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93화 (992/1,307)

# 993

난치병이나 불치병이 아닌 건 당연히 치료 가능할 것이다.

“저… 혹시 코리안 빌리지의 성자가 자네인가?”

감탄사를 터뜨린 할아버지가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현수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긴 했으나 잠깐이었기에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닙니다. 성자는 아니구요, 그냥 한국의 전통 의술인 침술에 대해 작은 공부를 했을 뿐입니다.”

“허어! 이런 세상에! 성자를 눈앞에 두고도 그냥 갈 뻔했네. 이보게, 성자! 나도 아픈 데가 있는데 치료 좀 해주게.”

말을 하며 손을 내미는데 손가락 관절 부위가 부어 있다.

한국에서도 관절염은 전체 인구의 12% 정도가 고통 받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특히 65살 이상 노인의 거의 대부분이 퇴행성관절염으로 고통 받고 있다.

관절염의 대부분은 퇴행성관절염(골관절염)이지만 류머티즘 관절염은 염증 질환이다.

아주 젊은 나이에서도 생길 수 있으며, 치료시기를 놓치면 관절 기능이 파괴되어 움직이기 힘들어지고 관절 불구가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는 항염증 및 항류머티즘 작용을 하는 약물 치료와 염증 세포를 없애기 위해 관절경을 통해 활막 제거술을 하고 있지만 완치시킨 케이스는 없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퇴행성관절염으로 오인하기 쉬운 질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인데, 공통적으로 관절 부위가 붓고 아프다.

“할아버지, 아침에 일어나시면 손이 잘 구부러지지 않는 통증이 매일 한 시간 이상 반복되나요?”

“허어! 그걸 어떻게 알았나? 척 보기만 해도 아는 걸 보니 역시 성자는 성자네. 이보시게, 성자! 나도 좀 고쳐주게.”

노인은 자신의 증세를 한 번에 짚어내자 놀랍다는 표정이다. 병원에 가면 X―ray도 찍어보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도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진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리신 것 같아요. 좀 오래되셨죠?”

한눈에 보기에도 손가락 마디마디가 보기 흉할 정도로 불룩하기에 한 말이다.

“오래되었지. 근데 돈이 없어서……. 요즘엔 진통제나 받으러 가네.”

“그래요? 그럼 이쪽으로 앉아보세요.”

현수의 지시에 따라 노인은 의자에 앉는다. 잠시 후 이 노인은 멀쩡해진 손가락을 연신 구부려 본다.

통증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다들 성치 않은 부위가 하나씩은 있었던 모양이다.

현수의 손길을 받은 사람들은 고질병을 떨치고 기뻐하였고, 줄 서 있던 사람들은 기대에 부푼 표정이다.

정말로 침 몇 개로 못 고치는 병이 없었기 때문이다.

류머티즘 관절염 다음에 완치된 건 오래된 기관지천식이다.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던 할머니가 환히 웃었다.

현수 역시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서른두 번째 환자는 탈장이 문제였다.

탈장이란 신체의 장기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조직을 통해 돌출되거나 빠져나오는 증상이다.

마흔 살 정도 된 이 여인은 난소와 나팔관이 나와 있었다. 산부인과 질환이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워해서 기꺼이 시료에 나섰다.

그냥 놔두면 난소 기능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침을 두 군데에 시침하곤 리커버리 마법을 걸어주었다.

한번 탈장되기 시작하면 재발하기 쉽기 때문에 원상으로 회복시켜 준 것이다.

검은 까마귀 마을에 성자가 강림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번졌다. 사람들이 몰려들 때 이반스키 일당도 왔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것이다. 지르코프는 이들로 하여금 통제를 지시했다. 서로 먼저 치료해 달라고 달려든 때문이다.

하지만 이반스키 일당이 나서자 금방 정리된다. 이 마을 청소부가 되었지만 여전히 레드마피아 단원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치료가 이루어지는 동안 현수는 정령들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했다. 신장 결석이나 담석같이 깨부수는 것은 노에디아가 호출되었다.

내부 장기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물의 최상급 정령 엘리디아로 하여금 치유케 했다.

마법이라는 걸 알릴 수 없기에 매번 침을 놓았다.

그러면서 돈이 들지 않는 처방을 해주었다.

예를 들어, 탈모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겐 검은콩을 많이 먹도록 했다. 신장에 문제 있는 사람들은 검은깨나 호두를 먹으라 하였고, 위궤양, 역류성 식도염, 위염 환자에겐 양배추를 처방해 주었다.

기력이 쇠한 노인들에겐 귤껍질과 대파를 달여 마시도록 했다. 소변보기 힘들어하는 환자에겐 옥수수수염을 달여 먹으라고 했다.

일련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지르코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거의 전문의 수준이 되었던 사람이기에 현수의 의술이 어떤지를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지르코프가 보기에 현수는 내과, 외과, 신경과, 안과, 피부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를 모두 전공한 전문의 같았다. 눈으로 보기만 하면 어떤 병인지를 아는 것이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환자 중에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이가 있었다면 더 확실했겠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이실리프 의료원 부설 난치병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온갖 난치병을 다스릴 신약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어쨌거나 잔치를 위해 준비한 음식이 많았기에 구경하면서 먹는 이가 꽤 되었다.

시간이 흘러 밤이 이슥해졌어도 현수의 시침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많은 환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소문을 듣고 온 사람이 1,000명이 넘었으나 모두를 치료해줄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하자 알아서 정리하였다.

상대적으로 증세가 덜한 이들은 뺀 것이다. 남은 건 중증과 난치병, 그리고 불치병 환자들뿐이다.

간경변증 환자도 있고, 심한 동맥경화 환자도 있었다. 하지만 현수를 만나고 돌아갈 땐 모두가 웃었다.

