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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988화 (987/1,307)

# 988

이들 중 상당수가 레드마피아에 몸담고 있다.

그런데 상부에서는 이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늘 귀찮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놈도 성향이 그래?”

“지금은 아니지만 이전엔 스킨헤드 애들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수가 끼어들었다.

“미스터 지르코프, 저런 놈은 혼이 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냥 놔둘 건 아니지요?”

“물론입니다. 내가 저놈을…….”

귀빈을 모셔다 놓고 좋지 않은 꼴을 보인 셈이라 지르코프는 불쾌한 기분이다. 평소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녀석의 직계가 사고를 쳐서 더욱 그러하다.

“나도 마피아에 서열이 있다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이바노비치 보스께서 후계자로 지목을 하셨으니까요.”

“그렇다면 저 친구도 내 밑인 거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도 고리대금업을 하는 놈이 제법 많습니다.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 제 배를 채우는 그놈들이 있어 이실리프 뱅크를 낸 겁니다.”

“……!”

방금 현수가 한 말에는 행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고리대금업을 혐오한다는 뜻이다.

머리 좋은 지르코프가 어찌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앞으로 제 조직에서 그런 일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놈에 대한 처분은 미스터 킴에게 일임합니다.”

말을 마친 지르코프가 운전자에게 눈짓하자 글로브박스에 있던 권총을 꺼내온다. 하늘 모르고 까부는 놈일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한 것이다.

“잠시 이곳에 계십시오.”

말을 마친 현수는 지르코프의 대꾸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걸었다. 양복을 입었지만 넥타이는 매지 않은 상태이다.

“잠시만요!”

사람들 틈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자 말코이 사샤 이반스키가 바라본다. 싫어하는 동양인이 다가온 때문이다.

그런데 곧바로 발작하진 않는다. 현수가 말끔한 양복 차림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뭐야, 넌?”

“말코이 사샤 이반스키? 조직의 중앙에서 이 사람들에게 대출해 준 것에 대한 이자를 올리라고 했다고?”

“…누구냐고 물었다!”

“나? 상부에서 온 사람.”

“상부? 무슨 상부? 우리 레드마피아의 중앙엔 너 같은 동양인은 없다. 어디서 감히……!”

현수를 매섭게 노려본 이반스키는 시선도 떼지 않은 채 곁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발레리, 막심! 저놈 잡아!”

“네, 보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쪽에 있던 두 녀석이 단상 아래로 내려온다. 현수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걸을 안다는 듯 맨손이다.

“홀드 퍼슨! 홀드 퍼슨!”

현수의 입술이 달싹이자 흉흉한 기세로 달려들던 발레리와 막심이 멈춰 선다. 두목의 명이 떨어졌으니 얼른 달려가 현수를 작살내야 하는데 갑자기 발이 떨어지지 않자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이다.

막심과 발레리가 멈칫거리는 동안 현수는 이반스키에게 몇 걸음 더 다가섰다.

“말코이 사샤 이반스키라고 했나?”

“뭐야? 어디서 감히 내 이름을! 누구야? 누가 내 이름을 너 같은 노랭이에게 가르쳐 준 거야?”

이반스키는 두 눈이 째진 동양인이 자신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듯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 눈을 부라리며 곁에 있는 부하들에게 눈짓한다.

“이고르! 일리야! 가서 놈을 잡아!”

“네, 보스!”

이반스키의 명이 떨어지자 품에 있는 우지 기관총을 꺼낸다. 도주하면 쏘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시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고르와 일리야 역시 발레리와 막심의 곁에 멈추게 된다. 10서클 마법사인 현수의 홀드 퍼슨은 인간의 힘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강력한 마법이다.

저승 세계의 문지기 케르베로스(Kerberos)를 포획했다는 헤라클레스(Hercules)조차 이 마법에 걸리면 꼼짝을 못한다.

하물며 말단 마피아 단원이 어찌 이를 이겨내겠는가!

“으읏! 왜, 왜 이래? 이, 일리야! 나 좀 봐! 내가 왜 이래? 으으, 못 움직이겠어.”

“으으! 나도 그래. 갑자기 몸에 마비가 왔나봐. 꼬, 꼼짝도 할 수 없어.”

일리야의 말이 끝나자 앞에 있던 막심이 입을 연다.

“나도 그래. 갑자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어. 왜 이러는 거야? 혹시 귀신 들린 거야?”

