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6
어찌 이들을 외면하겠는가!
먼저 마법사들에게 마나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등학교에 가보면 ‘수포자’가 상당히 많다. 수포자란 수학 포기자를 줄인 말이다.
한국의 대학입시를 눈여겨 살펴보면 수학 성적이 어느 대학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서울시 강서구에 소재한 모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중간고사 학년 평균이 20점에 불과하다.
전교생의 절반 정도가 20점 이하라는 의미이다.
수학을 아예 포기한 학생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준비했음에도 이런 점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학원을 다녔을 것이고, 교육 방송도 열심히 시청하였을 텐데 왜 이런 점수가 나올까?
흔히들 기초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고1인 경우엔 중학교 과정이 완전하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럼 왜 완전하지 못할까?
공부를 안 해서라고, 머리가 나빠서라고, 하기는 했는데 건성으로 해서 그렇다는 답변이 나온다.
그럼 왜 그랬을까?
낮은 시험 성적을 원하는 학생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평균 90점 이상이길 원하고, 기왕이면 전교 1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우쭐대고 싶어 한다.
노력을 하는데도 왜 이럴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장 기본이 되는 걸 등한시한 때문이다.
수학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기본 개념부터 배운다.
그런데 이 개념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알아듣기 쉽다.
하여 대강 듣거나 한 귀로 흘려버린다. 너무 쉽고, 뻔한 이야기인지라 중요하다는 느낌이 덜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기초가 부실한데 그 위에 건물을 지으면 어떻게 될까? 처음 얼마만큼은 나름대로 버티지만 하중이 쌓이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쌓였던 것이 적으면 얼른 치우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쌓여 있던 양이 많은 경우는 잔해를 치우는 것만으로도 일이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다시 쌓고 싶어도 그럴 시간적 여유 없이 수능을 보게 된다.
당연히 낮은 점수가 나올 것이다. 그럼 소위 명문대학이라 불리는 곳엔 갈 수가 없다.
마법도 이러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마나에 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거나 부실한 마법사들도 노력에 따라 어느 수준까지는 서클이 올라간다.
그러다 벽을 만나게 되고, 그것은 평생을 두고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수가 있다. 미처 생각지 못해 엉뚱한 부분만 두드리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이발 후작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현수가 설파하는 마나이론에 넋이 나가 버렸다. 자신들이 얼마나 기본을 무시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몇 마디 말로 마법사들의 의식을 깨우자 곧바로 명상에 들어간다. 현수가 준 실마리를 풀기 위함이다.
현수는 파빌리온 기사 연무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전장의 학살자 하인스와 더불어 검을 나눴다.
현수가 수비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인스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동체시력과 반응 속도의 차이 때문이다.
현수의 눈엔 하인스의 움직임이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그에 반응하여 방어하거나 공격 루트를 미리 차단하는 현수의 움직임은 섬전처럼 빨랐다.
그 결과 하인스는 공격을 하려다 물러서길 반복했다.
자신이 가려는 방향에 뾰족한 검끝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전진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해도 안 되자 하인스는 오러까지 뿜어대며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현수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검과 검이 부딪쳐도 현수의 평범한 소드는 조금의 손상도 입지 않았다. 격돌할 때만 0.2초쯤 발현되는 플래쉬 오러 덕분이다.
시간이 흐르자 하인스는 거친 숨을 내쉰다.
소드 마스터이지만 사람인지라 체력이라는 것이 있다. 게다가 오러를 뿜어내느라 마나까지 소진되었다.
“헉헉! 도, 도저히……. 헉헉! 아, 안 되겠… 헉헉! 헉헉!”
챙그랑-! 털썩-!
체력이 완전히 고갈된 하인스는 검을 떨구며 주저앉는다. 검을 들고 있는 기운조차 소모된 때문이다.
전장이었다면 목을 베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다.
잠시 앉아 있던 하인스는 이내 널브러져 버린다.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앉아 있을 기운조차 없는 것이다.
구경하던 이들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누가 봐도 전장의 학살자 하인스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현수가 없는 동안 일과가 끝나면 검사들끼리 모여 대련을 했다. 덕분에 다들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소드 마스터인 하인스는 거의 매일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나 최상급을 상대하며 조언을 해줬다.
일대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혼자서 다섯 명을 상대할 때에도 여유가 있었다. 대련을 하다 보면 가끔은 몹시 격렬해질 때가 있었다. 호승심 때문이다.
그때마다 하인스는 눈부신 움직임으로 공격을 차단하고, 역공을 퍼붓곤 했다. 이쯤 되면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패배를 자인하곤 했다. 모두들 그게 전력을 다한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확실히 아니다.
짐작컨대 자신들과 대련은 능력치의 80% 정도만 썼다.
그런데 오늘!
한 번도 보지 못한 검식이 난무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현수의 옷깃이라도 베어보려 애를 썼다.
명색이 소드 마스터이다. 그런데 현수의 털끝도 못 건드려보고 쓰러져서 헐떡거린다.
반면 현수는 처음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하인스는 땀투성이인데 현수는 뽀송뽀송하다.
전장의 학살자를 소드 마스터의 전형이라 생각해 보면 열 명의 하인스가 있어도 현수를 못 이길 것 같다.
게다가 오늘은 오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만일 20m짜리 검강을 뿜어냈다면 하인스는 잘게 베어진 육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까지 감안한다면 30명 이상의 소드 마스터가 있어도 상대가 못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입을 딱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상상 이상의 전력임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자! 다음은 누구지?”
“…저요, 제가 하겠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동시에 나선 이는 가가린 백작과 스미스 백작이다.