훨씬 몸이 편해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중에 검사해 보면 알겠지만 병마로부터 해방되었으니 그런 것이다.

아주 깊은 밤이 되자 현수가 피곤할 것이라며 스스로 줄을 줄였다. 마지막 113번째 환자는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보행불능 상태였다.

척추에 염증이 생겨 관절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으로 허리, 엉덩이, 무릎, 발꿈치, 발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증상이 악화되면 걷는 것조차 힘든데 최악인 경우가 된 것이다.

하지만 현수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발로 걷기 시작했다. 모두들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런 사이에 현수는 늘어놓았던 침 등을 챙겼다. 이제 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 저는 이제 그만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모스크바에 갈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

모두들 아쉽고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현수가 이곳에 계속 머물면 아픈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쁘다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에 아무도 남아달라고 만류하지는 않는다.

현수는 검은 까마귀 마을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가난하지만 순박하게 살아온 인생이 엿보인다.

절로 측은한 마음이 인다.

“혹시라도 저를 다시 만나고 싶으시면 킨샤사로 오시면 됩니다. 참고로 제가 있는 곳은 안나 장모님이 잘 아십니다.”

“고맙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성자님.”

맨 처음 치료를 받은 할아버지가 깍듯한 존댓말로 말한다. 현수가 성자라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한 것이다.

“치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성자님!”

“감사합니다, 성자님!”

모두가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한다.

환자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들 또한 예를 표한다.

“또 뵙겠습니다, 성자님!”

누군가의 말이다. 킨샤사로 이주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주하시는 분들에겐 항공편이 제공될 테니 비행기 삯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노보로시스크에서 킨샤사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5,750㎞이다. 그런데 항공기는 직선으로 비행하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바다에 해류가 있는 것처럼 하늘에도 바람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다른 나라의 하늘은 허락받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허락을 받았다 하더라도 내전 중인 나라의 영공은 안전하지 않다.

재수 없으면 미사일에 의해 격추당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비행을 할 때 혹시라도 안전에 문제가 발생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착륙할 수 있는 공항 인근으로 노선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보로시스크에서 킨샤사까지 가려면 적어도 6,500∼7,500㎞ 정도 비행해야 한다. 혹은 이보다 더 장거리일 수도 있다.

참고로 서울에서 미국 LA까지 거리는 약 9,600㎞이다.

그리고 2014년 현재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편도 운임은 약 133만 원이다.

이를 감안해 보면 노보로시스크에서 킨샤사까지 1인당 항공료만 85만∼100만 원이다.

만일 검은 까마귀 마을 주민 전부가 킨샤사로 이주하겠다고 하면 운임만 34억∼40억 원이 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걸 모두 부담해 준다니 입이 딱 벌어진다.

안나로부터 현수가 아주 큰 부자라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지만 이 정도로 통이 클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듯 모두가 멍한 표정이다.

이때 현수의 눈에 몇몇 사람이 눈에 뜨인다.

진료를 받겠다고 줄을 섰으나 더 증세가 심한 사람들을 위해 양보한 환자들이다.

어찌 그냥 두고 보겠는가! 하여 나직이 입술을 달싹였다.

‘엘리디아, 근처에 있지?’

‘네, 마스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현수의 몸을 한 바퀴 휘감는다. 약간 서늘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은 잠시이고 상쾌한 느낌이다. 자신의 충성을 받는 존재이기에 자연스레 바디 리프레쉬와 유사한 능력을 발휘한 결과이다.

바디 리프레쉬 마법과 다른 점은 서늘한 기분이 든다는 것과 왠지 깨끗해진다는 느낌까지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심신이 상쾌해진 현수는 엘리디아에게 시선을 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엘리디아, 저쪽에 환자들이 있어. 가서 치료해 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뜻대로 하지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엘리디아의 동체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그리곤 멍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는 환자들에게 다가간다.

그중엔 아폴로눈병에 걸린 이가 있다.

결막이 감염되어 통증과 이물감,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증세를 보이는 전염력이 매우 높은 안과 질환이다.

대개 10일 이내에 자연적으로 치유되기에 순서에 밀려나 있었다. 어쨌거나 갈라진 엘리디아의 일부가 이 환자의 눈 주위에 머물다 옮겨가자 무언가 느끼는지 눈을 비빈다.

비비면 염증이 생긴 눈에 자극이 되어 증세가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전혀 아프지 않자 옆 사람에게 자신의 눈을 봐달라고 이야기한다.

아폴로눈병의 다른 명칭은 급성 출혈 결막염이다. 따라서 눈이 벌겋게 된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현수를 바라본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엘리디아의 동체가 여러 갈래로 갈리면서 켈레모라니의 비늘로부터 마나가 사방으로 뿜어질 때이다. 현수는 마나 공급이 보다 원활하도록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팔이 마나의 길을 막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러다 사내와 현수의 시선이 마주쳤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눈 아픈 건 어떠냐는 표정을 지으며 눈빛을 빛냈다.

그런데 이심전심이 되었는지 사내가 이 뜻을 알아들었다. 하여 고개를 끄덕이곤 고맙다는 뜻으로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이에 현수는 괘념치 말하는 듯 살짝 웃어주었다. 이때 사내의 입에서 마치 방언이 터지듯 큰 소리가 나왔다.

“진짜 성자님이시다! 내 눈병이 나았어요! 성자님께서 바라만 보셨는데도 내 눈병이 나았다구요!”

“어? 진짜 눈병이 꽤 심했는데 다 나았네?”

“어라? 여기 난 여기가 많이 곪았는데 다 나았나 봐!”

“정말? 붕대 풀어봐. 그거 풀면 알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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