“막심, 너도 못 움직여? 끄응! 왜 이러지? 이상해.”

발레리 역시 움직이지 못함을 호소했지만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현수가 몇 걸음 더 이반스키에게 다가서자 위쪽에 있던 녀석이 밑으로 내려온 때문이다.

빈민촌 사람들은 우려 섞인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이반스키에 비하여 현저히 체구도 작고 혼자의 몸이기 때문이다.

“감히 노랭이 주제에 내가 말하는데 끼어들어? 그리고 뭐? 상부에서 왔다고?”

한 칸 한 칸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씹어 먹을 듯 노려보던 이반스키는 끼고 있던 장갑을 당겨 끼운다. 오랜만에 눈엣가시 같은 노랭이 하나를 작살낼 요량이다.

모스크바의 뒷골목을 주름잡을 땐 상당히 많은 동양인을 패주었다. 그중엔 여자도 여럿 있다.

돈 다 뺏고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욕을 보인 뒤 마구 패서 아무 데나 버렸다. 그중 몇몇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양인들은 무술을 배웠다며 온갖 폼을 다 잡았다. 하지만 이반스키를 감당해 내진 못했다.

신장 195㎝, 몸무게 140㎏의 근육질 거구에게 어설픈 실력을 드러내려다 반쯤 죽었을 뿐이다.

이반스키는 마른 입술에 슬쩍 핥고는 품속의 칼을 뽑아 들었다.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수는 태연자약하다. 이반스키가 다가섬에도 물러서지 않고 시선을 주고 있다.

“크흐흐! 노랭이, 어딜 분질러 줄까? 척추? 목?”

으득! 으드득! 으드드득!

다가서며 목운동이라도 하는지 고개를 젓는다. 그때마다 뼈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현수는 오른 다리를 뒤로 슬쩍 빼곤 자세를 낮췄다.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하는 자세이다. 그리곤 올 테면 와보라는 뜻으로 손끝을 까딱거렸다.

“크흐흐! 아주 뒈지려고 작정을 했군! 좋아, 그렇다면 화끈하게 목뼈를 꺾어 세상 하직하게 해주지!”

들고 있는 칼을 휘휘 저으며 다가서던 이반스키는 잠시 멈칫거리는가 싶더니 섬전처럼 주먹을 휘두른다.

물론 본인이 기준일 때 그러하다. 그랜드 마스터인 현수의 눈에는 슬로우비디오처럼 느려터진 주먹이다.

그런데 놈의 덩치가 커서 그런지 주먹도 엄청 크다. 초등학생 머리 정도 되는 크기이다.

휘익! 휙! 퍼억―!

“컥! 끄아아아악!”

슬쩍 자세를 낮춰 이반스키의 주먹을 피한 현수는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강력한 로우킥을 날렸다.

자세를 바로 하기도 전에 허벅지 안쪽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통증에 이반스키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어허! 뭐가 이렇게 시원치 않아? 겨우 한 방인데 항복이야? 그런 거야?”

“이, 이놈! 크흐윽!”

동양의 꼬맹이에게 맞은 게 부끄럽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지른 이반스키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도로 주저앉는다.

“어서 일어나! 그거 가지고 되겠어?”

“이, 이놈! 크흐윽!”

억지로 몸을 일으킨 이반스키는 불량기 좔좔 흐르는 눈빛으로 현수를 노려본다. 그런 그의 손에는 잘 벼려진 버터플라이 나이프가 들려 있다.

얼마나 손에 익었는지 쓰러졌다 일어나는 짧은 사이에도 빠른 오프닝 및 클로징 기술인 패스트 드로우(Fast draw)를 시도하고 있다.

철컥, 철커덕―!

현수의 눈엔 결코 보기에 좋지 않다.

“사내새끼가 멀쩡한 주먹 놔두고 흉기나 휘두르다니… 가서 부랄 떼고 와라.”

“뭐야? 이런 시러배 잡상인 같은 십장생이!”

빠른 속도로 러시아 비속어를 토해놓은 이반스키는 현수와 시선이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버터플라이 나이프로 가슴을 찌른다.

이 공격이 먹히면 현수는 즉사한다. 정확히 심장 부위를 노린 공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해줄 현수가 아니다.

놈의 칼이 가까이 다가오자 두 손을 내밀어 휘감았다. 그러자 버터플라이 나이프가 허공으로 솟아오른다.

마치 무협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짧았지만 실상은 여러 개의 수가 시전된 것이다.