가가린은 미판테 왕국 출신이고, 스미스 백작은 테리안 왕국 출신이다. 이들은 본인의 작위와 영지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왔다. 다시 말해 은퇴한 것이다.
소드 마스터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든 것이다.
둘 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으로 전장의 학살자와 대련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었다. 하여 최상급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좋아! 둘이 함께 오게.”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분노했을 것이다. 하나 상대는 현수이다. 자신들쯤은 백 명이 덤벼도 끄덕도 없는 존재라는 걸 알기에 찍소리 않고 군례를 올린다.
“네!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좋아! 들어오게.”
현수가 검끝을 까딱거리자 가가린과 스미스는 눈빛을 교환한다. 전장의 학살자와 대련하는 동안 합공할 때 시간 차 공격이 아주 유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그것을 써보자는 것이다.
“이잇!”
“야아압!”
스미스는 우에서 좌로 베고, 가가린은 얼굴을 찔렀다.
웬만하면 당황하여 물러설 수법이다. 하지만 현수는 그러지 않는다.
챙, 채앵-!
“헐……!”
“세상에……!”
현수는 먼저 쇄도한 스미스 백작의 검을 쳐올렸다. 그러자 스미스 백작의 검이 가가린 백작의 검을 쳐낸다.
타짜들은 이를 일타이피라고 할 것이다.
“의도는 좋았는데 스미스 백작의 검은 쾌(快)에 치중하여 중(重)이 부족했네. 가가린 백작의 검은 변(變)이 부족했어. 자고로 검이란…….”
검의 기본에 대한 설명이 잠시 이어졌다.
가가린과 스미스는 아주 공손한 자세로 경청한다. 그런데 둘만 이러는 게 아니다.
하인스는 물론이고 다른 검사들 역시 귀를 쫑긋거린다.
어쨌거나 현수의 설명은 이어졌다.
“빠르되 가볍지 않아야 하고, 너무 많은 변화를 노리면 오히려…….”
현수는 직접 검을 휘둘러 보이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엔 플래쉬 오러까지 선보였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오러가 검을 보호하므로 마나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설명을 하자 하인스가 감탄사를 터드린다.
“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을 감는다. 그런데 갑자기 스미스와 가가린도 감탄사를 토한다.
“아아! 그랬구나.”
“허어, 이런 걸 여태……!”
가가린과 스미스가 깨달음의 벽을 깨고 소드 마스터가 되는 순간이다. 현수는 모두들 조용히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다들 어떤 상황인지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곤 멀어져 갔다.
현수는 세 사람의 명상이 방해받지 않도록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리곤 멀찌감치 물러나 있던 이냐시오를 불렀다.
“잘 있었느냐?”
“네! 고모부!”
“지낼 만했어?”
“네!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다행이구나. 조만간 나와 함께 멀리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거라.”
이냐시오는 자기도 영문을 알면 안 되겠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하여 파이렛 군도가 이실리프 군도로 바뀌었음을 설명해 주었다.
“그, 그럼 고모부께서 국왕이 되시는 거예요?”
“그래! 내가 초대 국왕이다.”
“헐! 그럼 고모는……?”
“이실리프 왕국 초대 국왕의 제1부인이 되지.”
“우와아……!”
이냐시오는 노처녀 고모가 팔자를 고친 이야기에 입을 딱 벌린다.
“당장 떠날 것은 아니니 당분간 열심히 수련하고 있어라. 소드 마스터가 셋이니 그들이 가진 모든 걸 흡수하겠다는 일념을 가지면 될 것이다.”
“네! 고모부! 아니, 국왕 폐하!”
“녀석! 너는 그냥 고모부라 부르도록 해라. 알았지?”
“네! 고모부!”
이냐시오는 인간 같지 않은 고모부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불과 스물다섯 살짜리 청년으로 보인다.
그런데 10서클 대마법사이고, 그랜드 마스터이다. 이실리프 자치령의 영주이면서, 이실리프 왕국의 국왕이기도 하다.
아공간 속엔 상상도 못해본 온갖 기이한 물건이 가득하고, 어마어마한 부자라고 한다. 케린도 빌모아가 20,000톤에 이르는 금괴를 제작한 것이 소문난 것이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잘 지키고 있거라. 셋의 명상이 마쳐지려면 하루나 이틀은 지나야 할 것이다.”
“네! 고모부!”
“나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이곳의 경비 책임을 네게 맡기마.”
“…네! 알겠습니다.”
이냐시오는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가슴을 툭툭 두드린다. 믿고 맡기라는 뜻이다.
기사 연무장을 나선 현수는 구경하듯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전에 꺼내 준 컨테이너에 완전히 적응한 듯싶다.
“금괴 준비가 마쳐졌으니 이제 슬슬 지구로 가봐야겠지?”
게리 론슨과 왕리한, 그리고 가와시마 야메히토는 자신들의 임무를 잘 수행했을 것이다.
“킨샤사 저택 좌표가 뭐더라……?”
좌표집을 꺼내 확인을 마친 현수는 옷을 갈아입었다.
“자아! 지구로 가보자.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스르르 흩어진다.
이때 멀리 떨어진 라수스 협곡에서 대규모 마나 유동 현상이 빚어진다.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 라이세뮤리안의 귀환이다.
같은 순간, 로니안 공작 부부는 킹사이즈 침대 위에 잠들어 있다.
“하으음!”
잠결에 세실리아 공작부인의 다리가 로니안 공작의 다리를 휘감자 기다렸다는 듯 품에 안는다.
이 순간 세실이아 부인이 이를 간다.
빠드득! 빠드드득!
“으이그! 잠버릇 하고는…….”
『전능의 팔찌』 41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