터가 아니었다면 벌써 발작을 했을 것이다.

자존감 강한 드워프가 제대로 된 장인 대접이 아닌 일개 현장 인부 대접을 받았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내놓고 발작할 수는 없다.

스타이발 후작 등의 마법이 무서웠다.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시범으로 보여준 파이어 스톰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직접 보았던 것이다.

전장의 학살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특급 용병 하인스는 소드 마스터이다.

하인스 역시 시범을 보였는데 바위를 베는 것이었다. 드워프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허접하기만 한 검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바위를 무 베듯 했다.

하여 조상들이 만든 검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바위를 베어봤다. 베어지지 않았다. 손목만 시큰거렸을 뿐이다.

드워프 중에는 소드 마스터가 없다. 다시 말해 하인스와 분쟁이 생겼을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인간들은 늘 몰려서 다닌다. 마법사는 마법사들끼리 기사는 기사들끼리 붙어 다니면서 시끄럽게 떠든다.

마법과 검법에 대한 토론을 떠드는 것으로 오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마법을 시현해 보이거나 오러를 일으키곤 했다.

이런 연유로 현수에게 존댓말을 쓴 것이다.

어쨌거나 나이즐 빌모아는 파빌리온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곤 공사 진척도에 대한 소상한 보고를 시작했다.

시행자에게 시공자가 브리핑하는 것과 유사하다.

현수는 용도 또는 시공 방법 등을 물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었던 때문이다.

이렇듯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상당히 많은 인원이 있기 때문이다.

테리안 왕국의 도움을 얻어 브론테 왕국을 떠난 유민들이 대거 유입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테리안 왕국에서 유리걸식하던 무리 또한 속속들이 집결했다.

이실리프 자치령으로 가면 일자리와 음식을 준다는 소문이 번진 결과이다.

하여 현재 자치령 전체엔 약 50만 명이 움직이고 있다. 장인 종족 드워프들은 제외한 숫자이다.

이들 중 45만 명 정도가 이실리프 자치령 건설에 투입되어 있다. 아주 나이 많은 노인과 젖먹이 아이를 제외하곤 모두가 이런저런 일을 한다.

자신과 가족이 살아갈 곳이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공사가 끝나면 가족 전체가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집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가족수에 따른 적정 규모의 농토도 배정된다.

세율은 불과 10%이다. 아르센 대륙 어디를 가도 이보다 낮은 곳은 없다.

그리고 이실리프 자치령은 일 년에 10일간 노역을 제공해야 한다. 폭우 등으로 유실될 도로를 정비하거나 저수지 둑을 높이는 등의 일에 동원될 것이라 한다.

크게 힘들지 않는 일이다.

일반적인 영지는 최하가 두 달이고, 심한 곳은 가을걷이 이후 파종기인 봄까지 각종 노역에 시달려야 한다.

이것들만으로도 열심히 일할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런데 노역에 대한 삯까지 지급된다.

열흘 간격으로 삯이 지불되는데 성인 남자는 하루 일당이 80쿠퍼이다. 성인 여자는 65쿠퍼, 노인과 아이는 각기 40쿠퍼씩을 준다. 이렇기에 기력이 쇠한 노인과 젖먹이를 뺀 나머지 거의 전부가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역하는 동안엔 하루에 두 끼 식사를 제공한다.

아르센 대륙의 다른 곳에선 기껏해야 단단히 굳어 이빨로 긁어먹어야 하는 빵과 희멀건 국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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