현수는 오른손으로 상대의 손목을 잡았다. 같은 순간 왼손은 놈의 합곡 부위를 강하게 압박했다.

참고로 합곡이란 엄지랑 검지 사이의 손등 부분이다.

손목과 합곡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놀라 힘을 빼는 순간 놈의 손을 위로 추켜올렸다.

그 순간 버터플라이 나이프가 빠져나간 것이다.

같은 순간, 반보 앞으로 나간 현수는 놈의 왼다리 허벅지 뒤쪽 은문혈(溵門穴) 부위를 강하게 후려 갈겼다.

퍼억―!

“크으윽!”

순식간에 느껴지는 격통에 이반스키는 신음을 토하며 주저앉는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증인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강력했는지 오만상을 찌푸린다. 이때 현수의 발이 놈의 턱을 걷어찬다.

퍼억―!

“캐액―!”

쿵! 와당탕! 와장창창―!

이반스키의 육중한 몸이 잠시 허공으로 솟는다. 그리곤 곧바로 곁에 있는 드럼통과 부딪친다.

사람들이 추우 때 불을 지피던 것이지만 지금은 꺼져 재만 수북한 것이다. 급작스런 충격에 드럼통이 쓰러지면서 담겨 있던 재를 뿜어냈다. 이때 이반스키의 몸이 그 속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신데 이반스키가 되어버렸다.

참고로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 중 ‘신데렐라’가 있다.

이 동화의 주인공 이름 신데렐라를 보통 사람들은 그냥 여자아이 이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말은 프랑스어로 신데(Cinder)와 사람 이름 ella의 복합어이다.

따라서 신데렐라는 ‘재투성이 엘라’라는 뜻이다.

계모의 핍박 때문에 부엌데기가 된 엘라를 일컫는 말인데 사람 이름인 것으로 오인하는 것이다.

아무튼 재투성이 이반스키라 신데 이반스키가 된 것이다.

7장 감히 내 이름을 팔아?

“으읍! 퉤퉤, 퉤퉤퉤!”

입안으로 들어간 재를 뱉어내며 일어서려던 이반스키는 피 섞인 재를 보고는 이빨을 더듬어본다.

혹시 부러졌나 싶은 것이다.

한편, 곁에서 구경하던 군중들은 놀랍다는 표정이다.

덩치가 훨씬 큰 이반스키를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현수는 겉보기엔 호리호리하다.

하여 동양의 무술을 익힌 고수쯤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정체가 궁금한지 서로에게 현수를 아는지 묻는 모양이다.

“조금 전 너는 지르코프 야진스키 이바노바가 이자율을 올리라고 해서 그랬다고 했다. 맞나?”

“으으! 누, 누구십니까?”

맞은 건 허벅지와 턱뿐이다.

그런데 손목은 시큰거리고, 골이 흔들린 것 같으며, 다리에선 아예 쓰지 못할 듯한 격통이 느껴진다.

이반스키는 현수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말을 높이고 있다.

“아까 이야기했다. 상부에서 나왔다고.”

“…누,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조, 조금 전엔 제,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동양인 알기를 개떡만도 못하게 여기는 이반스키지만 왠지 현수에겐 함부로 대하면 안 될 듯한 아우라가 뿜어지고 있다.

그랜드 마스터가 마음 놓고 기세를 뿜어내면 아르센 대륙의 소드 마스터들도 심신이 위축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물며 평범한 인간인 이반스키는 어떠하겠는가!

괜스레 부들부들 떨리고 무모하게 도발했다간 그대로 짓뭉개질 듯한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숨 쉬는 것조차 어렵다는 느낌을 받는 중이다. 그렇기에 안하무인이던 이반스키가 이토록 공손해진 것이다.

“나? 나는 알 필요 없어. 미스터 지르코프!”

현수의 시선의 받은 지르코프가 나서자 이반스키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사진으로만 본 직속상관의 직속상관의 직속상관의 직속상관이시다. 그리고 조금 전에 자신이 이름을 팔아먹은 장본인이다.

“보, 보, 보스! 크흑! 자, 잘못했습니다!”

털썩―!

지르코프의 싸늘한 시선을 받은 이반스키는 오체투지 비슷하게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린다.

노보로시스크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의 모든 마피아는 젊은 시절 피의 투쟁을 벌이던 지르코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단신으로 자신에게 항쟁한 조직원들을 직접 소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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